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84)
#84
쇼케이스에서 왜 유두가 나오는데
음력 6월 15일, 유두(流頭)는 신라 시대 때부터 내려오던 우리나라의 전통 명절이다.
시기상 한여름에 해당하는 유두절, 조상들은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씻으며 액운을 날려버리고 풍년을 빌었다.
어린 군자 역시 이 날을 참 좋아했다. 평시엔 방에 틀어박혀 선비의 소양만을 가꾸어야 했지만, 명절만큼은 숙부도 그를 크게 건드리지 않았으니까.
동네 아이들과 함께 흐르는 물에 멱을 감고, 머슴들의 씨름 대결을 구경하며 맛있는 국수도 먹었다. 삼복 더위도 유두절의 즐거움을 이길 수는 없었다.
“우와! 유두다!”
“하하, 도련님. 그렇게 좋으십니까?”
“네! 저는 유두가 참 좋습니다!”
그 어린 시절의 즐거운 기억에 음란한 동음이의어를 덧씌우다니.
유두가 좋다며 꺄르르 웃던 어린 시절마저 오염되는 기분이었다.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서 팀장을 째려보며 군자가 말을 이었다.
“서 팀장님께서는 다른 유두를 상상하신 모양이지만.”
“아, 아니, 유두라고 하면 다들 그렇게···.”
진땀을 흘리며 주변을 둘러본 서은우 팀장이었으나 아무도 그를 돕지 않았다. 모두 서 팀장이 당황하는 모습을 꽤나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팀장님이 저런 표정을 다 하시네.’
‘사실 나도 찌찌파티 생각했는데.’
‘근데 그 유두 말고 또 무슨 유두가 있는데?’
이번엔 현재가 군자를 도와 입을 열었다.
“어, 이거 말하는 것 같은데여. 음력 6월 15일 유두절.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맛있는 국수와 떡을 해 먹으며 더위를 이겨 내는 전통 명절이다!”
군자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예. 그 유두절에 벌어지는 축제가 바로 유두잔치입니다. 찌찌파티는 대관절 무슨 잔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유두잔치와는 다를 겁니다.”
서은우 팀장은 민망함에 헛기침을 하면서도 호기심이 일었다.
“유두잔치라···.”
사실 아이돌 쇼케이스라면 어차피 뻔하다. 무대 인사 하고, 신곡 공연 하고, 뮤비 시연하고, 잠깐 질의응답, 사이사이 주어지는 포토 타임 정도.
이렇게 흔해 빠진 쇼케이스를 하는 게 맞는 걸까. 그러기엔 7IN은 너무나 특별한 그룹이었다.
시작부터 [명품진품>에 출연하며 홍보의 방향성을 다르게 잡았고, 그룹의 세계관 역시 조선의 선비에 베이스를 두고 있었으니까.
그에 비해 유두잔치는 이름부터 신박했다. 대체 유두잔치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 유두잔치를 어떻게 쇼케이스에 접목시킬 생각인지,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요?”
“네 팀장님.”
군자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유두절엔 동쪽에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 풍습이 있습니다. 이걸 쇼케이스에 그대로 가져오는 겁니다. 쇼케이스 자리에서 즉석으로 추첨을 진행하여, 선정된 팬분들만 직접 머리를 감겨 드리는 행사를 진행하면 어떨지요.”
“흐음-.”
“물론 직접 말려 드리는 것까지 포함입니다.”
실로 파격적인 아이디어다. 그러나 하자면 못 할 것도 없었다. 최애 아이돌이 직접 머리를 감겨 주고 드라이까지 해 준다면 아마 싫어할 팬은 없겠지.
게다가 개연성 없는 족욕식 같은 것도 아니다. 우리 조상님들이 정말로 이 날을 그렇게 보내셨다고 하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추첨을 통해 선정받은 분들만 혜택을 누리게 될 테지요.”
“음, 그렇죠.”
“그 분들을 위한 ‘유두면’도 함께 만드는 것이 어떨지요.”
“유두면?”
유두면이란 유두절에 해 먹는 국수를 말한다. 닭뼈로 시원하게 낸 육수에 수타로 만든 밀가루 면을 넣고, 숭덩숭덩 찢은 닭고기와 함께 팔팔 삶아 먹는 음식이다.
