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80)
#80
선비는 어디에?
이제 막 연예계에 발을 담근 군자였지만, 그에게는 벌써 든든한 아군이 꽤나 많았다.
아육시 트레이너 군단부터 시작하여 [예의없는 것들>로 인연을 맺은 리온, [Suit Up> 커버로 알게 된 파엘, 제주도에서 우연히 만난 영의정 – 나우리 부부까지.
BET의 우경훈 이사 역시 그 중 하나였다.
리온과의 경매에서 밀려 [예의없는 것들>을 놓친 우경훈이었으나 그 뒤로도 군자를 향한 욕심은 버린 적이 없었다.
그가 연예계에 몸 담아 온지도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그러나 유군자 같은 캐릭터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시청자는 물론 스스로마저 세뇌시켜 버린 듯한 미친 기믹, 그 컨셉질에 개연성을 부여해 버리는 SSS급 외모, 거기에 실력과 화제성까지.
[명품진품> 본방을 보면서는 박수가 절로 나왔다. 페이버릿의 민강후를 루삐로 만들어 버렸을 때엔 딸과 함께 박장대소를 했다.“민아야, 아빠가 쟤랑도 아는 사이라니깐.”
“그럼 아빠네 회사루 데려와~”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겠니.”
마침 군자에게는 소속사가 없었다. 원 소속사 없이 데뷔한 만큼, 7IN의 계약기간인 3년이 끝나고 나면 개별 소속사와 계약을 맺을 수 있다.
아마 그땐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유수의 기획사들도 군자를 모셔 가기 위해 총출동할 터.
우경훈 이사의 목표도 유군자 영입이었다. [예의없는 것들>은 리온에게 빼앗겼지만, 유군자만큼은 반드시 거두고 싶었다.
그러려면 지금부터라도 영업을 해야 한다.
군자가 무언가를 필요로 할 때, 가장 가까운 곳에 BET와 우경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연락처가 없어···.”
군자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종종 안부 문자라도 보내고, 분재나 화병이라도 하나씩 보내고 싶었건만.
게다가 SNS도 하지 않는 군자였으니, 군자에게 연락할 방법은 전무했다.
궁여지책으로, 7IN의 소통채널인 제이라이브에 접속하여 채팅이라도 쳐 보려 했으나.
[유군자씨 안녕하세요 저 우경훈 이사입ㅂ] [군자아양아아야ㅑㅑㅣㅏㅑㅏㅏㅏ] [♥︎♥︎♥︎♥︎♥︎♥︎♥︎] [오늘도넘에뿌다ㅏㅏㅏ] [ㅠㅠㅠㅠㅠㅠㅠㅠ] [궁댕이들 착석완료] [오빠저야자튀고왓어요ㅠㅠㅠㅠ] [ㅜㅠㅠ저는야근튀고왓움퓨ㅠㅠㅠㅠ] [남편이 저녁밥 차리라는거 쌩까구 옴ㅎ] [ㅠㅠㅠㅠㅠ미모무슨일이야ㅠㅠㅠ]분당 타수 120타의 독수리 타법으로는 도저히 채팅창의 미친 텐션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방송국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를 바라야 하나···.”
그러나 희망은 뜻밖의 곳에서 나타났다. 우연히 BET 소속 보이그룹 ‘벨로체’의 파엘이 군자와 개인톡을 주고받는 것을 목격한 것.
[유군자 : 형님 오늘도 가내 평안하신지요] [라파엘 : ㅇㅇ] [유군자 : 하하] [유군자 : 오늘도 형님은 참으로 식구하십니다] [라파엘 : 식구? 그건 뭐냐] [유군자 : 모르셨습니까? 태도가 차갑고 냉담한 것을 식구하다고 합니다] [유군자 : 현재가 가르쳐 줬습니다] [라파엘 : 시크겠지 바보얌] [유군자 : 아하] [유군자 : 역시 혐님] [라파엘 : 혐님?] [라파엘 : 너이새끼] [라파엘 : 이거 오타 아니지 ㅋㅋㅋㅋ] [유군자 :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뭐야. 얘 유군자야?”
“네 이사님. 왜요?”
“너 얘 연락처 어떻게 알아?”
“오리온이 가르쳐 줬는데요.”
“언제 이렇게 친해진 거야?”
“에이, 그렇게까지 친하진 않아요. 그냥 얘가 엉겨붙는 건데.”
“나, 나도 좀 초대해 주라.”
“예? 톡방에 초대해 달라고요? 이사님을?”
“안 돼?”
“싫어요!”
파엘과 우경훈이 실랑이하는 와중에도 군자의 메시지는 이어졌다.
[유군자 : 근데 형님] [유군자 : 저 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뭐야 뭐야? 뭘 도와달라는 건데?”
“아이, 왜 남의 메시지를 보고 그러세요.”
