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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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사우 FLEX
선비에겐 반드시 필요한 물건들이 있다.
이를테면 문방사우(文房四友, 종이, 붓, 벼루, 먹) 같은.
대궐 같은 집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덕분에 군자의 눈이 닿는 곳마다 상태창이 부지런히 일을 해야 했다.
그러나 문방사우가 없다. 이것은 선비의 삶을 살아 온 군자에게 실로 치명적이었다.
언제나 묘시(卯時, 오전 5~7시)에 일어나 정갈한 마음으로 서예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왔다.
병원에서야 형편이 안 되어 꾹 참았지만, 본가에서도 붓글씨를 쓸 수 없다니.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다행히 종이만큼은 넉넉히 구비되어 있었다. 군자가 쓰던 화선지와는 조금 다른 재질이었으나, 이 정도면 붓글씨를 쓰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붓 역시 분명히 보긴 했다. 비록 작은 종이에나 쓸 법한 세필(細筆)이긴 했지만.
허나 희한하게도 어머니가 그 붓으로 얼굴에 낙서를 하고 계셨다.
“아니, 이 무슨 해괴한···.”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것이 어머니의 취미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 하긴, 저잣거리의 광대들도 종종 안면에 분장을 하고 공연하지 않았던가. 어머니에게 편견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흡족했다.
다만 벼루와 연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
“응, 무슨 일이니?”
“혹시 집에 벼루가 있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벼루? 음, 그런 건 없는데.”
역시 벼루는 없었구나. 좌절감에 빠진 군자가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럼 혹시 연적은 있습니까?”
“여, 연적? 누구 연적 말이니?”
“어머니, 아버지 두 분 중 누구 것이라도 좋습니다.”
“어어, 예전에 너희 아빠한테 연적이 있기는 했는데.”
“정말입니까?”
“응, 그거 때문에 우리가 많이 다퉜거든.”
“오오···.”
연적을 놓고 다투기까지 하다니. 군자는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의 부모님도 분명 서예에 소양이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럼 지금은 어디에···.”
“아유, 지금은 없지.”
“그렇군요.”
“당연하지 이 녀석아, 지금 연적이 있으면 큰일 나지!”
아무래도 부모님은 서예를 그만둔 모양이었다. 이렇게 되면 용돈을 조금 받아서 문방사우를 직접 구매하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부모님은 별 말 없이 용돈을 내어 주셨다. 9500원을 손에 쥔 군자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창이야, 이제야 비로소 선비 답게 살 수 있겠구나!”
돈을 받자마자 가까운 문구점으로 향했다. 길도 몰랐고 종이에 그려진 약도도 없었지만 괜찮았다. 이제 스마트폰을 어느 정도는 다룰 수 있게 됐으니.
“실례하겠소이다.”
가벼운 인사와 함께 힘차게 문을 열었다. 이미 문방사우의 가격 조사는 스마트폰으로 다 끝내 놨다. 벼루, 먹, 연적까지 최저가로 사면 9500원에 구매 가능하다.
저 멀리 문방사우가 보인다. 붓이 촘촘히 꽂혀 있는 사랑스러운 모양에 가슴이 다 설렜다.
“후후, 오랜만이구나.”
이제 물건을 잡아 들기만 하면···.
[서예붓 : 10000원]“이럴 수가.”
예상치 못한 가격표 앞에서 군자는 좌절했다.
붓 하나에 만 원이라니! 마법의 두루마리는 분명 4000원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럴 리가 없다.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벼루 : 8000원] [연적 : 4000원]충격의 연속이었다. 합계 22000원, 예상했던 가격보다 두 배는 더 높지 않은가. 이렇게 되면 서예는 어떻게···.
“저기···.”
“?”
“혹시 서예 용품 찾으시는 건가요?”
그 때, 점원으로 보이는 여인이 다가와 군자에게 말을 걸었다. 군자의 대답엔 울적함이 한가득 묻어 있었다.
“물건은 찾았소만, 돈이 조금 모자랍니다.”
“아, 혹시 어떤 거 찾으셨어요?”
“이 붓과 벼루, 그리고 여기 이 연적을···.”
“어어, 그냥 가져가세요!”
“예?”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문방사우를 그냥 가져가라니?
