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71)
#71
아니, 아이돌이라면서요
녹화가 진행될수록, 군자는 원균상 교수가 어떤 인간인지 깨달아 갔다.
처음엔 당연히 훌륭한 학자인 줄 알았다. 옛 것을 연구하는 분들 중 나쁜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허나 패도가 여성용 칼이라느니, 철화백자를 두고 청화백자라느니.
자꾸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기에 조심스레 바로잡아 주었다.
하도 연구를 많이 하다 보니, 기본적인 것을 헷갈리나 싶었다.
그러나 그런 함정 같은 질문이 반복되니 군자도 모를 수가 없었다.
이 자가 나를 시험하고 있구나.
어쩌면 첫 대화가 그에게 불쾌감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군자는 여전히 원균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불쾌감은 불쾌감이고, 지금은 옛 물건을 감별하는 자리 아니던가. 그런 개인적인 감정을 꺼내 들 만한 시기가 아니거늘.
학식과 인품이 언제나 비례하는 것은 아니구나. 참으로 그릇이 작은 사람이로다.
자신을 향한 적대감을 느낀 이후로, 군자 역시 원균상을 면밀히 보게 됐다. 자세히 보니 눈꼬리가 쭉 찢어지고 안광이 매서운 것이, 사기(邪氣)가 충만하여 관상이 좋지 않았다.
이름 또한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원균이라면 왜란(倭亂) 시절 국난을 만든 주적 아니던가. 하필 이름이 원균상이라니. 왜란 이후의 조선을 살아 온 자로서, 참으로 불길하고 섬짓한 이름이었다.
그런 원균상의 눈빛이, 그림을 보자마자 물욕으로 반짝 빛났다.
다른 이들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으나 군자는 보았다. 계속해서 그를 주목하고 있었으니까.
관상과 눈빛이 모든 것을 말해 주진 않지만, 의심의 단서가 되기엔 충분하다. 지금 원균상은 무언가 탐욕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 원균상의 입에서, ‘가품’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보관 상태는 훌륭한데··· 이건 가품일 확률이 높습니다.”
“!”
가품이라는 원균상 교수의 단언에, 의뢰인의 표정이 단숨에 어두워졌다.
“···가품이요?”
“예. 안타깝지만, 제 견해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물려받으신 물건이라고···.”
“과거라고 가품이 없으리라는 법은 없죠. 아니, 오히려 더 성행했습니다. 작품의 진위 여부를 과학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시대였으니까요.”
“그, 그런···.”
군자는 가만히 앉아서 둘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가품이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 건가?
하지만 그렇다면 순간 물욕으로 빛났던 원균상의 눈빛이 설명되지 않는다. 정말로 이 물건을 가품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런 탐욕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 없었겠지.
“의뢰해 주신 그림은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거장, 겸재 정선의 화풍을 모방한 모작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겸재 선생님 특유의 호방한 필치, 과감한 동시에 섬세한 터치 디테일까지는 따라하지 못했습니다.”
“아하···.”
“농묵과 담묵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겸재의 그림은 흑백화임에도 마치 청산이 살아 숨쉬는 듯한 역동감을 줍니다. 하지만 이 그림은 어떻습니까. 다소 단순하고 음울한 분위기가 풍기지요?”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물론, 보관 상태만큼은 아주 훌륭합니다. 제작 시기 또한 꽤나 오래된 것으로, 가품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값어치는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아아···.”
“예. 하지만 할아버님을 생각해서라도, 이 감정 결과는 방송에는 안 내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그런 것도 가능한가요?”
“허헛, 물론이죠. 의뢰인님이 동의하신다면 얼마든지요.”
“그러면 그게 낫겠네요.”
잠시 상황을 더 지켜보려 한 군자였으나, 점점 어두워져 가는 의뢰인의 표정을 보니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스튜디오의 모두가 원균상 교수의 말에 설득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군자는 달랐다. 그는 그 그림이 가진 진짜 가치를 알고 있었다.
“잠시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군자가 입을 열자, 다시 한번 모든 시선이 군자에게로 쏠렸다. 그러나 군자의 눈은 원균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에도, 군자가 입을 열자 마자 원균상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군자는 봐 줄 생각이 없었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다. 그러나 알면서도 그것을 숨기고 가치를 깎아 내리려 하는 것은 중죄 아닌가.
