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Martial Arts Trainer RAW novel - Chapter (48)
◈ 하산 (2)
현광의 도움으로 소환단의 내기를 모두 흡수하자, 족히 이십 년 공력에 가까운 내공이 무진의 단전에 추가로 빼곡히 들어찼다.
기존에 무진이 지니고 있던 내공의 세 배가 조금 안 되는 양이 단번에 늘어난 것이다.
이 정도의 내공이면, 당장 무림으로 나서서 ‘나 무림인이오!’ 하고 다녀도 될 정도의 수준이었다.
고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수준인가 하면 부족했지만, 나이를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양이었다.
하지만 세상일이 으레 그렇듯, 마냥 긍정적이기만 한 상황은 아니었다.
갑작스레 내공이 너무 늘어난 덕에 현재 무진의 단전은 포화 상태였고, 무진은 자신의 기도를 전혀 갈무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증거가 바로, 형형하게 빛나고 있는 무진의 안광이었다.
“허허허. 지금 상태로 무공을 사용했다간, 네 몸이 먼저 부러질 듯하구나.”
“……소승이 너무 과욕을 부렸던 모양입니다.”
무진 또한 어렴풋이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무진을 향해, 현광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이 할애비를 따라오려무나. 지금의 너에게 큰 도움이 될 이를 찾아갈 것이니.”
* * *
현광과 함께 도착한 장소는 소림의 한 전각이었다.
그리고 그 전각의 마당에서는, 무궁 녀석이 금강권의 기수식을 취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무궁의 몸이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정체불명의 느릿느릿한 주먹질을 연습하던 무궁은, 전각으로 들어서는 무진을 발견하고는 ‘어?’ 하는 감탄사를 터트렸고.
“갈(喝)!”
무궁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순간. 전각 안에서 웅혼한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히익.”
그 소리에 경기라도 일으키듯, 덩치에 안 맞는 기괴한 소리를 내뱉은 무궁이 다시금 금강권의 기수식을 취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웅혼한 사자후의 주인이 방문을 열고 무진과 현광을 맞이해 주었다.
“현광 사백을 뵙습니다.”
그는 사천왕상이 떠오르는 묵직한 체형과 인상을 자랑하는 중년인. 혜담이었다.
혜담은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무진의 기괴한 머리를 한 번 째려보더니 입을 열었다.
“무진의 상태 때문에 찾아온 것입니까?”
“허허허. 역시 혜담 사질이로구나.”
과연. 고수인 혜담은 단번에 무진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제 방식대로 진행해도 괜찮겠습니까?”
“허허허. 그리하기 위해 이리 찾아온 것 아니겠는가.”
“알겠습니다.”
혜담은 가타부타 말을 덧붙이지 않고, 정말 핵심만 집어서 대화를 마쳤다.
“허허허. 그럼 나는 자네만 믿겠네.”
현광 또한, 굳이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무진을 바라보았다.
“여기 혜담 사질에게서 수련을 받으며, 그 기운을 갈무리하도록 하거라.”
“예. 할아버님!”
무진이 시원하게 답하자, 현광은 자애롭게 웃어 주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전각을 나섰다.
“소승이 무엇부터 시작하면 되겠습니까? 혜담 사숙조님.”
무진의 그 물음에, 혜담은 말로 답하는 대신 고개만 살짝 틀어 무궁의 옆을 바라보았다. 무진은 적당히 눈치껏, 혜담이 시선이 향한 곳에 걸어가 자리 잡았다.
그리고 뭔가를 지시하는 대신, 혜담은 자신의 제자를 호명했다.
“법휘.”
“예. 스승님!”
“무궁과 같은 방식으로. 완전히 기초부터 갈 것이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혜담의 지시에 답한 법휘가 무진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연환권의 기수식을 취해 보거라.”
법휘의 지시에 따라, 무진은 우선 가장 처음 배웠던 무공인 연환권의 기수식을 취했다.
“네가 운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내기로 연환권을 순서대로 펼쳐 보거라.”
‘최소한의 내기라.’
무진은 정신을 집중해, 단전에 똬리 튼 거대한 기운과 마주하였다.
이제 막 무공을 배우고 이 년이 조금 넘은 무진에게 있어선 너무나 많은 내공. 무진은 그 묵직한 내공의 일부를 잡아당겨 혈도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본래 무진은 실타래 정도의 내기를 뽑아내려 했으나, 실제로 뽑혀 나온 양은 굳이 표현하자면 동아줄 같은 굵기의 무언가였다.
‘지금은 이 정도가 내 최소한인가?’
일단 그 정도로 받아들인 무진은, 내기를 각 혈도로 흘려보내며 연환권의 초식들을 펼쳐 나갔다.
특별한 요결도 필요치 않은 가장 기본적인 무공이 바로 연환권이었다.
