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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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보다 운명
‘나유선’이라는 이름을 확인하자 마자, 군자의 가슴에서 울컥하는 것이 턱까지 치고 올라왔다.
악기장(樂器匠) 나유선, 어찌 그 이름을 잊을 수 있을까.
기루의 악기실에서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악기 만드는 장인 나유선 역시 음악에 관한 한 손톱만큼의 편견도 없는 인물이었다.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나유선은 군자의 재능을 알아 주었다. 음악과 악기를 사랑한 군자에게, 악기장 나유선의 인정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었다.
군자 역시 나유선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좋은 나무를 고르는 그의 안목은 탁월하다 못해 신묘한 수준의 것이었다. 다 낡아 고물이 된 악기도 그의 손을 거치면 영롱한 소리를 내는 명품으로 재탄생했다.
불세출의 악기장에게 부족한 것은 오직 작업을 지속해 나갈 돈 뿐.
군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유선을 도왔다. 쌈짓돈을 풀어 그의 활동을 지원했으며, 공연을 통해 벌어들인 엽전 꾸러미를 그에게 건네기도 했다.
동생 같았던 군자에게 진 빚은 나유선의 가슴 속에 무겁게 남았다. 이 은혜는 언젠가 꼭 갚으마. 그것이 나유선의 입버릇이었다.
문원 악기장 나유선의 명성은 갈수록 올라갔으며, 마침내 궁중 악기조성청(樂器造成廳) 입청을 통해 관직까지 부여받게 되었다.
한양으로 떠나기 전, 나유선의 마지막 작업은 군자를 위한 향비파를 만드는 것이었다.
오로지 군자만을 위한 비파엔 가장 좋은 나무와 훌륭한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했다.
영혼을 깎듯 만든 비파였으나, 군자는 끝내 그것을 받을 수 없었다.
숙부 유형원이 그를 뒤주에 가두어 버렸으니까.
군자에게 전달되지 못한 나유선의 역작은, 그대로 가문의 보배가 되어 후대로 전해졌다.
그렇게 300여 년이 흐른 뒤.
마치 기적처럼, 나유선의 향비파는 다시 군자의 손에 들어왔다.
상태창이 이 비파를 만든 악기장이 누구인지 알려주었다. 그러나 상태창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군자는 그 비파를 만든 이가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것은 우연보다 운명이라고 불러야겠구나.
300년 동안이나 나를 기다린 게로구나.
가만히 비파를 잡아 든 군자가 다섯 줄에 손가락을 얹었다. 악기에 손을 대니, 꼭 그 영물이 가진 진동이 손끝으로 느껴지는 듯 했다.
“···.”
그 진동을 느끼며 군자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신묘한 분위기에, 평상에 앉아 있던 모두가 함께 고요해졌다.
저녁 풀벌레 소리, 시냇물 흘러가는 소리만이 정적을 채우고 있던 중.
다아앙-.
군자의 첫 탄현(彈絃)과 동시에, 자리에 앉은 모두는 오싹한 울컥함을 느꼈다.
소름이 끼칠 만큼 좋은 소리였다. 헌데 신기하게도, 전율이 올라옴과 함께 가슴이 먹먹해졌다.
다앙, 당, 다아앙-.
아름답고 서정적이며 한편으로는 구슬프기까지 한 비파의 음색이 공간을 휘감았다. 이미 모두가 그 음율에 사로잡힌 듯,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울림통엔 300여 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었다. 그걸 보관하고 있던 나우리 역시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현란한 테크닉, 미칠 듯한 속주보다 중요한 것은 감성과 표현력이다. 악기 지망생들에게 나우리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문장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영상을 찍어 그 악기 지망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스마트폰 카메라를 꺼낼 여유조차 없었다. 수십 년 동안 기타를 비롯한 현악기를 잡아 온 나우리였지만, 이만큼 몰입이 잘 되는 연주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악기에 새겨진 300여 년의 세월, 그 길고 긴 이야기가 비단결처럼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군자 역시 그 소리에 흠뻑 취해 있었다.
울림통을 돌아 나오며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이 음색은 군자에게도 익숙한 것이었다.
