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92)
#92
난 그냥 너 믿을란다
자신의 트위티 계정을 찾았다는 팬의 말에 군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트위티가 무엇인지는 군자도 대충 알았다. 짧은 글을 게시할 수 있는 SNS 아닌가.
하지만 군자는 결코 SNS 계정을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했지만, 혹여 말실수를 할까 싶어 몸을 사리기로 했기에.
허나 이 팬 분은 내 SNS 계정을 찾았다고 하시는구나.
군자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정답은 아마도 셋 중 하나일 것이다.
첫 번째, 팬이 착각하여 잘못된 계정을 찾았다.
두 번째, 누군가가 사칭 계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세 번째, 빙의 전의 ‘유군자’가 사용하던 계정이다.
“···.”
첫 번째의 경우라면 문제 될 것은 없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의 경우라면 다르다.
사칭 계정일 경우 찾아서 계정 활동을 중단시켜야 한다. 만약 세 번째의 경우라면 군자 역시 그 내용을 알아야 할 것이고. 벌써 빙의 후 몇 달이 지났지만, 군자는 이 몸의 원래 주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군자가 잠시 고민에 빠진 사이 팬이 말을 이어 갔다.
“근데 글은 아무 것도 없더라. 비공개 계정이던데?”
“비공개 계정이요?”
“응. 뭐야 뭐야, 궁금해. 알구 싶어.”
“하하-.”
겉으로는 웃었지만 난감한 군자였다. 그 계정에 무슨 정보가 들어 있는지 군자 역시 궁금했으니까. 일단은 팬에게 부탁하여 계정의 정보를 얻어 두었다.
[Jayookoon1215]이것이 해당 SNS의 계정명이었다. 군자가 제이라이브 용으로 사용하는 계정은 Yookoonja1215. 부모님의 생일인 1월 12일, 4월 15일의 날짜 부분만을 따서 만든 계정이다.
유군자, 자유군. 배치만 다를 뿐 글자의 구성은 같지 않은가.
이렇게 보니 팬이 어째서 [Jayookoon1215]를 군자의 계정이라 생각했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군자야, 왜? 혹시 도용 계정이야?”
“하하, 아닙니다. 예전에 만들어 두고 잊어버린 계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하.”
“여기, 하나 가져가세요.”
“음? 이게 뭐야?”
“우애와 금슬의 상징인 원앙입니다.”
“헐, 헐, 넘 귀여워!”
원앙 조각을 받자 마자, 팬은 SNS에 대한 건 까맣게 잊었다는 듯 신난 모습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군자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 몸의 원 주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사실 언제나 궁금했던 부분이다. 부모님께 여쭤본 적도 있었으나 부모님 역시 정확한 답을 주시지 못했다.
열다섯 살 무렵까지는 착하고 순수하며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온순한 아이였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천천히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갔기에, 부모님 역시 그 기간 동안의 군자에 대해서는 몰랐다.
물론 군자는 군자였다. 300년 전 조선에서 온,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선비. 그러나 대중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룹의 세계관까지 ‘조선에서 온 선비 아이돌’로 잡았다지만, 그럼에도 팬들은 여전히 궁금해 했다.
‘아이돌 유군자’ 말고, ‘진짜 유군자’는 어떤 모습인지.
제이라이브를 하면서도 종종 느꼈다. 평소 취미를 묻기에 서예와 초충도 그리기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팬들의 반응에는 약간의 실망이 섞여 있었다.
[그런 거 말구ㅠㅠㅠ] [우리랑 얘기할 땐 컨셉 안 잡아도 돼!] [이제 진짜 군자가 뭐 좋아하는지도 알고 싶은데] [ㅠㅠㅠㅠ소속사 좀 밉네] [제이라이브 할 땐 솔직하게 말하게 해줌 안되나ㅠㅠ]물론 모두가 그런 반응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본래 백 개의 좋은 반응보다 한 개의 안 좋은 반응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법 아니던가.
