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Martial Arts Trainer RAW novel - Chapter (59)
◈ 그 소림이 아니다 (1)
무진과 소림 제자들이 한창 남창을 향해 이동하고 있을 무렵.
남창에 위치한 장원의 어느 전각에서 두 그림자가 마주하고 있었다.
“분타주가 보내온 서찰은 확인해 보았느냐?”
“예. 방주님.”
“흐음. 소림 제자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라…….”
본래라면 소림의 소식은, 등봉현의 천류상단 본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보내왔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터진 사고로 인해, 현재 그곳은 연락 체계가 마비되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상단주의 의중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구나. 혹, 뒤처리에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니더냐?”
“증거조차 남지 않았으니, 아무리 상단주라 해도 낌새를 느끼기는 힘들 것입니다. 실제로 청금대도 헛물만 켜고 있는 상황이옵니다.”
“하면, 상단주가 소림 제자들을 보낸 목적이 무엇인지 예상이 가느냐?”
방주라 불린 중년인의 물음에 시립해 있던 사내가 아무런 답도 내놓지 못했다.
물론 서찰에 쓰였던 표면적인 이유라면 알고 있었다. 의원의 분점을 열기 위해서라는 목적 말이다.
하지만 그런 표면적인 이유만을 생각하며 일을 처리하다가는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입을 다물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던 방주가 찝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상단주가 낌새를 느끼지 못했다 해도, 소림이 이곳에 자리 잡는 것은 대업에 방해가 될 수 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소림은 속세에 물들었다는 말을 가장 두려워하는 고루한 문파이옵니다. 이 년 전에 있었던 일도 있잖습니까?”
“속가 문파들이 대거 이탈한 사건 말이더냐?”
“예. 소림은 자신들의 무공을 익히고 하산한 속가가 떠나갈 때에도, 세상이 손가락질할까 나서지 못한 어리석은 자들이옵니다.”
“하면, 가만두겠다는 의미더냐?”
“어차피 약간의 소문만 퍼져도 제 발로 떠날 것이옵니다. 하지만 대업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그 시기를 조금 앞당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어디 한번 지켜보도록 하마.”
상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하가 포권으로 예를 올리고는 그 길로 장원을 빠져나갔다.
소림이 속세로 나서려 한다는 소문을 남창에 퍼트리기 위해서.
* * *
“남창 분타에 먼저 들르시겠습니까? 아니면 의원으로 쓸 장원으로 향하시겠습니까?”
“일단 장원으로 가서 이 물건들을 내리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안내역을 맡은 천류상단의 마부에게 무진이 답하자, 마부는 마차를 몰아 큼직한 장원으로 향했다.
장원에 도착해 보니, 웬 중년 사내 한 명이 젊은 남성 몇과 함께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소이다. 불권문의 문주인 막지혁이라고 하외다. 소림에서 무공을 익힐 적에는 혜신이라는 법명을 사용했었소이다.”
그는 남창에 자리 잡고 있는 소림 속가 문파의 문주였다.
그가 먼저 소림 특유의 반장과 함께 인사를 건네 오자, 혜관이 앞으로 나서며 간단히 반장을 취했다.
“반갑소이다. 막 문주. 소림 일대제자 혜관이라고 하외다.”
“항마불퇴 혜관 대사의 이름이라면 이 막 모도 여러 차례 들어 봤소이다! 이리 뵙게 되어 영광이로소이다.”
존경하던 인물이라도 만났다는 듯 구는 막지혁이었으나, 혜관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적당히 맞장구쳐 주고는 몸을 물렸다.
“허명일 뿐이외다. 그리고 본승은 그저 사마외도와의 전투를 대비하기 위해 왔을 뿐. 의원과 관련된 일은 전적으로 저 아이가 맡을 예정이니, 저 아이와 대화를 나눠 보시구려.”
그리고 정말 자신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막지혁을 지나쳐 장원으로 들어서더니 몸을 숨겨 버렸다.
살짝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던 막지혁은, 그래도 일문의 문주라고 금세 진정하고는 무진을 바라보았다.
‘저 아이가 서찰에 쓰여 있던 그 무진이라는 아이로구나.’
소림으로부터 불권문에 전해진 서찰 덕분에 막지혁은 대략적인 사항은 이해하고 있었다.
“반갑소이다. 무진 동자. 아미타불.”
“반갑습니다. 막 문주님. 아미타불.”
막지혁과 적당히 인사를 주고받은 무진은 손으로 마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선, 마차에 있는 짐을 장원으로 옮겨도 되겠습니까?”
“그리하시구려.”
마차에 실려 있는 짐. 그건 바로 재활 운동(필라테스)에 쓰이는 도구들이었다.
그렇다고 무료 시설에서 쓰일 것들을 대량으로 모두 가져온 것은 아니었고, 도구 별로 몇 가지만 챙겨 온 수준이었다.
나머지는 이곳 남창의 공방에서 제작할 예정이었고, 지금 미리 챙겨 온 것은 일종의 실습용이었다. 이대제자들이나 속가 문파 제자들이 연습할 실습용 말이다.
