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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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있어서 나쁠 것 없지!
“자, 그럼 30위부터 발표하겠습니다.”
피라미드 형태로 세워진 순위발표식 세트엔 어느새 꽤 많은 의자가 빠져 있었다.
“후우-.”
“이제 의자도 서른 개네.”
“난 저 피라미드 볼 때 가장 떨리더라···.”
단상 아래 나란히 선 노랑병아리 군단이 침을 꿀꺽 삼켰다.
현시우를 제외한 네 명의 멤버들은 꽤나 딱딱한 표정이었다.
“으으, 차라리 빨리 불리는 게 속 편해···.”
“무, 뭔 소리야. 이번엔 지현수 떠, 떡상 가야지.”
“태웅, 너 목소리 떨리는 것부터 좀 어떻게 해 봐···.”
“으으, 티 나냐?”
“응, 넌 뭘 하든 다 티 나.”
“사실 아까부터 위산 때문에 죽겄다···.”
“아하하, 알새우칩 먹을래?”
“아니, 나 그거 먹으면 꼭 입천장 까지더라.”
“하하, 웅이 너 되게 약하구나?”
“시우 너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거든.”
“···구, 군자 형도 오늘은 긴장했나 보네요···.”
“으음, 피라미드 앞에만 서면 긴장이 되는구나.”
“우와, 진짜로?”
“···형도 긴장하는구나···.”
“피라미드는 고대문명의 옛 무덤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음, 그렇지?”
“아무리 모형이라고 해도 선인들의 무덤을 밟는다는 것이 좀···.”
“···우, 우리랑은 좀 다른 이유였네요···.”
모두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긴장감이 고조된 가운데, 마침내 30등부터 순위가 발표되기 시작했다.
20등 참가자의 이름이 불릴 때까지 노랑병아리 군단은 그 누구도 호명되지 않았다. 지난 순위발표식에서 29등을 차지했던 지현수는 거의 다크서클이 온 얼굴을 잡아먹은 듯 흙빛이 되어 있었다.
“으어어···.”
“거 봐라 지현수. 내가 떡상한다고 했지.”
“···토 나올 것 같아···.”
16위, 15위, 14위···.
순위는 갈수록 높은 곳으로 치솟아 올랐다. 동시에 노랑병아리 군단의 주가도 함께 치솟았다.
이제 13위, 이번에야말로 지현수는 본인의 차례가 왔음을 직감한 듯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13위, 양정무 참가자.”
“!”
정해진의 입에서 나온 것은 지현수 대신 양정무의 이름이었다.
“···헐.”
“쩡무가 13등이야?”
“···대박···.”
사전 시청자 투표, 순위발표식에서 계속해서 최상위권에 머무르던 양정무가 10위권으로 추락했다.
몇몇 참가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2차 경연에서 기유찬에게 살짝 밀리며 무너지긴 했지만, 워낙 코어 팬덤이 탄탄했던 양정무였기에 더 놀라운 결과였다.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애써 태연한 척 하는 양정무였지만, 누가 봐도 감정적 동요가 심각해 보였다.
양정무가 13위 의자에 착석한 뒤, 바로 지현수의 이름이 불렸다.
“12위, 지현수 참가자!”
“네, 네, 넵-!”
29위에서 12위까지, 무려 17계단 상승.
프로그램이 중반을 넘어간 이후엔 이만큼 크게 ‘떡상’한 참가자가 없었기에, 지현수는 다른 모든 참가자들의 축하를 한 몸에 받았다.
“현수, 축하한다!”
“[예의없는 것들> 진짜 너무 좋았어.”
“크으, 이러다 진짜 데뷔조까지 가는 거 아냐?”
“리온 선배님한테 곡 판 남자 아냐.”
참가자들에게 등짝을 흠씬 두들겨 맞은 뒤, 지현수는 군자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
“군자, 내 빛과 소금!”
비록 등짝 세례 때문에 너덜너덜해져 버렸지만, 두 눈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신앙심으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지현수를 시작으로, 천천히 노랑 병아리들의 순위가 공개되기 시작했다.
권태웅은 14위에서 10위로 착실하게 네 계단을 뛰어올랐다.
상큼한 걸그룹 노래 메쉬업이라는 쉽지 않은 과제에도, 본인의 존재감을 뽐내며 시청자들에게 이름을 각인한 결과였다.
