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85)
#85
물은 동쪽으로 흘러야 한다
7IN 미니 1집 발매일인 2022년 7월 13일.
10년차 연예부 기자 고민우는 진땀을 훔치며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아오, 더워···.”
오늘도 입사 동기인 고물 중형차가 문제였다. 없는 와중에 폼 내겠다고 서비스 센터도 없는 외제차를 사는 바람에, 고장이 날 때마다 수리하는 것이 일이었다.
10년 동안 미운 정 고운 정 쌓인 동료라지만, 오늘 같이 더운 날 에어컨 고장이라니.
“진짜 너무한 거 아니니?”
별 수 없이 휴대용 선풍기를 들어 보았지만 뜨거운 바람만 불었다. 언제나 있던 교통체증도 오늘따라 더 심한 느낌이었다.
행사장엔 제발 에어컨 빵빵하게 나왔으면 좋겠다.
고민우의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 뿐이었다.
쇼케이스 내용이야 뭐 뻔하겠지.
10년 동안 온갖 행사장을 다 다닌 고민우였지만, 기억에 남을 만큼 특별한 쇼케이스는 없었다.
아마 7IN의 데뷔 쇼케이스도 다르지 않을 거다.
얼른 사진 몇 장 찍고, 틀에 맞춰서 기사 찍어 내고, 빨리 집 가서 냉면이라도 한 그릇 먹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쇼케이스장으로 향하는 길.
“음?”
멀리서부터 새큰한 냄새가 그의 코를 콕콕 찔렀다. 여름에 딱 어울리는, 시원하고 상큼한 냉육수 냄새 같은 것이.
“···설마 잘못 왔나?”
이건 아이돌 쇼케이스 현장에서 나면 안되는 냄새다. 초계국수 맛집이라면 또 모를까. 하지만 메시지를 확인해 보니 분명 이곳이 맞았다.
그 맛있는 냄새를 따라 고민우는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마주한 7IN의 첫 쇼케이스 현장은, 그가 상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기자님!”
“더우셨죠?”
장터 국밥집마냥 넓게 늘어선 목재 테이블, 통나무를 통째로 잘라 만든 것 같은 투박한 의자 위엔 전통 문양이 그려진 방석이 놓여 있었다. 초가집처럼 꾸민 가설 조리실에선 스테인리스 그릇이 연신 튀어나왔다.
이게 아이돌 쇼케이스 현장이라고?
믿기 어려웠지만, 목재 테이블에 앉은 동료 기자들을 보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일을 하러 온 건지 맛집 탐방을 온 건지. 기자란 자들이 카메라는 내팽개쳐 두고 국수를 들이키고 있었다.
“오, 고 기자! 와서 앉아!”
“여기 국수 엄청 맛있는데?”
어이가 없었지만 입맛이 당겼다. 안 그래도 에어컨 고장 때문에 더워 죽을 뻔 했는데, 새콤한 냉국수라니.
자리에 앉자 마자 현장 진행요원이 스테인리스 그릇을 대접했다. 좋은 재료로 정갈하게 모양을 낸 초계국수였다.
음식을 마주하니 절로 군침이 돌았다. 먼저 살얼음이 살짝 뜬 국물부터 한 모금 들이켜 보았다.
“!”
입 안부터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 냉기가 머리를 차갑게 식혀 주었다. 기분 좋게 새콤한 기운이 혓바닥을 휘감았다. 고물 차 안에서 내내 고민우를 괴롭히던 더위까지 한방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그 한 모금이 고민우의 무장을 해제시켜 버렸다. 그 역시 동료 기자들처럼, 기사고 사진이고 뭐고 내팽개친 채 국수에 과몰입했다.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미(一味)였다.
태앵-.
바닥까지 깨끗하게 비운 뒤, 그릇을 내려놓자 청아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크아-.”
입에선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아이돌 쇼케이스에서 초계국수라니. 이건 대체 무슨 상상도 못한 조합인가.
“고 기자, 이런 쇼케이스는 처음이지 않아?”
“그러네.”
“아니, 그 동안 왜 이런 게 없었지?”
“그러게 말야. 좋네.”
유두잔치의 효과는 굉장했다. 삼복 더위 날 국수 한 그릇에, 기자들은 모두 7IN의 팬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게다가 듣기만 해도 어그로가 끌리는 ‘유두잔치’라는 타이틀까지.
벌써 고민우 기자의 머릿속에서는 헤드라인이 미친 듯이 떠올랐다.
이어진 팬 쇼케이스 현장에서도 유두잔치는 이어졌다.
7IN 멤버들이 직접 서빙하는 스테인리스 그릇을 받으며, 팬들은 성은이라도 입은 듯한 황송한 표정을 지었다.
“국수 나왔습니당.”
