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living again RAW novel - Chapter 109
109. 메데시모 템포 (Medesimo tempo, 같은 빠르기로)
사건의 발단은 몇 개월 전에 금천문화재단의 주도로 열렸던 거대 행사 ‘오케스트라 경연’이었다고 한다.
‘경연’이라는 이름으로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국내 3개의 오케스트라를 초청했으나 사실상 승패를 논하고자 불렀던 것은 아니니 김 이사장은 흐지부지 넘기려 했다.
하지만 화젯거리를 찾던 기자들을 시작으로 계속된 ‘경연 결과’에 대한 질문에 서서히 ‘서울 시향’과 ‘필 하모닉’의 두 지휘자분도 그것이 신경 쓰이게 되었고 결국 만나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눈앞에 계신 김철용 지휘자님은 솔직히 조금 긴장했지만, 꽤 점잖고 훈훈한 분위기에서 이야기가 흘러가며 자연스럽게 우열을 논할 수는 없다는 결론이 이르렀다 말했다.
그야, 거기서 누가 이겼네, 졌네를 따지기에는 지휘자분들의 연배가···.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은근히 유치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하던가.
‘그렇죠. 무대 위에서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무대 위에서는요.’
‘서울 시향’의 지휘자께서 먼저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김철용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굳이 ‘무대 위에서는’이란 말을 되풀이한 시점에서 마에스트로 김철용은 그게 ‘서울 시향 오케스트라’에 소속된 홍진태의 버스킹 팀을 은근히 자랑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처음에는 그 양반도 클래식을 땅바닥에 내려놓느니 마느니 하면서 길길이 날뛰었으면서 말입니다. 하하하.”
입은 호를 그리며 웃었지만, 눈가에 주름은 계속 깊게 팬 그대로였다.
참 정중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스타일, 20년을 거슬러 왔음에도 변함이 없는 지휘자 김철용다운 모습이었다.
“음, 그러면 다시 얘기를 돌려서요. 제가 정석 선배를 이길 수 있겠느냐 물어보신 건 어떻게 된 건가요?”
나는 기계처럼 듣고만 있지 않고 서둘러 한 걸음씩 얘기를 진행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마에스트로 김철용은 가만히 놔두면 3시간은 거뜬히 떠들 정도의 ‘투 머치 토커’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대화가 끝나자마자 기숙사로 하교를 하게 될 수도 있다.
“아, 그래요. 그 얘기 중이었죠?”
거봐라. 마에스트로 김철용은 지금 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를 설명하려다가 원래 하려던 얘기를 까먹고 있었다.
“복잡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하도 그 양반이 ‘무대 위에서는, 위에서는’하고 노래를 하길래 그럼 무대 아래에서도 단원을 몇 명을 뽑아 작은 연주회를 벌여보자는 얘기가 된 거죠.”
그러니까, 나는 왜 부른 거냐고···.
내가 속으로만 한숨을 픽 내쉬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갑자기 김철용은 말했다.
“하지만, 우리 ‘필 하모닉’에 버스킹 비슷한 걸 해본 사람이 있어야 말이죠.”
“아예 없나요?”
“그렇죠. 그리고 아무리 형식을 오픈 스테이지에서 연주회를 하는 것으로 정했다 해도, 저는 그 양반이 그렇게 자랑하던 버스킹 형식의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말이죠.”
이제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이해했다.
그러니까 두 지휘자 양반들이 싸웠고 승패는 나지 않았다. 그러나 또 맞붙기에는 현실적인 일정이 안 따라주니 작은 무대에서 결판을 내자! 이랬다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 무대가 너무나도 ‘서울 시향’에 유리한 종목인지라 눈앞에 김철용 할아버지는 생소한 그 종목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찾아왔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버스킹 경험이 있는 제가 오케스트라 분들에게 그 지식을 알려드리면 된다는 건가요?”
내가 묻자 김철용은 고개를 저었다.
“성현 학생도 함께 연주해주길 바라고 왔습니다만, 힘든 일인가요?”
그렇게 묻는 김철용에게 나는 진심으로 몰라서 묻는 말이냐고 말하듯 맹한 시선을 보냈다.
보통 고등학생에게 프로 오케스트라 단원을 가르치라는 미친 소리는 하지 않는 법이다.
고등학생 본인에게도 부담이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렇지 않아도 콧대 높은 단원들이 일개 학생의 말을 듣기나 하겠는가.
차라리 내가 예상했던 대로 협연 제의가 왔다면 고민 없이 받아들였으리라.
나는 지난 생에서 그들과 실제로 함께 연주를 진행했던 적이 몇 번인데 그걸 못 맞추겠는가.
