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98)
#98
뒷방 늙은이의 등장
파티 분위기가 잦아들고, 마침내 소년들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을 때.
“···여, 영의정 님을 섭외하자고요?”
서은우 팀장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의정이라. 상상도 못했던 이름이다.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던 슈퍼스타 중 한 명. 초야에 묻힌 지 꽤 됐지만, 아직도 모든 연예인을 통틀어 한 손에 꼽을 만큼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기혼자다. 놀 만큼 다 놀고, 현자가 되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이미지 아니던가. 아마 팬들도 연애로 인한 걱정은 절대 안 할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더 환호할지도 모른다. 결혼 후, 오히려 여성 팬들에게 인지도가 수직상승한 영의정이었으니까.
영의정은 [노래해 듀오>의 파트너로 완벽한 인물 같았다. 물론 섭외가 가능하다면.
“크흐음-.”
문제는 컨택 포인트가 없다는 점이었다.
서은우 팀장 역시 영의정과는 안면이 있었다. 그가 이 업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시점이 영의정의 은퇴 시점과 맞물려 있었으니까. 당시 막내 로드 매니저로서 영의정의 밴을 몇 번 운전했었다.
그러나 인연이라 하기엔 너무도 얄팍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연락처도 없었고. 그렇다고 공식적으로 회사에 섭외 요청을 할 수도 없었다. 소속사라는 것 자체가 없었으니.
제주도에 틀어박힌 뒤, 매니지먼트 계약도 해지한 채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영의정이었다. 섭외를 하고 싶어도 연락처가 없으니 제안 단계부터 난관일 테다.
물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제주도에 직접 찾아가 삼고초려를 하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삼십 년 전에도 안 썼을 것 같은 방식이지만, 섭외만 가능하다면 뭔들 못할까.
그렇게 한다고 영의정을 섭외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으나, 직접 찾아가는 것 외엔 방법이 없어 보였다.
“알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원한다면, 제가 어떻게든 섭외해 보겠습니다. 다만, 섭외가 불발되었을 시를 대비하여 플랜B를 준비해 놓아야 합니다.”
“플랜B요?”
“예. 솔직히 말하자면, 영의정 님을 섭외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연락처도 없고, 연도 없으니 설득에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아하.”
“그러니,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해 놓지 않으면···.”
“근데, 저희 있는데요.”
“예?”
“영의정 누나 연락처, 저희 다 있어여.”
그렇게 말하며 몇몇 멤버들이 스마트폰을 열었다. 그들의 연락처엔 ‘영의정 누나’라고 저장된 항목이 분명히 보였다.
“···?”
서은우의 입장에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인맥으로 먹고 산다는 매니지먼트 업계에서도, 영의정의 연락처를 알고 있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거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연유로 이 아이들의 핸드폰에 영의정의 연락처가 저장돼 있는 걸까.
“···이거, 혹시 가짜 연락처인 건···.”
“아잇, 팀장님! 속고만 사셨나.”
“우리 팀장님 안되겠네. 기다려 보세여!”
연락처의 진위 여부를 확인시켜 주겠다는 듯, 현재가 스마트폰을 테이블 위에 내려 놓고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수신자는 영의정. 전화벨이 채 세 번도 울리기 전에, 수신자가 덜컥 전화를 받았다.
– 현재 안녕~
“넹 누나.”
– 넌 애가 무슨 전화를 이렇게 많이 하니? 요즘 애들은 전화 잘 안 하지 않아?
“헤헤, 전 전화가 좋아서여.”
– 근데 나두 그렇다? 이상하게 전화가 편하더라~
스피커폰으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서은우 팀장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 목소리, 말투, 문자보단 전화를 좋아하는 습성. 그가 알던 영의정의 모습 그대로였으니까.
– 오늘은 무슨 일이야? 또 고민상담 하려구?
“아뇨 누나, 오늘은 일 얘기 좀 하구 싶은뎅.”
– 일 얘기?
“누나, 누구 좀 바꿔 줘도 괜차나여?”
– 그래, 바꿔 줘 봐.
현재가 서은우 팀장에게 눈짓을 보내자, 서은우 팀장이 침을 꿀꺽 삼키며 스피커폰 앞으로 다가갔다.
이젠 수많은 팀원들을 책임지는 위치에 올랐지만, 영의정의 목소리를 들으니 꼭 막내 로드매니저 시절로 회귀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누, 누님.”
