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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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물
“맞다, 군자 너 1등 했더라?”
“음? 1등이라니, 무엇을?”
“뭐긴여, 개인방송 미션이져.”
“이번엔 포기하겠다고 내숭 떨드만.”
“어떻게 개인방송까지 잘 해 버리니, 응?”
“나는 그저 시조 경연을 한 것 뿐인데.”
“하긴 선비 형아는 그냥 존재 자체가 킬러 컨텐츠긴 해여.”
“허어, 또 1등이라니···.”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군자와 친구들은 제주도민 부부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친구들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특히 롤러코스터 앞을 지날 때, 현재와 태웅의 얼굴엔 진한 아쉬움이 스쳤다.
“으으, 좀 더 타고 싶었는데···.”
“아하핫, 탈락하면 다같이 와서 또 타자.”
“얌마, 탈락이라니! 그건 더 싫거든.”
“그나저나, 진짜 믿을 수 있는 사람들 맞겠지?”
“뭐야 지현수, 쫄았냐?”
“아니 뭐, 일단 모르는 사람들이니깐···.”
“괜찮을 거예여, 군자 형이 사람은 잘 보잖아여.”
“그래 그래. 그리고 여차하면 혁이 형도 있는데 뭐 어떠냐.”
마침내 제주도민 부부와 조우한 시점에도, 친구들의 얼굴엔 불신이 가득했다.
“흐음, 저 사람들이야?”
“뭐야, 여름에 웬 마스크에 모자까지···.”
“저러고 있으니까 더 수상한데?”
“선비 형아, 믿을 수 있는 분들 맞아여?”
동료들이 군자를 채근했으나, 그의 표정은 한없이 여유로웠다.
“걱정 마라, 믿을 수 있는 분들이시니.”
차분하게 동료들을 안심시킨 뒤, 한 발짝 앞으로 나선 군자는 제주도민 부부에게 허리 숙여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영의정 대감 마님, 친구들을 데려왔습니다.”
“허헛, 왔구나.”
“으이그, 안 오는 줄 알았잖아~”
영의정이라는 이름, 그리고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은 다음에야 친구들의 표정은 천천히 변해 갔다.
“자, 잠깐만. 아니지?”
“에이, 장난 치지 마.”
“설마 내가 아는 그 영의···.”
“응, 그 영의정 맞아~”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씨익 웃는 영의정의 모습에, ‘팀 유군자’ 멤버들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질렀다.
“——!?!?”
“———!?!?!?”
* * *
털털거리는 봉고차를 타고 영의정의 집으로 향하는 길.
태웅과 현수, 그리고 유찬은 아직도 이 현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니, 이게 뭐야··· 이거 대체 뭔 꿈인데···.”
“···여, 영의정 선배님 집에···.”
“나 나우리 선배님 음악 진짜 좋아했는데. 앨범도 다 샀다고··· 이게 어떻게 현실일 수 있지?”
“당연히 꿈이겠지. 근데 왜 덜컹거릴 때마다 꼬리뼈가 아플까? 하하.”
세 사람이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동안, 현재와 시우는 이미 적응이 끝났다는 듯 영의정의 옆자리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딱 10분만 줘~ 널 내껄로 만들게~”
“아하학, 나 이 노래 너무 좋아.”
“와, 요즘 애들도 이 노래 아는구나?”
“아이 누나, 당연하져! 혁이 형은 기획사 월평도 이 노래로 받았대여.”
“남자애가 이 노래로 월평을?”
“크크, 그렇다니까여. 그치, 혁이 형?”
현재의 말에, 귀까지 새빨개진 얼굴의 인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패, 팬입니다.”
“영광이네! 나도 젊고 잘생긴 애들이랑 노니까 아주 좋다 좋아~”
영의정의 말에 군자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우리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농이라고 해도 저런 말은 남편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나우리는 그저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껄껄 웃으며 운전대만 잡고 있었다.
“으하하핫, 그래 그래. 젊은 기운 많이 받어~”
“!”
그 호탕한 모습을 보며 군자는 큰 감동에 젖었다.
과연, 영의정 대감과 함께 살기 위해선 저 정도의 대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로구나.
그렇게 바닷길과 오솔길을 번갈아 가며 한참을 더 달리니 영의정과 나우리의 집이 나왔다. 봉고차 문이 열리자 마자, 하얗고 커다란 강아지 두 마리가 격하게 군자 일행을 반겼다.
“헥헥헥, 멍- 멍-!”
“끼이잉, 멍-.”
그 체구에 깜짝 놀란 군자였으나 강아지들의 태도를 보니 경계심은 금방 풀렸다.
덩치만 컸지, 행동은 영락없이 순박한 시골 아이들이로구나.
“하하, 그래 그래.”