하지만 나를 보고 단원들을 가르치라니, 그건 상당히 피곤한 작업이 아닐 수 없···.
“오?”
아니,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겠다.
“하하, 역시 힘든 일이겠죠? 그렇다면 다른 수가 있어요. 제가 당초 계획대로 작은 연주회를 두 번 열어서 말입니다?”
“아니요. 그게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요?”
내가 가만히 있자 자연스럽게 거절의 의사표명이라 생각한 김철용은 갑자기 다른 얘기를 꺼냈지만, 나는 그의 말을 끊고 긍정을 표했고 김철용의 얼굴에는 화색이 감돌았다.
“대신, 한 가지만 배려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호오. 말해보세요.”
“오케스트라 단원 중에서 누구를 버스킹에 참가시킬지 제가 선택할 수 있게 해주실 수 있나요?”
“그 이유는요?”
“서울 시향에서는 불가능한 연주에 도전해볼까 합니다.”
내가 당돌한 어조로 그리 말하자 김철용의 눈빛에는 이채가 감돌았다.
짧은 고민 끝에 내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
마에스트로 김철용의 제안을 받아들인 지 3일이 흘렀다.
우선 이 일은 명목상 ‘피아노 치는 파가니니,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 결정.’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내가 김백찬 기자에게 알린 것은 아니고, 김철용 지휘자 쪽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내 이름이 거론되었다는 이유로 나온 추측성 기사였다.
하지만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나도 필 하모닉도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더니 비슷한 기사들이 쏟아져나와 그렇게 굳게 된 것이다.
뭐 큰 상관은 없겠지.
‘백건오 한국 종합 콩쿠르’에 심사위원단에는 ‘협연’이라는 말이 더 와닿을 것이니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나는 지은이와 둘이서 버스를 타고 미래의 나에게는 더없이 친숙했던 ‘그 장소’를 향해 가는 중이었다.
나는 마에스트로 김철용이 날 찾아왔던 그 날, 단원 선출권 말고도 한 가지 조건을 더 내걸었었는데, 그게 바로 옆에 앉은 지은이였다.
‘꼭 필요한 인원을 함께 데려가도 되겠는가.’
하는 것이 내 두 번째 조건이었다.
다행히도 김철용은 허락해주었고, 몇 번이고 함께할 기회가 많았으니 일정이 겹쳐 지금껏 한 번도 버스킹을 함께 하지 못했던 ‘민호’ 역시 이번에는 함께 하기로 했다.
참고로 민호에게 내가 이 얘기를 꺼냈을 때, 그의 반응은 이러했다.
‘와, 진짜 재밌겠다.’
참, 해맑게 웃으며 그런 말을 해버리는 바람에 멋대로 합류를 결정한 내가 미안해할 틈조차 없어져 버렸다.
그간 일정이 꼬여서 그렇지 민호도 계속 버스킹이란 놈을 즐겨보고 싶었단다.
그리고 지은이는 ‘내가 없는 고작 이틀 만에 또 일을 벌였어···?’라는 표정으로 굳어버렸다.
하지만 이내 ‘일정은 어떻게 되는데.’하고 물으며 내가 함께해줄 수 있냐고 묻기도 전에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참가를 표해주었다.
정말 좋은 여자친구가 아닐 수 없다.
내가 멋대로 정한 장단에 전부 맞춰주다니···.
나도 잘해줘야지.
그렇게 우리가 지금 향하는 ‘그 장소’란 다름 아닌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사용하는 협주장이었다.
일반 아트홀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오케스트라 전용이라는 점에서 다용도로 이용할 수 있으니 얕잡아 볼 수 없는 규모의 건물이었다.
한창 수업을 받아야 할 시간에 이런 곳을 쏘다닌다니, 특별반에 들어오지 못했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느긋하게 익숙한 듯 그리운 풍경을 보고 있자니 옆자리에서 지은이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참, 너무하다. 사귀고 이틀간은 장례식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쳐도···. 첫 일정이 데이트가 아니라 일하러 가는 거라니······.”
그 말에 깜짝 놀라 내가 고개를 쓱 돌리자 나를 뾰로통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지은이가 보였다.
“아, 미안! 역시 좀 그랬나.”
역시 화가 났던 걸까.
사귄 다음에는 두근두근 데이트 같은 걸 생각했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어떡하지.
이런 일에는 경험도 면역도 없는 나라서 지은이의 한마디에 머리가 새하얗게 되고 말았다.
“화, 화났어?”
그렇게 내가 당황한 목소리로 묻자 지은이는 삐진 아이처럼 내 눈을 피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큰일이다. 역시 내가 실수한 모양이었다. 한순간에 사색이 되는 나였지만, 지은이는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했다.
