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91)
#91
어명은 못 참지
도끼를 달라는 군자의 말에 이용중 실장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7IN의 담당 매니저로서, 아육시 본방은 물론 비방 녹화분까지 모두 챙겨 본 이용중이었다.
아육시 초반만 해도 군자는 변수 덩어리였다.
오디션장에 말을 끌고 오지 않나, 제주랜드에서 랩 배틀을 뜨지 않나.
“도끼는 구할 수 없는 것인지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초롱초롱한 군자의 눈을 보며, 이용중은 문득 아육시 초창기의 군자를 떠올렸다.
지금이야 꽤 평범한 모습이 되었다지만 절대 방심해선 안된다. 이 희한한 놈이 또 무슨 변수를 만들지 모르니까.
지금까지야 뭐 다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흘러갔지만, 언젠간 팀에 해를 끼칠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도끼야 구할 수 있지.”
“아, 다행입니다.”
“하지만 이유는 알아야겠다. 도끼가 흉기라는 건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망나니들도 커다란 도끼로 사람의 머리통을 댕겅댕겅 내려치지 않습니까.”
“그, 그런 무서운 말을 그렇게 태연하게 하니.”
“하하,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저는 사람의 머리를 칠 생각이 없답니다.”
“그럼 왜? 도끼춤이라도 추게?”
그러나 군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머리 대신 다른 걸 자를 겁니다.”
* * *
7IN의 첫 대면 팬사인회 당일.
7IN과 유군자의 팬 효림은 아침부터 바쁜 하루를 보냈다.
팬사인회 컷은 한도 끝도 없이 높았지만, 무슨 천운이 따라 준 것인지 덜컥 팬사인회에 당첨되어 버렸다. 당첨 소식을 전달받은 날은 숨도 못 쉴 정도로 기쁘고 짜릿했다.
그러나 막상 당첨이 되어도 문제였다.
멀리서 무대 하는 모습만 봐도 코피가 흐를 정도로 좋은데, 멤버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 사적인 대화도 나눌 수 있다니.
무슨 옷을 입어야 하지? 머리는 또 어떻게 해야 하지? 군자는 어떤 스타일을 좋아할까?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픈 효림이었다. 일단 월차부터 낸 다음 고민을 시작했다.
“끄으응-.”
옷장을 뒤져 가며 후보군을 추려 보았지만 딱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새 옷을 사기도 애매했다. 벌써 7IN을 덕질하느라 통장이 텅텅 비어 버렸으니까.
잔고를 모으니 간신히 옷 한 벌 살 정도의 돈은 나왔다. 사인회 날 아침에 미용실도 가야 하니, 돈은 최대한 아껴야 한다.
군자가 좋아할 만한 옷, 군자가 좋아하는···.
쉬폰 블라우스, 원피스, 크롭 자켓 등등.
다양한 검색어를 입력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효림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퍼뜩 스치고 지나갔다.
“···이건가?”
고민 끝에 효림은 무리수를 두기로 했다.
“이것이 정답이란 말인가?”
정신 나간 아이디어다. 누구에게 말한들 아마 기겁을 하며 말릴 것이다. 벌써부터 홈마들의 대포 카메라 앵글에 뒤통수가 걸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새벽이라서 그런가, 자꾸 이 미친 생각이 그럴싸하게 느껴졌다.
군자는 선비잖아. 선비가 가장 좋아하는 건 임금님 아닌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효림의 손은 결제 버튼 위에 올라가 있었다. 망설일 것이 없었다. 새벽의 똘끼를 빌려, 효림은 기어이 임금님 코스프레 의상 세트를 구매해 버리고 말았다.
흑청색 곤룡포에 옥대, 익선관(翼善冠), 흑화까지 세트로.
배송 온 코스프레 세트를 입고 거울 앞에 서니 순간 현타가 왔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었다.
“크흠, 이리 오너라아. 군자야, 이리 오너라 업고 놀··· 크흠, 큼.”
이렇게 된 거, 끝까지 또라이 메타로 가는 거다.
팬사인회 당일, 용포를 차려 입은 효림은 집 앞으로 콜택시를 불렀다. 아무리 정신나간 짓을 하기로 다짐했다지만 이 옷차림으로 지하철을 타는 건 도저히 무리였다.
“···부, 분당 코텍스로 가 주시오···.”
“어이구, 임금님께서 오셨네~”
“···.”