“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미친 듯이 하겠습니다! 아자 아자! 열정!”
그 두 칸 위인 8위엔 차인혁의 이름이 올랐다.
장대한 피지컬의 유학파, 과묵한 와중에 은근히 드러나는 소녀 감성, 출연자 수가 줄어들수록 차인혁의 캐릭터가 더욱 돋보이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소감은 짧았으나, 오늘도 붉어진 눈시울이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저 형 또 우네.”
“저래 놓고 운동회에선 그렇게···.”
“아무튼 무서운 인간이야.”
이제 남은 것은 1위부터 7위, 즉 데뷔조에 포함될 멤버들 뿐.
“7위는 하현재 참가자, 첫 데뷔조 진입입니다!”
“오 예! 감삼다-!”
언제나처럼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단상에 깡총 오른 하현재는, 눈물기 하나 없는 모습으로 카메라를 향해 교태를 부렸다.
“너무 너무 기분 좋아요! 이렇게 큰 사랑을 주셨으니까, 저도 더 좋은 모습으로 보답할 거예요! 저도 진짜 진짜 많이 사랑하는 거 알죠? 우리 앞으로도 쭈욱 함께해요—!!”
청산유수 같은 하현재와 달리, 기유찬은 완전히 사색이 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는 건 기유찬 역시 데뷔조에 진입했다는 뜻.
그러나 지난번처럼 무언가를 간절히 되뇌고 있지는 않았다. 이번엔 순위발표식이 끝나도 군자와 갈라설 일이 없었으니까. 운동회에서 1등을 차지한 덕분이었다.
6위에 장선재의 이름이 호명된 뒤, 마침내 MC 정해진이 유찬의 이름을 외쳤다.
“5위, 기유찬 참가자! 축하합니다-!”
“네, 넵-!”
그 덕분일까, 약간 긴장한 모습이긴 했으나 꽤나 씩씩하게 단상 위에 올라가 소감 발표까지 훌륭하게 해냈다.
“가, 감사합니다. 이렇게 높은 순위를···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엄마, 아빠, 유정이, 유재 다 너무 사랑하고··· 아, 그리고 군자 형, 웅이 형, 현수 형, 시우 형이랑 팀이 돼서 너무 너무 좋습니다. 너, 너무 감사합니다!”
“하하, 기유찬 참가자가 이렇게 말 길게 하는 건 처음 보는데요!”
소감을 발표하는 유찬을 보니 이번에도 절로 흐뭇한 미소가 떠오르는 군자였다.
본인의 가정에선 맏이라지만, 군자에겐 꼭 막냇동생 같은 유찬이었다.
언제나 겁 먹은 똥강아지 같은 표정만 짓던 녀석이, 이젠 제법 당당하게 소감 발표도 하고.
물론 끈끈이처럼 군자에게 붙어 다닌 결과일 수 있으나, 이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정말 끈끈이라면 그냥 앞으로도 계속 붙이고 다니면 그만 아닌가.
이제 네 명을 제외한 모든 참가자들이 자신의 순위를 찾았다.
남은 네 명의 참가자는 현시우, 주하성, 민강열, 그리고 유군자.
지난 순위발표식에서 4위를 차지한 것은 유군자였으나, 이번엔 모두가 그의 순위 상승을 예상했다.
2차 경연에서의 신들린 모습은 단연 ‘아육시’ 시작 이래로 최고의 임팩트였으니.
반면 프리스타일 랩에서 한 번, 2차 본 경연 때 또 한 번 완패한 주하성은 순위 하락이 예상됐다.
다른 참가자들의 예상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장 먼저 주하성의 이름이 불렸다.
“4위는 주하성 참가자입니다.”
“네.”
4위도 결코 낮은 등수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시작한 이래로 계속해서 1위를 차지해 온 주하성이었기에, 그 충격은 모두에게 크게 다가왔다.
“제가 이 순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성원을 보내 주신 팬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순위가 떨어진 것은 제 미숙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도록,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담담한 소감 발표 후, 90도로 허리를 꾸벅 숙인 뒤 주하성이 단상에서 내려왔다.
모두가 그 침착함에 감탄했으나 군자만큼은 박수를 보낼 생각이 없었다.
같은 꿈을 향해 나아간다면 모두가 친우일 터.
