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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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이 구역의 예친놈은 나야
유군자 – 권태웅 조의 문제 주제로 [속담]이 나온 순간, 민강후는 웃었다.
[아육시>를 정주행하며 내내 군자가 눈엣가시 같았던 민강후였다.친형이자 현역 아이돌인 민강후의 후광을 업은 민강열은,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무난하게 데뷔할 멤버로 손꼽혀 왔다.
그러나 유군자라는 초특급 변수가 나타났다.
그 놈 하나만으로도 신경이 쓰이는데, 기유찬, 권태웅, 차인혁 등 뜬금없는 참가자들까지 주렁주렁 달고 데뷔조를 위협했다.
결국 동생 강열의 최종 성적은 데뷔조 탈락.
만약 유군자가 오디션에 나오지 않았다면 결과는 달랐을 거다.
아마 이 예능에도 동생과 함께 출연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겠지.
민강후에게 유군자는 가족의 행복을 망쳐 놓은 장본인이었다. 밉지 않을 리가 없었다.
마침 컴백 시기가 맞물렸다기에 차트에서도 짓이겨 주려 했는데, 이렇게 예능에서 먼저 만나게 될 줄이야.
“자, 첫 번째 문제부터 만만찮은데요! 과연 군자 씨가 이 속담을 어떻게 표현할··· 어어—!?”
그러나 군자의 붓펜은 망설임 없이 선을 그려 나갔다.
슥, 스윽-.
호쾌한 선 몇 번 만에 순박한 눈매를 가진 시골 강아지가 완성됐다. 금방이라도 꼬리를 흔들며 다가와 머리통을 부비적거릴 것만 같은 귀여운 강아지였다.
“오오! 뭐죠!? 엄청 빠릅니다—!!”
모두가 감탄해 마지않는 사이, 군자의 붓펜은 어느새 배경을 만들고 있었다. 소박한 초가집 두어 채와 마당, 툇마루에 걸터앉은 학동(學童)들의 모습. 이건 누가 봐도 서당의 풍경이었다.
마지막으로 군자의 붓펜이 강아지에 동그라미를 휙 쳤다. 이 정도라면 아무리 독서량이 부족한 태웅이라도 맞출 수 있지 않겠는가.
“저, 정답!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딩동-.
“지화자-!”
태웅이 첫 번째 문제를 맞추자, 군자가 붓펜을 내려놓고 그를 끌어안으러 도도도 달려갔다. 문제를 맞춘 순간의 쾌감은 군자가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야! 아직 문제 많이 남았어!”
“아, 아뿔싸! 그렇구나!”
그러나 태웅의 일갈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붓펜을 잡았다.
[가재는 게 편이다]“아아, 이거 쉽지 않은데요! 과연 이걸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있을까요!”
가재와 게. 모두 복잡한 생김새를 가진 갑각류다. 그러나 군자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맛있는 것 그리기를 즐겨 왔던 군자였으니까.
거침없는 터치 몇 번에 가재 한 마리가 뚝딱. 또 순식간에 게 한마리가 뚝딱. 가재의 집게발이 게의 집게발과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언뜻 싱글벙글한 표정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정답! 정답! 가재는 게 편이다!”
딩동-.
“옳거니-!”
이번에도 태웅은 정답을 맞췄다. 사실 이 정도면 정답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입에 떠먹여 주는 수준이었다. 태웅 뿐만 아니라, 군자의 그림을 보는 모두가 수월하게 답을 맞출 수 있었으니까.
유일한 걱정이라면 태웅의 속담 숙지도였으나.
“정답!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딩동-.
“정다압-!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운다!”
딩동—.
“정다아압-!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아-!”
딩동——.
공부는 안 했지만 맹꽁이서당 만화책은 열심히 본 태웅이었다. 속담만큼은 확실한 조기교육으로 기본을 다져 놓았기에, 문제를 맞추는 데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정답!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딩동댕—.
“10점! 문제 끝났습니다아—!! 제한 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모든 문제를 맞춰 버린 유군자 – 권태웅 조! 민강후 – 한주영 조를 제치며 1위로 올라섭니다!”
제한시간 3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모든 문제를 해치운 군자와 태웅이 서로를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누었다.
“태웅아, 너 제법이구나!”
“크크, 내가 수능은 777등급 잭팟 터졌어도 속담은 1등급이라고!”
