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315)
315화 아이돌
숙소로 돌아온 멤버들은, 한참 동안을 바닥에 앉아 그저 서로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뭐여 이거.”
“우리 지금 조선 다녀온 거 맞음?”
“단체로 환각이라도 본 거 아냐?”
“아하하핫,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구체적이었는걸~”
“···저, 전 거기서 긁힌 상처도 그대로 있어요···.”
“나도 주먹에 멍이 들었다.”
“형아는 또 뭘 했길래 주먹에 멍이 든 거냐구여.”
“으, 목이 칼칼해. 뭔가 흙먼지 일어나는 저잣거리에서 3시간 생목 라이브 한 기분인데.”
“그런 기분인 게 아니라, 실제로 그랬던 거겠지.”
“그렇다면···.”
“이게 다 실화였다는 말이네.”
“군자 형아는 조선에서 온 사람이 맞았고여.”
“권태웅 넌 또 허리에 뭘 감고 있는 거야.”
“이거? 아까 우리 묶었던 밧줄. 허리에 감으니까 좀 손오공 같고 멋지지 않냐.”
“잠깐만, 지금 조선 물건을 여기에 들고 왔다는 거야?”
“어, 맞네?”
“아하하하핫, 박물관부터 가야 하겠는데~”
흥분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 후로도 소년들은 몇 시간이고 지난 하루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진짜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아여. 우리가 조선에 다녀왔다니···.”
이야기의 중심엔 당연히 군자가 있었다. 300년 전, 군자가 속해 있던 세상에서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그곳에서 소년들은 어린 군자를 만났고, 캄캄한 뒤주 속에서 그를 끄집어 내 환한 세상으로 내보냈다.
처음엔 군자의 고민을 해결해 주기 위함이었으나, 나중에는 모두가 감동을 받고 말았다. 어린 군자가 얼마나 억압받으며 살았는지, 얼마나 자유롭게 춤추며 노래하는 인생을 갈구했는지, 단 몇 시간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 군자 형···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요···.”
“맞아. 어떻게 양아버지라는 사람이 애를 그렇게 학대할 수 있냐고.”
“이제는 괜찮다. 지금은 가장 행복한 세상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느냐.”
“넌 좀 더 행복해도 돼. 더 누리고, 더 즐기고 살아도 될 것 같아.”
“하하, 이미 충분히 행복하단다. 게다가 마음 속 유일한 고민도 방금 해결되지 않았더냐.”
“근데 애기 군자 진짜 귀엽긴 하더라구여. 아니 어떻게 조선 사람이 그렇게 현대적으로 생길 수 있징?”
“군자야, 옛날 얘기 좀 해 줘 봐. 조선에서 있었던 일들 말야.”
“옛날 이야기라? 할 때마다 안 믿어주지 않았느냐.”
“아이, 미안해에. 그러지 말고 좀 해 주라~”
“후후, 알았다. 사실 나도 그 동안 참으로 입이 근질거렸단다.”
원래도 형제 같은 사이였으나, 이제는 가장 큰 비밀까지 공유했으니 멤버들과는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게 된 군자였다. 군자의 옛날 이야기는 밤을 새도록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 인간 말종 숙부 아래에서 혹독하게 자라 온 세월이었으니, 사실 무슨 이야기를 하든 슬픔이 묻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군자는 내면이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그 동안 생채기 위에 생채기가 나고, 딱지가 앉아 이제는 고통스럽지도 않다고 생각한 기억이었다. 허나 그 기억을 공유한 순간, 오래도록 가슴 깊숙한 곳을 누르고 있던 돌덩이를 치운 듯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괴이한 일이다.”
“뭐가여?”
“지금 나는 그저 내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며 칭얼거리고 있을 뿐인데, 희한하게도 막힌 가슴이 뚫리고 편안해지는 느낌이 드는구나.”
“···다, 다행이다···.”
“참으로 괴이하구나.”
“괴이하긴 뭐가 괴이해, 원래 다들 그래서 고민 털어놓고 서로 얘기하고 그러는 거야.”
“그러게. 그걸 이해 못하냐, 유군자 너 T야?”
“아니, 나는 아이앵애부피(亞以鶯愛剖陂)란다.”
“이제 MBTI도 잘 아는구만. 조선 MZ 다 됐어.”
“아하하핫, 앞으로도 힘든 거 있음 뭐든 얘기해~”
“누군가 널 괴롭혀도 말해 줘. 내가 해결할게.”