머리를 쓰다듬고 볼을 매만져 주니, 커다란 강아지들은 마치 군자와 사랑에 빠진 것처럼 행복한 눈빛으로 꼬리를 흔들었다. 강아지의 원래 가족인 나우리도 그 모습엔 놀란 듯 했다.
“어어, 쟤네 나한테는 저렇게 안 했었는데···.”
“자기야, 내가 그랬잖아. 얘들 잘생긴 남자 좋아한다니까?”
“으허헛, 거 일리가 있네.”
강아지들의 환대를 받으며 군자 일행은 봉고차에서 차근차근 내렸다.
“···우와···.”
“너무 좋은데?”
영의정의 생가는 군자의 상상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아늑한 곳에 위치했다. 원경(遠景)으로 푸르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으며, 등 뒤엔 야트막한 산이 그들을 감싸 안았다.
스무 걸음만 걸어 나가면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있었다. 돌을 들 때마다 송사리며 가재가 튀어 나오는, 유리알처럼 맑고 시원한 개울.
군자를 포함한 일곱 친구들은 개울가에 설치된 평상에 앉았다. 꽤나 더운 날씨였음에도, 평상의 대나무 위에 앉으니 엉덩이부터 등줄기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하, 좋다.”
“난 아직도 이게 현실인가 싶네.”
“영의정 선배님 집에 오다니···.”
“하하, 태웅아. 놀이기구 안 타기를 잘했지?”
“당연하지!”
태웅이 자신의 입을 찰싹찰싹 때리며 반성하는 동안,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영의정이 커다란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쟁반 위엔 먹음직스런 수박이 빽빽하게 잘려 있었다.
“자아, 수박 먹자~”
“서, 서, 선배님-!”
“이런 건 저희한테 하라고 하셔도 됩니다, 선배님!”
“아이, 편하게 있어 편하게. 내가 초대한 거잖아.”
“그, 그래도···.”
“쓰읍, 말 안 듣지!”
“!”
“야, 나도 너네 팬이야. 방송 얼마나 재밌게 봤는데.”
팬이라는 말에 일곱 소년들의 얼굴에 뭉클한 감동이 떠올랐다.
영의정이라면 아이돌계를 넘어 대한민국 연예계의 역사에 남을 아이코닉한 인물이다. 그런 영의정이 그들의 ‘팬’을 자처한 거다. 인혁은 정말로 울컥한 듯, 또 새빨개진 코를 연신 비비며 콧물을 훌쩍였다.
“아이, 나 오그라드는 분위기 싫은데~”
“죄송함다!”
“푸하핫, 군대 분위기도 싫거든? 됐고, 수박 먹으면서 얘기나 들려 줘. 나 진짜 궁금했단 말야.”
“넵!”
일곱 소년들은 영의정과 함께 평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은 말 그대로 쏜살 같이 흘렀다. 소년들이 즐거웠던 기억, 힘들었던 순간의 이야기를 풀어 놓으면 영의정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어휴, 진짜 고생 많았네. 나 때는 그런 것도 없었어~”
“그럼 선배님은 뭐가 가장 힘드셨어요?”
“으음, 처음엔 잠을 거의 못 잤는데. 내가 잠 못 자면 구내염이 엄청 심하게 나거든?”
“으으, 구내염이요? 그거 엄청 아프잖아요.”
“그래도 구내염은 참을 만 했는데, 매니저가 떡볶이를 먹지 말라는 거야! 구내염 덧난다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이런건 떡볶이 같이 매운 걸로 지져 줘야 낫는다, 항상 그렇게 치료해 왔다! 근데 그냥 무조건 먹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데, 어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별다른 위로의 말을 들은 것도 아닌데, 그냥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앉아 수박 한 통을 해치우고, 국물 맛이 끝내주는 능이백숙까지 먹고 나니 해가 뉘엿뉘엿 저물었다.
“아, 좋다아.”
“···헤헤, 몸이 노곤해지는 느낌이에요···.”
“인삼주 끝내주는 거 있는데, 유찬이랑 현재는 미성년자였지? 아쉽네 아쉬워.”
“누나, 진짜 다 아시네여?”
“내가 그랬잖아, 찐팬이라니깐.”
홍시 같은 해가 뒷산에 걸리자, 이번엔 영의정의 남편 나우리가 기타와 카혼(남미 지역에서 유래한 타악기)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기타 칠 줄 아는 사람~”
“헉, 마틴 빈티지 기타다···.”
지금은 ‘영의정 남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전엔 대한민국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한 기타리스트로 명성이 높았던 나우리였다.
그렇기에 프로듀서 멤버인 지현수는 영의정보다 오히려 나우리를 만났다는 것에 더 큰 감동을 받은 것이고.