“저 그림은 가품이 아닙니다.”
“예?”
‘가품이 아닌 것 같습니다’ 도 아닌, ‘가품이 아닙니다’.
군자의 단언에 MC조차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동안 그림 감정은 전적으로 원균상 교수의 영역이었기에.
솔라시스템의 서은우 팀장과 이용중 실장 역시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저 변수 덩어리가 사고를 치는 것인가 싶었다.
“군자, 입! 입!”
이용중 실장은 연신 입에 검지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입단속을 주문했지만.
입에 1? 입에 일이라?
옳거니, 입으로 일을 하라는 것이구나!
이번에도 발생한 통신 오류는 군자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의뢰인께서 보여주신 그림은 겸재 선생님을 따라한 모작이 아닌, 현재(玄齋) 선생님이 그리신 산수화입니다.”
현재 심사정의 이름이 언급되자, 원균상은 물론 강윤성 교수 역시 흠칫 놀랐다.
“현재라면 겸재 정선, 공재 윤두서 선생님과 함께 삼재(三齋)로 손꼽히는 그 현재 심사정 화백을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예, 맞습니다.”
좌중의 이목을 사로잡은 군자가 거침없이 주장을 이어 나갔다.
“겸재 선생님의 밝고 힘찬 화풍과 달리, 현재의 그림에는 그윽한 외로움과 적막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현재 심사정은 명문 사대부 가문 출신이었음에도 선대의 역모 가담 때문에 평생 관직과는 인연이 없었으며, 도리어 가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런 비참하고 외로운 일생은 현재의 화풍에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
“그럼에도 현재는 일평생 붓을 놓지 않았으며, 그림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정신으로 조선 남종화풍을 탄생시켰습니다. 의뢰인 가져온 이 그림은, 현재가 남종화풍을 정립하기 직전 시기의 산수화입니다.”
말을 마친 뒤, 군자는 따뜻한 시선으로 의뢰인을 바라보았다. 의뢰인은 군자의 말에 큰 위로를 받은 듯,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다.
허나 감사를 표하고 싶은 것은 오히려 군자 쪽이었다.
현재의 그림을 다시 볼 수 있게 되다니.
사대부답게 그림에도 관심이 많은 유형원이었다. 그가 사들인 그림 중에서도, 군자의 마음을 꼭 사로잡았던 것이 현재 심사정의 작품들이었다.
아름다운 와중에 은근히 깃들어 있는 쓸쓸함과 고독함이, 마치 군자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듯 했다.
그러나 원균상도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은 듯 했다.
군자의 말을 듣는 내내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끄덕이던 원균상이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조사를 아주 잘 했네요. 겸재에 대해서는 많이들 알지만, 현재에 대해서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바가 없지요.”
“예.”
“그런데 이걸 현재의 그림이라고 보는 건 좀 무리가 있는데.”
“···.”
“조선 남종화에 대해서 좀 알고 있나요? 이 그림은 내가 아는 조선 남종화풍이랑은 조금 다른데.”
“말씀드렸다시피, 현재가 남종화풍을 정립하기 직전의 작품입니다.”
“거의 확신을 하시네요? 허헛, 거 참 희한하네.”
“동감입니다. 저 역시 교수님께서 이 그림의 가치를 몰라보실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낙관(落款)이 없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현재의 그림엔 현재(玄齋), 또는 묵선(墨禪)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낙관이 찍혀 있죠. 하지만 이 그림엔 아무 낙관도 서명도 없는데?”
“습작엔 낙관을 찍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화백의 사후에, 후대인들이 낙관을 찍는 일도 많고요.”
“크흐음···.”
“교수님께서 그걸 모르시진 않을 텐데요.”
팽팽한 언쟁에 스튜디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해져 버렸다.
그 동안 자문교수들 사이에서 말이 맞지 않는 경우는 있어도, 교수와 게스트 사이에 논쟁이 벌어진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모두가 당황한 순간이었다.
“자, 자아~ 너무 흥미진진한 그림이어서 그런가, 분위기가 조금 과열됐습니다. 우리 잠깐만, 10분만 쉬었다가 다시 촬영 재개할까요?”