“그, 그러니까 손이라도 잡아주면 화, 화가 풀릴지도···?”
그리 말하며 나와 어깨가 맞닿아있던 손을 슬며시 들어 허공에 내미는 지은이.
자신이 한 말에 얼굴이 빨간빛으로 물들어서 상당히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이 다 드러났다.
“그, 그렇구나.”
이에 나도 남자답게 손을 들어 지은이의 손을 잡았다.
얼굴이 열기로 물들어서 그런지 손도 따듯하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허공에서 손을 잡고 있으니 지은이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까, 깍지로···.”
나한테 말을 한 것인지 정말 혼자서 중얼거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들렸으니 어쩔 수 있나.
나는 기왕 용기를 낸 김에 더 내보기로 다짐해서 맞잡은 손을 풀고 깍지를 꼈다.
그러다 보니 자세도 자연스럽게 바뀌어서 허공에 있던 깍지낀 손은 내 허벅지에 툭 내려왔다.
막상 행동에 옮겨놓고 나니 지은이의 얼굴을 볼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아마 지은이도 비슷하게 내 쪽을 바라보고 있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보면 퍽 우스꽝스러운 모습이겠지만······.
“…히히.”
지은이의 흡족하다는 듯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으니 난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 협주홀에 도착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많이 허름해 보이는 건물일지 몰라도 속은 꽤 최첨단이다.
이게 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단 실용적인 것들로 내용물을 가득 채우는 것을 우선시하는 김철용 지휘자님의 행동 강령 때문이다.
“김민호는 먼저 와 있는 거지?”
입구 앞에서 지은이가 태연하게 물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부터는 일과 관련된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자 마음을 먹었는지 뾰로통한 표정이나 귀엽게 웃던 표정도 싹 지운 상태의 지은이였다.
“응. 리프만 오케스트라랑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차이점을 듣고 싶다고 했었어.”
“열정적이네?”
“이번에 순회공연 돌면서 협주에 재미를 좀 붙인 것 같더라고.”
“그렇구나.”
지은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걸 신호로 우린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웅장한 겹화음이 울려 퍼지는 실내, 건물 중앙에 협주홀이 있는 형태라 연습이 진행 중일 때면 건물 어디에 있건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구조였다.
역시,
차분히 쌓아 올린 화음 위로 관현악의 화음이 다시금 덧씌워지는 음색이 돋보인다.
빨강이면 빨강,
파랑이면 파랑,
연주자들은 자신만의 특출난 색을 가지고 지휘자는 그 색을 적절히 그리고 아름답게 조합해 천상의 선율을 엮어내는, 지극히 필 하모니다운 연주 소리였다.
그리고 지은이와 내가 협주홀에 들어가자 그 웅장한 화음은 힘있게 클라이맥스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대화를 나눌 때는 조금, 엉뚱한 사람 같던 마에스트로 김철용도 지휘봉을 들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카리스마 넘치는 거장의 면모를 뽐냈다.
누가 뭐라 하던 그는 명실상부 국내 탑급 오케스트라의 마에스트로니까 말이다.
그렇게 잠시간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고 있으니 시간이 흘러 휴식 시간이 되었다.
“언제 왔어?”
나와는 반대편 입구로 들어와 저 멀리 있던 민호와 인사를 나눴고, 물을 마시러 가는 정민주와 눈이 마주쳐 고개를 슬쩍 끄덕이는 거로 인사를 대신하기도 했다.
그리고 보이는 익숙한 얼굴들.
현재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베테랑’ 연주자들 중에는 내가 모르는 얼굴도 있었지만, 다행히 대부분 아는 얼굴이었다.
10년 뒤에 내 반주 위에서 뛰놀던 그 연주자들 말이다.
반가우면서도 어딘가 미운 그 사람들을 향해 나는 번듯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이제 나는 그들의 반주자도 아닌데 눈치 볼 것 없지 않은가.
“자. 주목!”
김철용의 말에 맞춰 악기 손질을 멈춘 연주자들은 동시에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물 흐르듯 가방에 넣고 김철용을 바라보았다.
“저번에 말했다시피, 방금 연주의 피드백 이전에 소개할 학생이 있어요. 자. 성현아.”
그가 나를 부르자 난 내 옆에 있던 두 사람에게 눈빛을 보냈고 우리 세 사람은 터벅, 터벅 당당하게 걸어 서른 명이 넘는 프로들 앞에 섰다.
“이번에 서울 시향과 이벤트성으로 열게 된 버스킹 무대를 자문해줄 학생이자 함께 연주할 연주자이기도 한 미향예고의 세 천재예요. 손뼉으로 인사를 대신해볼까요?”
김철용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들려오는 박수 소리는 가냘프기 그지없었다.
짝, 짝.
