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99)
#99
참으로 마음에 드는 제목이로다
[노래해 듀오> 촬영을 몇 주 앞두고, 김석훈 PD는 두 번째 제작회의를 소집했다.경연의 방향성과 무대 장치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인 만큼, 모든 참가팀이 자신의 파트너와 함께였다.
박영제 역시 걸그룹 ‘베리타스’의 메인 댄서 혜진과 함께 자리한 가운데.
딱 한 팀, 오직 7IN만이 파트너를 대동하지 않은 채 회의실에 나타났다.
“7IN은 파트너 없이 오셨네요?”
“네. 파트너 분 일정이 여의치 않아서, 저희만 오게 됐습니다.”
“아하···.”
파트너가 오지 않았다는 말에 회의실에 작은 동요가 감돌았다. 박영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러면 그렇지. 혼성 파트너 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후배님들, 파트너 구하기 어렵죠?”
“···.”
“하긴, 신인 아이돌한테 혼성 퍼포먼스라는 게 쉽지 않긴 하지.”
“···.”
“근데 어떡해요, 이 프로그램 컨셉이 혼성 경연인데. 혹시 계속 어려우면 나한테 말해 줘요. 나도 같이 알아봐 줄게.”
7IN을 살살 긁는 박영제의 태도에, 그의 파트너인 혜진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오빠, 왜 그래요···.”
“내가 뭘? 도와 준다고 한 건데.”
날선 박영제의 도발에 회의실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굳었다. 적당한 연차, 탄탄한 지지층, 지난 3년 간의 실적을 모두 가진 박영제를 기싸움으로 찍어누를 만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정작 도발 당한 7IN 멤버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마치 박영제의 말이 딱히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 군자가 무해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걱정 고맙다. 그런데 우리도 이미 파트너를 구했단다.”
“···?”
“혼성 파트너를 못 구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단지 일정 때문에 오늘은 참석하지 못했을 뿐이지.”
“아아, 그래?”
이미 파트너를 구했다는 군자의 말은 박영제가 보기엔 허세에 불과해 보였다.
이 새끼 보게.
기억 속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진 군자를 보며, 박영제는 격세지감을 느꼈다.
이게 정말 유군자 맞나? 눈썹에 힘만 팍 줘도 어깨부터 움찔거리던 그 찐따 유군자 맞냐고. 달라진 군자의 모습을 보며 박영제는 자꾸 헛웃음이 났다.
“근데 군자야.”
“으음?”
“공적인 자리에서 반말은 좀 그렇지 않냐?”
“아···.”
“그래도 내가 3년이나 먼저 데뷔한 선배잖아.”
“···.”
“전에는 경황이 없어서 말 못했는데, 이런 건 좀 지켜 줬음 하는데.”
“···예, 알겠습니다.”
예의를 지키라는 박영제의 말에 군자는 바로 말을 높이며 고개를 숙였다. 박영제로서는 만족스러운 그림이었다. 고개를 들면 아마 그 해사한 얼굴도 똥 씹은 표정이 돼 있겠지.
그러나 군자의 표정은 여전히 해맑았다. 아니, 오히려 고개를 숙이기 전보다 더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으로 박영제를 응시하고 있었다.
“뭘 봐?”
“박영제 선배님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왜···.”
“선배 대접을 원하셨으니, 이제 진짜 선배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실 것인가 해서요.”
“그럼 지금까지는 선배 같지도 않았다 이건가?”
“하하, 상대의 말을 굳이 꼬아 듣는 것은 소인배의 태도입니다.”
“···싸우자는 거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뭔데?”
“이제 저 역시 후배로서, 선배님께 칭찬과 아부만 일삼는 가짜 후배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그럼 이게 진짜 후배의 자세인가?”
“그렇습니다. 참된 선비란 임금 앞에서도 목숨을 잃을 각오로 간언을 하는 법이지요.”
“그래서, 지금 죽을 각오로 이러고 있다?”
“아니요?”
“뭐? 왜 또?”
“솔직히 선배님이 임금님까진 아니시니까는···.”
“허.”
말을 이어나가면 나갈수록 박영제는 철저히 말리는 기분이었다. 그가 무슨 말을 던져도 군자는 본인의 페이스로 맞받아쳐 버렸으니까.