베테랑 MC 손석우가 타이밍 좋게 나서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휴식 시간이 주어지자 마자, 서은우 팀장과 이용중 실장은 군자에게 달려갔다.
“팀장님, 이제 자제시켜야겠죠?”
“예. 그러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지금까지는 멋진 활약으로 분량을 낭낭하게 챙긴 군자였다. 그러나 교수와 언쟁을 해서 좋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군자는 그 새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군자 역시 쉬는 시간 동안 누군가를 반드시 만나야 했다.
군자에겐 원균상 교수의 간계를 깨뜨릴 만한 묘책이 있었다. 그러나 그 방법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그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했다.
“어? 어디 갔지?”
“···후우.”
“군자야! 유군자아-!”
서 팀장과 이 실장이 군자의 행방을 찾는 동안, 어느새 10분의 휴식 시간은 끝나 버렸고.
녹화가 재개될 즈음, 귀신같이 나타난 군자는 본인의 자리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아오, 저거 어디 갔다가 나타난 거야-!”
갑갑한 마음에, 이 실장이 불끈 쥔 두 주먹을 흔들어 댔으나, 이번에도 군자에겐 이 실장의 뜻이 다소 다르게 전달된 것 같았다.
“오오?”
저 동작은 나도 안다. 실장님께서 나에게 힘을 실어 주고 계시는구나!
부들부들 떠는 이 실장을 향해, 군자도 주먹을 치켜 올리며 조용히 속삭였다.
“나도 화이탱(火理撑)!”
“아오 진짜-!”
녹화는 가차없이 재개됐다. 어느새 모든 스태프와 출연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시 카메라가 돌기 시작했으니, 이제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한 녹화는 이어질 것이다.
“···.”
서은우 팀장은 침을 꿀꺽 삼키며 군자를 바라보았다.
[명품진품> 자문 교수와 말싸움을 하다니.황당한 돌발 행동이다. 다른 연예인 같았다면 녹화고 뭐고 카메라 앞에 뛰어들어 촬영을 중단시켰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상하게 군자를 믿고 싶어진 서은우 팀장이었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이번에도 예상치 못한 무언가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은우 팀장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원균상 교수를 더욱 신뢰했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군자는 아이돌 출연자지만, 원균상은 [명품진품>의 자문 교수였으니까.
원균상 역시 그런 분위기를 읽었다는 듯, 한층 여유로워진 표정으로 먼저 포문을 열었다.
“어때요, 잠깐 쉬고 나니까 머리가 좀 식혀지던가요?”
“···.”
“어린 나이에 맞지 않게 물건 보는 눈 있다는 거, 인정합니다. 이렇게 식견 있는 젊은 친구는 참 오랜만이어서 나도 기뻐요.”
“···.”
“하지만 선을 넘지는 말아야지.”
원균상 교수는 다그치듯 말했으나, 군자는 웃고 있었다.
“원균 교수님.”
“아, 아니, 잠깐. 내 이름은···.”
“다시 한번, 그림을 자세히 감정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
“그냥 싸구려 모작인지, 아니면 정말 현재(玄齋) 선생님의 그림인지. 한 번만 다시 봐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글쎄, 보나마나 뻔하다니까. 이 그림은 겸재의 화풍을 따라한···.”
“그러면, 지금 이 자리에서 이 그림을 태워 버려도 되겠습니까?”
“—!?”
“원균 교수님의 말씀이 맞다면, 정말로 이 그림이 무가치한 모작이라면. 지금 이 그림을 여기서 불태워 버려도 상관없겠지요.”
“···아, 아니, 무슨 그런···.”
예상치 못한 전개에 원균상의 이마에서 진땀이 흘렀다. 스튜디오의 다른 출연자들 역시 또 한번 술렁이기 시작했다.
“태, 태운다고? 여기서?”
“의뢰인은 동의한 거야?”
“아무 말 없는 거 보니까 그런 것 같은데?”
“허어···.”
그 긴박감 넘치는 상황을 메인 모니터로 지켜보던 한구헌 PD는 황당함에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다 좋은데··· 아이돌이라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