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97)
#97
잊었느냐, 여름날의 풍류를
우연히 TV에서 군자를 보기 전까지, 박영제는 그에 대해 까맣게 잊고 살았다.
아이돌 오디션을 보면서도, 그룹으로 활동하면서도 걱정은 없었다. 유군자 본인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그의 학폭 전과를 고발하지 않았으니까.
아육시에 출연하는 군자를 보았을 때, 박영제는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없었다.
“유군자?”
물론, 이름을 잊진 않았다. 워낙 희한한 이름이었으니까.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두 명이나 될 것 같진 않았다.
그러나 TV 속 군자의 모습은 박영제의 기억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외모도 외모였으나, 그 태도 때문에 더더욱 알아보지 못했던 거다.
“···쟤 많이 달라졌네.”
시그니쳐 같았던 움츠러든 어깨와 불안한 눈빛은 어디 가고.
뭔 듣도보도 못한 컨셉질까지 하는 걸 보니, 이제 내성적인 성격은 좀 고쳐진 것인가 싶었다.
뭐야, 잘 컸네!
놀랍게도 박영제는 군자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자신이 했던 행동을 기억해 냈음에도, 박영제는 불안감에 떠는 대신 그냥 웃었다.
오오, 잘 극복해 내고 멋진 아이돌이 됐구만.
대단한데?
군자를 바라보며, 박영제는 그렇게 생각했다.
좀 괴롭히긴 했지만 뭐 이미 지난 일이고.
약해빠진 인간이었다면 아마 견디지 못했겠지. 하지만 지금 이렇게 멋지게 극복해서 아이돌 오디션까지 나올 정도면, 이미 과거는 청산된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일말의 불안감마저 사라진 박영제였다. 저렇게 인싸 다 됐는데, 이제 와서 옛날에 좀 괴롭힌 거 가지고 학폭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트집을 잡진 않겠지.
무엇보다 이제 본인도 위치가 있고 인지도가 있을 텐데, 학폭 논쟁 같은 진흙탕 싸움을 할 일도 없을 것 같고.
언젠가 방송국에서 만나게 되면, 그냥 웃으면서 인사나 하지 뭐.
마침 7IN도 [노래해 듀오>에 출연하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 7IN이 출연을 결정했다는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완벽하게 놓였다.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면,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결정도 할 수 없었을 테니까.
[노래해 듀오>는 박영제의 입장에선 기회였다. 과거는 다 잊자고 말하며 쿨하게 악수 한번 할 기회.출연진이 모두 모이는 제작 회의가 타이밍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박영제가 먼저 반갑게 말을 걸었던 거다.
“오 군자! 오랜만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옛날 동창 만난 느낌으로 가볍게.
그를 바라보는 군자의 표정에도 억하심정 같은 것은 깔려 있지 않았다. 휴, 역시 쟤도 다 잊었나 보네. 라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오, 일진 양아치구나.”
“!”
그것이 군자의 첫 인삿말이었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그제야 박영제는 일이 조금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야, 일진 양아치라니. 그게 무슨··· 하하하-.”
“너 같은 친구들을 그렇게 부른다던데? 왜, 듣기 싫은가?”
“야, 다, 당연하지. 누가 그런 말을 좋아하겠냐?”
“아하, 일진 양아치는 나쁜 말인가 보구나.”
그렇게 말하며 군자는 어수룩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동료들이 또 못된 말을 가르쳐 주었구나. 사람들 앞에서 나쁜 말을 사용하는 것은 항상 조심해야 하거늘···.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
군자는 진심으로 반성했으나 박영제에겐 경악스런 순간이었다. 그제야 군자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퍼뜩 떠오른 박영제였다.
참 잘생긴 또라이. 녹화 시간 내내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변수 덩어리. 그 소심했던 찐따가 어떻게 이런 인격 성형을 했는지, 박영제의 입장에서는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아하하핫, 오랜만에 봤는데 그런 장난을 치고 그러냐.”
그렇게 말하며 박영제는 군자의 어깨를 살짝 치려 했으나.
휘익-.
