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69)
#69
아이돌이 거길 왜 나가
우연히 아육시 결승전을 본 뒤로, 군자의 경연 영상에 푹 빠져 버린 강윤성 교수였다.
“허, 이걸 어떻게 이렇게···.”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끈 것은 무대 의상이었다.
물론 아이돌 무대인 만큼 약간의 과장은 있었으나, 디테일을 뜯어 볼수록 놀라울 만큼 정교한 고증을 갖춘 조선군의 융복이었다.
머리에 쓴 갓의 형태부터 그럴싸했다. 붉은색으로 칠한 갓은 당상관에 준하는 높은 벼슬을 뜻한다. 양쪽 귀 위엔 보리이삭이나 호랑이 수염 대신 공작새 깃털을 꽂았으나, 아마도 소재를 구하기 쉽지 않아서였겠지. 공작새 깃털 또한 훌륭한 대안이다.
턱 아래로는 수정알을 가공하여 만든 듯한 장식을 달았는데, 이 역시 조선군 당상관 융복의 중요한 디테일 중 하나다. 다른 부분엔 화려한 악세사리를 착용했으나, 지켜야 할 부분에선 깔끔한 고증을 해 놓은 것이 흡족했다.
어디 그 뿐인가. 환도와 화살통을 착용할 수 없으니 그 물건들을 상징하는 악세사리를 착용하여 복식의 완성도를 추구했다. 허리에 감은 광다회의 두께, 색상 역시 강윤성 교수가 아는 조선군의 모습 그대로였다.
게다가, 그 옷을 입고 제식 곤봉술을 선보이는 모습은 또 어떠한가.
조선의 군용 무술 교본 [무예도보통지>에는 다양한 무기를 통한 군용 제식 무기술이 기재되어 있다. 조선의 곤봉인 곤방(棍榜) 또한 그 중 하나였고.
소년들의 움직임은 무예도보통지의 무기술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물론 안무로 재창작해야 했기에 약간의 가공은 거쳤으나, 동작의 근간은 강윤성 교수가 아는 조선의 곤방술 그 자체였다.
아니, 어쩌면 그가 아는 [무예도보통지>보다도 선명하며 생생했다.
과거의 책은 동작을 정지된 그림으로 설명해야 했기에, 그 중간 동작이 애매하여 알기 어려웠다. 그것을 재현함에 있어서도 학자들의 상상력이 많이 동원되어야 했다.
그러나 소년들의 움직임에는 어색하거나 애매한 부분이 없었다. 마치 무술 교본에 실린 그림의 중간 동작들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
“허어···.”
완벽한 고증의 조선군 군복을 입고, 멋진 제식 무기술을 선보이는 선비들의 모습은 학자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이 무대를 기획하고, 의상을 고안하고, 안무를 창작한 분을 만나뵙고 싶다.
분명 역사학자, 무예학자 등 다양한 석학들의 도움도 있었겠지만.
어쨌거나, 이런 무대를 기획했다는 것만으로도 학자로서 너무 감사한 일 아닌가.
방송가 인맥을 통해 어렵사리 소속사에 연락을 취했다. [Concept : 忠>의 무대 기획자를 만나 보기 위하여.
그러나 문의 결과는 더욱 놀라웠다.
“···이, 이 무대를 소년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말입니까?”
무대 기획자는 따로 없었다. 심지어 단 한 명의 감수자도 없었다. 오롯이 소년들의 상상력, 창작으로 만들어진 무대. 스태프들은 그저 그들의 상상력을 기술로 구현했을 뿐이라고 했다.
이쯤 되니 이제는 이 소년들이 궁금해졌다.
이 어린 나이에 대체 얼마나 깊은 학식을 쌓았기에, 또 얼마나 역사에 관심이 많기에 이토록 멋진 고증으로 학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건가.
마침 강윤성 교수 역시 방송계와 연이 있었다. 벌써 3년째 [TV쇼 명품진품>에 출연하며 다양한 골동품들을 감정해 왔으니까.
만약 이 소년들을 내 방송에 초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함께 조선의 무기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게다가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친구들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 소년들이 [명품진품>에 나온다면, 어린 친구들이 역사에 관심을 갖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결심을 굳힌 강윤성이 다시 한번 소속사에 전화를 걸었다. [명품진품>은 출연료도 그다지 넉넉하지 않은 교양 프로그램이었지만, 어찌 됐든 밑져야 본전이다.
