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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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탐라월드의 시그니쳐 어트랙션, ‘한라봉 익스프레스’ 플랫폼 위에서 난데없이 벌어진 프리스타일 랩 배틀.
선공은 ‘소울리스좌’ 장현주의 차지였다.
“아 쥬아~ 아 쥬아~ 아 쥬아 쥬아 쥬아~”
가볍게 시동을 걸기 시작한 장현주가 이내 폭풍 같은 안내 멘트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올라오신 한라봉 님께서도 안내 근무자의 안내를 받아~ 아 한라봉도 두 분씩~ 한 보트에 열 분씩~”
햇수로 3년, 근무일수로만 헤아려 봐도 800일이 넘는다.
그 오랜 기간 동안 수천 번이 넘도록 반복해 온 안내 멘트였다.
상황에 따라 약간의 변주를 주는 것은, 장현주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아 한라~ 아 한라~
아 봉보로 봉봉 봉~ 도 젖습니다~ 인형탈도 젖습니다~
“오오-.”
아 홀딱 쫄딱 젖는겁니다~
같이 오신 탱자님도~ 함께 오신 감귤님도~
과즙에 젖고 물에 또 젖는~ 여기는 한라봉~
멋진 변주로 안내 멘트를 마치며, 장현주는 씨익 웃었다.
종종 이런 손님들이 있기는 했다. 한라봉 익스프레스 요원들의 흥겨운 안내 랩에 반응하여 플랫폼에 난입하는 관종들이.
다른 직원이라면 정색하며 내쫓았겠지만 장현주의 태도는 달랐다.
이 곳을 찾은 손님들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이런 돌발 상황이야말로 사람들의 흥미를 잡아 끌 수 있는 사건 아니던가.
아니나다를까, 장현주와 한라봉의 랩 배틀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기 시작했다.
‘한라봉 익스프레스’를 둘러싼 방문객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영상을 찍으며 그녀의 별명을 외쳤다.
“우와아아아—!!”
“소울리스좌—!!”
장현주의 선공은 군자에게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이 자, 영혼이 탈출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만만찮은 소리꾼이구나.
‘놀이기구 탑승 시 주의사항’이라는 시제를 훌륭하게 지켜 내며, 동시에 군자의 난입에 대응하는 가사까지 삽입했다.
그 덕에 관객이 모여들었다. 웃음소리가 커졌다.
모두가 행복한 얼굴로 그녀의 별호(別號)를 외치는 것을 보니, 이미 이 구역에서는 꽤나 유명한 시객(詩客)인 듯 싶었다.
소울리수좌(燒鬱理愁座, 울적함을 해소하고 근심을 다스리는 자)라.
참으로 어울리는 별칭 아닌가.
숙부와 함께 다니며 시조 경연을 할 때엔 불쾌한 적도 많았다. 그는 오직 승리만을 추구하며 군자를 다그쳤으니까.
허나 기본 실력도 갖추지 못한 자들을 찍어 누른다고 한들, 군자에겐 찝찝함만이 남을 뿐이었다.
그러나 소울리수좌는 달랐다.
이 자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경연을 펼칠 수 있을 것 같구나.
이번엔 군자가 장현주의 공격을 받을 차례.
시제는 이미 정해져 있다. 주가와 펼쳤던 자유주제 경연과는 달랐다.
그러나 제 아무리 시제가 정해져 있다 한들, 제 아무리 이곳이 상대의 전장이라 한들.
군자의 총명함과 재기발랄함은 손톱만큼도 사라지지 않았다.
“아 충~ 아 효~”
경연장에 흐르는 촐싹맞은 장단에 맞추어, 군자가 마침내 입을 열기 시작했다.
“···?”
반격이 시작되자 소울리스좌 장현주의 표정이 달라졌다.
여기서 이걸 받는다고?
지금까지 그 누구도 장현주의 폭포수 같은 랩핑을 감당할 수 없었다. 기껏 관심을 끌려고 올라왔다가도 부끄러움 속에 퇴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라봉 익스프레스’의 안내 멘트는 아무나 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숙련된 근무자들만의 전유물이다. 이 한라봉 인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자신감은 무슨···.
“아 인-의-예- 지예 지예 지예~”
그러나 인간 한라봉은 이미 완벽하게 이 장단에 젖어든 것 같았다.
아 젖소이다 젖소이다~ 전부 다 젖소이다~
대관령의 젖소가 아닌 한라봉에 젖소이다~
이번에도 군자는 상대보다 관객을 먼저 홀렸다.
