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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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국을 향해
커다란 광고판엔 군자의 얼굴이 걸려 있었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행복한 듯 활짝 웃고 있는 모습. 그 아래엔 팬들이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문구도 보였다.
[예의, 예의, 예의를 갖춘 선비돌 유군자에게 투표해 주세요!]문장의 전체 내용을 알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광고판은 이미 수많은 응원 포스트잇으로 뒤덮여 있었으니까.
수백 장의 포스트잇 중 부정적인 내용을 담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모두가 군자를 응원하며, 그의 성공적인 데뷔를 기원하는 메시지들 뿐.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군자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저 선배의 광고판을 보기 위해 잠시 들른 것인데 이런 믿을 수 없는 선물을 만나다니.
문장을 읽어 보아도, 포스트잇을 만져 보아도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사랑과 응원은 언제 받아도 가슴 벅찬 것이었다. 무엇보다 광고판은 군자의 꿈 중 하나였다.
그 꿈을 이렇게 빠르게 이루게 될 줄은 몰랐기에, 군자는 한참을 그 앞에서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 뭐야?”
“김계란 같은데.”
“유군자? 쟤 팬이었나 봐.”
“헐, 운동만 하는 줄 알았는데···.”
그 수상한 모습에 주변 사람들은 수군거렸으나, 지금 군자의 모든 정신은 오로지 광고판에만 쏠려 있었다.
조그만 포스트잇에 꼭꼭 눌러 담은 진심이 군자를 웃게 만들었다.
나의 노래와 춤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매번 느끼지만, 매번 새롭고 놀라운 일이었다.
[성인군자 절대데뷔해! >[]‘성인군자’라는 문구가 들어간 포스트잇이 꽤나 많이 눈에 들어왔다.
성인군자라, 참으로 마음에 쏙 드는 별칭이로다.
[하지만 사군자가 출동하면 어떨까?] [매!] [란!] [국!] [죽!] [사군자! (사랑해 유군자라는 뜻)]여러 개의 포스트잇이 모여 하나의 문장을 만든 포스트잇도 보였다.
사군자를 ‘사랑해 유군자’로 해석하다니!
나의 팬들은 마음만 고운 것이 아니라 재기발랄하고 총명하기까지 하구나.
매란국죽이 적힌 포스트잇엔 각각 매화, 난, 국화, 대나무가 예쁘게 그려져 있었다. 군자가 좋아 죽는 사군자 그림이었다.
아무래도 군자의 팬들은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이토록 황송한 것이구나.
이렇게 감격스러운 광고판까지 직접 목도하고 나니, 더욱 많은 것을 주고 싶어진 군자였다.
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이돌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옳은지.
더 많이 알고 싶다. 더 깊이 공부하고 싶다. 더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
누군가가 군자의 어깨를 톡톡 쳤다. 뒤를 돌아보니, 한참 낮은 눈높이에서 웬 소녀가 도끼눈으로 군자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몇 개월 전, 이 곳에서 군자를 처음 만난 뒤 팬이 되어 버린 여고생 연지였다.
“저기요.”
“?”
“아까부터 포스트잇 만지작거리시던데, 그거 떨어지면 안 되거든요.”
“···.”
“군자 오빠 와서 보셔야 되는···.”
제법 날카로운 말투로 군자를 몰아붙이던 연지는.
“···어?”
선글라스 속 군자의 눈매를 보더니, 두 동공이 순식간에 커다래졌다.
“···어어어···!?”
“만지면 안 되는 것이었군요. 미안합니다.”
“···구, 구, 구, 군···.”
“오랜만입니다. 우리, 구면이지요?”
“——!?!?!?!?”
그제야 군자의 정체를 알아챈 연지는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끄, 끄으···.”
“저기, 괜찮으신···.”
“어, 끄, 끄어–···.”
일단 진정이 필요할 것 같아, 급하게 연지를 데리고 대나무 숲으로 향한 군자였다. 마음을 진정하는 데에 대나무 숲 만한 공간도 없으니.
“자, 우선 진정을 좀 하세요. 심호흡 하시고.”
“후욱, 후욱, 후우욱-.”
“사람들이 그러는데, 초록 숲에선 피통치두(避痛治頭, 통증을 피하고 머리를 다스림) 기운이 나온답니다.”
“후우우우우욱-.”
한참 심호흡을 한 뒤에야 겨우 안정을 찾은 연지였다. 군자에게 광고판이 꿈 같은 일이었듯, 연지에게도 군자와의 만남이 꿈 같았다.