안 되면 말지 뭐.
좀 안타깝긴 하겠지만, 딸이랑 같이 덕질이나 하면 그만이다.
“여보세요? 아 예, 아까 전화드렸던 [명품진품> 자문교수 강윤성입니다.”
* * *
그렇게, 강윤성 교수의 섭외 요청은 서은우 팀장에게까지 전달됐다.
다른 팀원들은 ‘별 희한한 프로그램에서 다 섭외를 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서은우 팀장은 달랐다.
“흐음-.”
모든 지상파, 케이블 채널에서 ‘7IN’ 멤버를 원하고 있었다. 선택권은 7IN과 솔라시스템의 차지였다. 조금 더 좋은 조건으로, 좋은 대우를 해 주는 메이저 프로그램을 골라 가면 된다.
게다가 곧 신곡 제작과 뮤직비디오 촬영 등 데뷔앨범 제작에 들어가야 하니, 다양한 방송에 출연할 시간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 [명품진품>을 선택한다는 것은 명백한 넌센스다.
그러나 서은우 팀장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일반적인 아이돌이라면 아마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7IN’은 달랐다. 그룹의 속성이 ‘선비’로 잡혀 가고 있다. 오히려 [명품진품>이 그룹의 성향과 꼭 맞는 프로그램일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예능에 출연해 보아야 엄청난 화제성을 만들지는 못할 거다. 기껏해야 시청률이 얼마 올라갔다는 기사 몇 개, 권태웅의 몸개그 짤 몇 개만 남겠지.
하지만 [명품진품>이라면 어떨까.
당장 서은우 팀장부터 예측이 안 됐다. 멤버들이 그 프로그램에 나가서 무슨 짓을 벌일지. 유군자가 또 무슨 참신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지.
우선은 멤버들에게 먼저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
다음 날, 솔라시스템 사무실로 출근한 멤버들을 다시 한번 불러모은 서은우 팀장이었다.
“오늘은 여러분이 어떤 방송에 나가고 싶은지, 의견 조사를 할 겁니다.”
설명을 마친 서은우 팀장이 화면에 방송 목록을 띄웠다. 이미 한 번 걸러 낸 목록이지만 여전히 스크롤 바는 길었다.
“어, 저는 저거 좋아요. [놀라운 일요일>!”
“···저, 저는 [시골밥상>··· 좋아합니다···.”
멤버들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가운데, 군자는 어리버리한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사실 예능 프로그램은 잘 몰랐다. 그 동안은 오디션 일정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종종 집에서 TV를 본 적은 있었지만, 군자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번 선택은 동료들에게 맡겨야겠구나.
그렇게 조용히 앉아 있던 도중, 새롭게 등장한 프로그램의 이름에 군자의 시선이 꽂혔다.
[[TV쇼 명품진품>]“며, 명품진품!”
프로그램의 이름을 보자 마자 군자가 테이블을 박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이, 깜짝아.”
“아하핫, 오줌 나올 뻔 했네.”
저것은 본 적이 있다. 분명 가보로 내려오던 물건을 가져와 전문가들에게 감정을 받는 방송이었지.
반가운 물건들이 속출하여 군자 역시 눈을 뗄 수 없었던 방송이다. 꼭 TV를 통해 고향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달까.
그런데 저 프로그램에 나갈 수 있다니. 그 진귀한 물건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니.
이건 못 참겠구나!
“저는 명품진품에 내보내 주십시오!”
* * *
그렇게, 군자의 [명품진품>행이 결정됐다.
애당초 많은 예산이 배정되지 않은 [명품진품>이었기에, 여러 멤버를 섭외할 만한 출연료는 없었다.
부족한 출연료로는 군자 한 명을 섭외하기도 쉽지 않았다. 결국 [명품진품>은 군자 혼자 나가는 것으로 합의가 됐다.
“군자, 잘 하고 와.”
“다음주엔 [놀라운 일요일> 같이 가서 노래 가사 맞추자.”
“아하핫, 도자기 깨먹으면 재미있겠다~”
“미친놈아, 그게 뭐가 재미있어. 생각만 해도 소름 돋는구만.”
동료들과 함께할 수 없음이 내심 아쉬운 군자였지만, 막상 녹화 당일 방송 스튜디오에 들어서니 아쉬움은 눈 녹듯 사라졌다.