점수가 올라가는 것을 보며 군자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3위 안에 들면, 쌓은 점수만큼 기부를 할 수 있다 들었다. 기꺼이 어려운 이를 돕는 구휼(救恤)의 태도도 선비의 소양 아니던가.
즐겁게 문제도 맞추고, 좋은 일도 할 수 있다니. 군자에겐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민강후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1등을 놓친 것이 분하다는 듯, 아까부터 도끼눈을 하며 콧김을 내뿜는 것이 제법 살벌했다. 2등도 충분히 잘한 것인데, 왜 저렇게 사나운 눈초리를 하고 있을까.
안타까운 마음에 민강후를 달래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소인배라면 그럴 수도 있다. 나 같은 필부가 소인배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까. 그저 이해하고 위로하는 수밖엔 없겠지.
“저, 저 자식이 진짜···.”
물론, 그 동작은 민강후를 더욱 열받게 했다.
그림 퀴즈가 끝나고, 이제 프로그램은 본 퀴즈로 접어들었다. 시사, 경제, 세계, IT, 역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출제되는 문제를 하나씩 맞추는 방식이다.
재미있는 건, 오답을 말했을 시 조금씩 벌칙 분장을 해야 한다는 것. 정답을 맞추면 다시 분장을 지워 주지만, 연속으로 오답을 말하면 분장이 완성되어 버릴 수도 있다.
민강후 팀의 벌칙 분장은 분홍색 피부를 가진 캐릭터 ‘루삐’, 군자 팀의 벌칙은 ‘꼬마 기관차 톰슨’이었다.
“···젠장, 루삐는 절대 안 돼···.”
분장을 생각하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민강후였지만 군자와 태웅은 정반대였다.
“오오, 기관차가 방실방실 웃고 있다!”
“군자! 나 어릴 때 이거 엄청 갖고 놀았어!”
“분장은 처음인데 조금 설레는구나!”
“푸하핫, 이거 발려도 재밌겠는데!?”
그 압박감의 차이 때문일까.
본 퀴즈에서도 군자 팀은 활약을 이어 나갔지만 민강후 팀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딩동-.
“유군자 팀, 정답! 역사 문제에서 굉장한 강점을 보이네요!”
삐이이-.
“아아, 또 오답입니다! 민강후 – 한주영 조, 이제 얼굴 전체가 핑크색이 되고 말았어요!”
퀴즈가 끝나갈 무렵, 민강후의 얼굴은 어느새 물감으로 뒤덮여 있었다.
분홍 피부에 까만 자개단추 같은 눈, 멍청하게 생긴 앞니까지 그려 넣은 민강후의 얼굴은 보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 이제 퀴즈 종료입니다! 10분 간 휴식 후 마무리 촬영 하겠습니다!”
쉬는 시간이 주어지자 마자 군자는 복도를 향해 뛰쳐나갔다. 이 이상 민강후를 보고 있다간 정말로 파안대소를 터뜨려 버릴 것 같았으니까.
잠시, 조용한 곳에서 마음의 안정이라도 좀···.
“야 유군좌.”
“푸흡-.”
그러나, 안타깝게도 분홍 괴물은 득달 같이 군자를 따라와서 시비를 걸었다.
“웃기뇨?”
입술에 물감을 치덕치덕 바르는 바람에 발음까지 괴상해졌다. 하마터면 자제력을 잃고 웃음을 방출할 뻔 했으나, 군자는 애써 마음을 다잡고 어금니를 악물었다.
“으늡느드.”
“손배가 우스오?”
“으늡느드.”
아무리 웃기다고 해도 여기서 큰 웃음을 터뜨리는 것은 정말 정말 예의가 아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군자는 필사적으로 슬픈 것을 생각했다. 이곳은 뒤주다, 비좁고 어두운 뒤주. 숙부가 웃음지옥에 날 가두었다. 이 얼마나 슬픈···.
“뒤줄래?”
“!”
내가 뒤주 생각하는 건 또 어떻게 알고.
위기의 연속이었다. 겨우 입술을 짓씹으며 웃음을 삼켰으나, 이미 얼굴은 시뻘개진 상태였다. 그러나 민강후는 군자에게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
“너 때문에 내 동생이 떨어졌오.”
“···.”
“너만 없었으묜···.”
그 때까진 웃음을 참느라 죽을 지경이었으나, 그 말을 들으니 어쩐지 웃음이 달아나 버린 군자였다.
