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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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아이돌 퍼포먼스의 근본
‘벨로체’의 메인 댄서, 파엘의 별명은 ‘파꼰대’였다.
평소엔 둥글둥글 낙천적인 성격 같아 보이다가도, 춤과 퍼포먼스에 관해서는 절대로 양보 없는 모습에 팬들이 붙여 준 별명.
그런 그의 입버릇 중 하나는 ‘근본’이었다.
제대로 된 아이돌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근본 넘치는 퍼포먼스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무슨 컨셉을 잡든, 어떤 의상을 입든, 또 얼마나 많은 무대 장치를 사용하든.
곡에 대한 이해도, 안무와 가창의 레벨이 받쳐 주지 않는다면 파엘에겐 ‘근본 있는’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그런 파엘이 보기에, 주하성의 팀 ‘워리어스’의 [Suit Up>은 전형적으로 ‘근본 없는’ 무대였다.
밀리터리 컨셉으로 곡을 재해석한 부분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문제는 새로운 해석에 매몰되어, 곡이 가진 본래의 컨셉이 소실되어 버렸다는 것.
옷을 통해 또 다른 자아를 만날 수 있다는 [Suit Up>의 기본 컨셉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고, 정신 없이 번쩍이는 무대 효과와 고난이도의 댄스 퍼포먼스만이 남았다.
리더 주하성이 춤을 잘 춘다는 것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테크닉적인 부분만 놓고 본다면, 이미 데뷔한 아이돌과 비교해 보아도 손색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 현란한 춤 안에 담긴 메시지는 원곡자 ‘벨로체’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아니, 사실 무슨 메시지가 담겨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심사평 역시 고역이었다.
마음 같아선 근본 없는 후배들에게 불호령을 치고 싶었지만, 이번엔 꼰대 프레임 좀 벗고 오라는 우경훈 이사의 당부가 있었기에 속시원하게 쏘기도 애매했다.
‘우리 잘했지? 칭찬 좀 해 줘!’라며 기세등등 턱을 치켜들고 있는 후배들에게 쓴 소리를 하기도 마음 아팠고.
결국 두루뭉술 얼버무리는 심사평을 남기고 마이크를 건넸다. 확실히 화려하고 난이도 높은 퍼포먼스이긴 했으니까. 주하성이 춤을 기가 막히게 추기도 했고.
그러나 심사평을 마친 파엘의 가슴 속은 물 없이 고구마를 먹은 듯 갑갑했다.
‘이래서 [Suit Up>이 아이돌 오디션 경연곡으로 안 쓰이길 바랐던 건데···.’
그래도 한 곡으로 두 팀이 경연을 한다고 하니, 나머지 한 팀은 마음에 드는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도 있지 않을까.
약간의 기대를 걸어 보았지만, 큐시트와 멤버를 본 순간 그 기대는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두 번째 경연 팀 멤버 안에 ‘유군자’라는 이름이 들어 있었으니까.
[아육시> 본방은 한 번도 안 본 파엘이었지만, 그에게도 군자의 이름은 익숙했다. 절친인 루나틱의 리온은 틈만 나면 그의 이야기를 했다.BET의 이사 우경훈도 마찬가지였다. ‘아육시’로 데뷔하지 못한다면 얼마를 주고서라도 데리고 오고 싶은 재능이라고 했지.
그렇게 호들갑을 떨기에 파엘도 클립 몇 개를 보았다. 유군자가 나오는 영상은 모두 다른 참가자들의 영상보다 조회수가 몇 백만씩 높았기에 눈에 쏙쏙 들어왔다.
“흐음-.”
확실히 재미있는 참가자 같아 보이긴 했다. 그러나 파엘의 취향은 아니었다.
실력보다 컨셉으로 이목을 잡아 끄는 스타일. 저런 캐릭터는 레퍼토리가 떨어지면 결국 질리게 되어 있다.
그런 참가자가 포함된 팀이 [Suit Up>으로 경연을 한다니.
아마 이번에도 동양풍 편곡과 퍼포먼스를 들고 나올 테지.
그러나 파엘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리 동양풍이 치트키라고 해도, [Suit Up>과는 궁합이 안 맞는다.
‘워리어즈’의 어질어질한 재해석에도 충분히 힘들었는데, 이번엔 또 어떤 괴작이 나올까.