“벼, 병풍이!”
출연자 자리의 뒷좌석에 아름다운 10첩 병풍이 펼쳐져 있었다.
아름다운 매란국죽이 펼쳐진 병풍은 물론이고, 곳곳엔 조선 양식의 정갈한 화병과 실내 장식들이 보였다. 녹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군자의 입은 귀에 걸렸다.
“아름답구나, 참으로 곱구나!”
호기심을 참지 못한 군자가 스튜디오 곳곳을 돌아다녔다. 저쪽엔 빼어난 상감청자가 놓여 있었다. 또 한켠엔 붓글씨를 쓸 수 있는 백지와 먹, 벼루, 붓이 있었는데 물건의 만듦새가 한 눈에 보아도 상등품이었다.
“오오오···.”
강윤성 교수는 그런 군자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요즘 세상에 저렇게 옛 물건과 역사에 관심이 많은 청년이 다 있구나.
저 청년이 그 멋진 무대를 기획하고 창작해 냈다는 말이지.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말을 걸고 싶은 강윤성 교수였지만 쉽지 않았다.
강윤성 교수는 원체 소심한 성격인 데다가, 괜히 말을 걸었다가 군자가 부담을 느낄까 걱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또다른 자문 원균상 교수는 달랐다.
“작가님, 쟤가 아이돌이라고요?”
“예. 요즘 가장 뜨는 친굽니다.”
“그래요?”
그는 스스럼 없이 군자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안녕하십니까, 교수 원균상이라고 합니다.”
원균상의 등장에, 군자는 그에게 예의 바르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허허, 도자기 좋아하시나 봅니다?”
도자기라는 말에 군자의 만면에 미소가 번졌다.
“예. 너무 너무 좋아합니다!”
“호오, 그래요?”
“예. 보기만 해도 마음이 평온해지지 않습니까.”
원균상은 그런 군자를 보며 피식 웃었다.
스튜디오에 놓인 도자기는 모두 가품인데, 그것을 보고 이토록 환장하는 군자가 조금 우스웠다.
아마 방송이 방송이니만큼, 모두 진품인 줄 알고 이토록 호들갑인 것이겠지.
“그러면 진품을 보셔야지.”
“예?”
“명품진품 스튜디오라고, 여기 있는 게 다 진품은 아니거든요.”
“···.”
“여기 장식된 것들은 다 가짜고요. 진품은 아마 이따가 나올 건데···.”
원균상은 거들먹거렸지만, 군자는 놀라거나 부끄럽다는 기색 없이 가볍게 웃었다.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
“멀리 갈 것도 없이, 유약의 상태나 청화(靑化)의 발색만 보아도 알 수 있지요.”
군자의 대답에 원균상은 당황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젊은 놈에게 쪽이나 줄 생각으로 말을 걸었는데, 대답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유창했으니까.
“하지만 이러한 모조품이 장식용 소품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은, 이 세대의 사람들이 옛 것을 충분히 사랑하고 소중히 한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
“물론 모조품을 비싼 가격에 팔거나, 반대로 진품을 모조품으로 매도하여 그 가치를 폄하하는 일이 있어서 안 되겠지만 말입니다.”
군자의 마지막 말에 원균상은 흠칫 놀랐지만, 군자는 낌새를 눈치 채지 못한 듯 싱긋 웃었다.
“교수님께서도 학자이시니, 저와 같은 생각이시겠지요.”
“그, 그거야 뭐···.”
“오늘 이렇게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많이 배워 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군자는 다시 한번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원균상의 표정은 결코 좋지 못했다.
‘뭐지? 이 자식, 순진한 척 하면서 먹이는 건가?’
곧 녹화가 시작할 시간이 되어 자리에 앉았지만 원균상의 분은 식지 않았다. 저 맹랑한 놈이, 학자 운운하며 내 권위를 깎아 내리려 하다니.
곧 원균상에겐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오늘은 저 어린 놈에게 부끄러움이 뭔지 가르쳐 주자. 뜬금없이 [명품진품>을 선택한 걸 후회하게 해 주마.
“자, 그럼 지금부터 녹화 시작하겠습니다-!”
원균상의 사악한 다짐과 함께, [TV쇼 명품진품>의 녹화가 시작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