“예 형님, 말씀만으로도 참으로 든든합니다.”
“하아, 그럼 이제 진짜 고민 해결이네여? 애기 군자도 이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테니깐.”
“그래. 이제 더 이상 무슨 번민이 있겠느냐.”
“아하하핫, 그건 아닐걸~”
“엥? 왜? 또 뭐가 있어?”
“벌써 해 떴잖아~”
“음? 그게 왜?”
“우리 오늘 오전 열한 시에 스케쥴 있던데~”
“아?”
이제야 서로 모든 것을 공유하고 온전한 관계가 된 소년들이었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었다. 세상은 이제 막 그래미 본상을 가져온 소년들을 가만히 놔 둘 생각이 없어 보였으니까.
“이, 일단 빨리 자여! 지금 여섯 시니까··· 음··· 지금 자면 세 시간은 잘 수 있음여!”
“제일 강한 알람시계 맞춰 놓고 자야겠네. 인혁이 형, 혹시 알람시계 있어요?”
“내가 아홉 시에 깨워 줄게.”
“오? 어떻게요?”
“안 일어나면 꿀밤을 한 대 씩···.”
“죽기 싫으면 일어나야겠구만!”
세상 가장 바쁜 아이돌들에겐 수면조차 일이었다. 그 사실을 잘 아는 소년들이었지만, 오늘 밤만큼은 두근거림 때문에 도통 잠들기가 쉽지 않았다.
두어 시간의 선잠 끝에 잠에서 깬 소년들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다. 언제나처럼 이용중 실장이 전용 밴을 끌고 그들을 태우러 왔다.
“다 일어났지? 오잉? 태웅이는 왜 머리에 혹이 나 있냐?”
“그런 게 있습니다요··· 아흐···.”
“다들 다크서클이 아주 눈밑까지 떨어져 있구만. 어젯밤에 또 뭘 했길래.”
“헤헤, 시간여행 다녀온 거 뒷풀이 하느라 좀 늦게 잤어여.”
“시간여행? 푸하하핫.”
“헐, 진짠뎅.”
“으응, 나도 오는 길에 도라에몽 만났다. 걔가 열어주는 문으로 들어오니까 바로 너네 숙소 앞이던데?”
“하, 진짜 실장님도 그걸 봤어야 하는데.”
“그니깐 말야. 너네도 도라에몽을 봤어야 했다구!”
“으이구, 갑시다요~”
밴에 올라타자마자 소년들은 각자 익숙한 자리에 앉아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스케쥴이 있는 날엔 꽤나 익숙한 풍경이었다. 이용중 실장의 부드러운 코너링 덕에, 소년들은 단 한 차례도 깨지 않은 채 샵에 내릴 수 있었다.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아유, 매번 그렇게 극진하게 인사 할 필요 없으시다니까요.”
“신체발부 수지부모라 하였습니다. 그 소중한 신체의 단장을 맡기는데, 어찌 예의를 갖추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이렇게 한결같이 컨셉을 유지하세요? 진짜 대단하신 것 같아.”
“쌤, 우리 군자 형 진짜 조선 사람이에여. 찐으로 조선에서 왔다니까여?”
“응, 그래 현재야~ 너네도 같이 오래 살다 보니까 아예 세뇌가 됐구나.”
“휴, 안 믿어 줄 줄 알았어여~”
메이크업을 받는 동안, 군자는 몇 차례나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며 졸음과의 사투를 벌였다.
“어허, 군자 씨이~ 고개 똑 들고 계셔야 해요! 아니면 앞머리 꼬불꼬불해집니다.”
“소, 송구하옵니다···.”
“아니 뭐 송구할 것까진 없는데. 무튼! 예뻐지려면 졸려도 조금은 참아야 한다구요.”
아이돌이 결코 쉬운 직업은 아니다. 벌써 3년이 넘도록 이 직업에 종사해 온 군자였지만 단 한 번도 쉽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동료들은 언제나 관절 부상 속에서 살아갔으며, 일이 몰려 있을 때엔 지금처럼 쏟아지는 졸음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어디 그뿐인가. 해외 투어 일정이 있을 때엔 시차와 싸워야 한다. 몇 주, 몇 달 동안 그리운 고향과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야 하며, 입에 맞지 않는 음식과 문화에도 적응해야 한다. 그 와중에도 웃음을 잃어선 안 되며, 위험천만한 퍼포먼스가 들어간 무대를 마쳐야 했다.