집 가는 길에 은혜로운 광고판이나 한번 보고 가려던 거였는데, 여기서 갑자기 광고판의 주인공을 만나게 되다니!
마음 같아서는 하루종일이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경연 때문에 피곤했을 텐데, 너무 귀찮게 하면 안 돼···.’
게다가 사람들이 군자를 알아보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지금은 괴상한 분장을 하고 있어서 다행히 아무도 못 알아보는 것 같았지만, 이런 은혜로운 기럭지와 다정한 목소리는 결코 흔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 들켜도 이상하지 않다.
딱 중요한 말만 하고 가자. 정말 하고 싶었던 말들.
빠르게 머릿속을 정리한 연지가 마침내 떨리는 입술을 움직였다.
“저, 그 날 이후로 진짜 팬 됐어요.”
“하하, 고맙습니다.”
“경연도 세 번 다 가서 봤어요! 다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좋았어요. 경쟁 엄청 치열했는데, 겨우 표 구해서···.”
연지의 말에 군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경연을 보러 오기 위해 경쟁까지 해야 한다고?
군자가 궁금해 하자 연지가 재빨리 설명을 덧붙였다. 요즘 방청권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그 표를 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하게 연지의 말을 듣던 군자는, 연지의 말이 끝나자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나를 보기 위해서, 그렇게 힘들게 표를 구해서 경연장에 오다니···.”
“무, 무슨—!! 제가 더 감사하죠—!!”
“아뇨, 내가 더 감사합니다.”
“나는 더 더 더 감사한데요—!?”
그렇게 한참 군자와 감사 배틀을 벌이던 연지는,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손뼉을 짝 쳤다.
“아, 그럼 혹시 인증샷 찍으러 오신 거예요?”
“인증샷? 그건 또 뭡니까?”
“광고판 앞에서 사진 찍어서 SNS에 올리는 거요! 광고판 잘 봤다, 감사하다, 뭐 이런 의미예요. 팬들도 아마 되게 좋아할 걸요?”
연지의 말에 군자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문화가 있었다니, 역시 아직 아이돌 문화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구나.
감동적인 광고판을 보며, 팬들을 위해 더 많은 것을 하기로 결심한 군자였다.
사진 한 장으로 팬들을 기쁘게 할 수 있다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사진 구도도 바로 떠올랐다.
“그럼 혹시 나를 도와 줄 수 있을까요.”
“그, 그럼요! 당연하죠! 어떻게 찍어 드릴까요?”
군자의 선택은 큰절이었다.
무대가 끝날 때마다 감사의 의미를 담아 올렸던 큰절.
혹자는 과하다며 지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감사와 존경을 표현하기에 그 만한 방법이 없었다.
업로드는 연지에게 부탁했다. 군자는 SNS 계정이 없었을 뿐더러, 있다고 해도 경연 중엔 사용할 수 없었을 테니까.
광고판 인증샷까지 찍은 뒤, 연지는 마지막으로 약간의 사심이 담긴 부탁을 건넸다.
“저, 오빠···.”
“음?”
“저어, 사진 한 장만 찍어 주시면 안 될까요?”
“사진?”
“지난 번처럼 대나무숲에 서 있는 사진이요!”
연지가 부탁한 것은 독사진이었다.
처음 군자가 사진을 찍어 줬을 땐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갈수록 그 사진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대나무 숲에서 팬을 세워 놓고 사진을 찍어 주는 아이돌이라니.
아마 그런 짓은 군자 밖에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연지의 부탁에 군자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그램 규칙 상 팬과 함께 사진 찍는 건 금지되어 있었으나, 같이 찍는 사진이 아니라면 문제가 없었다.
“후후, 지난 번보다는 훨씬 잘 찍을 겁니다.”
“오오, 진짜요?”
“예. ‘여자친구 사진 찍어 주는 법’ 영상 보고 배웠거든요.”
“여, 여, 여자친···.”
“비록 여자친구는 없지만, 이렇게 소중한 사람을 찍어 줄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간신히 평정심을 되찾은 연지의 얼굴이 다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오빠, 약간 퐉스였어요?’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군자는 연지를 완벽하게 조련하고 있었다.
마치 파란 대나무숲 가운데에 빨간 홍시를 띄워 놓은 것 같은 사진이 나왔지만, 연지는 그것이 가보라도 되는 듯 소중하게 받아 들어 가슴에 품었다.
“가, 감사합니다아···.”
“내가 더 감사합니다.”
“헤, 헤헤에.”
“다음에 또 볼 수 있다면 좋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군자는 해맑게 웃었다. 하얀 수염 사이로 그보다 더 하얗고 가지런한 치열이 씨익 드러났다.