“단, 뜨거운 국수는 팬분들께서 더워 하실 수 있으니 이를 시원한 초계국수로 바꾸어 대접하는 겁니다. 오이와 양파, 당근을 넣고 새큰달큰한 식초와 겨자, 물엿으로 맛을 낸 초계국수라면 아마 한여름 무더위도 잠깐은 잊으실 수 있겠지요.”
“허, 그거 맛있겠네요.”
군자의 생생한 설명에, 회의실의 모두가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머리 감겨주기에 초계국수라니. 꽤나 기발하면서도 적절한 아이디어였다.
무엇보다 잊혀진 한국의 명절을 소개한다는 명분이 마음에 들었다. 멤버들도 군자의 아이디어가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오, 전 좋은 것 같습니다!”
“또 선비 형아가 무슨 이상한 소리 하나 했는데.”
“전통 명절을 소개하는 컨셉이라면, 우리 그룹 색이랑도 잘 맞고 좋은 것 같아요.”
서은우 팀장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호의적인 반응에 신이 난 군자의 말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또 이 유두잔치에는 액운을 쫓고 풍년의 기운을 가져다 주는 신령님이 오신답니다.”
“신령이요?”
“네. 우리 7IN 멤버들이 이 신령이 되어, 팬 분들의 행운이 되어 드리는 겁니다.”
“그 컨셉 좋은데요. 혹시 어떤 신령인지···.”
“유두 할아버지입니다.”
“유, 유두 할아버지요?”
잘 나가다가 또 유두?
당황스런 마음에 검색을 해 보았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군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유두절엔 정말로 유두 할아버지가 오신단다.
“그러니까 군자 씨의 말은, 멤버들이 모두 유두 할아버지가 되겠다는···.”
“아뇨, 그건 안 될 말씀입니다.”
“휴우-.”
“우리는 아직 할아버지가 아니니, 유두 총각이 되어야지요.”
“···아니, 할아버지가 문제가 아니잖습니까아···.”
지금 운전대를 잡고 있는 이용중 실장도 그 회의실에 있었다.
당황하는 서은우 팀장의 모습을 보는 것이 몇 년 만인지. 이 아이들 옆에 있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었다.
황당한 유두절 회의를 떠올리며 운전을 하다 보니, 어느새 밴은 쇼케이스장에 도착해 있었다.
“얘들아, 다 왔다. 국수 삶으러 가야지!”
* * *
‘페이버릿’ 컴백 사흘 째, 컬리뮤직 사옥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티저 영상 조회수에서 밀리면서부터 불길한 분위기는 시작됐다.
뮤직비디오 공개에 앞서 선공개한 티저 영상의 조회수 차이는 약 2.4배.
페이버릿도 결코 작은 조회수가 아니었으나, 7IN의 화력은 그들이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페이버릿은 대중성도 함께 가져가는 팀이었기에, 조회수나 음원 순위 같은 지표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음원 발매 후에는 무난하게 차트 1위를 차지하며 걱정을 해소하나 싶었다.
전쟁터 같은 ‘라임’ 차트에서도 60위권으로 진입하며 하루 만에 1위에 안착했다. 기대 이상의 준수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낙관적인 분위기는 채 사흘을 가지 못했다. 7IN의 음원이 발매되자 마자, 페이버릿의 모든 기록이 박살나기 시작했으니까.
타이틀곡은 17위로 라임 차트 진입, 미니앨범의 다른 수록곡들도 모두 50위 안쪽에 안착하며 페이버릿을 상회하는 성적을 과시했다.
실시간 차트를 집계하는 ‘알라딘’, ‘핵스뮤직’ 같은 플랫폼에선 아예 1위를 차지하며 페이버릿의 뚝배기를 깨 버렸고.
다른 기획사들이야 ‘아육시 화력 미쳤네’ 라며 넘어갈 수 있었지만 컬리뮤직은 상황이 달랐다. 소속사 대표 아티스트인 민강후, 강열 형제가 모두 7IN에게 제대로 엿을 먹었으니.
민강열은 유군자 덕분에 ‘아육시’에서 병풍 신세가 됐다. 민강후는 시청률 8%짜리 퀴즈 프로그램에서 핑크 괴물이 되어 버렸고.