“빨리 물어봐! 뭐라는데! 뭐가 필요하다는데!”
“알았어요, 잠깐만요. 팔 좀 놔 주세요.”
[라파엘 : 뭔데 ㅋㅋㅋ얘기해봐]파엘의 질문에 군자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우경훈은 때로는 화를 내고, 때로는 코웃음을 치며 그 대화를 읽어 내려갔다.
“하, 컬리 이 새끼들 얄팍한 거 봐라.”
“이사님, 제 프라이버시 좀 지켜 주세요···.”
“됐고, 도와줄 거지?”
“당연하죠, 군자 부탁인데.”
“오케이, 같이 돕자!”
“예? 아니, 뭐 감사하긴 한데···.”
그렇게, 군자를 돕기 위해 대한민국 3대 기획사 BET가 움직였다.
1군 아이돌의 핵심 멤버, 거기에 BET의 이사까지 나서니 안무 팀과 뮤직비디오 제작팀은 순식간에 섭외됐다.
안무 팀 ‘퀘이사’와 뮤비 제작팀 ‘비주얼라이즈’, 모두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탑클래스의 실력자들이었다.
컬리뮤직의 계략으로 계획이 틀어진 솔라시스템이었으나, 이렇게 되며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이용중 실장은 한 시름 놓았다는 듯 편안해진 모습이었다.
“휴, 다행이네요 팀장님.”
“그러게 말입니다.”
“역시 이 바닥에선 인맥도 능력인가 봐요.”
그러나 서은우 팀장의 표정은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우경훈 이사가 어째서 이토록 적극적으로 군자를 돕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으니까.
“아마 BET와 우 이사님에게도 속셈이 있을 겁니다.”
“속셈이요?”
“유군자씨의 계약은 3년 뒤면 끝납니다. 그 뒤엔 선택해야겠죠.”
솔라시스템과 재계약할지, 아니면 타 매니지먼트와 새로운 계약을 맺을지.
BET는 아마 군자를 영입하기 위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일 테다. 반드시 군자를 지켜 내고 싶은 솔라시스템으로서는 당연히 경계해야 할 움직임이다.
게다가 군자는 은혜는 반드시 갚는 인간 아니던가.
이렇게 호의가 쌓여 간다면, 언젠가 군자의 마음이 BET 쪽으로 기울지도 모를 일이다.
“티, 팀장님, 우리 군자 지킬 수 있겠죠?”
“지킬 겁니다. 아니, 지켜야 합니다.”
이번엔 군자 덕에 위기를 넘겼지만, 이제는 절대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서은우 팀장이었다.
* * *
우경훈 이사와 파엘의 도움으로, 7IN은 빠르게 새로운 안무팀 ‘퀘이사’를 만날 수 있었다.
“미친, 진짜 퀘이사잖아.”
“나 진짜 팬이었는데.”
세계적인 안무 팀을 만난 7IN 멤버들은 꽤나 긴장한 듯 보였다. 그러나 긴장한 것은 ‘퀘이사’도 마찬가지였다.
“헐, 진짜 유군자 님···.”
“실물이 더 잘생기셨다···.”
솔라시스템 대회의실에서, 두 팀은 수줍은 첫 인사를 나눴다. 손끝을 살포시 잡는 악수를 나눈 뒤, 자리에 앉은 다음에도 눈만 마주치면 계속 헤헤 웃으며 얼굴을 붉혔다.
“뭐지? 7대 7 미팅 하나?”
뜻밖의 단체미팅 분위기에 이용중 실장이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괜한 걱정이었다.
신곡 [근본 (Origin)>을 재생하자 마자, ‘퀘이사’ 멤버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음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잘 들었습니다.”
“음악이 너무 좋은데요.”
“일단, 곡 컨셉부터 듣고 싶습니다. 그룹 세계관 같은 것도 있다면 같이요.”
“아, 넵. 우선 곡 컨셉은···.”
프로듀서 지현수가 주도적으로 곡 컨셉과 그룹 세계관을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퀘이사 멤버들은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퍼포먼스 구성은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음악 자체도 난해한 편이 아니라 시안도 빨리 나올 것 같고요. 하지만···.”
언제나 ‘하지만’ 다음이 가장 중요한 법. 군자를 비롯한 멤버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평범한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범한 결과물이요?”
“네. 무난하고 그럭저럭 볼 만은 하지만 임팩트는 없는.”
“아아···.”
“그냥 ‘선비’라고 하면 너무 포괄적이어서요.”
퀘이사 리더 하정의 솔직한 돌직구에, 지현수가 사색이 되어 반문했다.
“그,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편곡을 조금 더 해서 더 임팩트를 주면···.”
“아니요, 아니에요. 지금 편곡이 느끼하지도 않고 딱 좋은 것 같아요. 근데 퍼포먼스를 더 살리기 위해선, 지금 컨셉에 딱 한 숟갈만 디테일을 추가하는 게 좋겠습니다.”
