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96)
#96
참으로 오랜만이구나
숙소에 도착하자 모든 멤버들이 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걱정스런 표정과 달리, 군자의 동창이 썼다는 글의 내용은 평이한 편이었다.
[칠린 유군자랑 같은 반이었던 게 자랑.txt]나 유군자랑 중3때 같은 반이엇음!!!
첨에는 진짜 못알아봐씀ㅋㅋㅋ
그땐 디게 존재감 없는 애였고
이렇게 잘생긴줄도 몰랏는뎈ㅋㅋㅋㅋ
암튼 내 기억엔 학폭 이런건 진짜 없었구!
나랑은 하나도 안친하긴했는뎈ㅋㅋㅋ
딱 한번 말해본 게 미술시간에
내가 4B연필 안가져와서 빌려달라그랫는데
옆반까지 가서 빌려다줌ㅋㅋㅋㅋ졸착
또 기억나는게 자기 꿈 발표하는 시간에
단상에 올라가서 여돌 춤춘겈ㅋㅋㅋㅋ
진짜 개 못췄던걸로 기억함ㅋㅋㅋㅋㅋㅋ
그땐 다들 처웃었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개 귀여운듯ㅋㅋㅋ
아 왜 그땐 몰라봣짘ㅋㅋㅋㅋㅋㅋ
암튼 넘 웃기고 소중한 추억이당
**혹시나 해서 졸사인증도 같이 함ㅋㅋ
익명으로 올라온 동창의 글은 학폭에 대한 고발도, 특별히 대단한 미담도 아니었다. 애초에 군자가 조용한 학생이었으니, 날조를 하지 않는 한 평범한 글이 나오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군자의 입장에서 보기에, 동창의 기억은 꽤나 많이 변질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 발표’는 동창의 말처럼 재미있고 소중한 추억이 아니었다. 그 뒤로부터, 이 몸의 전 주인은 지독한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으니까.
그 글을 시작으로 동창들의 목격담이 하나 둘 씩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어 난 군자랑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는데!
그때도 많이 내성적이고 조용한 애였음ㅋㅋ
아육시에서 갑자기 선비컨셉 잡고 나와서
걔 알았던 애들은 다 개깜놀했을걸?
지금은 완전 아이돌 다됐던데ㅋㅋㅋㅋ
고딩땐 솔직히 엉망진창이엇음ㅋㅋㅋㅋㅋ
하필이면 또 박영제랑 같이 다녀서 더 비교됐음
박영제가 군자 델고 다니면서 춤 가르친걸로 아는뎈ㅋㅋ
고등학교때는 끝까지 못 췄던 걸로 기억함
지금 어케 이러케 된거지? ㅈㄴ인간승리야ㅋㅋㅋ
박영제도 군자 보면서 뿌듯할듯?
솔직히 군자는 우리가 키운거나 마찬가지야>[
**아 난 졸사는 업슴ㅠㅠㅠ
걔가 고2때 자퇴해버려서,,,ㅎㅎㅎ
“군자 너, 박영제 선배랑 같은 학교였나 보네.”
태웅의 질문에 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흐릿했던 기억이 박영제라는 이름을 들으니 선명해졌다.
박영제, 이 몸의 전 주인을 끌고 다니며 조롱하고 괴롭히던 장본인 중 한 명이었지.
또한 이 업계에서도 꽤나 유명한 이름이다. 2년 전, 타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데뷔하여 그룹 활동을 마치고 화려하게 솔로로 데뷔한 인기 아이돌이었으니까.
동창들의 글들을 읽을수록, 보상을 통해 본 영상이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다.
모두 군자의 어설픈 노래와 춤을 좋은 기억으로 회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몸의 전 주인인 유군자에겐 한없이 고통스러운 기억이었다.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스스로를 비좁은 방 안에 가둬 버릴 정도로.
분명 같은 사건일진대, 어찌 이토록 다르게 기억할 수 있단 말인가.
아마도 본인들이 직접 그 고통을 겪지 않았기 때문일 테다. 어쩌면 박영제 패거리의 교묘함 때문일 수도 있겠지.
