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65)
#65
4000만 원은 어디로 갔는가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시즌 2, 대망의 순위 발표식만을 앞둔 시점.김석훈 PD는 이번 시즌 최고의 승리자 중 한 명이었다.
오늘도 샷을 세 개 추가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아먹으며, 김석훈 PD는 메인 모니터 너머로 출연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3, 2, 1, 0! 온라인 투표를 종료합니다-!”
프로그램 MC 정해진의 카운트다운과 함께 온라인 투표가 종료됐다. 90초의 광고가 방영되는 동안, 투표 결과는 빠르게 집계되어 김석훈 PD의 손에 들어왔다.
“흐음-.”
최상위권 참가자들은 꽤나 압도적인 차이로 안정권에 위치했으나, 문제는 5~10위 사이의 중위권 참가자들이었다.
총 투표자 수가 수백만 단위에 이르렀지만, 중위권 참가자들 사이의 득표 격차는 고작 천 단위였다.
“얘가 7등을 했어? 허···.”
결과표를 바라보며 김석훈 PD는 놀랍다는 듯 탄식을 내뱉었다. 군자를 비롯한 ‘일곱 선비들’의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성적표였다.
그러나 결과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ARS로 진행되는 대국민 투표가 전체 평가 비중의 90%를 차지하긴 하지만, 아직 10% 비중의 현장 방청객 투표가 남아 있었으니까.
오로지 자신의 ‘원픽’만을 뽑는 ARS 투표와 달리 ,현장 방청객 투표는 1위부터 7위까지 순위를 매겨 뽑을 수 있다.
그렇기에, 득표 격차가 적은 중위권 참가자들의 경우 아직 순위 변동의 가능성이 존재했다.
곧 현장 방청객 투표 역시 종료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온라인 투표와 방청객 투표 결과를 합산한 최종 결과가 발표될 것이고.
그러나 그 사이에 아직 영상 하나가 남았다.
현금으로 바뀐 코인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참가자들과 면담을 나누는 영상.
“흐흐, 이게 또 이렇게 되는구나?”
문득 군자와의 개인 면담을 떠올린 김석훈 PD였다.
서바이벌 경연 예능으로는 나름 짬 좀 먹었다는 김석훈 PD였으나, 지금까지 출연자가 자신에게 일을 준 적은 처음이었다.
다 같이 잘 되자고 하는 일이라기에 대체 뭔지 들어나 보려고 했는데.
“혹시, 경연장에 좌석을 더 놓을 수 있을지요.”
“음? 좌석을?”
상상도 하지 못한 외주였다. 라이브 스튜디오에 좌석을 더 놓자니. 좌석부터 시작하는 무대를 꾸밀 생각인 건가?
그러나 이유는 역시 군자 답게 순수한 것이었다.
“얼마 전, 우연히 팬을 만났습니다.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매번 경연장에 오고 싶어도, 한정된 자리 때문에 오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
“그 분들을 위한 좌석을 증축하고 싶습니다.”
뜻은 참으로 가상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미리 배치된 좌석 구조를 바꾸고, 새로운 좌석을 놓고, 추가 티켓팅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등 일이 생각보다 많았으니까.
무엇보다 이 공사를 2주 안에 빠르게 진행해야 된다는 것이 난관이었다.
“크흐음, 하자면 못 할 것도 없지만··· 아마 4천으로는 많이 추가하는 건 힘들 텐데.”
“얼마나 가능할까요?”
“글쎄에, 한 50석 정도?”
“!”
“좀 적지? 근데 지금도 엄청 빽빽하게 놓은 거라서, 그 이상 놓으려면 아예 대공사를···.”
“너, 너무 좋습니다!”
“응?”
그러나 군자의 태도는 김석훈 PD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어쨌거나, 우리를 보기 위해 쉰 분이나 더 오실 수 있다는 것 아닙니까?”
“그, 그렇지?”
“그러면 부탁 드리겠습니다!”
사상 초유의 외주 공사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군자가 원한 대로, 가능한 한 최고의 자리에 최고의 좌석을 배치했다.
2주 안에 좌석 증축 공사를 마무리 짓는 것이 쉽진 않았으나, 어쨌든 김석훈 PD도 돈을 받았으니 일은 제대로 해야 했다.
“진짜 희한한 놈이란 말이지.”
다른 참가자 같았다면 분명 내숭 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군자는 달랐다.