하정의 말이 끝나자, 이번엔 인혁이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 것 같습니다.”
“그래요?”
“풍속도에서 튀어나온 선비라는 컨셉은 있지만 그게 대체 어떤 선비들인지, 그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는다. 그런 말씀이실까요.”
“오, 맞습니다. 딱 그런 느낌이에요.”
하정이 손뼉을 짝 치며 인혁의 말에 공감했다. 마침 음악이 두 번째로 반복재생되기 시작했다.
“선비는 선비인데, 어떤 선비들인가···.”
“이런 건 음악에서 힌트 얻는 게 최곤데.”
“형, 이 노래 처음 딱 듣고 어떤 느낌이었어요?”
“섹시하다?”
“그쵸? 노래가 좀 섹시해. 오리엔탈풍 악기를 넣었는데도 섹시하네요.”
“맞아. [도원경> 같은 노래가 그렇잖아.”
“와, 나 그거 진짜 좋아하는데.”
빠르게 의견을 교환한 퀘이사 멤버들이 7IN에게 제안했다.
“그럼 이런 건 어떠세요? ‘잘 노는 섹시한 선비’.”
“!”
선비는 선비인데, 좀 잘 놀아. 좀··· 야시꾸리해.”
“오오?”
“마냥 글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술도 좀 마시고. 가야금도 좀 뜯고. 누각 난간에 걸터앉아서 곰방대도 좀 피우고.”
“좋은데요?”
“하긴, 그냥 글공부만 하는 선비면 그림에서 튀어나올 이유가 없죠. 조선에서 공부만 하면 되니까.”
“뭔가 놀고 싶어서 튀어나오신 거지.”
“맞지, 그게 더 말이 되네.”
7IN 멤버들도 그 컨셉이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딱 한 사람, 군자만 빼고.
잘 노는 야시시한 선비라니. 단언컨대 군자는 그런 선비가 아니었다. 곰방대를 입에 물어 본 적도 없었으며, 기루는 놀러 간 것이 아니라 노래와 악기를 배우러 간 것 뿐이었다.
게다가 지금 당장은 야시시한 컨셉을 할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군자님은 이 아이디어 어때요?”
“쓰읍, 저는 좀···.”
“에? 별로세요?”
“예. 야시시한 선비라니, 모순 아닙니까···.”
군자가 조심스레 의견을 개진했으나, 이미 회의실 안의 분위기를 바꾸긴 힘들어 보였다.
“에이, 원래 그런 게 재미있는 거예요!”
“맞아요. 드라마 같은 거 봐도 얌전하고 조용한 캐릭터가 화 낼 때 섹시하잖아요.”
“그, 그렇습니까?”
“그리고 3차 때 [Suit Up> 경연 하셨잖아요. 그것도 섹시 컨셉인데?”
“아, 그것은···.”
“에이, 부끄러워서 그러시는구나?”
“하긴 섹시 컨셉은 노출이 좀 있어야지.“
“데뷔앨범부터 너무 파격적인 거 아니에요?”
‘좋은 건 같이 봐야죠. [Suit Up> 때도 장난 아니시던데, 흐흐.”
“군자 님, 태웅 님, 인혁 님. 준비 돼 있나요?”
“당근이죠!”
태웅이 스스럼없이 티셔츠를 올리며 탄탄한 복근을 보였다. 인혁 역시 부끄럽다는 듯 살포시 셔츠를 올렸다. 수줍은 태도와 그렇지 않은 몸이 참으로 상반된 모습이었다.
“우왕···.”
“장난 아니시네.”
태웅과 인혁 덕분에, 갑자기 분위기는 복근공개 쇼가 되고 말았다. 올라가는 열기 속에, 군자는 당황을 감추지 못하며 혼비백산했다.
“군자 님!”
“아, 저는 좀···.”
“에이, 남자끼린데 어때요!”
얼굴을 붉히며 손사래를 쳐 보았지만, 이미 두 명이 동참한 이상 군자 역시 복근공개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유 군 자-.”
“유 군 자-.”
“으으···.”
이걸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이젠 정말 피할 수 없겠구나!
울상이 된 군자가 옷자락을 조심스레 들춰 보였다.
스윽-.
“···어?”
그리고 그 곳엔, 그들의 기억과는 달리 한껏 귀엽고 온순해진 배가 있었다.
“···군자 님?”
“이게 어떻게 된···.”
“아하핫, 귀여워~”
눈물 맺힌 눈으로, 군자가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디션 끝나고···.”
“?”
“···초콜렛 다시 시작했단 말입니다···.”
“!?”
동시에 군자의 눈앞에 상태창이 퍼뜩 떠올랐다.
[특별 임무 ‘두 개의 선비 사(士)를 되찾아라’ 발동.] [지옥선생 이아롱을 다시 찾아가세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