그 티 없는 미소를 보며 연지도 정신줄을 놓고 따라 웃었다.
“헤에.”
“하핫.”
“헤헤헷.”
“하하하-.”
지구가 멸망해도, 영혼이 소멸돼도 이 팬질을 멈추지 않을 것이야. 연지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 * *
사흘 간의 마지막 휴가가 끝난 뒤.
생방송 경연 진출에 성공한 최후의 15인이 다시 한번 스튜디오에 집결했다.
지금부터 열흘 간, 생방송 무대를 위한 최후의 합숙이 시작된다.
“수많은 난관을 뚫고 마침내 마지막 경연까지 오신 여러분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앞엔 마지막 관문인 생방송 무대만이 남았습니다.”
“···.”
“생방송 경연 투표에서 7위 안에 든 참가자들은,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시즌 2의 공식 데뷔 멤버로 최종 확정됩니다.”
“···.”
“그럼 지금, 데뷔조 여러분들의 그룹명을 공개하겠습니다!”
정해진의 말이 끝나자 마자, 휘장이 내려가며 [아육시> 데뷔조의 그룹명이 공개됐다.
[7IN]“오오-.”
“‘Chillin’은 함께 놀다, 즐기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또한 ‘7 IN’ 이라는 합성어는, 여러분들이 팬들의 마음 안에 자리잡을 것이라는 의미 또한 담고 있습니다.”
“우와아아-.”
“여기 모인 열다섯 명의 참가자 중, 과연 누가 ‘7IN’의 멤버가 될 수 있을지! 다다음주 생방송 무대가 끝나면 아마 모두가 알 수 있겠죠?”
한없이 다정한 말투의 정해진이었지만, 그 문장 안엔 생방송 무대에 대한 중압감이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3차 경연에서 장선재를 포함한 절반이 날아갔다.
이제 생방송에서 다시 한번 절반이 날아간다.
남은 열다섯 중, 데뷔할 수 있는 인원은 고작 일곱 명 뿐. 생존자들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특히 주하성, 민강열을 포함한 ‘연습실 왕따’ 주동 세력은 꽤나 절박해 보였다.
9회차 방송을 통해 그들의 이미지는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 치고 있었다.
그 틈을 타 지현수, 권태웅 등 10위권에 머무르던 참가자들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그러나 대세가 완벽하게 넘어간 것은 아니었다.
주하성과 민강열의 코어 팬덤, 거기에 민강열의 형인 민강후의 그룹 ‘페이버릿’의 팬들까지 합세하여 그들의 픽에 힘을 보태고 있었으니까.
덕분에 사전 투표 현황은 말 그대로 난장판.
생방송 무대가 끝나기 전까지는 그 무엇도 함부로 예측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생방송 무대가 중요했다.
모든 전제조건을 무색하게 만들 만큼 압도적인 무대.
과연 이번 경연 준비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 모두가 MC 정해진의 다음 발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4차 생방송 경연의 룰을 설명하기 전에···.”
“···.”
“먼저 기쁜 소식부터 발표하겠습니다!”
“?”
“내일부터 1박 2일 동안, 여러분들은 제주도에 위치한 유원지 ‘탐라월드’에 갑니다!”
“—!?”
“지금까지 고생한 여러분들을 위해, 제작진이 준비한 특별 휴가입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긴장감이 일시에 풀리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 동안 합숙 – 경연을 반복하며 몸과 마음이 지쳐 있던 참가자들이었으니까.
“와 씨, 탐라월드래!”
“진짜로? 우리 진짜 놀러 가는 거야?”
“앗싸, 놀이기구—!!”
그러나, 기뻐하는 참가자들을 보면서도 MC 정해진의 표정은 마냥 흐뭇하지 못했다. 김석훈 PD에게 다가간 정해진이 간청하듯 말했다.
“PD님, 지금이라도 특별 미션 미리 말 해 주는 게···.”
“에이, 그러면 가기 전부터 불안할 거 아닙니까. 지금 즐기게 해 줘요 그냥.”
“그럼 정말 돌발 미션이 될 텐데, 괜찮을까요?”
“당연하죠.”
“진심으로?”
“이게 다~아 무대 위 돌발 사고 같은 상황 대처능력을 보는 평가라, 이 말입니다.”
정해진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지만, 김석훈 PD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흐흐, 이런 건 서프라이즈로 해야 재미있는 그림이 나오는 거라고요.”
그렇게 하루가 지난 뒤.
생존자 열다섯 명을 태운 비행기가 제주도를 향해 이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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