어쨌거나, 동창들의 글은 군자에게도 꽤나 큰 소득이었다. 덕분에 이 몸의 전 주인을 괴롭힌 것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으니.
군자가 글을 읽는 동안, 군자를 둘러싼 동료들은 내내 걱정스런 표정이었다. 군자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해 보였기에.
마침내 군자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자, 현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형아, 괜찮은 거져?”
“···음, 괜찮다.”
“일단 나쁜 말은 없어서 같이 보기로 했어여. 어쩌면 이거 보고 형아가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을 수도 있으니까···.”
“마음 써 주어서 고맙구나.”
“어떻게, 뭐 생각 좀 났어?”
현수의 질문에 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다행이다!”
아무래도 동료들은 동창들의 제보 글 때문에 군자의 기억이 돌아온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군자의 입장에선 잘 된 일이었다. 상태창을 통한 보상으로 과거를 들여보았다고 하면 아마 아무도 믿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동창들의 글을 보고 과거의 기억이 보다 또렷하게 살아났으니, 동료들이 아주 잘못 이해한 것도 아니고.
“잃어버렸던 기억이 어느 정도는 살아난 것 같다.”
“오오, 잘 됐네!”
“하지만, 이 글은 내 기억과는 조금 달라.”
“어? 그러냐? 어떻게 다른데?”
“사실은···.”
군자는 차분한 태도로 진실을 풀어 놓았다. 어린 시절부터 갖고 있었던 꿈, 중학교 3학년 시절 처음으로 절망하게 된 계기, 그 뒤로 이어진 박영제 무리의 집요한 괴롭힘까지.
군자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동료들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그 힘들었던 기억을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거네.”
“박영제 선배가 그 괴롭힘에 가담··· 아니, 괴롭힘을 주도했다는 거고여.”
“그러하지.”
“박영제 선배, 그렇게 안 봤는데 일진이었나 보네.”
“야, 선배라는 말도 아까워. 선배는 무슨, 그냥 일진 양아치 새끼지.”
“으음? 일진 양아치가 무엇이더냐?”
“으음, 박영제 같은 인간들의 통칭이랄까.”
“오호-.”
일진 양아치라. 또 새로운 단어를 배워 가는구나.
군자가 깨달음을 머리에 정리하는 사이, 멤버들은 분노 게이지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와 씨, 나 욕 나올라 그러네.”
“···어, 어떻게 그런···.”
“인간들 잔인하다 진짜.”
동료들은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함께 화를 내 주었다. 인혁은 그 커다란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려치기까지 했다.
“그렇게 당해서 은둔형 외톨이가 됐고,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가 난 거고.”
“깨어나 보니까··· 기억을 잃고 선비가 돼 있었다?”
“그러하다.”
“프흡-.”
“아 웅이 형아! 이 상황에서 웃으면 어뜩해여!”
“아, 미안. 끝까지 진지해야 되는데, 솔직히 마지막에 선비가 튀어나오는 게 좀 웃기긴 하잖냐.”
태웅은 사과했지만 군자의 입장에선 오히려 좋았다. 마냥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고 싶진 않았으니까.
잠시 헛기침을 하며 웃음기를 진정시킨 태웅이 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이거 어떻게 할래? 설마 이대로 넘어갈 건 아니지?”
“···.”
“이거 학폭이야 학폭. 같은 업계 선배고 자시고, 박영제 그 인간이 군자 네 인생 조질 뻔 했다고.”
“···.”
“일단 회사에 얘기하자. 어떻게든 책임지고 사과라도 하게 하자고. 난 이대로는 못 넘어가겠다 군자야. 군자야?”
“···.”
“뭐라고 얘기 좀 해 봐. 응? 너 또 뭐 관용의 선비 정신 어쩌고 하면서 넘어갈 생각이라면···.”
“태웅아, 걱정 마라.”
“어?”
“안 넘어간다.”
“그러면?”
“복수해야지.”
“!”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는 말이 있단다.”
“오오, 뭐야!?”
동료들은 또 군자가 답답하게 굴 것을 예상했기에, 의외로 호탕한 군자의 태도에 환호했다.
그러나 군자의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었다. 본인의 일이라면 태웅의 말대로 관용을 베풀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이 몸의 전 주인에 관한 일 아니던가.