지금까지 함께 경연을 해 온 동료들은 물론, 양정무처럼 내내 사사건건 부딪혀 온 자와도 친목을 다질 수 있는 군자였다.
그러나 주하성은 참가자들 사이에 급을 나누려 했다. 급이 맞지 않는 참가자와는 굳이 말조차 섞지 않았다.
그 모습이 군자를 화나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자에게만큼은 단 한 번도 지고 싶지 않구나.
“자, 그럼 이제 3위···.”
오로지 세 명의 참가자만을 남겨 둔 시점, 정해진이 살짝 뜸을 들였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다른 예측을 내놓았다.
“3위는 강열이 형이 정배 아니에요?”
“근데 강열이도 워낙 코어가 탄탄해서···.”
“시우도 떨어질 것 같진 않고.”
“흠, 그래도 군자가 3위 하는 건 좀 에바 아냐?”
“그치, 경연을 그렇게 잘했는데···.”
그러나 이번만큼은 참가자들의 예측과는 조금 다른 결과가 나왔다.
“3위, 유군자 참가자! 축하드립니다!”
“지화자-!”
4위 주하성에 이어 군자가 3위에 올랐다.
이어서 민강열이 2위, 꼭대기는 현시우의 차지였다.
“흐음, 군자가 3위···.”
“조금 의외네.”
많은 참가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군자가 2위, 혹은 1위까지도 가능할 것이라 보았으니까.
그러나 정작 군자 본인은 3위라는 순위에도 꽤나 만족하는 것 같았다.
지난 번엔 4위, 이번엔 3위.
작은 걸음이나마 앞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게다가 백만이 넘는 시청자들이 힘을 보내 주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감동 아닌가.
이번에도 군자는 카메라를 향해 진심을 담은 큰절을 올렸다.
그러나 나흘 뒤, 8화 방송으로 순위발표식을 본 팬들의 마음은 딱히 좋지 못했다.
운동회 분량까지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좀처럼 보기 힘든 군자의 몸개그 쇼 모음집을 볼 수 있었으니까.
[ㅋㅋㅋㅋㅋㅋ송궄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미친것같앜ㅋㅋㅋㅋㅋㅋㅋ] [저기서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짘ㅋㅋ] [아 정말 하나 하나 사랑스럽다] [ㅋㅋㅋ축구공 차는거 개 하찮ㅋㅋㅋㅋ] [우리 선비님도 못하는게 있었읔ㅋㅋㅋ] [ㅋㅋㅋ초콜렛 먹었을 대 표정 봄?] [ㅋㅋㅋㅋㅋ아뿔ㄱ싸!!ㅋㅋㅋㅋㅋㅋ] [아닠ㅋㅋ나 현실에서 저말 쓰는사람 첨봄] [저거 중독성 오져ㅠㅠㅠ] [나도 요즘 머 실수하면 아뿔싸! 함ㅋㅋㅋㅋ] [ㅈㄴ 우리말지킴잌ㅋㅋㅋㅋ욕절대안쓰고]그리고 양궁 분량이 시작된 순간부터는, 모두가 다시 찬양 모드로 돌입했다.
[와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ㅅㅂ] [미친;;;;;] [머야 저거] [엘프였어?] [활 뭉ㅁㄹㄴㅇㄴ] [왜케 잘쏘는뎈ㅋㅋㅋㅋㅋㅋㅋ] [미친ㅁㅊㅁㅊㅁㅊ] [와; 뭐야;;; 양궁 국대아냐?] [저 화살 내 우심방에 박힘] [저런 양궁선수 있음 무적권 덕질함] [올림픽 + 얼림픽 2연패] [ㅋㅋㅋ와근데 미쳐따진짴ㅋㅋㅋ] [양궁코치쌤 넋나간거봨ㅋㅋㅋㅋㅋㅋㅋㅋ] [서쿠니 정신똑띠차려랔ㅋㅋㅋㅋ군자뺏긴다구] [ㅠㅠㅠ진짜 나 이런애 진심 첨봄ㅠㅠㅠㅠ] [축구는 잘할줄 알앗다곸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왜 축구 개발에 양궁은 신궁ㅋㅋㅋㅋ] [ㄹㅇ 이왜진ㅋㅋㅋㅋㅋㅋㅋ]연지 역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운동회 분량을 즐겼다. 경연에 이어 운동회까지, 본인의 원픽이 미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으니.