300여 년의 시간도 악기장 나유선의 솜씨를 퇴색시킬 수는 없었다. 장인이 혼을 깎아 만든 향비파에는, 군자를 향한 감사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그 오랜 시간을 오롯이 견뎌 낼 수 있었다.
다아앙—.
현을 퉁길 때마다 오랜 친우이자 친밀했던 형님과 다시 만나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이 세상에 없겠지만, 나유선의 의지가 이 비파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얼굴을 볼때마다 항상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던.
언젠가 너만을 위한 휴대용 악기를 만들어 주겠노라고 철썩 같이 약속했던 유선이 형님.
그 때 형님께서 말했던 그 비파가 바로 이 녀석이렷다.
다앙, 당, 당, 다당—···.
거문고와 가야금을 칠 때엔 산조(散調)의 방식으로 연주를 했으나,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이제는 군자도 현대의 음악을 배웠으니까.
과거의 음색을 통해 구현해 내는 현대의 음율 또한 매력적이었다. 지금까지 내내 화통한 모습을 보였던 영의정마저, 군자의 비파 연주엔 한껏 촉촉해진 듯 감상에 빠진 표정이었다.
“으음, 너무 좋은데?”
연주가 끝나자 조용한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말은 없었지만, 모두의 표정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했다.
조금 더 듣고 싶다. 이런 아름다운 음악이라면 밤을 새서라도 들을 수 있다.
그 마음의 소리에 화답하듯, 이번엔 나우리가 클래식 기타를 잡았다. 코드가 아닌 멜로디 위주로 연주하는 클래식 기타는, 비파와도 자주 합주하는 악기였다.
소리를 메기고 받듯, 비파와 클래식 기타가 음을 주고 받았다. 이번에도 놀랍도록 좋았다. 지현수는 아까부터 입을 떡 벌린 채 계속해서 무언가를 받아적고 있었다. 연주가 이어질수록, 그의 머릿속에서도 영감이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것 같았다.
비파와 기타의 합주는 달이 떠오를 때까지 계속됐다. 꽤나 긴 시간이 흘렀지만 군자는 손톱만큼도 지루하지 않았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나우리와 군자는 계속해서 서로를 쳐다보며 호흡을 맞춰 나갔다. 루프 스테이션을 통한 합주도 재미있었지만, 다른 사람과 동시에 연주한다는 것은 또다른 짜릿함이었다.
음악의 즐거움은 대부분 경험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세상엔 황홀한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군자의 입가엔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저녁 무렵 시작된 합주는, 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르고 나서야 끝났다.
“허헛, 재미있구만.”
나우리의 말에 군자도 동의한다는 듯 폭풍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비파 연주, 너무 좋은데?”
“그러게. 좋은 음악 들려 줘서 고맙다 야.”
영의정은 군자에게 고맙다고 했지만, 사실 고맙다는 말은 군자가 해야 했다.
300년 동안이나 그 비파를 대대로 물려주며 잘 관리해 놓았기에, 오늘 나유선과 군자가 조우할 수 있었다.
그 만남을 생각하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군자, 너도 재미있었지?”
“네.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나우리는 큰 결심을 한 듯 숨을 고르며 군자를 바라보았다.
“이 비파, 당분간 네가 좀 맡아 줬으면 해.”
“···예?”
놀라운 제안에 군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악기는 자주 연주해 줘야 썩지 않거든.”
“그래도, 가보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그냥 보관만 한 거야. 오늘 소리 들어 보니까, 꼭 이 비파가 주인을 만난 것 같더라.”
“···.”
“맡아 줘, 부탁할게.”
나우리의 간곡한 부탁에, 군자는 다시 한번 비파의 표면을 매만져 보았다.
본래 나유선이 자신을 위해 만든 물건이라고 해도, 300년이 지난 지금 이 물건은 엄연히 나씨 가문의 보물이다.
금전적 가치는 말할 것도 없으며, 음악과 악기를 사랑하는 나우리에게도 꽤나 소중한 물건일 터.
이런 귀한 물건을 선뜻 내어 준 나우리에게, 군자는 가슴 깊이 감사하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냐, 내가 더 고맙지.”
비파 수여식이 끝나자, 이번엔 영의정이 입을 열었다.
“나도 너한테 줄 거 있는데, 뭐 별 건 아니고.”