– 에? 누님?
“저 은웁니다. 서은우요.”
– 서은우?
“혹시 기억하실지···.”
– 아, 그 잘생긴 로드!
“!”
– 야, 너 잘 지냈어? 이게 얼마 만이니 진짜.
“···누님···.”
– 푸하하, 아직도 누님 누님 하네. 그냥 누나라고 하라니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연락처의 진위 여부를 의심하던 서은우 팀장은, 이제는 거의 눈물 떨어질 것 같은 얼굴로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 * *
서은우 팀장의 예상과는 달리, 섭외는 너무나도 쉽게 성사됐다.
프로그램 이름, 개요 정도만 설명한 것이 전부였음에도 영의정은 흔쾌히 OK 사인을 보냈다.
– 애들이 나랑 하고 싶다고 한 거지?
“네, 맞습니다 누님.”
– 그럼 해야지. 돈은 상관없어~
심지어 출연료 협상마저 고사했다. 돈은 그냥 대충 주고 싶은 만큼 주라는 식이었다.
“···그래도 개런티는 누님 급만큼 받으셔야···.”
– 몰라 몰라, 내가 급이 어딨어. 이제 은퇴한 뒷방 늙은인데.
“뒤, 뒷방 늙은이라니요! 아직도 얼마나 대단하신데.”
– 푸하핫, 알았어. 그럼 은우 네가 알아서 협상해 줘.
“알겠습니다.”
– 다른 세부 조건은 우리 만나서 얘기해 보자. 나 지금 남편이랑 옥수수 먹으러 가야 되거든?
“아, 예. 그럼 조만간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 응, 애들이 내 번호 있으니까 물어보구~
전화를 끊은 뒤에도 서은우 팀장은 한동안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이었다.
단 5분 만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섭외하기 어려운 연예인을 섭외해 버렸다.
“···여러분.”
“넵?”
“대체 영의정 님과는 언제 만나서 언제 연을 쌓은 겁니까.”
“후후, 제주도의 초여름은 참으로 아름답더이다.”
군자와 멤버들은 그들이 제주도에서 영의정 부부를 만나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서은우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낭만이 멸종해 버린 연예계에서 이런 아름다운 일화라니!
하지만 방금 섭외 전화로 확인이 되었으니, 이제는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나는 여러분을 돕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건데, 어째 매번 내가 도움을 받는 것 같군요.”
“아이,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여.”
“그럼 저희 탕수육 사주세요, 탕수육!”
“아하하핫, 탕수육 좋지~”
“그건 안됩니다.”
“헐.”
“아니, 뭐가 그렇게 단호하세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멋진 분이랑 콜라보 공연 할 건데, 여러분들도 가장 멋진 모습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으으··· 맞는 말이라 반박을 못하겠네.”
“유군자 넌 좋겠다, 아무리 먹어도 살 안 쪄서.”
태웅의 볼멘 소리에, 슈크림빵을 들고 있던 군자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대답했다.
“하하, 좋은 체질을 타고난 덕분이지.”
언젠가 상태창의 보상으로 받은 ‘먹어도 살 안 찌는 체질’이 아니었다면, 군자도 이렇게 주전부리를 실컷 즐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동료들이 식단 조절에 들어가기로 했으니, 군자도 시무룩한 표정으로 조용히 슈크림빵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체질이 좋다고 어찌 나 혼자 맛있는 걸 먹겠느냐.”
고생하는 동료들 앞에서 맛있는 걸 와구와구 먹는 것은 전혀 선비다운 태도가 아니지 않은가.
빵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군자는, 그걸 먹는 대신 가만히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태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군자, 너 뭐 하냐?”
“빵을 보고 있단다.”
“아니, 그건 알겠는데. 왜 그러고 있냐고.”
“태웅이 넌 자린고비의 일화를 아느냐?”
“자린고비? 알지. 가을은 자린고비의 계절 아니냐.”
“후후, 정말 말이 안 통하는구나.”
“아 혀엉, 그건 천고마비잖아요.”
“그런가? 아무튼 그게 빵 쳐다보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자린고비는 굴비 구이를 먹는 대신 천장에 걸어 놓은 굴비를 가만히 바라보며 배를 채웠다고 하지.”
“?”
“동료들이 힘들어 하니 나도 빵을 먹진 않겠으나, 눈으로라도 요기를 하기 위해···.”
“야, 그냥 먹어 먹어.”
