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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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줘
탐라(耽羅)에 간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군자의 기분은 좋지 않았다.
제주도라면 예로부터 가장 대표적인 유배지였던 곳 아닌가.
관직에 진출한 선비가 제주도로 보내진다는 건, 한동안 그의 경력이 단절된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부모님이 제주도를 다녀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깜짝 놀랐다.
이렇게 선량해 보이는 부모님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제주도로 유배를 다녀오신 것일까.
다행히 부모님의 설명을 통해 이제 제주도는 유배지가 아닌 관광지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배가 아니라 비행기라는 것을 타고 간다고?
쇳덩어리로 만든 커다란 붕새의 뱃속에 앉아서, 한 시간 동안 하늘을 날아가야 한다고?
제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한들, 그렇게 파격적인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은 군자에겐 두려운 일이었다.
여객기 좌석에 앉은 순간부터 뱃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한 군자였다.
곧 이 커다란 쇳덩이가 하늘을 날아간다는 말인가? 대체 무슨 동력으로? 가다가 독수리와 부딪히면 어떡한단 말인가?
불안감에 위장이 콕콕 쑤셔 왔다.
“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희 OO항공은 여러분들의 탑승을 진심으로···.”
곧 승무원이 복도 끝에 서서 안내사항을 읊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갑자기 흔들리는 경우에 대비해 항상 좌석벨트를···.”
모두가 평온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가운데, 군자만이 종이와 붓펜을 꺼내 안내사항을 폭풍처럼 필사해 나가기 시작했다.
살기 위해선 알아 두어야 한다. 커다란 붕새의 뱃속에 앉아 하늘을 난다는 것이 어디 평범한 일이던가.
나는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야만 한다. 다른 건 몰라도, 부모님보다 먼저 죽는 불효를 저지를 순 없단 말이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무서운 군자였다. 그나마, 어젯밤에 현재에게 전화하여 비행기 타는 법을 전해 들은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현재야, 사실 내가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없는데···.”
– 아, 진짜로?
“···솔직히 너무도 무섭구나···.”
– 푸하핫, 무섭긴 뭐가 무서워여!
“혹시 미리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을지···.”
– 형, 전화 완전 잘했어여. 혹시 누가 신발 벗고 타야 된다, 뭐 그런 말 안 했어요?
“어엇?”
– 그럴 줄 알았지. 권태웅 형이 그랬죠?
“마, 맞다! 그걸 어떻게 알고···.”
– 그 인간이 그렇지 뭐. 그 말 절대 믿지 마요. 신발을 왜 벗고 타? 안 그래요?
“생각해 보니 그렇구나.”
– 으이그, 아무튼 못됐다니까?
“현재야, 고맙다!”
– 근데 형, 볼 터치 빨갛게 해야 되는 건 알고 있죠?
“음? 어째서?”
– 구름 위 무릉도원으로 가는 거자나여. 도원이 뭐예여?
“도원은··· 복숭아 밭이지.”
– 그러니까 우리도 복숭아 같이 하고 가는 게 예의라고여. 원래 사람이 침범하면 안되는 영역이니까는.
“그, 그렇구나.”
– 당연하지. 그리고 처음 타는 사람은 ‘살려줘’라고 써진 모자 꼭 써야 돼요.
“그건 또 왜?”
– 생각해 봐요! 사고가 나도 비행기 여러번 탄 사람은 대처가 되는데, 형은 아무 것도 모르자나여?
“그, 그렇지.”
– 그러니까 나부터 구해 달라는 신호를 보내야져.
“···참으로 일리가 있다!”
현재가 아니었다면 이 발그스름한 볼터치도, ‘살려주시오’라고 써진 모자도 준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가까운 곳에 상냥한 친구가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운 군자였다.
위이이잉-.
마침내 비행기가 이륙하자 먹먹한 이명(耳鳴)이 시작됐다.
“으으, 귀가, 내 귀가···!”
이러다가 청력을 잃는 것이 아닌가 싶었으나 그것도 잠시.
고도를 높인 여객기는 정말로 구름을 뚫고 올라가 날기 시작했다.
“오오오오-.”
창 밖에는 정말로 구름이 주단처럼 깔려 있었다.
상상만 해 오던 구름 위 세상을 직접 볼 수 있다니!
계속해서 창밖을 내다 보고 싶었지만 10초만 바라보고 있어도 현기증이 났다. 기체가 난기류를 만나 흔들릴 때마다 군자의 심장도 함께 춤을 췄다.
“···으으으···.”
마음이 불안해질 때마다 ‘살려주시오’ 모자를 더욱 꽉 눌러 썼다. 머리통이 워낙 작아 모자가 빠져나가진 않을까, 그것 또한 걱정이었다.
“···무릉도원은 참으로 아름답고도 무서운 곳이구나···.”