그의 원한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책임은 확실히 물어야 한다.
“네가 웬일이래?”
“내 일이라면 참고 넘어갔을 수도 있지만 이건 아니니까.”
“어? 고등학교 때 일인데, 왜 네 일이 아니냐?”
아뿔싸, 순간 말실수를 한 군자였으나.
“···나, 나는 다시 태어났다.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지.”
“오오, 뉴 유군자! 유군자 MK-2!”
“그래! 아무튼 같이 복수하자 이거야!”
순간의 기지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실수를 무마하는 데에 성공했다.
“아하핫, 박영제 선배 지금쯤 겁내고 있겠네~”
“그렇지. 그렇게 괴롭혔던 군자가 정말로 연예인이 돼 버렸으니까. 그것도 엄청 잘나가는 연예인이.”
“이걸 어떻게 참교육하지? 회사에 말해서 확 기자회견을 해 버려?”
“근데 그건 좀 뜬금없지 않을까여. 건수 잡아서 저격하는 것 같아 보일 수도 있을 듯여.”
“흐음, 그 말도 일리가 있긴 하네.”
“그럼 어떻게···.”
그러나 멤버들의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군자와 박영제는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게 엮이기 시작했으니까.
* * *
수많은 프로그램이 7IN을 섭외하기 위해 러브콜을 보내고 있었다. 김석훈 PD 사단의 [노래해 듀오>도 그 중 하나였다.
[노래해 듀오> 프로그램 개요는 간단했다. 음악적으로 가장 완벽한 짝을 찾아, 환상의 콜라보 곡을 만들어 공연하는 것. 김석훈 PD는 7IN 멤버 전원에게 섭외 요청을 보냈다.섭외 조건은 꽤나 괜찮았다. 돈 많은 종편 채널에 편성된 예능이었으며, 음악 제작 예능인 만큼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출연진이었다.
이미 섭외된 아티스트 목록의 최상단에, 박영제의 이름이 자리잡고 있었으니까.
7IN을 담당하는 실무진인 서은우 팀장과 이용중 실장도 군자와 박영제의 관계에 대해 전해 들은 참이었다.
그렇기에, 하나의 프로그램에서 두 사람을 만나게 하기가 극도로 조심스러웠다.
“조건은 최상입니다. 하이퀄리티의 콜라보 곡이 나온다는 것도 만족스럽고요. 그러나 솔직히, 우리는 이 제안을 거절하고 싶습니다.”
“···.”
“법정이나 경찰서라면 모를까, 예능 프로그램 내에서 학폭 가해자와 유군자 씨를 만나게 하는 것이 옳은 판단인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
“음악 예능이라면 다른 좋은 프로그램들도 얼마든지 많으니···.”
그러나 7IN 멤버들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팀장님, 저희 이 프로그램 나가게 해 주세요.”
“!”
“걱정해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우리 군자 그렇게 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물론 박영제 그 자식은 어떻게든 조져야죠. 하지만 그 새끼 앞에 당당하게 서는 군자의 모습을 보고 싶어요.”
“···.”
“고등학교 땐 선비 형아가 겁을 먹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여.”
군자 역시 멤버들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입을 앙다물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멤버들은 한 마음으로 출연을 희망하고 있었다.
그 굳은 의지에 서은우 팀장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
아티스트가 이 정도로 의지를 보인다면 그를 존중하는 것이 맞다. 게다가 그 역시 군자가 과거를 극복하기를 바라고 있었고.
“알겠습니다. [노래해 듀오>, 출연하는 것으로 결정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박영제에 대한 법적인 절차는 차근차근 생각해 봅시다.”
그렇게 군자를 포함한 7IN 멤버들의 [노래해 듀오> 출연이 확정된 뒤.
김석훈 PD의 주도 하에 시행된 첫 제작 회의에서, 군자와 박영제가 3년 만에 서로를 마주보았다.
“오, 군자! 오랜만이다.”
뻔뻔하게도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미는 박영제를 향해, 군자도 해사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오, 일진 양아치구나.”
“!?”
“그래, 참으로 오랜만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