“···그럼 마지막으로 이것만?”
태웅의 윤허가 떨어지자 마자 군자가 행복한 표정으로 슈크림빵을 와구 베어 물었다.
“아오, 저거 웃는 거 봐. 킹받네 진짜.”
“흐흐, 마이꾸나.”
“먹고 말해라 먹고.”
“웅.”
그래, 달콤하고 맛난 주전부리를 먹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임이야.
이제 곧 영의정 선배님과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야 하니까.
* * *
한편, 박영제의 소속사 ‘네이션스’에서도 박영제를 위한 섭외작업이 부지런히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 막 아이돌 활동을 시작한 7IN과 달리, 박영제는 상대적으로 선택의 폭이 넓었다. 가창력을 앞세워 여성 발라드 솔로와 듀엣을 할 수도 있고, 연차가 좀 쌓인 여성 아이돌 멤버와 댄스 유닛을 결성하는 것도 가능했다.
“칠린 애들이야 생각할 거 많겠지. 근데 영제 넌 포지셔닝이 잘 돼서 괜찮아. 막말로 스킨십 좀 있는 무대 해도 팬들이 크게 반발하진 않을 걸. 작년 연말 시상식에서도 이미 한번 해 봤잖냐.”
“하긴, 우리 팬들이 좀 관대하긴 하죠.”
“그래도 진짜 뭔 짓 하지는 말고. 내가 말 안 해도 알지?”
“형, 제가 뭔 짓을 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너 임마, 지난번에도 노엘이랑 둘이 작업실에 여자애들 불렀지? 내가 모를 줄 알아?”
“아이, 그건 이제 친구들이 곡 작업하는 거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아무튼 뻘짓 하지 마. 알았어? 그렇게 헛짓거리가 하고 싶으면 아무도 모르게 하든가.”
“예, 알겠슴다.”
다양한 후보군 중, 박영제가 선택한 아티스트는 걸그룹 ‘베리타스’의 혜진이었다.
베리타스는 걸그룹 중에서도 여성 팬덤이 주를 이루는 팀으로, 그 중에서도 보이쉬한 매력을 가진 혜진은 벌써 엄청난 개인 팬덤과 상당한 규모의 개인 채널을 가지고 있었다.
“콜라보 음원만 잘 나오면 혜진이네 유튜브 덕도 좀 볼 수 있겠죠?”
“당연하지. 노래랑 퍼포만 좋으면 뭔들 안 되겠냐? 잘하면 틱톡 챌린지 같은 것도 나올 걸.”
“오오, 챌린지.”
“그러니까 노엘이한테 곡 좀 잘 써 보라고 해. 걔도 칠린이랑은 악연 좀 있잖아.”
“그렇죠, 걔도 아육시 참가자였으니까.”
“그래, 이번엔 이겨야지.”
박영제의 담당 매니저 홍현석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한 톤 낮은 목소리로 박영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영제야, 너 유군자랑 같은 학교 출신이더라.”
“아, 예. 그랬었죠.”
“걔 학교 다닐 땐 어땠냐?”
“걍 뭐, 무난했어요. 잘 기억도 안 나요.”
“제작회의 때 걔가 너한테 일진 양아치라고 했다면서.”
“아, 그거···.”
“너, 설마 걔 괴롭히고 그런 건 아니지?”
“아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세요. 그랬으면 걔가 [노래해 듀오> 나왔겠어요? 캐스팅 목록 뻔히 다 봤을 텐데?”
“하긴, 그렇지?”
“형, 나 노는 건 좋아했어도 선은 안 넘었어요. 내가 뭐, 지금까지 뭐 학폭으로 이슈 된 적 있었어요? 뭐가 나오려면 벌써 나왔어야죠. 대국민 오디션 예능으로 데뷔하고, 아이돌 활동까지 2년이나 했는데.”
“뭐,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한다만···.”
“암튼, 걱정하지 말아요. 담에 리허설 갈 때 군자랑 제대로 얘기 좀 해 봐야겠네.”
“그래. 인사 제대로 하고, 혹시나 녹화 할 때 고등학교 시절 얘기 나올수도 있으니까 너도 대비 좀 해 놔. 알았지?”
“네 네, 걱정 마세요.”
홍현석 실장에게 대답하며, 박영제는 다시 한번 군자를 떠올렸다.
그 자식, 다음에 만날 땐 제대로 기강 한번 잡아야겠구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