비행 내내 군자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며 호달달거렸다.
“푸흡-.”
“어떡해, 도와드려야 되는 거 아냐?”
“살려달라시잖아, 네가 가 봐.”
“아 나, 웃으면 어떡하지···.”
승무원 중 그나마 웃음을 잘 참는 능력자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군자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그의 안위를 물었다.
“즈, 슨님?”
“예?”
“혹시, 비행이 불안하시면 쿠션을 제공해 드릴까요?”
“그, 그럼 부탁 드리겠습니다.”
승무원이 건넨 쿠션을 꼭 끌어안은 뒤에야 조금은 편안한 표정이 된 군자였다.
“하아-.”
“조금 괜찮으실지···.”
“한결 편안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녀님.”
“서, 선녀요-?”
선녀라는 말에 승무원의 눈이 동그래졌지만, 군자는 복숭아 같이 볼터치를 한 얼굴로 활짝 웃었다.
“하늘나라에서 좋은 일을 하시니, 선녀님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하, 에헷, 그, 그런···.”
“앞으로도 많은 사람을 살려 주십시오.”
“그, 네, 넵, 감사합니다-.”
순식간에 귀까지 새빨개진 승무원이 물러난 뒤.
옆자리의 지현수가 군자의 허벅지를 꽉 꼬집었다.
“이크-!”
“유군자아.”
“아프구나!”
“그거 아름답지 않아.”
“왜 그러느냐!”
“그 미친 비주얼로 그렇게 말하고 다니면 안된다고.”
“그게 무슨···.”
“너, 팬들 마음 아프게 하기 싫지?”
“당연하지! 난 팬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할 수 있다.”
“그럼 앞으로 여자 사람한텐 무조건 차갑게, 사무적으로 대하기.”
“···그런···.”
“오직 팬들한테만 다정하게. 알았어, 몰랐어?”
현수의 다그침에 군자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좋아, 이제 다시 아름답구만.”
그렇게 약 한 시간 반의 비행이 끝나고.
마침내 생존자들을 태운 비행기가 제주공항에 착륙했다.
치이익-.
처음 본 탐라(耽羅)의 풍경은 생경하기 그지없었다.
탐라라면 막연하게 현무암 절벽 위의 강태공, 성난 듯 너울치는 파도를 생각한 군자였다.
그러나 막상 직접 본 탐라는 이국적인 풍경의 관광지였다.
잎사귀가 희한하게 생긴 나무가 이곳저곳에 서 있었으며, 곳곳에 과일이 그려진 저고리를 입은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있었다.
그 풍경을 보자 비로소 부모님의 말이 진실이었음을 깨달은 군자였다.
이제 탐라는 더 이상 유배지가 아니게 되었구나.
“제주도다아아아—!!”
“날씨 미쳤구만—!!”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열 다섯 명의 생존자들은 전세 버스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제작진이 준비한 숙소에 짐을 풀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뒤.
오후부터는 30분 거리에 위치한 유원지인 ‘탐라랜드’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한 방에 모인 ‘팀 유군자’ 멤버들은 벌써 잔뜩 신이 난 것 같았다.
“와, 나 놀이공원 고1때 이후로 처음이에여.”
“···나, 나도 한 2년 만인가···.”
“유찬, 너 놀이기구는 잘 타?”
“···으응, 나 무서운 거 좋아···.”
“그래? 의외다?”
“얘가 좀 의외성이 있다니까여. 3차 경연 때도 야시시한 아이디어 냈다면서.”
“아 맞네. 맞아, 군자 얘가 벗겼어.”
“···그, 그, 그건···.”
“아하하핫, 하마터면 내가 벗을 뻔 했지.”
“난 군자도 궁금한데. 군자 넌 놀이기구 좀 타냐?”
태웅의 질문에 군자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못 탈 것도 없지.”
“오오, 자신감 뭐야~”
사실, 인생 첫 비행이 끝난 뒤부터 군자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상태였다.
방금 전, 쇳덩이를 타고 저 창공을 날아서 탐라에 도착한 군자였다.
인생 첫 비행을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마쳤다. 그 위험천만한 여정 끝에 이 곳에 왔는데, 놀이기구 쯤이야.
놀이기구는 말 그대로 ‘놀이’를 위한 ‘기구’ 아닌가. 기껏해야 조금 빨리 움직이는 마차 정도의 기구일 테지.
“후후,이제 난 뭐든 할 수 있단다.”
“좋아! 그럼 사진도 찍자! 재밌겠구만!”
그렇게 자신만만한 얼굴로 탐라랜드에 도착한 군자였으나.
“···이게 놀이기구···?”
“응! 어때! 겁나 재밌겠지!?”
하늘 높이 빙글빙글 꼬여 있는 철길을 보자 마자, 무언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와아아아아악-.