“허허,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폐하~”
그렇게 이를 악물며 수치심을 참고 팬사인회 장소까지 갔다. 대기시간 동안은 내내 손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서 있어야 했다.
그러나 용포의 효과는 확실했다.
마침내 대기 시간이 끝나고, 팬사인회 당첨자들이 행사장으로 입장한 순간.
임금의 옷을 차려입고 나타난 효림은 당연하게도 모두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헐, 대박.”
“관종이네.”
“관종이잖아?”
물론 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
지난 몇 달 간 현대 문물에 절여져 MZ세대 다 된 군자였다.
이젠 아이폰에 천자문 게임 앱도 막 깔고, 밤 10시에 자려고 누웠다가 유튜브 보느라 막 30분이나 늦게 자기도 했다.
그러나 선비라는 근본을 버릴 수는 없는 법.
임금의 옷인 용포를 보자, 반사적으로 군자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아니, 폐하께서 여기는 어인 일로.
사람들이 저 분을 ‘관종’이라 부르는 걸 보니 임금님인 것은 분명했다. 외관이 젊어 보이니 아마 최근 분이시겠지. 임금님이 우리의 팬사인회에 오시다니. 황공할 따름이었다.
당장이라도 임금께 달려가 큰절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아이돌로서의 본분이 군자의 엉덩이를 잡아당겼다. 지금은 임금님이 아니라 팬들을 만나는 시간 아니던가.
다시 차분함을 되찾은 군자가 마침내 팬들을 한 명씩 마주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떤 식으로 대화를 주도해야 하나. 약간의 걱정이 있었지만, 막상 대화를 시작하니 모든 걱정이 해결되어 버렸다.
팬들은 군자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나 싶을 정도로.
팬들의 질문에 성의껏 대답하는 것만으로도 2분 남짓한 대화 시간은 훅훅 지나갔다. 물론 군자 역시 적극적으로 질문을 주고 받았다.
평소 멤버들, 솔라시스템 직원들 외엔 사람 만날 기회가 많지 않은 군자였기에, 이런 기회에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으으, 집에 가기 싫다. 계속 여기 있고 싶어.”
“하하, 윤희 님은 집에 가서 무엇을 하실 계획이십니까.”
“나 한문 공부! 요즘 한자 자격증 공부 하고 있거든.”
“오오, 이 시대에도 한문 시험이 있단 말씀입니까?”
“응! 군자 너도 한번 봐봐.”
“꼭 그래야겠습니다!”
팬과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정보도 얻을 수 있었으며.
“으으, 어제 일하면서 엄청 킹받았는데.”
“킹받다? 허어, 산부인과에서 일을 하시나 보군요.”
“엥? 산부인과? 왜?”
“후훗, 저도 영어는 조금 압니다. 킹(King) 받다, 왕을 받다. 즉 원자 아기씨를 받는 일을 하는 분 아니십니까?”
“푸하하학, 뭔 소리야! 킹받는다는 건 그냥 화난다는 뜻이야.”
“아아니, 어찌 임금을 받들며 화를···.”
군자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신조어도 배웠고.
“군자 님, 여기 이거요.”
“아니, 이것은 최고급 서예 붓 아닙니까!”
“헤헤, 선물이에요.”
“제, 제가 이런 것을 받아도 될지···.”
“그걸로 글씨 많이 써 주세요! 그러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물론입니다! 많이 많이 쓰겠습니다! 매일 밤 호롱불이 꺼질 때까지!”
마음에 쏙 드는 선물도 잔뜩 받았으며.
“와, 군자야. 나 이런 싸인은 첨 봐!”
“하하, 그렇습니까.”
“글씨 왜 이렇게 잘 써? 언제부터 이렇게 잘 썼어?”
“흐음, 글쎄요. 필체로 칭찬을 받은 것은 아마도 여섯 살···.”
“와아아, 진짜 찐천재.”
“···그··· 찐은 나쁜 뜻 아닌지요.”
“응? 아니야! 절대 아니야! 여기선 좋은 뜻인데!?”
사인을 하며 모처럼 붓글씨도 실컷 썼다.
“자, 이동하실게요~”
짧은 대화와 사인 시간이 끝나면 팬들은 안타까움 가득한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군자 역시 안타까운 마음이었지만 방도가 없었다.