당황한 군자를 향해 점원이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어, 제가 선물해 드릴게요.”
“선물이라? 무슨 연유로···.”
대답도 못하고 한참 몸만 비비 꼬던 점원은, 이내 붉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너무 잘생기셔서···.”
“허어.”
군자는 감동하고 말았다. 참으로 마음씨 따뜻한 상인이구나. 분명 군자의 차림이나 생김새가 남루해 보여, 무료로 문방사우를 제공한 것일 테다.
허나 그렇게 이야기하면 상처 받을 것을 생각하여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핑계까지 대는 거다.
잘생겼다니, 이미 용모가 S급이라는 걸 아는데 무슨 그런 거짓말을!
어쨌거나 그 호의는 받아 두기로 했다. 지금 군자에겐 문방사우가 필요했으니까.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안 그러셔도 되니까 그냥 자주 오세요, 히히.”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한 뒤 문구점을 나왔다. 다시 선비다운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어떤 문장을 써야 할까.”
사서오경 필사는 이미 수천 번이나 했기에 지겹다. 게다가, 한문보단 한글을 쓰는 것이 낫지 싶었다. 이 세상에선 이미 한문보다 한글을 훨씬 더 많이 쓰는 것 같았으니까.
“흐음-.”
잠시 고민하던 군자가 이내 활짝 웃으며 박수를 쳤다.
“그래, 그걸 쓰면 되겠다!”
* * *
그 날부터 매일 아침, 군자의 하루는 여섯 시에 열렸다.
먼저 일어나 침구류를 정돈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한다.
십 분 간의 명상을 마친 뒤엔 부모님에게 오전 문안 인사를 드린다.
“어머니, 아버지, 오늘도 강녕하신지요.”
“그, 그래 군자야.”
부모님께 큰절을 올린 뒤엔 서예를 시작한다.
300년 전이었다면 한문을 썼겠지. 그러나 이젠 더 이상 한문을 쓰지 않는다.
대신 노래를 틀어 놓고 그것을 필사하기로 했다.
널 보면 목이 타 자꾸 갈증이 나-.
Water, Water, I Need Some Water-.
목이 말라, 나 지금 네가 필요해-.
Water, Water, Give me Some Water-.
“끄응, 윗 줄은 간단한데 그 아래가 쉽지 않구나.”
허나 몇 번 들으니 답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군자는 환하게 웃으며 필사본을 적어 내려갔다.
스윽, 스윽-.
[널 보면 목이 타 자꾸 갈증이 나] [우오타 우오타 안의성 우오타] [목이 말라 나 지금 네가 필요해] [우오타 우오타 김미성 우오타]“그렇지, 어려울 것도 없음이야!”
안의성, 김미성이라. 누군지는 몰라도 이 분들께서 갈증을 심하게 느끼셨나 보다. 그런데 우오타는 또 무엇인가? 흥미롭구나.
모든 노래가 다 흥미로웠지만, 특히 아이돌 노래 중에는 재미있는 것이 많았다.
오늘 밤은 미친 축제, Hey- Hey- Hey-!
정신 놓고 노는 축제, Yeah- Yeah Yeah-!
“호오.”
이번엔 흥겨운 리듬의 노래다. 듣자 마자 감탄하며 붓을 움직였다. 꽤나 쉬운 문제였다.
[오늘 밤은 미친 축제 회의 회의 회의] [정신 놓고 노는 축제 예의 예의 예의]이들이 말하는 ‘미친 축제’란 선비들이 서책을 두고 갑론을박을 펼치는 회의를 말하는 것이구나.
허나 정신 놓고 이 축제를 즐기는 와중에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것도 세 번이나.
이 얼마나 선비 정신을 고이 담은 노래란 말인가!
노래를 듣고 있으니 점점 더 아이돌 세계에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빨리 사람들 앞에서 가무를 선보이고 싶다. 아이돌을 향한 길을 함께 걸어갈 친우들을 만나 보고 싶다.
다만,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이 이 꿈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춤 추고 노래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생의 숙부만 봐도 그렇지 않았나. 그의 부모도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법은 없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300년을 건너 이 세상으로 왔다. 하지만 군자는 이 곳에서 유상헌과 조연수의 아들로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숨을 쉬듯 효(孝)를 행해야 하는 선비에게, 부모의 뜻을 거스른다는 것은 죄악과도 같다.