무진과 소림 제자들, 그리고 막지혁과 불권문의 제자들이 도구들을 들어 장원 내부로 옮기길 한참.
“음?”
장원 입구 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길을 비키시오!”
“우리는 소림에서 오신 분들께 할 말이 있어 찾아왔소이다!”
장원 입구 쪽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 사이에서 ‘소림’이라는 단어가 들려오자, 무진과 소림 제자들의 시선이 입구 쪽을 향했다.
“아무래도 우리를 찾아온 손님들인 모양이로군요.”
“나가 봐야지 않겠소?”
“그래야겠지요.”
막지혁과 가볍게 대화를 나눈 무진이 정문으로 향하자, 다른 이들 또한 무진과 함께 움직였다.
한편, 한창 장원 입구에서 다 같이 몰려들어 난리를 치던 이들은 주홍빛 가사를 차려입은 승려들의 모습이 보이자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남창에 자리 잡고 있는, 나름대로 스스로를 ‘정파’라 자처하는 중소 문파와 무관의 주요 인사들이었다.
등봉현에 가까운 숭산에 소림사가 자리한 만큼, 등봉현에 있는 문파나 무관은 모두 소림 속가 출신이었다.
그렇기에 등봉현에서 의원을 열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등봉현과 상황이 전혀 달랐다.
소림 속가 출신도 아닌 중소 문파들이 소림의 진출을 달가워할 턱이 없었다.
물론 이곳은 정파와 사파의 중소문파들 간의 다툼이 끊이질 않는 곳이니만큼, 소림의 참전이 그들에게 긍정적으로 비칠 법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소림의 진출은, 늑대들 싸움에 호랑이가 끼어든 격. 자연히 그들 또한 자신들의 밥그릇을 소림에게 빼앗길까 저어한 것이다.
한편, 소림 제자들과 불권문의 제자들이 정문으로 나선 직후. 주위를 둘러보던 막지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걸음으로 앞에 나섰다.
소림을 대표할 혜관의 행방이 오리무중인지라, 그가 대표 격으로 나선 것이었다.
“불권문의 문주 막지혁이외다. 어찌하여 소림에서 온 손님들을 찾으시는 것이외까?”
막지혁이 반장과 함께 물음을 던지자, 몰려든 이들 중 한 중년인이 앞으로 나서며 답했다.
“오랜만이외다. 막 문주. 나 강태구요.”
“태검문(太劍門)의 문주께서 이곳엔 어인 일이오? 저 많은 이들과 함께 말이오.”
둘이 주고받는 인사를 들으며 무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듣도 보도 못한 문파에, 듣도 보도 못한 인물이로군.’
소설에 언급조차 되지 않는 이였다.
“오래전부터 정파로 살아오며 소림의 드높은 정신을 흠모해 온, 이 강 모외다. 하지만 최근 불온한 소문이 들려와 이리 찾아뵙게 되었소이다.”
“불온한 소식이라면 무엇을 뜻하는 것이외까?”
“속세와 연을 끊고 드높은 덕을 쌓아 가시던 소림의 고승분들께서,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하려 한다는 불온한 소문을 듣게 되었소이다.”
강태구의 말을 들으며 무진은 생각했다.
‘아저씨가 참 혓바닥이 기네. 이런 게 정파의 방식인가?’
둘러 둘러 말은 하고 있지만, 너희들은 그냥 산에나 틀어박혀 있으란 소리였다.
그리고 막지혁 또한 무진과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는지, 이마를 찌푸리며 답했다.
“그것은 오해외다. 현판을 보시면 알겠지만 이곳은 어디까지나 의원이외다. 소림의 제자분들께선, 그저 속세에서 고통받고 있는 시주님들을 치료해 드리기 위해 이곳을 찾아온 것이외다. 그리고 몇 달 후면 떠나실 예정이외다.”
막지혁은 사실을 고했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그 누구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뭐 눈에만 뭐만 보인다고, 그들은 소림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뺏으려 든다 여기고 있었다.
“하하하. 소림의 높은 뜻은 알겠으나 세상이 소림을 손가락질할 것이외다. 우리가 책임지고 이곳에 살아가는 이들을 지킬 터이니, 걱정하지 마시고 산으로 돌아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안 돌아간다면 ‘소림이 세속에 물들었다’ 소문을 내겠다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반박하기 위해 막지혁이 입을 열기 전.
“소림 삼대제자 무진이라 합니다.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소승이 한마디 올려도 되겠습니까?”
참다못한 무진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허! 아무리 소림의 이름이 드높다 하나, 어찌 삼대제자가 문주들 간의 대화에 끼어들 수 있단 말이오!”
이것도 뭔가 꼬투리를 잡았다는 듯 큰소리로 강태구가 외치자, 뒤편에 있던 군중들이 ‘옳소!’ 하고 외쳐 댔다.
하지만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무진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강 문주님. 어찌하여 우리 소림이 의원을 여는 것을 막으려 드시는 것입니까?”
“막다니 그 무슨 소리인가! 우리는 그저, 소림이 손가락질당할 것을 우려하여…….”