그저 주어진 시간 만이라도 온 마음을 다해 소통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한 명의 팬이 자리를 뜰 때마다, 군자는 다리 밑에 둔 자루에서 목조각(木彫刻)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지난 며칠 간 정성스레 준비한 조공이었다.
이용중 실장에게 도끼를 요청한 날, ‘불법 벌목은 금지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좌절했던지.
그래도 다행히 이용중 실장이 목재를 구해 주었다. 좋은 나무를 얻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조각칼로 그것을 예쁘게 깎아 내는 일 뿐.
그렇게 며칠 밤을 새워 원앙 100마리를 만들었다. 화조도(花鳥圖) 그리는 것보다 몇십 배는 힘들었지만 보람찬 일이었다.
“헐, 헐, 너무 귀여워! 이게 뭐야?”
“원앙입니다. 부부 간 우애와 금슬의 상징이지요.”
“부, 부부의 상징을 주는 거야? 나한테!?”
“어어, 그, 괜찮으시면···.”
“괜찮아! 완전 완전 너무 좋아! 헐, 헐-.”
팬들이 이렇게 기뻐해 주었으니까.
그렇게 한 명씩 팬들을 만나던 군자가 마침내 용포를 입은 효림을 마주했다.
“기다렸습니다 전하.”
기다렸다는 듯, 군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큰절을 올렸다.
“아니야, 아니야 군자야! 괜찮아! 그러지 마!”
그걸 만류하면서도 효림의 입은 귀에 걸려 있었다. 영상으로만 보던 군자의 큰절을 직접 받게 될 줄이야. 용포의 성능은 확실했다.
“관종 전하, 옥체 강녕하셨는지요.”
“과, 관조옹?”
“사람들이 전하를 그렇게 부르더군요. 그것이 전하의 군호(君號)가 아닌지.”
“하, 하하···.”
아니라고 말하기도 뭣했다. 이런 장소에 이런 옷을 입고 왔다는 것 자체가 특급 관종이라는 증거니까.
게다가 반박할 시간도 없었다. 2분은 너무나도 짧았으니까.
군자가 싸인을 하는 동안, 효림은 서둘러 옥대를 풀고 용포를 훌훌 벗었다. 갑작스런 탈의에 안전요원들이 흠칫하며 나섰으나, 다행히 용포 안엔 일상복이 갖춰져 있었다.
그 동안 선비 옷 입은 것만 봤으니, 군자의 용포 차림도 꼭 보고 싶은 효림이었다. 이 오버핏 임금님 코스프레엔 그런 숨은 의도도 있었다.
“구, 군자야. 이거 입어 줄 수 있어?”
“예? 고, 곤룡포를요?”
“응.”
“아니, 어찌 신하 된 자가 왕의 의복을···.”
“어허어.”
“?”
“어, 어명이다아.”
“!”
어명은 못 참지.
충(忠)을 가슴에 품은 선비로서, 주군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다.
“받들겠사옵니다.”
군자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보이곤, 효림이 건넨 곤룡포를 몸에 걸친 뒤 옥대를 찼다. 효림에겐 오버핏이었던 곤룡포가 군자의 몸에는 꼭 맞았다.
“우, 우와아-.”
군자가 곤룡포를 입자 마자, 홈마들의 카메라가 다시 한번 부지런히 움직였다. 왕의 옷을 입은 것이 걱정되는지, 살짝 쭈구리가 된 군자의 모습이 더욱 셔터를 당기게 했다.
“귀여워!”
“지금 빨리 찍어야지.”
찰칵, 찰칵-.
그 모습을 보며 효림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하아, 이게 꿈이 아니라니. 군자가 내 곤룡포를 입어 주다니.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
“죽으시면 아니 되옵니다! 다음에 또 뵈어야 하는데요.”
“하아, 그렇게 말해 주니까 진짜 죽어도 여한이 없네.”
그렇게 행복함 가득한 표정의 효림이 물러가고, 다음 팬이 군자의 앞에 앉았다.
이제는 군자도 팬사인회가 조금은 익숙해진 것 같았다. 팬들과 대화하는 것이 꽤나 재미도 있었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 받으며 종이 위에 붓글씨를 쓰고 있던 중이었다.
“군자야, 근데 넌 SNS 안 해?”
“아, 예. 아직은 동료들과 함께 사용하는 계정 밖에 없습니다.”
“움, 그래?”
그러나 익명의 팬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나, 트위티에서 너 계정 본 것 같은데?”
“···?”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