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77)
#77
오늘의 퀴즈
“신곡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만만한 군자의 발언에, 양갱을 먹던 양미현 본부장의 입이 멈췄다.
“[Concept : 忠>, [예의없는 것들> 말고 다른 거?”
“예, 그렇습니다.”
놀란 것은 양미현 본부장 뿐만이 아니었다. 서은우 팀장과 이용중 실장 역시 당황한 표정으로 군자를 돌아보았다. 그들 역시 신곡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으니까.
서은우 팀장이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이용중 실장에게 속삭였다.
“이 실장님, 혹시 지현수 씨가 신곡 썼다는 이야기 있었습니까?”
“아뇨, 없었습니다. 현수 작업은 매일 체크하는데, 적어도 어제까지는 신곡 얘기는 없었어요.”
“그래요?”
물론 군자가 헛소리 하는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없었던 신곡이 하루 만에 뚝딱 나오는 것도 넌센스다.
물론 영감을 받으면 두 시간 만에도 나오는 게 신곡이라지만, 작업할 시간 자체가 없었을 텐데···.
그러나 양미현 본부장은 군자를 시험해 보기로 한 것 같았다.
“그 신곡, 지금 들을 수 있을까?”
“네. 직접 불러 드리면 되겠는지요?”
“뭐? 푸하핫-.”
신곡을 라이브로 조지겠다는 군자의 황당한 제안에, 차가웠던 회의실 안에 웃음이 감돌았다.
“아니, 녹음된 음원이 있냐는 말이었어.”
“아···.”
“네 라이브도 좋은데, 그건 나중에 듣자.”
헛다리를 짚었다는 것을 깨달은 군자가 새빨개진 귀로 회의실을 걸어 나갔다.
잠시 후, 군자는 현수와 함께 돌아왔다. 그의 손엔 맥북과 작은 스피커 한 세트가 들려 있었다.
“가제는 [근본>, 부제는 ‘Origin’입니다.”
“오, 벌써 제목까지 붙였어?”
“네. 아직 스케치 단계지만, 곡의 분위기나 구성을 확인하시는 데엔 문제없습니다.”
말을 마친 지현수가 재생 버튼을 눌렀다. 수평 플레이 바가 움직이며, 신곡 음원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딩, 딩디잉-.
도입은 이미 ‘아육시’에서도 여러 번 들었던 동양풍의 가상 악기.
귀에 팍팍 꽂히는 캐치한 멜로디에 양미현 본부장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잘 하는 거 했구나.’
하지만 이런 분위기의 신곡이라면 [예의없는 것들>이 차라리 낫지 않나?
라고 생각한 찰나, 첫 루프가 끝나며 곡의 분위기가 극적으로 전환됐다.
둥, 두우웅, 두웅-.
동양풍 가상 악기의 탑라인 멜로디를 유지하며, 저음부를 현대적인 베이스로 가득 채웠다.
‘너무 깔쌈하게 잘 뽑았는데?’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다듬고 손보면 당장 2티어 이상 아이돌 그룹의 타이틀곡, 혹은 후속곡으로 가져다 쓴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7IN만의 특색이 없는 것은 또 아니다. 곡의 흐름을 주도하는 메인 악기만큼은 동양풍을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브릿지의 댄스 브레이크 부분엔 또 오리엔탈함을 팍팍 끼얹어 임팩트를 살렸다.
“그렇지, 이거지.”
노래를 들으며, 양미현 본부장은 자신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클리셰를 따르면서도 특색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만 균형을 잘못 잡아도 뻔한 곡이 되거나, 지나치게 컨셉에 매몰된 곡이 되어 버리고 마니까.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근본>은 제목처럼 중심을 잘 잡은 곡이었다.
아직 가사도, 퍼포먼스도 없는 상태였음에도 벌써 돈 냄새가 났다. 서은우 팀장도, 양미현 본부장도 그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
전문 프로듀서도 아닌, 아이돌 그룹의 프로듀서 멤버가 벌써 이 정도로 완숙한 스케치를 뽑아 내다니.
서바이벌 오디션 아육시가 프로듀서 지현수를 광속 레벨업시킨 것이 분명했다.
곡이 끝나자 양미현 본부장을 시작으로 회의실 안에 박수가 번져 나갔다.
“노래 좋은데?”
“가, 감사합니다!”
노력을 보상받은 것이 기쁘다는 듯, 현수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활짝 웃었다. 그러나 서은우 팀장은 알고 있었다, 양미현 본부장은 전형적인 물음표 살인마라는 것을. 곧 질문 폭격이 쏟아질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양미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잘 들었는데, 곡을 이렇게 짠 의도가 궁금하네.”
“···.”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곡의 기획의도를 설명하라. 간단하지만 매번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지현수의 대답에는 거침이 없었다.