대표는 ‘중견 아이돌이 새로운 이미지도 얻고 얼마나 좋으냐’며 허허 웃고 말았지만, 페이버릿을 직접 담당하는 김은표 실장은 생각이 달랐다.
두 팀의 활동 시기가 겹친 순간, 이건 이제 자존심 싸움이다.
적어도 7IN에게는 무엇 하나 밀리고 싶지 않았다. 뮤직비디오 조회수, 음원 순위, 시청률, 화제성, 그 외 어떤 것이든.
안타깝게도 조회수와 음원 순위는 초반 분위기가 좋지 않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어그로를 끌 만한 방법은 아직 많았다.
이걸 악재라 해야 할지, 호재라 해야 할지.
페이버릿의 신곡 발매와 동시에 진행된 팬 쇼케이스 현장에서 약간의 사고가 있었다. 하필이면 악질 사생 팬 한 명이 추첨을 통해 쇼케이스장에 와 버린 거다.
기회를 노리던 사생은 멤버들의 무대인사 순간에 뛰어올라 민강후에게 달려갔다. 경호원들이 빠르게 제지한 덕분에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기자들은 이 순간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았다.
덕분에 활동 초기부터 기사거리는 낭낭했다.
민강후 역시 욕이나 좀 하고 넘겼으나, 김은표 실장은 그를 굳이 정신건강의학과에 보냈다.
“강후야, 잠깐 병원 좀 다니자.”
“에? 그 미친년 때문에요? 저 괜찮은데.”
“자식아, 그냥 좀 다녀. 이런 게 다 나중에 트라우마로 남는 거라고.”
“아, MBTI인가 그거요?”
“PTSD 말하고 싶었던 거지?”
“아 맞네.”
“···넌 앞으로 퀴즈 프로그램은 나가지 말자.”
“근데 병원은 왜요? 진짜 INFP인가 그것 때문에 보내 주시는 거예요?”
“것도 있고, 너 유군자 이기고 싶지?”
“당연하죠.”
“그럼 가서 치료받고 와. 제이라이브에서도 한번씩 언급 해 주고.”
괜찮다는 민강후를 정신과까지 보내고 기자들을 불러모았다. 아이돌 사생 팬은 연예부 기자들에게 언제나 좋은 떡밥이었다.
[페이버릿 쇼케이스장을 습격한 사생 팬] [사생 팬 민강후 습격, 긴박한 순간.] [구사일생 민강후, 정신적 고통 호소하며 정신과까지 다녀···.] [페이버릿 사건으로 본 아이돌 사생 팬 문화, 이대로 괜찮은가?]이런 노력 때문인지, 온라인 상의 언급량이 서서히 늘긴 했다.
‘사생 팬’도 꽤나 케케묵은 키워드였기에 효과가 엄청나진 않았으나, 아무튼 반응이 온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무엇보다 쇼케이스 화제성에서 7IN을 앞설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쇼케이스는 정해진 수순을 따르는 것이 정석이다. 웬만해선 화제가 생길 일도 없다. 그렇기에 아이돌 팬이 아닌 일반인들은 그런 게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운 좋게’ 사생이 나타나 준 덕분에, 페이버릿의 쇼케이스는 며칠 동안 꾸준히 기사화됐다.
기사들의 조회수나 댓글 수 역시 나쁘지 않았다. 진성 팬 말고는 관심도 없는 쇼케이스 현장 기사에 이 정도 반응이라면 엄청난 거다.
설마 그 놈들 쇼케이스 현장에도 사생이 나타나진 않겠지.
그런 황당한 우연이 발생하지 않는 한 적어도 쇼케이스 화제성에선 페이버릿이 7IN에게 뒤질 일은 없어 보였다.
7IN의 쇼케이스 당일, 행사가 끝나자 마자 쏟아지는 기사의 헤드라인을 보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육시’ 데뷔그룹 7IN, 쇼케이스에서 유두잔치 열어.] [“기자님, 여기에요 여기!” 신나고 맛있는 유두잔치 현장.] [7IN 유군자, “오늘은 내가 유두 총각!”] [기자들도, 팬들도 만족한 유두 대잔치··· “무릉도원이네요”] [쇼케이스에서 유두잔치 벌인 7IN, 국내 최초 ‘유두돌’ 되나.]“···뭐야 이게 시발?”
기사의 조회수가, 폭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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