어려 보이던 무진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강태구가 다급히 반박하려 했으나, 무진은 그의 말을 잘라먹으며 되물었다.
“그거라면 저희가 감당한다 말씀드렸으니, 이만 돌아가시면 되겠군요!”
어린아이다운 화사한 해맑은 미소를 띠면서 말이다. 무율 녀석의 미소를 따라 만들어 본 미소였다.
“크흠. 소림의 위명을 위해서라도 그럴 수 없다네.”
“역시. 그럼 저희가 의원을 여는 걸 ‘막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었군요.”
“!?”
“여러 사숙님들. 여기 계신 시주님들께서 중생들의 구제를 방해하려 드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사마외도에 발을 들인 것 같습니다.”
무진의 말에, 강태구를 비롯해 함께 찾아온 이들이 경기를 일으키며 고함을 질러 댔다.
“아무리 소림의 제자라 하나, 삼대제자가 일문의 문주에게 그 무슨 막말이오!”
“지나친 비약이지 않소이까!”
하지만 어째서일까. 마치 그 대답을 원하기라도 했다는 듯, 무진이 눈을 빛내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지금 여러분들께서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비약입니다. 저흰 의원을 열어 중생들을 구제한다 했을 뿐이건만, 어찌하여 저희가 속세에 물들었다 욕먹을 것을 걱정하시는 것입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기까지 이야기하고 잠시 말을 멈춘 무진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표정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우리 소림이 의원을 여는데, 어째서 여러분들의 허락이 필요한 것입니까?”
나이에 맞지 않는 무진의 묵직한 목소리가, 일대를 무겁게 내리눌렀다.
고작 하나의 지역도 잡아먹지 못해 서로 난립하고 있는 중소문파의 일원들이, 감히 구파일방이자 태산북두라 불리는 소림의 제자들 앞에서 뻗댈 수 있었던 이유.
그건, 소림의 제자들이 ‘정파’인 자신들을 절대로 해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 소림이 이제 속세에 발을 들이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지난 수백 년간 소림이 지켜 왔던 기치로 인해서, 그들 모두 소림은 안전하다, 아니, 만만하다 여긴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무진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 확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고작 삼대제자에 불과한 무진의 말에, 어느새 식은땀이 그들의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어디선가 쾌활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하. 너 이 녀석. 아주 재밌는 소리를 하는구나.”
목소리의 주인은, 전각 지붕 위에서 술을 마시며 이 모든 상황을 관망하고 있던 혜관이었다.
어딘가 삐뚤어진 웃음소리로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은 혜관은, 그대로 지붕 위에서 몸을 날려 바닥에 내려섰다.
그의 경신법이 얼마나 뛰어난지, 지붕에서 뛰어내렸음에도 발소리조차 들리질 않았다.
마치 유령처럼 중소문파들과 소림 제자들 사이에 내려선 혜관은, 중소문파 대표로 나선 강태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 아이의 말대로, 우리 소림이 중생 구제를 위해 나선 길을 막는다면 사마외도로 규정할 것이오.”
“그, 그대는 누군데 그런 말을 내뱉는 것이오!?”
“소림 일대제자 혜관이오.”
“!!!”
“하, 항마불퇴!”
“취불!”
혜관이 자신의 법명을 대자 몰려들었던 군중들 사이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특히, 함부로 취불이라는 별호를 부른 이는 주변 이들의 매서운 눈초리를 감당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미 앞으로 내친걸음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여기서 자존심을 구길 수 없기 때문인지, 강태구가 떨려 오는 목소리로 빽 외쳤다.
“지, 지금 소림이 같은 정파인 우리를 힘으로 억압하려는 것이외까!?”
그 물음에 혜관이 웃음을 지었다. 누가 봐도 비웃음으로 보이는 웃음이었다.
“흐흐흐. 설마 그럴 리야 있겠소? 흐음. 이를 어쩐다. 이 자리에서 죄다 때려죽이자니, 다들 정파라 자처하고 있으니.”
혜관이 장난스럽게 내뱉는 말에, 소림에 항의하기 위해 모여들었던 군중들의 등 뒤로 다시금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혜관은 소림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악명’이 높은 스님이었다. 그의 손에 죽어 나간 마두와 사파의 악적은 손발을 합하여도 모두 셀 수 없는 수준.
그 마두와 악적 하나하나가 이곳에 있는 문주들의 수준을 뛰어넘는 이들이었으니, 감히 이곳에 혜관을 감당할 이가 없었다.
그리고 기선을 완전히 제압한 혜관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악동 같은 미소를 띠며 박수를 쳤다.
“아. 그럼 이리하는 것이 어떻겠소? 다들 스스로를 정파라 자처했으니, 정파다운 방식으로 해결하시지요. 비무로 말이오.”
그 말에, 강태구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외쳤다.
“혜, 혜관 대사! 그것이 힘으로 억압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오!”
“흐흐흐. 걱정하지 마시구려. 비무에는 저 녀석이 나설 예정이니.”
혜관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손을 들어 올려 무진을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