싸늘했던 회의실 분위기는 점점 웃참 챌린지로 변해 가고 있었다. 특히 7IN 멤버들은 웃음을 참느라 호흡곤란이 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크흠, 큼-.”
개판을 보다 못한 김석훈 PD가 헛기침과 함께 끼어들었다.
명목은 제작 회의였지만 이 참에 참가자들끼리 좀 친해져 놓으라고 대화를 방해하지 않는 것인데, 이대로 두었다간 주먹다짐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다.
“자, 동창 두 분은 이따가 회의 끝나고 맥주라도 한 잔씩 하시고. 일단은 필요한 얘기부터 합시다. 오늘 파트너 대동하신 참가자 분들은 파트너 픽스라고 생각해도 되겠죠?”
“네, 맞습니다.”
“그러면, 혹시 경연 곡 컨셉이나 퍼포먼스에 대해서 구상해 오신 분들도 있을까요?”
김석훈의 질문에 박영제가 자신 있게 번쩍 손을 들었다.
“넵, 저희는 어느 정도 준비해 왔습니다.”
“오, 조금 들어 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박영제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휴대용 앰프에 연결하자, 곧 노엘이 만든 샘플 비트가 흘러나왔다.
딱히 이번 경연을 위해 만들어진 비트는 아니었으나 일단 노엘이 만들어 둔 습작 비트를 아무거나 챙겨 온 박영제였다. 이런 회의에서는 준비성을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제작 회의에서부터 단번에 주목을 받으면서 치고 나간다. 그렇게 PD의 눈에 들어야 좋은 편집을 받으면서 분량을 낭낭하게 챙길 수 있지. 박영제의 계획은 분명했다.
딴, 따안, 따아안-.
노엘의 비트는 깔끔하고 유려했다. 아육시에선 비록 지현수에게 개박살이 난 노엘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연습생의 규격을 한참 벗어난 프로듀서였다.
단조 멜로디를 기반으로 한 라틴풍의 비트에, 김석훈 PD도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웃었다.
“좋은데요.”
“감사합니다. 우리 회사 노엘이가 만든 비트예요.”
“아, 노엘? 아육시 나왔던?”
“네. 그 노엘 맞습니다.”
노엘이란 이름은 김석훈 PD 뿐만 아니라 군자에게도 꽤나 반가운 이름이었다. 노엘이라, 2차 경연 때 우리 현수와 겨뤘던 그 친구의 이름 아니던가! 반가운 마음에, 군자가 오랜만에 그의 애칭을 불렀다.
“그 음란한 청년 말씀이시군요?”
“으, 음란한 청년?”
“음란하다니, 유군자 씨도 노엘 씨랑 친분 있으신가 보네.”
“아, 친분까지는 아니고. 관상을 조금 보았습니다.”
“관상이요? 군자 씨, 관상도 볼 줄 알아요?”
“예, 조금 볼 줄 압니다.”
“오오, 나도 관상 좀 봐 주세요.”
“하하, 그러면 회의 안건이 끝난 뒤에···.”
“앗, 그러게요. 회의 중이었지.”
노엘의 비트를 이용하여 잠시 회의실의 중심에 선 박영제였으나,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다.
회의가 끝난 뒤 관상을 보기 위해 군자에게 모여드는 이들을 보며, 박영제는 애써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혜진아, 넌 관상 같은 거 안 믿지?”
“뭐, 안 믿긴 하는데···.”
“다들 왜 저런 거에 환장하나 몰라.”
그러나 그의 파트너인 혜진은 생각이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그, 오빠. 오늘 먼저 가실래요?”
“어? 왜?”
“저 관상 좀 보고 가려고요.”
“뭐? 안 믿는다며?”
“···그냥 재미로 한 번···.”
“···그래, 그럼 그러든가.”
“네 오빠! 담에 연습 때 봐요!”
어느새 군자는 해맑은 얼굴로 사람들에게 푹 파묻혀 있었다. 박영제가 기억하는 유군자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 * *
다음 날, 솔라시스템 대회의실.
비밀리에 서울로 돌아온 영의정이, 테이블에 앉아 양갱과 유과를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
“어우,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이런 게 맛있네.”
“영의정 대감 마님!”
“오, 군자. 오랜만이다 야~”
군자로서는 참으로 흐뭇한 광경이었다. 동료들은 ‘할아버지 취향’이라고 하며 군자의 주전부리 취향을 무시했으나 영의정은 달랐다.