만약 부모님과 뜻이 다르다면, 난 그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애초에 군자는 그 어떤 설득도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군자가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그의 부모가 먼저 눈치를 채고 군자에게 다가왔다.
그 날도 군자는 붓글씨 쓰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밤새도록 전하만 기다려] [전하 귀를 붙잡고 잠이 들어]“군자야, 오늘도 글씨 쓰는구나.”
“어머니, 아버지.”
“오늘은 어떤 노래니?”
“침소에서 밤새도록 전하를 기다리는 후궁에 대한 노래입니다.”
“그, 그게 그런 노래였구나.”
애써 웃음기를 숨기며, 두 사람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요즘 아이돌에 관심이 많은 것 같더라.”
“아, 조금은···.”
“군자야, 혹시 아이돌 하고 싶니?”
“!”
순간 군자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맞나 보네.”
“···예에···.”
크게 당황한 듯, 군자는 귀까지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지만 부모님은 그저 따뜻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우리한테는 왜 얘기 안 해 줬어.”
“···혹여 부모님이 싫어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그런 생각 안 해도 돼.”
“예?”
“우린 네가 무슨 꿈을 가지든 전력으로 응원할 거니까.”
한없이 온화한 부모님의 목소리에 가슴이 몽글몽글해진 군자였다.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많이 했다.
허나 전적으로 응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정말입니까?”
“당연하지! 우린 네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쁜데?”
“그리고 아이돌 완전 어울려. 우리 군자, 기럭지도 훤칠하고, 얼굴도 정말 잘생겼고, 그리고 랩도 잘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니, 이게 아니지.”
“당신도 참, 지금 장난 칠 때예요?”
“아무튼, 우리는 널 응원할 거야. 도울 수 있다면 뭐든 도울 거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우리 아들이니까.”
“···어머니, 아버지.”
괜히 눈물이 왈칵왈칵 나올 것 같아, 군자는 두 사람에게로 다가가 포옥 안겨 버렸다.
“어이구, 이 녀석 덩치 큰 것 좀 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허허, 감사는 무슨.”
“군자야, 용돈 필요하면 엄마한테 말해. 아빠 용돈 뺏어서 줄 테니까.”
“여보, 그건 좀···.”
이렇게 멋진 세상으로 온 것도 축복일진대.
심지어 너무도 좋은 부모님까지 만나 버렸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었다. 부모님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머니, 아버지.”
“응?”
“제가 아이돌이 되면, 두 분은 행복하시겠지요?”
“그걸 말이라고! 당연히 너무 좋겠지.”
“아이돌이 되든 안 되든, 넌 자랑스런 우리 아들이야.”
“하지만 아이돌 되면··· 엄청 자랑하고 다니겠지? 흐흐.”
꿈을 이루기만 한다면, 내가 이 분들의 자부심이 될 수 있다.
그걸 위해서라도 반드시 꿈을 이루고야 말겠다고 다짐한 군자였다.
* * *
시간은 쏜살 같이 흘러, 어느새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의 일반인 공개 오디션 날이 다가왔다.
공개 홀에 꾸며진 오디션 무대, 수많은 일반인 참가자가 부푼 꿈을 안고 스테이지에 올랐지만.
[참가번호 76번.]“죄송합니다. 같이 가긴 어려울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다음 참가자 나와 주세요.”
[참가번호 417번.]“다음번에 더 좋은 기회로 뵙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다음 참가자?”
[참가번호 135번.]“아, 좀 아쉬운데요.”
“혹시 어떤 부분이···.”
“자 자, 빨리 진행합시다.”
[참가번호 339번.]“쓰읍, 이게 아닌데에-.”
“흑흑-.”
“울지 말고, 자 다음 참가자!”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는 참가자가 쉽사리 나타나지 않는 가운데.
[참가번호 532번, 유군자 참가자 나와 주세요.]“!”
“!?”
“!?!?”
군자가 오디션 무대에 오른 순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소생 유군자라고 합니다.”
노래 한 소절, 춤 한 동작 취하지 않았음에도.
모든 심사위원들이 동시에 합격 버튼을 눌렀다.
“합격! 합격이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