연환권의 초식을 순서대로 펼쳐 나가길 잠시. 계속해서 혈도로 내기를 흘려보내던 단전은, 어느 정도 내기를 흘려보내자 마치 댐이 뚫린 것처럼 더욱 많은 양의 내공을 뿜어 대기 시작했고.
“갈!”
그 순간. 정심하기 그지없는 불가(佛家)의 기운이 깃든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갑작스런 고함은 사람을 놀라게 하기 마련. 하지만 혜담의 정순한 사자후는 무진의 마음을 오히려 진정시켜 주었다.
“동작을 멈추고 내기를 갈무리하거라.”
옆편에 서 있던 법휘의 지시에 따라, 집중력을 되찾은 무진은 천방지축으로 날뛰려는 내기를 진정시켰다.
“후우.”
무진은 가까스로 내기를 진정시킨 뒤에야 눈을 떴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것이다. 최소한의 내기로. 내기의 양에 일절 변화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완벽하게 제어하는 데 실패할 때마다, 내기를 갈무리하고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무진은 대답과 함께, 다시금 연환권의 초식을 처음부터 펼쳐 나갔다.
혜담의 수련법.
그것은, 부동심(不動心)을 기르기 위한 훈련이었다.
혜담이 익히고 있는 무공은 극양지기를 다룬다. 그리고 극양지기는 그 성질로 인해 사람을 쉽게 흥분시키곤 했다.
그런 극양지기를 자유자재로 다루기 위해서. 흥분으로 인해 실수를 벌이거나, 주화입마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바로 부동심이었다.
사실 이런 부동심을 기르기 위한 다양한 수련법이 있었으나, 현재 무진이 진행하고 있는 ‘동일한 양의 내기를 유지하는 수련’은 무진으로 인해 고안된 것이었다.
적외선 조사기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연습하던 혜담이 고안해 낸 수련법이었다.
그것이 돌고 돌아, 무진이 그 방법으로 수련을 진행하고 있으니. 인생이란 참으로 오묘했다.
* * *
다음 날.
무진은 하루 동안의 수련으로, 그럭저럭 동일한 양의 내기로 연환권을 펼치는 데 성공했다.
“다음은 소홍권으로 넘어가는 것입니까?”
가까스로 집중력을 유지해 연환권을 마친 무진이 묻자, 법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에는 내기뿐만 아니라 형까지 수련할 것이다. 지금까지 했던 것에 더해, 가능한 한 느린 속도로. 동일한 속도로 연환권의 초식을 펼쳐 보거라.”
“…….”
법휘의 그 말에, 무진이 슬쩍 고개를 돌려 무궁을 바라보았다.
그의 옆에서, 굼벵이 기어가는 속도로 금강권을 펼치고 있는 무궁을 말이다.
‘어제부터 저게 뭐 하는 짓거린가 싶었는데…….’
이제 보니, 무궁 녀석도 연환권부터 시작해 하나씩 올라와 금강권까지 닿은 모양이었다.
‘……불쌍한 놈.’
무진이나 무궁이나 삼대제자가 된 시기는 똑같았다. 즉, 저 녀석은 족히 넉 달 이상을 이런 수련만 계속 반복해 왔다는 소리였다.
무궁이 생긴 건 곰탱이 같지만, 사실 겉멋이 잔뜩 든 녀석이라는 걸 무진은 알고 있었다.
내색은 안 하고 있지만, 아마 지금 저 녀석은 죽을 맛일 것이다.
무진의 그 동정 어린 시선을 느낀 것일까.
‘뭐, 인마?’
한창 느려 터진 금강권을 펼치던 무궁이 얼굴을 구기며 무진을 노려봤고.
“갈!!”
여지없이, 혜담이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히익.”
그리고 무궁 녀석이 덩치에 안 어울리는 괴상한 소리를 내뱉었다.
‘총소리들은 곰탱이가 따로 없네.’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무진은, 마음을 다잡고는 연환권의 기수식을 취했다.
“최대한 천천히. 하지만 동작이 끊기지 않게 하거라.”
법휘의 주의에 따라, 무진은 최대한 천천히 연환권을 펼쳐 나갔다. 동일한 양의 내기를 유지하는 것은 덤이었다.
‘두 배. 아니 족히 세 배는 더 어렵다.’
연환권을 펼치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진 만큼, 동일한 내기를 유지해야 하는 시간은 훨씬 늘어났다.
“그저 무조건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권이 뻗어 나가기 위한 최적의 경로를 계속 생각하거라. 내기의 흐름 또한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스스로를 관조하되, 무아에 빠져 흐름에 몸을 맡겨선 아니 된다.”
느린 속도로 연환권을 펼쳐 가는 무진을 향해, 법휘가 계속해서 경고의 말을 전했다.
무아지경이 무림인에게는 천고의 기연이라고들 하지만, 지금의 무진에게는 독약이었다.
스스로의 기운도 채 다루지 못하는 와중에 멋대로 날뛰었다간, 그대로 주화입마에 빠지는 수가 있었다.