때로는 음침한 이들에게 봉변을 당한 적도 있었더랬다. 아이돌로서 살아가다 보면 누구든 겪는 일이라 했으나, 정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핑계로 해코지를 당하고 사생활을 침해받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군자의 팬이라고, 7IN의 팬이라고 모두 다 예의와 염치를 갖춘 것은 아니었다.
허나 그럼에도 군자는 단 한 차례의 후회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졸든가 실실 웃든가 하나만 해 주시라구요. 오늘 군자 씨 진짜 메이크업 난이도 극상이네!”
“하하, 제가 웃고 있었습니까?”
“예, 아주 방글방글 예쁘게도 웃더이다.”
“옛날 생각이 조금 났나 봅니다.”
“옛날? 아아, 조선시대 살던 생각이요?”
“허, 어떻게 아셨습니까?”
“니예 니예, 그러시겠지요~”
메이크업 아티스트 선생님은 심드렁하게 웃었으나 사실 그녀의 말이 정답이었다.
아이돌로서의 삶은, 군자에게 너무도 소중한 것이었다. 간밤 30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다녀온 뒤엔 그 마음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아무리 몸과 마음이 힘들어도, 마음껏 노래하고 춤출 수 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보다는 훨씬 행복한 삶 아니던가.
게다가 여기엔 우리를 사랑해 주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 가끔 실수를 해도, 못난 모습을 보여도, 그 모습조차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 주는 팬 분들이 계신다. 실수 하나만으로도 모진 회초리질을 당해야 했던 지난날에 비한다면, 현세의 삶은 군자에겐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아이돌로서의 삶에 더 큰 애착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더 좋은 아이돌이 되고 싶다. 더 많은 사랑을 나누어 주고 싶다. 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더 멋진 춤을 추고, 소중한 동료들과 더 끈끈한 사이가 되고 싶다.
대중가수가 세울 수 있는 업적의 끝인 그래미 어워드 본상을 수상했음에도, 군자의 머릿속엔 온통 향상심 뿐이었다.
“오늘도 빨리 팬 분들을 만나뵙고 싶구나··· 음냐···.”
“어이고, 고개 뒤로 넘어가겠다.”
“저 형아는 졸면서도 오그라드는 말을 하넹.”
“저, 선생님··· 다크서클 좀 더 빡세게 지워 주실 수 없나요?”
“현수야, 너 다크서클은 진짜 우리도 많이 노력하고 있는데 쉽지가 않다? 그냥 캐릭터로 밀어 보는 건 어때? 이게 또 은근히 수요가 있더라구.”
“하아··· 뭐 그러기 싫어도 그렇게 될 것 같긴 해요···.”
메이크업까지 마친 뒤 소년들은 다시 밴에 올라 오늘의 무대를 향해 달렸다. 소년들의 컨디션을 생각하여 무대 수를 최소화했지만, 그 중에서도 자선사업 관련 공연만큼은 웬만하면 거르지 않고 받고 있었다.
오늘의 스케쥴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불치병 환우들을 위한 모금 캠페인의 일환으로, 7IN이 행사장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기로 한 것이다. 소년들이 무대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캠페인은 매스컴을 타고 유명해질 터였다.
그러나 워낙 소규모의 열악한 무대였기에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무대 시작 전부터 말썽이던 음향 장비에 문제가 생겨 버린 것. 설상가상으로 조명 장치는 말을 듣지 않으며 사방으로 빛을 뿌려 댔고, 드라이아이스 분사기도 작동을 멈추지 않아 무대 위엔 하얀 연기가 구름처럼 깔려 버렸다.
공연 담당자는 거의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무릎을 꿇은 채 무너져 있었다. 이런 작은 행사에 7IN을 섭외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소년들의 의지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런 사태가 벌어졌으니, 그는 혀라도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무대는 못 할 것 같아요···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나 소년들의 얼굴엔 어쩐지 난감함보다 흥미로움이 떠올라 있었다.
“우와아···.”
“총체적 난국이구만.”
“근데 이거 은근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여?”
“하긴, 간밤엔 저잣거리 흙바닥 위에서 흠뻑쇼도 했지.”
“게다가 우리를 보러 와 주신 팬 분들도 많지 않느냐.”
결심을 굳혔다는 듯, 소년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려 보였다.
“에이 몰라, 일단 올라가자!”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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