“혀, 현재가 서빙을···.”
“헤헤, 맛있게 먹어여 누나.”
“으응! 나 다 먹을게! 국물까지 싹싹 먹을게!”
“너무 빨리 먹다가 체하지 말구.”
시원하고 다정한 초계국수 시식회가 끝난 뒤엔 신곡 무대가 이어졌다. 팬들은 미리 구매해 온 서예붓 모양 응원봉을 흔들며 목청이 터질 듯 7IN을 응원했다.
와아아아아아아—.
저잣거리 공연마당처럼 꾸며진 쇼케이스 현장, 시원하고 맛있는 초계국수 한 사발,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 완벽한 퍼포먼스까지.
여기까지만 해도 혜자 중 혜자 쇼케이스였지만 아직 하이라이트가 남았다.
쇼케이스에 모인 100여 명의 팬 중, 딱 일곱 명을 추첨하여 7IN 멤버들이 직접 머리를 감겨 주는 사은 행사가.
추첨으로 당첨된 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몇몇 팬들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며 눈물까지 흘렸다.
괴성을 지르는 팬들을 보며 군자 역시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다. 팬들이 기뻐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군자를 뭉클하게 했다.
마음 같아선 분신술이라도 써서 하루 종일 머리를 감겨 드리고 싶건만.
몸뚱이는 하나이며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이렇게 모인 팬들 중에서도 선별을 할 수밖에 없구나.
아쉬운 만큼 팬 서비스에 더욱 진심으로 임하기로 한 군자였다. 모든 팬들을 만족시켜 드릴 순 없겠지만, 적어도 몸이 허락하는 한은 이 사랑에 보답하고 싶었다.
현장엔 미용실 의자 일곱 대가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자신과 짝을 이룬 팬의 머리를 감겨 주며, 군자가 자상하게 물었다.
“물 온도는 어떠신지.”
“···으응 군자야, 무릉도원이야···.”
“하하, 수온(水溫)을 물은 것입니다.”
“아, 아뿔싸!”
엉뚱하게 무릉도원을 찾았다가 당황하는 팬의 모습을 보며 군자가 웃었다.
무릉도원이라니, 이 분께선 정말로 이 순간이 행복하신 모양이구나.
게다가 ‘아뿔싸’는 군자가 놀랄 때 튀어나오는 말버릇이었다. 군자는 자신과 닮은 팬의 언어 습관이 꽤나 재미있었다.
“아뿔싸를 쓰시는군요.”
“아, 응··· 너가 써서 나도 따라하다 보니까···.”
“하하, 욕설보다 훨씬 정감 가지 않습니까.”
“히히, 맞아. 요즘 내 친구들도 다 따라해.”
“그럼 지압 시작하겠습니다.”
꾸욱, 꾸욱-.
커다란 손으로 두피를 꼭꼭 눌러 주니 팬의 얼굴이 한층 더 풀어졌다.
“무릉도원이신지요.”
“어··· 어으··· 물 온도가···.”
“아니요, 지금은 정말 무릉도원이냐고 물은 것입니다.”
“···으으응··· 무릉도원 맞네에···.”
소소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머리를 감겨 주다 보니 어느새 5분이 다 지나가 버렸다.
“아, 벌써···.”
팬은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5초 같이 느껴진 5분이었지만, 사실 이 정도도 충분히 황홀한 경험이었으니까.
군자에게 인사를 하고 일어나려는데, 군자가 자리에 없었다.
“응?”
방금까지 팬의 머리를 감겨 주던 군자는, 어느새 진행요원에게 다가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물이 동쪽으로 빠져나가야 한단 말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상관인···.”
“유두잔치 아닙니까. 그렇다면 유두절의 원칙을 따라야지요.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야 액운이 날아간단 말입니다. 그런데 저기 좀 보십시오. 물이 서쪽으로 빠지고 있지 않습니까.”
“저게 서쪽인가?”
“예, 서쪽입니다. 이러면 액운이 날아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몸으로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헉, 그, 그러면 어떻게···.”
“다시 해야지요.”
“예?”
“동쪽으로 물길을 내 주십시오. 전 한 번 더 머리를 감겨 드려야겠습니다.”
진행요원과 담판을 짓고 온 군자가, 다시 팬에게 다가와 싱긋 눈웃음을 지었다.
“후우, 큰일 날 뻔 했지 뭡니까.”
“?”
“하마터면 액운을 받으실 뻔 했습니다. 이제 동쪽으로 물길을 냈으니,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
“자, 한번 더 감겨 드리겠습니다.”
“——!?!?!?”
상상도 못한 두 번째 은혜를 입으며 팬은 마음 깊이 다짐했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군자의 팬이 되겠다고.
* * *
‘유두잔치’를 컨셉으로 한 7IN의 쇼케이스는 엄청난 화제를 모으며 대흥행했다.