무진은 자신의 근육 한 올, 한 올. 그리고 혈도를 흘러가는 내기의 미세한 흐름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몸을 움직여 나갔다.
그 훈련은 지난하기 그지없었고.
‘이야. 무율이 녀석이 혜담 사숙조의 사손으로 들어왔었으면, 닷새 안에 스트레스성 탈모에 걸렸겠는데? 아. 어차피 대머리라 상관이 없나?’
지루함에 패배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면.
“갈!!”
여지없이 혜담의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끔찍할 정도로 정(靜)적인 수련이었다.
* * *
무진이 연환권 수련을 끝내는 데에는 무려 칠 주야가 걸렸다.
나흘째가 돼서야 무진은 최소한의 속도로 끊임없이 연환권을 펼칠 수 있었고, 그 뒤로 사흘 동안 내기의 양을 조절하는 훈련이 진행됐다.
마찬가지로 똑같은 양만을 사용하되, 그 양을 조금씩 늘려 가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연환권을 끝낸 다음 날부터 무진이 수련하게 된 것은, 입문제자 시절과 마찬가지로 소홍권이었다.
소홍권 또한 연환권과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됐으나, 난이도는 비교를 불허했다.
단순히 내공을 흘려보내기만 하면 그만인 연환권과 달리, 소홍권에는 요결에 따른 독특한 흐름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초식을 진행하다 집중력이 흐트러져 실수를 했던 연환권과 달리, 소홍권은 아예 첫 초식부터 난항을 겪었다.
하지만 악과 깡. 노력의 화신인 무진은, 그 끔찍하게 정적인 수련에 박차를 가했고.
기어코 열흘이라는 시간 만에 소홍권을 끝마칠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남은 무공들이 추풍각부터 시작해서, 구궁보, 나한장, 관음수, 석쇄지, 금강권까지 무려 여섯 가지였지만 무진은 걱정하지 않았다.
소홍권을 수련하며 그럭저럭 요결에 따른 독특한 흐름에도 내기의 양을 유지하는 것에 적응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각 무공마다 요결이 다르고, 거기에 따른 흐름 또한 달랐지만 우선 개념을 깨달았다는 것이 주효했다.
그렇게 다시 열흘이 흘렀을 때.
무진은 기어코 나머지 여섯 가지 무공 모두 동일한 내기. 동일한 속도로 느리게 펼치는 것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수련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무진의 무공은, 여러 무공들의 요결들을 한데 합하여 동시에 펼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무진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제는 내가 정확히 원하는 양만큼 내기를 조절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소환단으로 얻게 된 내공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됐으니까.
어차피 여러 요결을 동시에 펼치는 것이야 지금의 무진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혜걸이나 현천, 혜관. 그리고 현광의 도움으로 충분히 갈고닦았기 때문이다.
“소승은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는 소환단의 기운을 완전히 갈무리하여, 형형하게 빛나던 안광이 사라진 무진이 평온한 어조로 혜담에게 말했다.
“음.”
그런 무진을 향해, 혜담 또한 별다른 말 없이 그저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무진이 등을 돌려 전각을 빠져나가자, 매번 수련 때마다 무진을 이끌어 주었던 법휘가 스승에게 말을 전했다.
“현광 사백조님께서, 왜 무진을 사증손으로 받아들였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스승님.”
고작 한 달 조금 안 되는 시간 만에 넉 달을 먼저 시작한 무궁을 따라잡은 무진이었다.
물론 무진이 진행했던 수련은, 무공이나 싸움에 대한 수련이라기보단 부동심에 대한 수련이었을 뿐. 부동심을 기른 것이지, 무공 수위를 높인 것은 아니었다.
법휘가 놀란 것은, 무진의 집중력 때문이었다.
아직 나이가 어린 무궁은 여전히 마음속에 조바심이 남아 있어 자꾸 몸보다 마음이 앞서는 경우가 있었다.
반면에 무진은, 무궁보다 한 살이 어림에도 불구하고 집중력을 쉬이 잃지 않았다.
“가끔 보면, 저보다 연상이 아닐까 싶은 모습을 보이곤 했습니다. 스승님.”
고작 한 달 정도 지켜봤을 뿐임에도, 무진의 정체(?)를 읽어 낸 법휘였다.
그리고 혜담은, 그답지 않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저 머리가 말이더냐?”
“…….”
무진의 머리 모양을 떠올린 법혜가, 자신이 떠올린 가설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 * *
무진이 소환단의 내기를 완전히 갈무리하고 며칠 뒤. 드디어 약조했던 달포라는 시간이 흘렀다.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방장 스님.”
“허허허. 하면, 치료를 담당할 제자들을 보내 드리도록 하겠소이다. 상단주 시주.”
소림과 천류상단의 사업 준비가 마무리되었다.
무진을 비롯해, 의원에서 치료를 담당키로 한 제자들이 류지광과 함께 소림사의 산문을 나섰다.
무협지 속으로 들어오고, 무진이 처음으로 숭산을 내려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