순식간에 만들어 낸 끔찍한 중독성의 훅(Hook).
“푸하하하핫-.”
“말투 뭐야, 양반이야?”
“대관령의 젖소가 아니래! 푸하학.”
슬슬 반응이 오는 것을 느끼며, 군자가 오른손을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비록 유교지만 무대 위에서만큼은 부처 핸즈 업.
그 과감한 몸짓에 관객들이 호응했다. 즉석에서 만들어 낸 훅에 떼창으로 화답했다.
“아 젖소이다 젖소이다~”
“대관령의 젖소가 아닌~ 한라봉에 젖소이다~”
그래, 말 그대로 젖고 있구나.
생각해 보면 풍류 역시 자연에 젖는 과정 아니던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느껴질 때, 우리는 자연스레 그 세상에 젖어든다.
꼭 이 관객들처럼 말이지.
관객들의 힘을 느낀 군자가 가사를 내뱉었다.
안면 삼면 둔부 흉부~
상완 삼두 대퇴 사두~
활배 광배 누이 매부~
전신 하나 빠짐 없이~ 모두 다 젖소이다~
물살에 젖고 풍류에 젖는~ 여기는 한라봉~
아 젖소이다 젖소이다~ 전부 다 젖소이다~
대관령의 젖소가 아닌 한라봉에 젖소이다~
폭풍 같은 반격 이후엔 모두가 따라할 수 있는 훅까지.
군자의 매서운 반격에 오히려 장현주가 당황했다.
아니, 이렇게까지 거침없는 반격이 들어온다고?
혹시 비번인 근무자가 아닐까 잠시 의심했으나, 그럴 리가 없었다. ‘한라봉 익스프레스’ 근무자들 중엔 저렇게 예술적인 신체비율을 가진 이가 없었으니까.
저렇게 완벽한 비율에, 얼탱이 없는 한라봉 탈까지 쓰고.
군자는 오늘도 무대를 씹어먹고 있었다.
비밀VJ는 이 모든 과정을 생중계 중이었다.
당연하게도 시청자는 폭주했다. 목소리를 변조했다지만, 그 정도의 프리스타일 선비 랩을 구사할 수 있는 참가자는 한 명 뿐임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얔ㅋㅋㅋㅋㅋㅋ한라봉익스에 유군자입갤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헐 미친ㅠㅠㅠㅠ군자 거기있었어?? 계속 안보여서 미션 포기한줄ㅠㅠㅠㅠ] [야야 빨리봨ㅋㅋㅋㅋㅋㅋㅋ소울리스좌랑 랩배틀 뜨는중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그래진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인간 웃음벨이얔ㅋㅋㅋㅋㅋㅋㅋ제정신이냐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시청자는 순식간에 15000명을 넘어 20000명에 도달했다.
주하성의 최고기록을 가볍게 따돌리며 최상단으로 떠오른 군자였으나, 지금 군자에게 시청자 숫자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소울리수좌가 재반격해 온다.
친구라면~ 연인이라면~
가족이라면~ 사랑한다면~
한 자리 두분 두분 두분까지~
엄마, 아빠, 아들, 따님, 다다 젖습니다~
남자친구, 여자친구, 다다 젖는겁니다~
아 특산물도 젖습니다~
한라봉도 젖는겁니다~
아 과즙이 나를 부르고~
과육이 나를 부르네~
아 쭉~ 아 쭉~ 아 쭉쭈루쭉쭉 쭉~
아 젖습니다 젖습니다~ 전부 다 젖습니다~
대관령의 젖소도 젖고~ 한라봉도 젖습니다~
베테랑 근무자답게, 돌발 상황에도 장현주의 영혼 없는 톤은 바뀌지 않았다.
이번에도 단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완벽한 박자에 가사를 때려 박으며 분위기를 다시 가져오는 데에 성공했다.
거기에 군자가 만들어 낸 후렴의 가사를 살짝 바꾼 반격까지.
그 재치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픈 군자였다.
“···훌륭하오.”
아마 뭇 시객이었다면 이쯤에서 소울리수좌 앞에 무릎을 꿇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군자의 머릿속엔 영감이 퐁퐁 샘솟고 있었다. 수천, 수만의 시구들이 춤을 추었다.
재미있지 않은가. 참으로 모순되지 않은가.
이 곳의 근무자들은, 이 노래를 통해 사람들이 물에 흠뻑 젖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허나 금지(禁止)의 의미는 결코 아니다.
‘몸이 물에 젖으니 타지 마시오’ 가 아닌.