쇼케이스 자체는 정해진 기자들과 팬들만이 출입할 수 있었지만, 현장에서 벌어진 이벤트가 컨텐츠화되어 온라인을 점령한 것.
일단 기사 제목부터 ‘유두잔치’가 있으니 도저히 눌러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데뷔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초 초 신인 아이돌이 유두잔치라니.
[기사 제목 어그로 실화임?ㅅㅂㅋㅋㅋ] [유두잔칰ㅋㅋㅋㅋ찌찌파티냐곸ㅋㅋㅋㅋ] [근데 놀라운건 기레기가 기레기한 게 아니라는 거] [우리 칠링이들 진짜 유두잔치 했자낰ㅋㅋㅋㅋㅋㅋㅋ] [난 유두라는 명절이 있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어] [근데 진짜 취지가 좋은 것 같더라] [솔직히 쇼케 하면 매번 똑같은 무대에 사진에 질의응답도 뻔해서 솔직히 식상했음ㅠㅠ] [이제 다른 아이돌들도 다 따라하지 않을까] [근데 유두잔치··· 나만 다른 거 기대한 거 아니지? ㅎㅎ;;] [괜찮아 언니야 나도 썩었어] [애들은 마냥 귀여운데 팬들은 썩어 문드러졌네] [ㅋㅋㅋㅋㅋ썩어문드러졌다닠ㅋㅋㅋㅋㅋㅋ]여론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뻔한 쇼케이스에 새로운 컨셉을 도입했다는 것도 좋았고, 그것이 7IN의 세계관과도 잘 어울린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화제가 된 것은 ‘머리 감겨주기’ 이벤트에 당첨된 팬의 후기.
[최애가 내 머리 감겨준게 자랑ㅠㅠㅠㅠ.txt]응맞아 오늘 쇼케에서 머리감겨주기 당첨된거 그거 나임ㅠㅠㅠ
쇼케 된것도 ㅈㄴ고맙고 눈물나고 그랬는데
막상 거기서 일곱명 뽑는데 당첨됐다니까 그냥멍함ㅋㅋㅋ
나진짜 인생운 다쓴거 아니냐겈ㅋㅋㅋ같이 간 친구랑 난리치고
무튼 난 군자가 감겨줬는데 진짜 세상 스윗함ㅠㅠ계속 말걸어줌ㅠㅠ
첨에 물온도 물어보는데 ㅂㅅ처럼 무릉도원이라고함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나중에 지압해주면서 그 개소리를 받아주더라ㅠㅠㅠ
먼저 무릉도원이신지요? 하고 물어보는뎈ㅋㅋㅋ센스쩔어진짜
첨엔 선비말투 저거 이상했는데 지금은 개치인다ㅠㅠㅠ
그러고 일어날라그러는데 막 어디 가서 진행요원이랑 머라머라 하더니
와서 한번 더 감겨준다는거임!!!!!!!!!!!
왕아알옹ㅎ와와아!!!!!!!?!?!?!!! 속으로 개 소리질르면서
겉으로는 얼타고 있었거든ㅋㅋㅋㅋㅋㅋ
근데 무슨 물이 동쪽으로 흘러야 되는데 서쪽으로흘렀다곸ㅋㅋㅋㅋㅋ
유두잔치에선 그러면 안됀댘ㅋㅋㅋㅋㅋㅋ그래서 한번더 감겨줌
ㅅㅂ유두잔치 ㅈㄴ만세만세만만세다ㅋㅋㅋㅋ
그날저녁에 게임 닉네임 유두잔치로 지었다가 정지당함ㅋㅋㅋㅋㅋ
근데 그래도 좋당ㅋㅋㅋㅋㅋㅋㅋ아 행복해
칠링이들 만세 유두잔치 만세 유군자 유두돌 만만세!!!!
*아 그리고 시작할때 초계국수 줬는데 그거 개맛있음ㅋㅋㅋㅋ
그것도 애들이 육수 내고 재료 준비했다는데ㅠㅠㅠㅠ완전 장금이아니냐
머리 두 번 감은 팬이 쓴 글은 순식간에 아이돌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며 영업에 큰 몫을 했다.
쇼케이스에서 초계국수를 나눠주고 머리를 감겨 주는 팀이 있다니. 심지어 그 팀이 비주얼도 출중하고 실력도 뛰어나다니.
7IN의 쇼케이스가 끝나자 마자, 사생팬 사건으로 어그로를 끌던 페이버릿의 이름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대신 7IN의 이름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렇게 하루 종일 검색어 순위를 씹어먹은 뒤, 바로 다음 날 아침.
‘라임’을 포함한 모든 음원 차트에서, 7IN의 음원 순위는 아주 많이 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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