“풍속도를 찢고, 그 속에서 나오는 일곱 명의 선비들. 그게 [근본>의 메인 컨셉이었습니다.”
“풍속도?”
“네. 풍속도 안은 선비의 세상, 즉 조선입니다. 일곱 선비들은 그 세상에서 현실로 튀어 나와,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그게 너희들이라는 거고?”
“네.”
“너희 새로운 세계관이랑 똑같네?”
“맞습니다.”
그제야 곡의 구성이 이해가 가는 양미현 본부장이었다.
동양풍이 강하게 가미된 첫 번째 루프는 아마 풍속도 속 세상을 묘사한 것이겠지.
하지만 그 풍속도에서 선비들이 튀어나오는 순간, 노래는 현대적인 악기들과 섞이며 변주된다. 곡의 배경 설정을 제대로 담은 구성이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뽑아 낸 스케치 음원, 거기에 똑 부러지는 기획 의도까지 들으니 서은우 팀장도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아니, 대체 이런 건 또 언제 만들어 둔 거지?
풍속도를 매개체로 삼자는 아이디어는 또 누가 낸 거고.
“그럼 풍속도 컨셉도 현수가 잡은 거야?”
“아뇨, 아이디어는 군자가 냈습니다.”
현수는 팬심 가득한 표정으로 군자를 바라보며 품 안에서 풍속도를 꺼냈다. 리온의 연습실에서 군자가 그렸던 그 그림이었다.
“이, 이건 어디서 샀니?”
“산 게 아닙니다. 군자가 그린 거예요.”
“이걸 군자가 그렸다고?”
“네.”
“허어···.”
군자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양미현 본부장이 회의실을 휘어잡고 있었다. 그러나 신곡이 공개된 이후 회의실 분위기는 뒤집혔다.
모두를 매료시킬 만한 멋진 신곡이 등장했으니, ‘신곡파’ 서은우 팀장이 힘을 얻은 거다.
“본부장님, 이젠 대안이 생겼다고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흠, 그러게?”
양미현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한 시도는 좋아하지 않는 양미현 본부장이었지만, 방금 들었던 신곡 [근본>은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양미현은 이런 상황에서도 고집을 피우는 스타일의 상사는 아니었다.
“나도 [근본> 마음에 들어. 그럼 [예의없는 것들>은 후속곡으로 내리고, [근본>을 타이틀로 디벨롭해 보자고.”
“넵.”
“대신 할일은 두 배, 세 배로 많아지는 거야. 곡 완성하고, 가사 쓰고, 편곡 하고, 믹싱 마스터링 하고, 안무팀 섭외하고, 뮤비 찍고··· 앞으로 많이 바빠질 텐데, 다들 괜찮다는 거지?”
“넵!”
“그래, 사서 고생하겠다는데 뭐.”
양미현 본부장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양갱을 와구 베어물었다.
“그럼 오늘 회의 끝! 점심 맛있게 먹고, 바로 일 시작하자.”
* * *
솔라시스템 전 직원이 7IN의 데뷔 앨범 준비에 매달려 있는 동안, 멤버들은 부지런히 방송국을 돌며 얼굴을 알렸다.
[명품진품>으로 시청률 30%를 찍는 미친 화제성을 보인 7IN이었다. 다른 멤버들 역시 군자만큼은 아니었지만, 출연 예능의 화제성 상승에 톡톡히 기여하며 파괴력을 선보이고 있었다.7IN을 원치 않는 방송사는 없었다. 콧대 높던 탑 티어 예능 프로그램이 모두 군자와 선비들을 모셔 가기 위해 아우성이었다. 선택권은 솔라시스템과 멤버들에게 있었다.
여느 날처럼 길게 늘어선 섭외 요청 목록을 살피던 군자였다.
무엇이 좋을까, 사실 태반이 모르는 프로그램들이구나. [명품진품>처럼 재미있고 유익한 것이라면 참 좋겠는데···.
한참 목록을 바라보던 군자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서은우 팀장님.”
“예, 유군자 씨.”
“[오늘의 퀴즈!>엔 페이버릿 형님들이 나오시는군요.”
“맞습니다.”
페이버릿이라. 7IN과 같은 시기에 복귀하는 아이돌 그룹이라 들었다.
루나틱의 리온 형님, 벨로체의 파엘 형님, 모두 훌륭한 인품을 가지고 계셨다.
조선에선 동문수학하는 사형 한 명 없이 외롭게 지냈지만, 사실 언제나 든든한 형님들이 있었으면 했다.
페이버릿 형님들도 분명 좋은 분들이겠지.
게다가 그 그룹의 ‘민강후’라는 분이, 아육시에 나왔던 민강열 형님의 친형이라고 하지 않았나.