번개처럼 민첩한 군자의 회피 동작 덕분에, 손만 뻘쭘하게 허공을 갈랐다.
“아하하하···.”
그럼에도 박영제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일진 양아치라는 단어가 나온 뒤부터 제작진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으니까.
출연자의 학폭 문제는 제작진으로서도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두 분이 아는 사이셨나 봅니다?”
총괄PD 김석훈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박영제가 대답했다.
“예, 그, 중3때부터 알고 지낸 사입니다.”
“오, 그래요? 김 작가, 이거 알고 섭외한 거야?”
“아뇨 몰랐습니다.”
“그래? 그럼 두 분은 중학교 친구신 건가?”
“예에,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도 바로 옆 반이었고요.”
“오오, 재미있는 인연이네요. 나중에 두 분이서 듀엣 한 번 해도 재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던 김석훈 PD가 웃음기를 거두며 군자를 바라보았다.
“근데 일진 양아치라니, 하하.”
“···.”
“박영제 씨가 고등학교 때 좀 불량학생이었나 봐요?”
아직은 웃음이 섞여 있었으나 분명 뼈 있는 질문이었다. 군자 역시 그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김석훈 PD는 박영제의 사람 됨됨이를 알아보려는 것이겠지.
여기서 모두 사실대로 말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군자는 그렇게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먼저, 서은우 팀장의 당부가 있었다.
“확인해 보니, 박영제가 학폭위원회에 회부된 적은 없더군요. 쉽게 말해, 그에게 전과가 남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확실한 증거를 모아야 합니다. 당시 동급생이던 학생들을 찾아 직접 증언을 받아 볼 생각입니다. 증거가 없다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 전까진, 박영제가 학폭 가해자라는 걸 최대한 숨겨 주십시오.”
학폭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모으기 전까지는 언변을 조심해 달라는 당부.
그리고 군자 본인 역시 박영제가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주하성 이후로 모처럼 이기고 싶은 상대를 만났다.
이왕이면 경연에서 먼저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고, 그 다음 과거까지 밝혀 확실하게 보내 버리는 편이 낫지 않은가.
언제나 관용의 자세로 살아온 군자였으나, 이번만큼은 확실히 죄를 물을 생각이었다.
고개를 돌려 박영제를 바라보니, 그는 겁을 먹은 것 같았다. 군자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르겠다는 듯, 공포에 질린 표정.
그런 박영제를 보며 군자가 가볍게 웃었다.
걱정 마라, 오늘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을 테니.
다시 김석훈 PD를 바라보며 군자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하하, 사실 박영제 님과 그다지 막역한 사이는 아니었답니다.”
“그래요? 그럼 일진 양아치라는 말은 왜···.”
“아, 그것은 동료들이 장난으로 가르쳐 준 단어입니다. 제가 현대 신조어가 서툴러, 종종 용례에 맞지 않는 단어를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군자가 싱긋 웃어 보였다. 박영제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군자를 따라 웃었다.
“야이 씨, 그걸 몰랐다는 게 말이 돼?”
“미안, 내가 요즘 말을 잘 모른다.”
“푸하핫, 그럼 옛날 말로 하면 뭔데.”
“우라질 놈?”
“!”
“하하, 장난이다 장난.”
군자와 박영제는 장난을 주고받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김석훈 PD는 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를 놓치지 않았다.
“···흐음···.”
고등학교 때 뭔가 있었던 건 분명해 보이는데.
그러나 김석훈의 입장에서도 둘을 하차시키는 것은 큰 손해였다. 7IN이야 뭐, 출연만으로도 시청률 상승을 보장하는 사기 아이템 같은 게스트고.
박영제 역시 최근 데뷔한 솔로 아티스트 중엔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가자.
걱정은 접어 두고 제작 회의에 집중하기로 한 김석훈이었다.
아육시 이후로 이제 어그로 끄는 방송은 안 하기로 했는데. 이번엔 힐링 되는 듀엣 음악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게 목표였는데.