어떨 때는 세상 가장 지독한 컨셉충 같다가도, 또 어느 때는 이렇게 해맑고 순박한 놈이 없었다. 이 바닥에서 굴러먹은 지도 10여 년, 이젠 가짜 구별하는 데엔 도가 튼 김석훈 PD가 보기에도 그랬다.
곧 개인 면담 내용을 담은 VCR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 재생됐다.
[그건 제가 먹도록 하겠습니다.]“푸하핫-.”
뜬금없이 자낳괴가 된 군자의 모습엔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동안 군자에게서 볼 수 없는 탐욕스러운 모습이었으니까.
그러나 좌석 증축 이야기가 나오자, 몇몇 팬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어···?”
“···설마.”
생방송 방청권을 구하지 못하여 발만 동동 구르다가, 우연히 추가 좌석을 발견하고 티켓팅에 성공한 연지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연지를 비롯한 50명의 ‘추가 합격자’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들이 이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군자였다는 것을.
[ACACIA>를 들을 때도 눈시울을 붉혔을 뿐, 울어버리는 건 꾹꾹 참으려 노력한 연지였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또르르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어쩜 이렇게 마음씨가 고울 수 있을까.
이렇게 예쁘고 고귀하게 생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순수하게 기뻐하며 웃을 수 있을까.
온갖 주접, 온갖 호들갑은 다 떨고 싶은 연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군자를 바라보기도 바빴다.
“쟤 진짜 짱이긴 하다···.”
“저건 솔직히 컨셉이어도 칭찬할 만 하네.”
“50석에 4천을 태워? 금수저 아님?”
“야,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렇게 하기가 쉽냐.”
“좀 다시 보이네.”
주변 방청객들의 분위기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현장 방청객 투표 종료를 앞둔 시점, 군자의 개인 면담 영상은 투표 결정에 큰 변수가 됐다.
“안되겠다, 1등은 군자 줘야지.”
“나머진 어떻게 할 거야?”
“쟤네 팀 쫙 주려고. 어차피 주하성은 안 뽑을 건데.”
“오케이, 나도 그렇게 해야지.”
연지는 손등으로 눈물을 슥 닦으며 헤헤 웃었다. 눈물 범벅에 바보 같은 미소까지 섞이니, 표정은 말 그대로 뒤죽박죽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행복했으니까. 내 원픽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모두가 동시에 알게 된 순간이니까.
이런 때에 미소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건 찐 덕후가 아닌 거다.
그렇게 현장 방청객 투표까지 종료되고, 마침내 최종 순위 발표의 시간.
다시 한번 단상에 오른 MC 정해진이, 그 어떤 때보다 비장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보며 큐 카드를 넘겼다.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시즌 2, 이제 그 대장정의 결과를 발표할 시간입니다. 열다섯 명의 결승 진출자 중, 데뷔그룹 ‘7IN’으로 활동할 수 있는 멤버는 오로지 일곱 명 뿐. 온라인 투표와 현장 방청객 투표를 합산한 최종 순위를, 지금 공개하겠습니다.”
한껏 뜸을 들이던 정해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최종 순위 6위 참가자는··· 축하합니다, 지현수!”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악—!!”
지현수의 이름이 불리자 마자, 일곱 선비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에게로 뛰어가 안겼다.
“아, 아야야, 갈비! 갈비뼈어-!”
“현수, 지현수 임마아아—!!”
“크캬캭, 현수 형! 축하해요!”
“혁이 형, 나 뼈 부러져요오—···.”
죽는 소리를 내면서도 지현수는 웃었다. 데뷔라니, 6위라니! 애초에 40위권이었던 지현수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결과다.
2차 경연에서 군자를 만난 뒤 모든 것이 달라졌다. 군자가 아니었다면, 아마 3차 경연까지도 가지 못하고 탈락했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지현수 본인이 그걸 가장 잘 알았다.
갈비뼈가 부러질 것 같은 통증 속에서도 지현수는 군자를 세게 끌어 안았다.
“군자, 난 앞으로도 평생 너 추종한다!”
“하하, 그래 그래.”
군자 역시 눈물을 훔치며 그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모든 게 다 군자의 덕’이 지현수의 입버릇이었지만, 군자는 알고 있었다. 현수는 애초에 능력이 출중한 소년이었다. 단지 노엘이라는 음탕한 청년에 밀려, 그것을 펼쳐 보일 기회가 없었을 뿐.
그 덕분에 [예의없는 것들>, [Concept : 忠>이라는 훌륭한 자작곡을 얻었으니 오히려 군자가 고마워 해야 했다.