팬사인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군자야, 근데 선비 컨셉은 어떻게 잡게 된 거야?”
“컨셉이요?”
“넘 재밌고 찰떡 같아, 히히.”
“하하, 이것은 컨셉이 아니랍니다.”
“응?”
“단지 선비로 태어났기에 선비의 삶을 사는 것이지요.”
“아아···.”
대답을 들은 팬은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약간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근데 이럴 땐 그냥 솔직하게 말해두 돼.”
“예?”
“얘기할 시간 딱 2분 밖에 없는데···.”
돌아서는 팬의 얼굴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군자는 혼란스러웠다. 오디션이 끝난 뒤부터는 팬들과 소통할 기회가 많아졌기에 더더욱 그랬다.
솔직한 대답을 하면 오히려 군자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팬들이 있었다. 제이라이브를 할 때엔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았으나, 직접 대면한 팬이 실망감을 내비치니 그것이 더욱 크게 와닿았다.
그들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고민이 따랐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나?
군자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민이었다. 이 몸의 전 주인의 인생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싶어도, 그걸 기억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허나 군자의 주위엔 항상 고민을 함께 나눌 만한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팬사인회가 끝난 날 밤 숙소.
군자는 멤버들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고민에 대해 털어놓았다.
물론 모든 것을 사실대로 이야기하진 않았다. 아무리 동료들이라 해도 그가 조선시대에서 날아왔다는 것을 믿어 주진 않을 테니까.
그러나 꽤 많은 부분을 털어놓았다.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뇌 손상을 입었다. 그 때문인지, 지난 몇 년 간의 기억이 없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사고를 당한 이후엔 조선인의 영혼이 깃든 듯 이렇게 선비가 되어 버렸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판타지 같은 이야기였지만, 군자의 태도가 워낙 진지했던 덕분인지 멤버들 역시 장난기 빠진 얼굴로 군자의 말을 경청했다.
“···저, 정말 그런 일이···.”
“솔직히 다른 애들이 했으면 그냥 장난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선비 형아가 이렇게 말하니까 거짓말 같지가 않네여.”
“내 말이.”
“하긴, 나 전에 어디서 본 적 있어. 머리 다친 사람이 깨어나서 막 라틴어 했다고 하던데.”
“맞아. 갑자기 수학 천재 된 사람도 있었고.”
“어쩌면 군자 안에 잠들어 있던 조선인의 DNA가 깨어난 거 아닐까?”
“흐음, 그럴 수도 있겠네.”
“헐, 그게 맞다면 선비 형아는 그 동안 컨셉 잡은 게 아니었단 거네여.”
“그래. 컨셉이라고 하기엔 너무 지독했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시우가 군자에게 다가와 어깨를 톡 치며 말했다.
“힘들었겠네.”
“···.”
“사람들은 다 네가 거짓말 하는 줄 알잖아.”
“···.”
“그게 고민인 거지?”
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문제는 군자 혼자서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선에서 온 군자와 달리, 멤버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러나 막상 고민을 털어놓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그 동안 왜 얘기 안 해 줬어.”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이해받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또 마냥 그렇지도 않았다.
잠시 턱을 괴고 있던 현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음, 아마 아닐 걸여?”
“···?”
“지금은 아니지만, 나 원래는 열등감이 엄청 컸단 말이에여. 뭐든 1등 하고 싶어 했고, 연습생 평가 때 1등 못하면 하루종일 울고. 다들 잘한다 잘한다 해도, 나 혼자서는 엄청 자책하고 후회하고 그랬단 말이져.”
“···그랬구나.”
“그 때 연생 친구들한테 내가 그랬어여. 나 너무 못하는 것 같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음.”
“근데 그런 고민 얘기하면 다들 기만이라 생각하더라고여. 헛소리 하지 마라, 네가 무슨 고민을 하냐. 난 진심을 얘기했는데, 사람들은 그게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더라고여.”
“···.”