하지만 오는 논란은 안 막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좋습니다. 그러면 인사는 이 정도로 해 두고, [노래해 듀오>의 프로그램 진행 방식부터 설명하겠습니다. 개요는 모두 들으셨겠지만, 우리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듀엣 가요제’입니다. 마음에 맞는 게스트를 출연자가 직접 섭외하여 듀엣 곡을 작곡, 공연까지 하는 포맷의 음악 예능입니다. 아, 물론 섭외된 게스트의 출연료는 저희가 부담합니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아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김석훈 PD는 여기에 추가적인 설정을 덧붙였다.
“게스트는 누구를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나이 무관, 장르 무관. 여러분과 함께 멋진 무대를 만들 수 있는 아티스트라면 누구라도 환영입니다.”
“···.”
“딱 한 가지 조건만 지켜 주신다면요.”
“한 가지 조건?”
“예. [노래해 듀오> 무대는 반드시 혼성이어야 합니다.”
“!”
“즉 남자 출연자는 여자 게스트, 여자 출연자는 남자 게스트를 불러야 한다는 말이지요.”
* * *
[노래해 듀오> 제작 회의가 끝난 뒤, 솔라시스템 사무실에선 긴급 회의가 열렸다.김석훈 PD가 밝힌 ‘혼성 듀엣’ 조건은 서은우 팀장 역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회의 시작 직전, 김석훈 PD가 독단에 가까운 결정으로 추가한 조건이니까.
혼성 듀엣. 이제 갓 데뷔한 아이돌에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물론 종종 아이돌 멤버들이 혼성 듀엣 무대를 꾸미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연차가 어느 정도 된 아이돌이나, 아티스트적인 성향이 강한 솔로 아이돌들이 대부분이다. 7IN처럼 이제 막 데뷔한 신인 아이돌이 혼성 무대를 꾸미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소속사 솔라시스템 역시 난감한 입장이었다.
멤버들은 여전히 출연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하고 있었으나, 막상 콜라보할 만한 여성 아티스트가 마땅치 않았다.
회의실에 모인 멤버들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가장 먼저 손을 번쩍 든 것은 태웅이었다.
“팀장님, 포니타 누나들이랑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 누나들이 우리 되게 좋아하시던데요.”
“안 됩니다. 걸그룹과 콜라보는 위험한 생각이에요.”
“왜요? 우리 완전 찐 우정인데.”
“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저 역시.”
“예?”
“남녀 사이에 친구란 없다고 보는 입장이고요.”
“헐, 팀장님 선비셨구나.”
“오오? 그것이 정말입니까?”
팀장님이 선비라는 말에 군자가 빵긋 웃으며 행복해 했지만, 다른 이들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마땅한 대안이 없어 보였으니까.
“으음, 그러면 20대 중후반의 솔로 가수 님들은 어떨까여?”
“그것도 위험합니다. 충분히 정분이 날 수 있는 나이 차 아닙니까.”
“우와, 진짜 보수적이시네.”
“다 여러분들이 매력적인 탓입니다.”
“아하핫, 말은 잘 하신다~”
“그러게여. 분명 거절 당했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넹.”
“그럼 아예 결혼한 분은 어떨까요? 그러면 정분 날 걱정은 안 해도 되잖아요.”
“좋은 생각입니다만, 기혼자 아티스트 중엔 파급력 있는 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끄으응···.”
팬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며 안전하게 혼성 무대를 꾸밀 수 있으면서도, 최고의 화제성과 파급력을 만들 수 있는 여성 아티스트.
“누가 있을까-.”
모두가 머리를 싸매고 있는 것을 보며 군자가 웃었다.
“선비 형아, 지금 웃을 때가 아니라고여. 형아도 빨리 대안 좀 내 봐여.”
군자는 말 대신 노래로 현재에게 대답해 주었다.
“딱 십분만 줘, 널 내 거로 만들게-.”
“?”
“잊었느냐, 여름날의 풍류를.”
“!”
“우리 모두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단다.”
“···헐, 맞네!”
그제야 멤버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불후의 명곡 [10분>을 떼창하는 멤버들을 보며, 서은우 팀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박자에 맞춰 손가락 딱딱 소리를 내 주고 있었다.
“···뭡니까? 나도 같이 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