개량한복과 수트를 반반씩 나눠 입고 부채춤을 추는 엽기적인 퍼포먼스가 나오는 건 아닐까.
“후우-.”
이젠 그냥 기대감을 내려 놓기로 한 파엘이었다.
근본이고 자시고, 이젠 그냥 어디까지 가는지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친구 리온이 그랬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 보라고. 뭐 얼마나 즐길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러나 암전된 무대에 조명이 들어온 순간.
“아?”
동양풍 무대와 의상을 예상했던 파엘의 생각과는 달리, 다섯 멤버들은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었다.
마치 벨로체의 [Suit Up> 첫 무대를 떠오르게 만드는 듯한 착장.
물론 그 중 두 명은 옷을 입는 둥 마는 둥, 앞섶을 풀고 있긴 했지만.
“우와아아아아아아—···.”
“유군자아아아아—!!”
강렬한 스포트라이트가 명암을 만들었다. 덕분에 몸의 굴곡은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센터엔 검은 수트를 입은 현시우가 서 있었으나, 단연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양쪽 후방에 선 유군자와 권태웅이었다.
피지크 선수처럼 커다랗게 불거진 근육은 아니었지만, 자글자글 뚜렷하고 야무진 근질이 가슴과 복부를 덮고 있었다.
“권태우웅—!!”
“미쳤어, 미쳤어어—!!”
분장의 도움만으로는 저 정도 데피니션은 못 만든다. 몸 관리에 반쯤 미쳐 있는 파엘이었기에, 그냥 슬쩍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엄청 노력했구나.
탄탄한 가슴과 복근은 파엘에게는 노력의 증표로 다가왔지만, 팬들에겐 보다 단순한 열광의 신호탄이 됐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조명이 떨어지고 베이스 리프가 시작되자 마자, 팬들의 환호성이 공연장을 완전히 뒤덮었다.
나쁘지 않은 스타트다.
노출이라면 무조건 저질스러운 장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곡의 컨셉과 맞다면 그 역시 훌륭한 표현 수단이다.
무엇보다 [Suit Up>은 ‘옷을 입는 과정’에 대한 노래 아닌가.
남들은 입은 옷을 하나씩 벗는 곡을 할 동안, 오히려 옷을 야무지게 갖춰 입는 노래를 한 벨로체였다. 그렇기에 보다 직관적인 섹시함을 표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하지만 무대 위의 군자와 태웅의 모습을 보며 뒤늦게 깨달은 파엘이었다. 애초에 벗고 시작하면 되는 문제였구나?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기껏 근본 있게 입어 놓고, 관객들의 환호성까지 이끌어 놓고.
무대를 근본 없이 맹탕처럼 조져 놓으면 결국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잘 해라, 잘 해라···.’
다섯 소년들을 바라보며 파엘은 자신도 모르게 응원을 보태고 있었다.
마침내 베이스 리프에 멜로디가 얹히며 시작된 첫 소절.
어제 까지도
지루하고 흐릿하던 네 모습을 벗어나,
네 마음대로 너를 만들어.
재미없는 너는 벗어놔-.
“!”
현시우의 첫 벌스가 시작하자 마자 파엘의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엇박으로 들어가는 첫 벌스, 완벽한 스타트를 끊기 위해 ‘벨로체’ 역시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었던가.
미세하게 어긋나는 동작을 바로잡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연습실에서 보냈다.
교정하고 또 교정해도 결국 자신의 습관대로 동작을 취하는 멤버들에게 얼마나 많이 잔소리를 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해서 간신히 만들어 낸 [Suit Up>의 도입부였다.
앞으로 걸어가며 손으로 어깨를 터는 단순한 동작.
그러나 단순했기에 더욱 그 맛을 살리기 쉽지 않았다.
단순했기에 그 동작의 완성도에 집착한 그룹도 없었다.
그렇기에 파엘은 전율을 느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부분부터, 소름이 끼칠 만큼 흘러 넘치는 이 근본!
완벽하게 정제된 도입부는 모든 관객을 몰입시킨다. 이 간단한 동작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순식간에 모두를 설득시켜 버린다.
방청석에 앉은 관객들도 모두 파엘과 같은 것을 느꼈다는 듯.
복근 공개에 환호성을 외치던 이들조차, 그 압도적인 스타트에 매료되어 버렸다.