어쩌면 이번 순위발표식에선 1위를 노려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완벽한 상승세를 타는 중이었으니까.
그러나 막상 순위발표식에서 군자가 받은 성적표는 3위.
“···뭐야?”
물론 높은 성적이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조금 다른 결과.
“설마···.”
노파심에 SNS를 열어 검색창에 군자의 이름을 입력해 보았다. 대부분이 긍정적인 게시물들이었으나, 종종 연지의 눈에 걸리는 포스트들이 있었다.
[ㅇㄱㅈ 견제픽 진짜 다들 힘 모아줘야 함.txt]지금 사태파악 해야돼
ㅇㄱㅈ 2차 미션 이후로 개떡상중임
유튭에 미공개 푼거 봤지? 피디픽까지 받았다고
특히 민강열 주하성 장선재 원픽인 사람들
ㅇㄱㅈ 떡상 못 막으면 니들 원픽 싹다 나가리야;
데뷔조에 미친 컨셉충 들어가는거 보고 있을거임?
그리고 ㅇㄱㅈ ㄱㅌㅇ ㄱㅇㅊ 이렇게 세트인거 알지?
ㅎㅎㅈ는 데뷔 안정권이니까 어케 품는다 쳐도
이대로 ㅇㄱㅈ 냅두면 강열이 하성이 싹다 튕긴다고;
알아들었으면 무조건 7픽에서 ㅇㄱㅈ 거르고
ㄱㅌㅇ ㄱㅇㅊ도 웬만하면 걸러 아니 무조건걸러
자기 3픽까지 넣고 나머지 4명은 하위권으로 채우라고
그래야 다같이 살아
뭔말인지 알아들었지?
서바 한두번 본거 아니자나 우리
“미친···.”
연지의 우려가 현실이 됐다.
게시물의 ‘ㅇㄱㅈ’는 아마도 유군자라는 뜻이겠지.
2차 경연 이후, 군자의 상승세는 1위인 주하성을 위협할 정도로 강력해졌다.
거기에 군자와 함께 팀을 이뤄 온 멤버인 기유찬, 권태웅, 차인혁, 하현재, 지현수까지 함께 떡상해 버렸으니, 기존 데뷔조를 채우고 있었던 민강열, 주하성, 장선재의 입지가 위태로워진 것.
궁지에 몰린 이 참가자들의 팬덤이 응집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군자의 지지 기반은 아이돌 서바이벌의 코어 팬덤이 아닌 일반 대중들이었다.
프로그램 초반에는 강력한 화력을 선보이지만, 중후반으로 넘어갈수록 그 화력이 반감되는 것이 ‘일반 대중 픽’의 특징.
게다가 타 트로트 오디션이 시작하며, 4050 팬덤의 표심까지 약해져 버렸다.
“아오, 왜 트로트 오디션을 지금 하냐고···.”
그 틈을 타, 주하성 – 민강열 – 장선재 팬덤 연합이 집중적으로 ‘견제 픽’을 시전했다.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의 시청자 투표는 한 사람이 총 일곱 명의 참가자를 고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지금까지는 주하성, 민강열, 장선재의 팬들도 군자를 이 ‘7픽’에 넣었다면, 지금부터는 단체로 군자를 제외하기 시작한 것.
일정량 이상의 팬덤이 매일 이 ‘견제 픽’을 반복하니, 군자의 순위는 예상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미친 인간들이 진짜···.”
물론 3위도 충분히 데뷔 가능한 성적이다.
그러나 타 데뷔권 멤버의 팬들이 집단행동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한 불안요소였다.
앞으로 이 움직임의 규모가 커진다면, 다음 순위발표식에서는 군자가 데뷔조에서 튕겨져 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연지의 입장에선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집단행동이 시작된 이상, 그것을 막기 위해 움직여 봐야 역효과만 일어날 뿐이었다.
집중적인 ‘견제 픽’을 받으면서도 데뷔조에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3차 경연 무대로서 증명하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유군자는 지금까지 그 어떤 참가자보다 더 많은 것을 증명해 온 참가자였다.
불안함과 초조함이 엄습했지만, 그럼에도 연지는 군자를 믿었다.
* * *
순위발표식 방송이 나간 다음 날, 참가자들은 3차 경연 합숙을 위해 다시 한번 스튜디오에 모였다.