이게 민강후 형님이 나를 싫어하는 이유였구나. 어림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느낌이 달랐다.
그러나 민강후는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형님,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모?”
“강열이 형님은 저 때문에 탈락한 것이 아닙니다. 오디션 과정 동안, 충분한 매력을 보여 주시지 못했기에 탈락한 것이지요.”
“모, 모라고?”
“물론, 강열 형님에게는 후광이 있었습니다. 현역 아이돌의 동생이라는 후광. 그러나 형님, 단지 그 뒷배만으로 치열한 오디션을 뚫고 데뷔했다면 그것이야말로 부조리 아니겠습니까.”
“!”
분홍빛 루삐의 얼굴이 점점 굳어 갔으나 군자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필요한 때에 솔직한 간언을 하는 것이 참된 선비의 자세다. 상대가 왕일지라도 이를 악물고 돌직구를 날리던 것이 조선의 선비란 말이다.
“강후 형님 또한 그것을 바라시진 않았을 것입니다. 동생이 어엿한 아이돌로 성장하여, 형 앞에 당당하게 나타나기를 바랐을 겁니다.”
“···.”
“그래야 서로가 서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요.”
청산유수 같은 군자의 언변에 민강후는 그만 말문이 막혀 버렸다. 사실 맞는 말이었다. 유군자고 자시고, 동생 민강열이 야무지게 잘 했다면 끝났을 문제다.
그러나 민강후는 동생에게서 문제를 찾고 싶지 않았다. 대신 그를 탈락시킨 군자에게 미움의 화살을 돌리고 싶었던 거다.
“구래? 구렇게 생각해?”
그러나 민강후는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군자를 더욱 강하게 몰아붙이기로 했다. 이쯤에서 후배 답게 알아서 용서를 구했어야지. 옳은 소리랍시고 꼬장꼬장 말대답이나 하는 군자가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고 봐, 앞으로 재미있어질 고···.”
민강후의 분장한 눈매가 독기로 반짝 빛난 순간.
“어? 유군자 님이다!”
“안녕하세요, 군자 님!”
복도 건너편에서부터, 뜻밖의 하이톤 목소리가 들려 왔다.
주인공은 걸그룹 ‘포니타’ 멤버들이었다. 결승 1차 경연곡 [ACACIA>의 원곡자인 4년차 여자 아이돌. 마침 신인 걸그룹 멤버들과 인사 중이었던 듯, 신인 걸그룹 몇 명과 함께 다가왔다.
“군자 님, 결승전 때 너무 감사했어요!”
“저희 곡을 그렇게 멋지게 커버해 주셔서···.”
“저희 다 군자님 팬이에요!”
포니타 멤버들은 군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 같았다. 연신 고개를 숙이는 그들을 향해, 군자 역시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닙니다. 저 역시 훌륭한 곡을 노래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꺄하핫, 말투 진짜 웃겨.”
“인사하고 지내요!”
그들과 인사를 하던 도중, 군자는 문득 민강후의 눈치를 살폈다. 민강후는 아직도 뿌루퉁하게 심통이 나 있는 것 같았다. 어째 분장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이는 것 같기도 했지만.
비록 민강후가 소인배인 것 같긴 했으나 군자는 그에게 별다른 억하심정이 없었다. 사실은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선배이기도 했고.
흐음, 선배라.
그러고 보니 이거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생각해 보면 ‘페이버릿’은 군자보다 훨씬 연차 높은 아이돌인데, 군자만 인사를 받는다는 것은 완전히 하극상 아닌가.
군자의 몸 속에서 뻐렁치는 예의 유전자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민강후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도, 아마 이들이 인사를 해 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삐진 민강후를 보며 군자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걱정 마십시오, 강후 형님. 이 구역의 예의는 제가 바로 세우겠습니다.
“민강후 형님.”
“!?”
“그럼 다시 촬영장으로 들어가실까요?”
“—!?”
당황한 분홍 루삐의 입이 멍하게 벌어졌다. 후후, 이제 곧 쏟아지는 인사를 받으며 감동하실 것이야.
군자에게 인사를 마치고 돌아가려던 걸그룹 멤버들도, ‘민강후’라는 이름에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시선 끝에는 입을 벌린 채 눈을 동그랗게 뜬 분홍 괴물이 서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