이어지는 턴 동작.
디딤발을 찍는 위치, 몸이 돌아가는 각도, 팔과 어깨의 모양, 심지어 자켓이 펄럭이는 모양까지 똑같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한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서로를 복제해 버린 건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가운데, 기름기 하나 없는 퍼포먼스는 이어졌다.
오늘 부터는
잠들어 있었던 네 안의 소리를 들어봐.
Check Pattern, 어제 입은 옷.
좀 다른 걸 원했잖아.
동선은 부드럽게 교차되며 이번엔 지현수가 중앙에 섰다. 파엘 역시 지현수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예의없는 것들>의 메인 프로듀서가 아마 저 친구였지.
다양한 소스를 사용한 풍성한 곡에서는 이미 능력을 검증해 보인 지현수였다. 그러나 [Suit Up>은 철저히 미니멀리즘을 지향한 곡이다.
다양한 악기 사용을 지양했기에 편곡으로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원곡의 맛을 살리며 특별함을 가미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허나 지현수는 그 어려운 것을 해 냈다.
초반의 베이스 리프만 듣고도 알 수 있었다.
방방 뜨는 신나는 리프가 아니다. 어깨보다는 엉덩이가 들썩들썩 움직이는, 내적 댄스를 부르는 그루비한 베이스.
거기에 얹히는 신디사이저와 타악기의 조합은, 원곡을 철저히 존중하면서도 본인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니, 이게 참가자가 주도한 편곡이라고?
그러나 ‘정면돌파’ 팀은 파엘에게 놀랄 여유를 주지 않았다. 이번엔 베이스의 사운드가 증폭되며, 반쯤 벗은 멤버 군자와 태웅이 전면에 나섰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찢어지는 환호성이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군자와 태웅은 결코 과하게 몸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안무에 집중하는 모습. 그러나 모션 하나 하나에 압도적인 힘과 절도가 실려 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펄럭이는 셔츠는, 방청객들에게 은혜로운 풍경을 선사했다.
“우와아아아아—!!”
“군자야, 나 죽는다—!!”
이 순간은 주하성을 응원하던 팬들도 한 마음이 된 것 같았다.
상상해 본 적도 없던 내 Outfit을 찾아가.
처음 마주했던 새로움에 내가 먼저 반했고-.
이어지는 군자의 가창.
그 동안 동양풍의 보컬로 곡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거나, 판소리 같은 랩을 해 온 군자였다.
그러나 이번에 맡은 파트는 후렴 직전의 프리코러스.
주연 아닌 조연의 자리도 어울릴지, 모두가 의구심을 품었으나 이번에도 파엘은 온 몸을 휘감는 전율을 느껴야 했다.
저게 내가 알던 유군자가 맞는 건가.
클립에서 봤던 판소리꾼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대신 원곡의 맛을 완벽하게 살린 보컬만이 남았다.
그 흔한 밴딩 하나 없이, 바이브레이션 하나 없이.
반가성으로 콕콕 찍는 프리코러스 멜로디는, 베테랑 아이돌 파엘에게도 청각적 쾌감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저 격한 안무를 하면서!
두웅-.
떨어지는 드럼 사운드에 맞추어 유군자와 권태웅의 다리가 동시에 쩍 벌어졌다. 부풀어 오른 대퇴근 덕에 정장 바지도 함께 타이트해졌고.
우와아아아아아—···.
그 모습에 팬들은 다시 한번 환호성을 내질렀지만, 파엘은 그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라이브에 감탄했다.
“···뭐야 쟤네?”
물론 약간의 AR이 깔려 있다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 라이브는 현역 아이돌 못지않은 수준이다.
저렇게 몸을 쓰면서 노래를 안정적으로 하려면 하체와 코어를 미친놈처럼 단련해야 한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한 다음에야 나올 수 있는 라이브란 말이다.
아니면 그냥 피지컬을 타고 났든가.
‘대체 어디까지 가나’ 보려 했던 파엘은, 어느새 이 무대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정면돌파’ 팀의 [Suit Up>이야말로, 파엘이 생각하는 아이돌 퍼포먼스의 근본 그 자체였으니까.
쩌렁쩌렁한 환호성, 사랑에 빠진 트레이너와 심사위원들의 눈빛이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아직 이 퍼포먼스의 하이라이트는 나오기도 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