처음엔 99명으로 시작했지만, 이제 남은 것은 서른 명 뿐.
그리고 이번 경연에서 그 절반인 열다섯 명이 탈락하게 된다.
이번에도 MC 정해진이 룰 발표를 위해 단상 위에 섰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국민 플레이어 정해진입니다.”
“와아아-.”
3차 경연 룰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코인 정산이 이루어졌다.
2차 경연의 룰은 ‘코인 쟁탈전’.
진 팀은 코인을 모두 빼앗긴다는 룰이 있었기에, 2차 경연 승리팀 멤버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졌다.
물론 가장 큰 돈을 번 것은 ‘예의단속반’ 멤버들이었다.
주하성 – 노엘 조의 코인을 모두 빼앗았으며, 거기에 경매로 3000코인까지 획득했으니.
그 중에서도 가장 부유한 것은 군자였다. 지현수와 더불어 창작에서 가장 큰 기여를 했고, 개인 투표 점수까지 높았기에 빼앗은 코인 역시 가장 큰 비율로 가져갔다.
그렇게 정산받은 코인은 무려 4200코인.
단번에 엄청난 돈방석에 올라 앉으니, 미소를 숨기기가 힘든 군자였다.
“흠, 흐흠-.”
선비는 언제나 청빈해야 하거늘, 한낱 재물에 이렇게 기뻐하는 꼴이라니.
나도 아직 마음 수행이 부족하구나.
그러나 생각해 보면 재물이 많아서 나쁠 것도 없다.
과거 양반가의 미덕 중 하나가 무엇이었나.
언제나 곳간을 풍족하게 채워 두었다가, 빈곤하며 굶주린 이웃에게 곳간을 열어 긍휼(矜恤)을 베푸는 것 또한 훌륭한 미풍양속 아니었던가.
그래, 돈은 좋은 것이다. 있어서 나쁠 것이 없지.
“후후, 후후후···.”
이번에도 정승 같은 정신승리에 성공한 군자였다.
그렇게 코인 정산이 끝난 뒤, 정해진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어느덧 3차 경연까지 왔습니다. 지금까지도 힘든 여정이었지만, 아마 지금부터가 진정한 경쟁이 장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
“3차 경연 규칙을 알리기에 앞서 먼저 알립니다. 참가자 여러분, 지금부터 코인의 사용처가 늘어날 예정입니다.”
“···?”
“지금까지 코인은 경연 무대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그 사용처가 확대됩니다. 코인은 합숙 기간 동안 여러분의 모든 일상을 아우르는 화폐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 그러면···.”
“코인으로 음료수를 마시고, 코인으로 세탁기를 돌리고, 코인으로 피트니스 센터를 이용하고. 또는 코인으로 팀원들과 함께 야식을 시켜 먹을 수도 있겠죠.”
“!”
“자, 열심히 코인을 번 보람이 있죠?”
“우와아아아아아—!!”
2차 경연에서 코인을 벌어들인 참가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미쳤어! 야식이래!”
“와, 나 진짜 치킨 먹고 싶었는데.”
“잠깐만, 그러면 의상실에 있는 옷도 코인으로 살 수 있는 건가?”
“당연하지! 다 쓸 수 있다잖아!”
그러나 환호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가장 기뻐해야 할 군자의 표정은 냉철했다.
“···.”
엽전의 사용처가 확대됐다.
그 말인즉슨, 엽전을 많이 가진 자가 훨씬 더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됐다는 뜻.
“올, 유군자아-.”
“좋겠는데에에—!!”
“부자! 부자 형님—!!”
언뜻 군자에게 좋은 현상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돈이 있다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그것이 한정된 물건이라면 더더욱.
그런 경우, 돈보다 귀한 것은 오히려 시간이다.
“잠깐 어디 좀 가 보아야겠다.”
“구, 군자 형?”
“뭐야! 벌써 치킨 먹으러 가냐!”
“나도 같이 가아-.”
이 모든 시설을 이용하는 데에도 엽전이 통용된다면, 분명 ‘그것’을 이용함에 있어서도 엽전이 필요할 터.
군자의 생각엔, 이 닷새 간의 합숙에서 ‘그것’보다 중요한 재화는 없다.
부디 늦지 않아야 할 텐데···.
군자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