영의정이 내민 것은 작은 종이였다. 접은 종이를 펼쳐 보니, 그 안에 전화번호 하나가 적혀 있었다.
“!”
“이게 이래뵈도 방송국 놈들은 전부 가지고 싶어하는 번호거든?”
“대감 마님의 연락처···.”
“방송은 7년 전에 때려쳤는데, 이렇게 마음에 드는 후배들 만난 것도 오랜만이어서.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너희가 부르면 방송 나가는 거 생각해 볼게~”
이번엔 군자의 친구들이 더 크게 놀랐다. 영의정이라는 이름이 연예계에서 갖는 파괴력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여, 영의정 선배님이 연락처를···.”
“아니, 이게 진짜 다 실화라고?”
“아하핫, 사실 이거 다 웹소설 아냐?”
“야, 뭔 그런 불길한 소리를 하냐.”
꿈 같은 하루는 쏜살같이 흘러갔다. 밤이 깊어지기 전, 영의정 – 나우리 내외는 군자와 친구들을 다시 숙소로 데려다 주었다.
“오늘 재미있었어. 다음에 또 놀러 와~”
“넵!”
“허헛, 결승전 잘 하고.”
“알겠슴다!”
실로 많은 것을 얻은 하루였다.
오른쪽 주머니엔 영의정 대감 마님이 주신 연락처가, 품에는 나우리 선생님이 주신 비파가 고이 들려 있었다.
“군자야, 결승전에서도 창작곡 미션 나오면 이 비파 무조건 쓰자. 이거 너무 너무 너무 좋은 소스란 말야.”
작곡가 현수는 벌써 새로운 곡을 만들 생각에 흥분한 것 같았다. 단순히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를 넘어, 다음 무대에서도 결정적인 무기가 되어 줄 비파였다.
“으어어, 아직도 믿겨지지가 않네.”
“진짜 내 인생 최고의 꿈 같은 하루였다.”
“다들 잘 자여~ 내일 보자구여.”
숙소로 돌아온 일곱 소년들은 베개를 머리에 대자 마자 잠이 들었다.
꿈 속에서, 군자는 모처럼 옛 친구를 만나 함께 악기를 연주하며 놀았다.
꿈 속의 나유선은 그의 기억과 똑같은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 * *
다음 날, 열 다섯 명의 생존자들은 다시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잠깐의 휴식이 끝나고, 이제는 결승전 경연을 준비하기 위해 모두가 집중력을 높여야 할 때.
모처럼 참가자들 앞에 선 MC 정해진은, 이제 참가자들 하나 하나에게 모두 정이 들었다는 듯 꽤나 애뜻한 표정이었다.
“여러분들, 재밌게 놀다 왔어요?”
“네-.”
“이제 앞으로 열흘 동안 다시 강행군인데, 충분한 재충전의 시간이 됐길 바랍니다.”
군자와 친구들의 대답은 우렁찼다. 비밀스런 당일치기 여행은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재충전이 되어 주었다.
“자, 이제는 최종 생방송 경연 방식과 룰에 대해 설명할 시간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제주도에서 있었던 돌발 미션의 결과를 먼저 발표해야겠죠?”
돌발 미션이라는 말에, 모든 참가자들의 시선이 군자 쪽으로 몰렸다.
개인방송 미션에서 소울리스좌와 기상천외 랩 배틀을 벌인 군자는, 다시 한번 주하성을 납작하게 눌러 버리며 압도적인 차이로 1위를 차지했다.
물론 군자는 의도한 바가 아니었으나, 다른 참가자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나라도 보겠다, 소울리스좌랑 그렇게 랩 배틀을 뜨는데.”
“우리는 중반부터 그냥 우리 꺼 포기하고 선비 형아네 꺼 구경했어여.”
“그냥 거의 공연이었다니까.”
“조회수, 시청자 수··· 이런 걸로는 군자 못 이기지.”
결과는 모두가 예측한 대로 나왔다.
그러나 개인방송 미션 1위의 베네핏이 무엇일지에 대해선, 아직 아무도 알지 못했다.
모두의 촉각이 곤두선 가운데, 정해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개인방송 미션 1위 유군자 참가자가 갖는 혜택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