‘물에 좀 젖으면 어떨까, 즐기시오’ 라는 의미.
그 순간, 군자의 머릿속에 시구(詩句) 하나가 퍼뜩 스치고 지났다.
“오호라.”
흥겹게 어깨를 들썩이며 입을 열자 마자, 시조는 마치 팽팽한 시위를 갓 떠난 화살처럼 절로 튀어나왔다.
젖은들 어떠하리~ 빠진들 어떠하리~
삼다도 물보라가~ 날 덮친들 어떠하리~
조선 500년 역사상 가장 유명한 프리스타일 랩 배틀의 첫 번째 벌스, 하여가(何如哥).
그것을 차용한 군자의 두 번째 훅은, 다시 한번 관객들의 떼창을 이끌어 내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젖은들 어떠하리, 빠진들 어떠하리-!”
“삼다도 물보라가 날 덮친들 어떠하리-!”
“푸하하하학-.”
“이방원 Shit—!!”
상대가 후렴을 응용하여 공격해 온다면, 버리고 새로 만들면 그만.
경험이 장현주의 자산이라면 군자의 무기는 시퍼런 칼날 같은 창의력이었다.
아 후락수(厚樂水)~ 아 후락수(厚樂水)~
젖으면 좀 어떻소, 젖어 보는 게 어떻소~
이 몸이 젖고 젖어, 일백 번 고쳐 젖어도~
하절기(夏節期) 햇볕에 말리면 그만이오~
강원 고성 북어 라도 홀딱 젖어 명태 되고~
동해 인제 황태 또한 흠뻑 젖어 생태 되고~
불효 자식 효자 되니 모친 눈가 흠뻑 젖고~
불충 신하 충신 되니 임금 가슴 흠뻑 젖고~
풍류에 젖고 물살에 젖는~ 여기는 한라봉~
충심에 젖고 효심에 젖는~ 여기는 한라봉~
아 받들 봉(奉), 받들 봉(奉), 봉보로 봉봉 봉~
첫 번째 공격까지는 어떻게든 감당해 낸 장현주였으나, 두 번째 공격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본질을 꿰뚫는 듯한 가사가 그녀의 심금을 울렸다.
그래, 항상 하고 싶었던 말이다. 옷이 젖었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꼭 이 말이 하고 싶었다.
물 위에서 타는 놀이기구를 타러 온 거잖아. 그럼 좀 젖으면 어때, 또 좀 빠지면 어때.
완벽하게 밀린 장현주였지만 어쩐지 패배감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묘한 대리만족감마저 들었다.
마지막 공격을 마친 뒤, 인간 한라봉은 관객들과 함께 방방 뛰며 신나게 떼창을 즐기고 있었다.
“젖은들 어떠하리! 빠진들 어떠하리!”
“삼다도 물보라가! 날 덮친들 어떠하리!”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의 완패다.
정체도 모를 한라봉이었지만, 장현주는 그에게 다가가 오른팔을 번쩍 들어올려 주었다. 동시에 관객들이 다시 한번 환호성을 터뜨렸다.
“우와아아아아아아—!!”
“감사하오—!!”
플랫폼 위에서의 즉석 프리스타일 배틀이 끝나가는 시점, 군자의 채널 시청자 수는 총 7만 4천.
주하성을 포함한 다른 모든 경쟁자들의 시청자 수를 합친 것보다도 큰, 그야말로 압도적인 격차였다.
그러나 정작 군자는 자신이 돌발 미션에서 우승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단지 방금 전의 대결에 감격하고 있었을 뿐.
“감사합니다.”
함께 대결을 펼친 장현주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뒤, 인파를 헤치며 집합 장소로 돌아가려 한 군자였다.
개인 방송 임무는 포기했지만, 약속시간 안에 집합 장소에 모이기는 해야 했으니.
“잠시만, 잠시만 지나가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
“하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환호성을 지르는 인파를 뚫고, 간신히 한적한 곳으로 탈출하여 숨을 돌리고 있었는데.
“저기.”
“?”
한 남녀 커플이, 한라봉을 뒤집어 쓴 군자를 톡톡 치며 그를 불렀다.
“유군자 씨, 맞죠?”
“!”
“공연 잘 봤어요.”
“어우, 저도 너무 잘 봤습니다.”
군자가 놀란 건, 그 두 사람이 그의 정체를 알아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렇게 경연을 했으니, 누군가는 정체를 알아챌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남녀를 본 순간 눈앞에 떠오른 상태창. 그것이 군자가 놀란 이유였다.
[두 번째 ‘귀인’이 등장했습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