“이제 다음으로 5위를 발표하겠습니다.”
격정적인 축하가 끝나고, 다시 잦아든 분위기 속에서 정해진이 큐 카드를 들어올렸다.
한껏 호흡을 들이마신 정해진이, 쩌렁쩌렁한 발성으로 5위 참가자의 이름을 외쳤다.
“최종 5위는··· 차인혁 참가자! 축하드립니다-!”
“우와아아악, 혀어어어어어어엉—!!”
이번에도 선비들은 인혁에게로 달려들었다. 물론 지현수 때와는 조금 달랐다. 마치 커다란 고목에 날다람쥐가 날아들듯, 선비들은 인혁에게로 날아가 찰싹찰싹 달라붙었다.
“어어···.”
“형, 형! 데뷔했어요! 형 데뷔한 거라고!”
“어어어···.”
현실 인지에 시간이 좀 걸린다는 듯 인혁의 표정은 아직 굳어 있었다. 그러나 동료들의 입에서 나온 ‘데뷔’라는 단어에, 비로소 인혁의 얼굴이 풀리기 시작했다.
“···.”
“이 형 또 운다!”
그 동안 코끝이 빨개진 적은 많았지만 한번도 엉엉 운 적은 없는 인혁이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커다란 눈물방울을 뚝뚝 흘리며 사방에 고개를 넙죽넙죽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하핫, 혀어엉—!!”
처음으로 뿌애앵 터진 인혁을 잔뜩 놀려준 뒤, 선비들은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이어서 4위 참가자 발표가 이어졌다.
“4위는··· 하현재 참가자입니다!”
“앗싸아아아아—!!”
이번에도 일곱 선비들의 이름이 불리웠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당연하게도 팬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일곱 선비들 역시 행복의 눈물을 콸콸 흘리고 있었고.
그러나 상대 팀원들의 분위기는 과히 좋지 않았다.
이제 남은 자리는 고작 3위, 2위, 1위, 그리고 7위.
그러나 유군자는 데뷔가 확실해 보였다. 마지막 순위발표식에서도 최상위권, 생방송 무대에서도 모두를 압도할 만한 활약을 보인 데다가 마지막으로 ‘인성 점수’까지 먹었으니 이제는 7위권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오히려 기적이었다.
현시우 역시 프로그램이 시작된 뒤로 단 한 번도 순위권 바깥으로 밀려나간 적이 없었다. 유군자와 한 팀이 된 뒤로, 현시우의 팬덤은 더욱 공고해졌다. 최소한 3위는 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기유찬, 권태웅, 민강열, 주하성, 그리고 양정무···.
“하, 씨···.”
조용히 비속어를 뇌까리며 입술을 짓씹는 주하성이었다.
사실 1위는 포기한 지 오래다. 그러나 데뷔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코어 팬덤의 화력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 리가 없었다. 게다가 생방송 무대도, ‘일곱 선비들’에 비하면 맹탕이긴 했지만 실수 없이 깔끔하게 끝냈고.
이제는 슬슬 주하성의 이름이 나와야 했다. 6위, 5위, 4위 정도에는 나와 주어야 했다. 남은 자리가 줄어들수록, 주하성의 표정엔 초조함이 감돌았다.
···혹시, 다시 3위까지 올라간 건가?
그러나 MC 정해진이 주하성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다.
“3위는 기유찬 참가자입니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어째서지? 이건 말이 안 된다.
아무리 무너졌다고 해도, 6위 바깥으로 나가 떨어졌다고? 내가? 이 중요한 투표에서? 대체 왜?
완전한 패닉에 빠져 있는 주하성을 보며, 양정무는 웃었다.
“크크.”
한참 뒤에야 그 표정을 확인한 주하성이었다.
“양정무, 너···.”
“형, 머리가 멍~ 하죠?”
“···.”
“뭐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
“···너 지금 무슨···.”
“그러니까, 욕을 할 때엔 마이크가 켜져 있는지 잘 확인하고 했어야죠.”
“—!?”
순간, 주하성의 머릿속에 하나의 이미지가 스쳤다.
백스테이지에서 마이크를 잡고 꼬물거리던 양정무의 모습.
겁에 질려 오들오들 떨던 그 얼굴이, 지금은 세상 누구보다 후련하고 통쾌한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형, 하성이 형.”
“너, 너 이···.”
“나 원래 연기 지망이었어요.”
그렇게 말하며, 양정무가 주하성의 눈앞에 마이크를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