현재에 이어 유찬도 입을 열었다.
“···저, 저도 그랬어요···.”
“유찬이 너도?”
“···저, 제, 제가 엄청 못생겼다고 생각했어서···.”
“엥? 야 기유찬, 그건 진짜 아니다.”
“···하, 하, 하지만 제 마음은 진짜 그랬단 말이에요···.”
“그래?”
“···무, 무대에 설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서, 성형도 하고 싶었고···.”
“푸하핫, 너 양정무랑 동갑 아니냐? 17살들 이거 문제 많네.”
“친구들이 싫어했겠구만.”
“···네···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고···.”
“아이고-.”
“···벼, 병원 다니면서 좀 나아졌어요··· 군자 형 만나고 더 좋아졌구···.”
“너도 힘들었겠다.”
“···이, 이젠 다 괜찮아요··· 좋은 형들이랑 있잖아요···.”
인혁이 또 시큰해진 코를 슥 비비며 유찬을 가만히 안아 주었다. 커다란 손으로 유찬의 등을 팡팡 두들겨 준 인혁이, 유찬을 놓으며 한 마디를 보탰다.
“나도.”
“혁이 형도?”
“나도 멕시코 갱단이 아니었다.”
“···아, 그랬구나.”
“비밀 경찰도 아니었지.”
“아하···.”
“하지만 LA의 고등학교에선 아무도 날 믿어 주지 않았어.”
“그, 그래요?”
“자꾸··· 자꾸만 나한테 마약 하는 친구를 고발하고···.”
“···.”
“안되겠다 싶어서 전교생 앞에서 K-POP 댄스를 췄더니, 정체 숨기려고 가지가지 한다는 말만 들었지.”
처음 듣는 인혁의 고백에 모두가 숙연해졌다. 이번에도 시우가 인혁에게 가만히 다가가 어깨를 토닥토닥 두들겨 주었다.
“형도 힘들었겠네.”
“···으응···.”
형태는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사실을 말했지만 세상은 오히려 그것이 거짓이라고 판단해 버렸다.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었기에, 모두 조금씩은 거짓을 섞어 가며 살아 왔다고 했다.
“다들 그랬구나.”
“그래여. 다 비슷할 걸.”
동료들의 말을 들으니 어쩐지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 군자였다.
친구가 힘들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편해지다니, 조금은 죄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이것은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무엇이든 공유할 수 있는 동료가 생겼다는 기쁨이었다.
“야, 그러니까 괜히 속앓이 하지 말고 다 말해라. 알았냐.”
“···그래, 고맙구나.”
“너가 말 안 했으면 우리도 몰랐을 거 아냐. 평생 컨셉충인 줄 알았겠지. 솔직히 엄청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렇게 말하던 태웅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몰라 슈발, 난 그냥 너 믿을란다. 그게 가장 심플하네.”
“···나, 나도 군자 형 믿어요···.”
“난 애초에 군자교였어. 종교가 유군자라니깐.”
“아하핫, 지현수 사이비~”
꽤 긴 대화였지만 결론은 간단했다.
첫째, 앞으로 무슨 고민이든 서로 공유하기.
둘째, 기억을 잃어버린 시간 동안 군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찾아내기.
때마침 군자의 비공개 SNS가 등장했다.
본가에 가니 오래된 노트북 하나가 있었다. 아마도 몸의 원 주인인 유군자가 사용하던 노트북이겠지.
지문 인식을 통해 잠금장치를 해제한 뒤 트위티에 접속해 보았다. 웹 사이트엔 원 주인이 자동저장해 놓은 계정명이 적혀 있었다.
[Jayookoon1215]“!”
역시, 팬이 찾은 계정은 이 몸의 원 주인이 사용하던 것이 맞구나!
이 계정을 연다면, 아마 많은 것을 알 수 있겠지. 지난 몇 년 간, 부모님조차 알 수 없었던 군자의 과거도.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군자는 비밀번호 칸으로 커서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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