그런 나우리가 악기를 들고 털래털래 걸어오니, 지현수의 퀭한 눈이 순식간에 초롱초롱 빛났다. 군자를 볼 때 외엔 이토록 빛난 적이 없던 눈이다.
“제, 제가 조금 칠 줄 압니다!”
“아하, 너가 프로듀싱 한다고 했지? 이거 쳐 볼래?”
“근데 이거 엄청 귀한 빈티지 기타 아닌가요?”
“음? 그런가? 잘 모르겠네, 허허허.”
“그럼 한 번···.”
빨갛게 타오르는 하늘을 배경으로 현수의 연주가 시작됐다.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어쿠스틱 기타 멜로디에, 나우리가 연주하는 잔잔한 카혼 리듬이 합쳐지니 그것만으로도 작은 공연이 됐다.
“오, 좋은데? 요즘 아이돌들은 진짜 팔방미인이라니까~”
“자기야, 요즘 누가 팔방미인 같은 단어를 쓰니.”
“아 몰라, 내가 요즘 사람이 아닌데 어쩌라고~”
영의정 내외는 우스갯소리를 주고 받았으나 지현수에겐 너무도 귀한 시간이었다.
“오, 방금 그 탑 라인 좋은데.”
“그, 그렇습니까?”
“허허, 야. 말 좀 편하게 해. 그냥 우리 형이라··· 아, 아니다. 우리 형은 누구 생각나서 좀 그렇고, 우리 삼촌이라고 불러.”
“저, 저, 정말 그래도 될까요!?”
“허허, 그래. 다음에 또 놀러 와.”
“—!!”
작곡가들은 종종 작업이 막힐 땐 송 캠프를 떠나기도 한다.
이 시간이 현수에겐 결승전을 대비하기 위한 SSS급 송 캠프나 다름없었다.
대선배이자 롤모델 중 하나였던 나우리에게 무심한 듯 섬세한 피드백을 받으며, 지현수는 머릿속에 영감을 한가득 채워 넣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카혼을 두들기던 나우리가, 잠시 연주를 멈추며 관객들을 둘러보았다.
“다른 친구들은 할 줄 아는 악기 없어?”
“군자가 거문고랑 가야금 할 줄 압니다!”
“어어, 거문고랑 가야금? 그런 건 없는데에··· 흐음.”
잠시 머리를 긁적이던 나우리는,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손뼉을 쳤다.
“그래, 비파(琵琶)가 하나 있긴 한데.”
“!”
“군자 너, 비파도 할 줄 아니?”
나우리가 말을 마치자 마자 군자가 폭풍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현이 다섯 개인 향비파라면 군자가 가장 좋아하던 악기 중 하나다.
감성적이고 섬세한 비파의 음색은 묘하게도 고즈넉한 밤과 잘 어울렸다.
가무나 악기를 가르쳐 줄 사람이 없는 밤이면, 종종 기루의 악기실에 들어가 향비파를 연주하며 달을 바라보곤 했다.
아직 밤이 오려면 시간이 남았으나, 비파의 음색은 이렇게 붉은 노을이 염료처럼 끼얹어진 풍광과도 꽤나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네, 할 줄 압니다.”
“오, 그래? 사실 난 비파는 잘 모르는데, 집안 대대로 가보처럼 내려오던 비파가 하나 있거든.”
“가, 가보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오래된 물건을 제가 망가뜨리기라도 하면···.”
“허허, 걱정 안 해도 돼. 관리는 잘 해 놨으니까.”
말을 마친 나우리가 비파를 들고 왔다. 천만 원이 넘는 빈티지 기타도 대충 한 손으로 들고 온 나우리였지만, 가보인 비파는 꽤나 소중한 듯 두 손으로 잡아 드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일단은 가보니까, 막 때려 부수면 안 된다? 허헛.”
비파는 한 눈에 보아도 오래된 것 같았다.
다섯 현과 주아(튜닝을 위한 줄감개) 등, 삭을 수밖에 없는 부분엔 보수 작업이 되어 있었지만 기본적인 형태는 과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비파를 보자마자, 이상하게 가슴이 뛰기 시작한 군자였다.
거문고를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하지만 조금 달랐다.
그 때보다도 조금 더 먹먹하고 뭉클한 느낌.
어째서일까. 이유를 알 순 없었지만, 심장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멋지지?”
“네.”
“보수를 좀 하긴 했지만, 울림통 목재는 거의 그대로야.”
군자는 조심스레 두 손을 뻗어 나우리에게서 악기를 받아 들었다.
손가락 끝으로 서늘한 목재의 촉감이 느껴진 순간이었다.
“!”
군자의 눈앞에, 처음 보는 상태창이 퍼뜩 떠올랐다.
[영물 ‘나유선의 향비파’가 사용자 ‘유군자’를 기억합니다.] [영물이 사용자와 공명합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