역시 대감 마님쯤 되니 무엇이 진짜 맛인지 깨닫고 계심이야.
이윽고 멤버들이 모두 회의실로 들어왔다. 오랜만의 재회였으나, 영의정은 마치 엊그제 만난 친척 누나처럼 멤버들을 살갑게 대했다.
“야, 너네 그 새 더 잘생겨졌다? 데뷔하고 방송 물 좀 먹었다고 벌써 연예인 돼 버렸구만? 제주도 왔을 때만 해도 순둥순둥한 꼬맹이들이었는데.”
“흐흐, 감사합니다!”
“요즘 바빠 죽겠지? 원래 데뷔 직후가 가장 바쁘고 힘들어. 여기 은우··· 아니, 아니지. 지금은 팀장님이라고 했지? 그래, 서 팀장님한테 투정도 많이 부리고 그래.”
“넵!”
“아, 근데 너무 많이 괴롭히진 말고. 나 신인 때 서 팀장한테 너무 징징댔더니, 글쎄 얘가 내 앞에서 막 엉엉 울었잖아.”
“헐, 서 팀장님이요?”
“그래.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예전엔 완전 울보였다니까.”
“푸하학-.”
“잘생긴 애가 눈물 뚝뚝 흘리니까, 그땐 나도 좀 설레긴 했는데.”
“오오, 설마 사귀셨어여!?”
“아니. 그때 사장님이 그러더라고. 너네 사귀다 헤어지면 운전은 누가 하냐고. 영의정 네가 할 거냐고. 아주 정신이 퍼뜩 들더라? 나 운전면허 주행시험 다섯 번 떨어졌거든.”
“우왕, 누나 운전은 안되겠네여.”
“그래. 그 때 서 팀장이랑 사귀었으면 큰일 날 뻔 했지~”
즐거운 옛날 이야기와 함께한 간식 시간이 끝난 뒤,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됐다.
오늘의 안건은 경연곡 컨셉 회의.
제작회의는 군자의 원맨쇼나 다름없었지만, 그 와중에도 박영제의 준비성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요즘 핫한 걸그룹 멤버를 섭외했으며, 비트까지 미리 뽑아 놓았다.
그에 비해 7IN과 영의정은 아직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 너무 놀고 있었나? 우리 오빠한테 곡이라도 좀 써 달라고 할 걸 그랬나 봐.”
“아닙니다 누님. 손님이시니까, 그런 준비는 저희가 하는 게 맞죠.”
“그래? 그러면 빨리 컨셉 좀 짜 봐~ 난 뭐가 됐든 할 수 있으니까.”
영의정의 자신감은 허풍이 아니었다. 실제로 가장 격렬한 EDM 댄스 음악부터 부드러운 R&B, 발라드까지 모든 장르를 소화해 낸 가수였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반대로 그 넓은 스펙트럼이 고민을 만들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으니, 어떤 장르와 컨셉이 최선일지 도리어 고민이 되는 것이다.
“흐음, 어떤 컨셉을 가져가는 게 좋을까요.”
“난 정적인 무대보단 동적인 무대를 하고 싶은데. 너희들이 아육시에서 했던 것처럼.”
“저희도 동감입니다. 그럼 누님, 혹시 선호하는 장르나 컨셉이 있으실지···.”
“글쎄, 잘 모르겠네. 내 노래들 보면서 참조 좀 해 볼까?”
그렇게 말하며 영의정은 음악 플랫폼에 자신의 이름을 입력했다. 곧 영의정의 노래로 만들어진 플레이리스트가 회의실의 대형 스크린을 가득 메웠다.
“우와-.”
“엄청 많다···.”
놀라운 것은 그 많은 노래 중 절반 이상은 멤버들이 흥얼거릴 수 있을 만큼 익숙한 노래였다는 것이다.
다만 군자에게는 조금은 생소한 목록들이었다. 제주도에 가서 익힌 [10분> 정도는 알았지만, 다른 것들은 모두 한 세대 전의 노래들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와중에도 군자의 시선을 잡아 끄는 이름은 있었다.
“오오, 저것은···.”
[유교우먼]오호라, 유교우먼이라!
어쩐지 흡족한 노래 제목을 보자마자, 군자의 심장이 뻐렁치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