군자와는 이미 간접적인 인연이 있는 사이다. 이 기회를 빌어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그것이 아우로서의 예의 아닌가.
* * *
결국 군자의 선택은 [오늘의 퀴즈>였다.
스튜디오로 향하는 차 안, 이용중 실장은 두 사람에게 신신당부했다.
“페이버릿 멤버들이랑은 웬만하면 마주치지 마. 알았지?”
“넵.”
“만약 마주치게 돼도 그냥 인사만 하고.”
“넵.”
넙죽넙죽 대답은 했지만, 초장부터 운이 없었다.
스튜디오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페이버릿의 메인 댄서이자 민강열의 친형인 민강후와 마주쳐 버렸으니까.
“아뿔싸···.”
분명 인사만 하라고 하셨었지.
재빨리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대기실로 들어가려 한 군자와 태웅이었지만, 민강후가 군자를 불러세웠다.
“야, 유군자.”
“예 형님.”
태웅은 그냥 가자며 군자에게 연신 손짓을 보냈으나 군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로 모른 체 했다면 모를까, 이렇게 이름까지 부르셨는데 무시하고 가는 것도 법도가 아니다.
이렇게 된 이상, 담소라도 나누며 제대로 인사를 드려야지.
그러나 민강후는 딱히 군자와 담소를 나눌 생각이 없어 보였다.
“누가 네 형님인데?”
“예?”
“내 동생도 날 그렇게 안 부르는데.”
“아···.”
“네가 여기 나올 줄은 몰랐네. 내 이름 보고 나온 거야? 나도 강열이처럼 밟을라고?”
“···.”
“야, 무섭다 무서워.”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민강후는 리온이나 파엘과는 달랐다. 그는 군자에게 노골적인 적개심을 보이고 있었다.
“동생이 안부 전해 달라더라.”
“···.”
군자는 딱히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문 채 멀뚱멀뚱 서 있었다. 같이 아육시를 하긴 했지만 민강열과는 대화 몇 번 안 나눴다. 근데 무슨 안부를 묻는다는 건지.
“넌 강열이한테 뭐 할 말 없냐?”
“아아, 그렇게까지 막역한 사이는 아니었어서···.”
“뭐?”
“죄송합니다. 뭔가 생각나면 꼭 말씀드리겠습니다.”
“!?”
군자는 다시 한번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대기실로 들어갔다. 태웅이 주먹을 휘두르며 통쾌하네 어쩌네 헛소리를 해 댔지만 군자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왕이면 페이버릿의 민강후 형님과도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민강후 형님은 소인배였구나.
퀴즈 쇼가 시작된 뒤에도 민강후는 연신 군자를 노려보았다 .그를 볼 때마다 아쉬운 마음은 더욱 커졌다.
‘넌 내가 좆되게 해 줄게.’
그의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어떻게 저렇게 소인배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인가.
소인배와는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힘들다. 무엇을 이야기하든 꼬아 듣는 습성 때문이다.
아마 이 문제풀이 시합도 기를 쓰고 이기려 하겠지.
그러나 군자는 적당히 봐 줄 생각이 없었다. 전심전력으로 부딪히는 것이야말로 대결의 예의 아니던가.
적당히 봐 주면 오히려 더욱 화를 낼 거다. 민강후는 소인배니까.
“자, 둘이서 함께하는 퀴즈 쇼! [오늘의 퀴즈> 첫 번째 문제! ‘그림으로 말해요!’”
첫 번째 퀴즈는 2인 1조로 그림을 맞추는 스피드 퀴즈다. 한 사람이 그림을 그리면 나머지 한 사람이 그 그림이 의미하는 바를 맞추는 간단한 게임.
첫 타자로 나선 ‘페이버릿’ 팀이 무려 여덟 문제를 맞추며 선방한 가운데, 이제 차례는 군자와 태웅에게로 넘어왔다.
“우와, 여덟 개···.”
“태웅아, 여덟 개면 많이 맞춘 것이더냐.”
“당연하지. 다섯 문제만 맞춰도 보통은 1등이야.”
“그럼 우리가 아홉 문제를 맞추면 되지.”
“되겠냐? 너 이 게임 해 본 적 없다며.”
“흐음-.”
“일단 꼴찌는 하지 말자. 알겠지?”
“그래, 노력해 보마.”
펜 대신 품 안에서 붓펜을 꺼내 들며, 군자는 그림 그릴 준비를 마쳤다.
시선은 태웅의 머리 위 LED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공간에 문제가 출제된다.
“자, 7IN 팀이 맞춰야 할 문제는···.”
[속담]“아아, 속다암··· 어려운 게 나와 버렸습니다!”
그러나 MC의 낙담한 표정과는 달리, 군자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첫 번째 문제가 떠오르자 마자, 군자의 세필 붓펜이 거침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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