번개처럼 철길을 훑는 열차의 행렬, 그 뒤엔 탑승자들의 절규 같은 비명만이 남았다. 자신의 생각과는 꽤나 많이 다른 놀이기구의 형태를 보며, 군자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도 이것이 비행기보다는 느리겠지?”
“아이,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그래?”
“응. 비행기가 한 여섯 배는 더 빠를 걸?”
태웅의 말에 간신히 안정을 찾은 군자였다.
훨씬 빠른 비행기도 탔는데. 놀이기구가 조금 무섭게 생겼다 한들, 얼마나 무서울···.
“사, 사, 살려주시오——!!”
“우하하핫, 개쩔어—!!”
“그아아아아악——···.”
인생 첫 롤러코스터 체험은 꽤나 쓰디쓴 것이었다.
지옥 같았던 운행이 끝난 뒤, 군자는 벤치 아래 나무에 쪼그려 앉아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부, 분명히 놀이기구라 하지 않았느냐···.”
“푸하핫, 자신있다면서여!”
“이것의 어디가 놀이기구란 말이···.”
“그럼 우리 저거 타여, 저거! 저건 좀 덜 무서운데!”
“그, 그래?”
그러나 군자의 기준에서 무섭지 않은 놀이기구는 없었다.
“으어어, 유, 유찬아-! 이상하게 오줌이 나올 것 같구나아—!!”
바이킹 위에서도 소리를 질렀고.
“노, 높다! 너무 높구··· 꾸아아아아아아아악——···.”
자이언트 드롭 위에서도 소리를 질렀고.
“말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구나! 무섭다! 살아있는 말을 다오-!”
회전목마 위에서도 두려워 했으며.
“저, 저 쪽 통 안을 봐라! 너무 문란하구나! 음란서생들이 탑승한 모양이다!”
대관람차 위에선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소리를 쳤다.
그 와중에도 태웅과 유찬, 현재는 신이 난 듯 ‘팀 유군자’를 이끌고 다니며 신나게 탐라월드를 즐겼다.
“헤헤, 형들! 우리 롤러코스터 한 번 더 타여!”
“처, 처음 탄 것 말이더냐-!?”
“넹! 그게 젤 재밌는데!”
“···으으, 인혁이 형님···.”
그나마 군자가 기댈 만한 곳은 인혁 뿐이었다.
[저주 : 쓸데없는 잔걱정] [지금은 자신이 무서운 놀이기구를 못 탄다는 것을 들킬까 봐 걱정 중]군자의 눈엔 인혁의 상태창이 보였다. 지금까지 묵묵한 얼굴로 놀이기구를 타 왔지만, 인혁 역시 군자와 같은 처지였던 것이다.
그래, 이 미친 자들과 함께 있으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된다.
하지만 같은 겁쟁이인 인혁이 형님과 함께라면, 조금은 덜 외로울 수 있지 않은가!
···라고 생각한 군자였으나.
“191cm, 탑승 불가입니다.”
“—!?”
거인 차인혁은 까치발을 조금만 들어도 신장 규정을 통해 탑승을 피할 수 있었다.
“혀, 혀, 형님!”
“···군자.”
“이러시깁니까—!?”
“미안···.”
“이, 이 배신자아아—···.”
결국 다른 멤버들이 지칠 때까지, 군자는 각종 놀이기구에 몸을 실어야 했다.
그렇게 한참 놀이공원을 즐긴 뒤.
‘팀 유군자’ 멤버들은 놀이공원 카페테리아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아하하핫, 재밌다 재밌어.”
“그러게. 이렇게 다 놓고 놀아 본 거 진짜 오랜만인 듯.”
“···으으으···.”
“선비 형아, 괜찮아여?”
“인혁이 형님, 너무하십니다···.”
“푸하핫, 형! 얘 진짜 섭섭한가 봐요.”
자리에 앉아 슬러시를 쪽쪽 빨아 먹던 태웅이 컵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우리 이렇게 놀아도 되는 건가?”
“왜여? 놀러 왔으니까 놀아야지.”
“뭐 그렇긴 한데··· 또 뭔가 있을 것 같지 않냐?”
“에?”
“뮤직플래닛이잖아. 김 PD님이잖아.”
태웅의 말에, 나머지 멤버들의 표정이 동시에 어두워졌다.
“아하하, 얘 불길한 소리 한다.”
“그러게. 왜 그런 말 하고 그래여, 빨리 취소하셈.”
“그, 그런가? 알았어, 취소 취소···.”
그러나 태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모든 멤버들의 스마트폰이 동시에 울리며 메시지가 들어왔다.
[[아육시> 생존자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의 휴가, 마음껏 즐기고 계신가요?]“···야 권태웅···.”
“하, 하하, 말이 씨가 됐네?”
태웅은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지만, 메시지는 계속해서 날아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