짝짝짝짝!
그나마 피아니스트 자리에 앉은 정민주만 힘껏 손뼉을 쳐줄 뿐 나머지 연주자들의 반응은 영 시큰둥했다.
뭐, 이게 정상적인 일이다.
아무리 ‘인지도’가 높은 우리 셋이라 할지라도 실제 ‘경험’으로 무장한 프로들에게 환영을 받기란 힘든 일이었다.
그나마 우리가 배우러 온 입장이라면 절반 정도는 환영해줬을 텐데, 지금은 우리가 가르치겠답시고 온 것 아닌가.
진심으로 환영해주리란 것부터가 말도 안되는 일이지.
“농담 아니었어?”
방금도 어디선가 소곤거림으로 그런 말까지 들려왔다.
뭐 대강, 우리를 보는 그들의 시선은 잘 알았다.
이럴 거라고 예상 못 했던 것도 아니고, 다 비책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온 것 아니겠는가.
“크흠! 허허헛, 여러분이 이렇게 큰 환대를 해줄 줄은 몰랐는데 말이에요. 우선은 다시 피드백부터 진행하는 거로 할까요?”
이에 적잖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김철용 지휘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다들 지휘자님처럼 아랫사람들에게도 열린 마음으로 사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젠 좀 아셨으려나···.
“성현아?”
내가 너무 가만히 있었던 걸까.
좀 불안하다는 얼굴로 지은이가 나를 불렀다.
하지만 나는 그런 지은이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나는 널찍널찍 걸어 단 네 걸음 만에 김철용 지휘자님의 옆에 섰다.
“흠, 우선 3번 바이올린에 민정 씨는···.”
“2악장에서 힘을 줘야 할 부분에서 너무 힘을 뺐죠. 거기에 코다 부분에서는 한 악절이 아예 어긋나서 잠시 멈칫하시는 게 다 들렸습니다.”
김철용 지휘자님이 들고 있던 피드백 용지를 보지도 않고 그가 입으로 말하려 했던 내용을 그대로 지적했다.
“그리고 2번 바순과 1번 첼니스트 분도 초반부에 힘을 너무 주셔서 후반에는 음색이 옅어졌습니다. 큰 북의 연주자분이 일부러 더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티가 많이 났을 겁니다.”
내가 입을 때자 김철용 지휘자님의 눈이 세로로 쭉 찢어졌다.
그러고도 내가 멈추지 않고 틀린 혹은 지휘자의 의도와 다른 선율을 들려준 연주자들을 지적하자, 처음에는 저게 건방지게 뭔 소리를···!
이런 생각을 하는 듯한 얼굴들이 서서히 경악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입을 떡 벌리거나, 눈을 휘둥그렇게 뜨거나, 숨을 급하게 들이쉬는 등 놀라는 방식은 각양각색이었지만, 그들이 내 피드백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모차르트는 살리에리를 처음 만나던 날, 살리에리가 기껏 준비해준 행진곡을 즉석 편곡해 그에게 망신을 줬다던가.
물론 모차르트가 잘한 건 아니다. 그로 인해 미움을 받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자리에서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천재’라는 걸 첫 만남에 체감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클래식계에도 서열은 있다. 하지만 그런 나이와 학번을 뒤집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단순했다.
그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압도적인 ‘실력’을 대놓고 보여줘 버리는 것이다.
“어떤가요. 김철용 지휘자님?”
내가 묻자, 피드백을 막 하려고 했던 김철용은 허, 하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내 말을 전부 해버리는군요. 성현 학생. 다 맞습니다. 토씨 하나 안 빼놓고 내가 하려던 피드백 그대로예요.”
내 입가에는 씩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그들을 잘 알고, 지휘자가 원하는 방식의 연주를 누구보다 잘 알거든.
게다가 애초부터 이럴 작정으로 오케스트라 연습시간이 끝나갈 때쯤을 맞춰서 온 것이다.
이런저런 할 말은 많아 보이는 단원들이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연주를 감히 고등학생이 왈가왈부하다니! 이런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한껏 무관심한 얼굴에서 내가 누구고 뭐 하는 놈인지 흥미가 생긴 얼굴들.
사실, 대외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원래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는 상당히 거친 문화, 그러니까 약육강식 시스템이 잘 정착된 곳이다.
그러다 보니 유능한 연주자는 조금 건방져도 좋게 봐주는 문화가 있다.
전생에는 그 문화가 나를 힘들게 했지만, 이번 생에는 기왕 이렇게 된 거 효율적으로 이용해야 하지 않겠나.
나는 입가에 큰 호를 그리며 말했다.
“혹시 서울 시향과 정면으로 맞붙어서 이기고 싶으신 분?”
내가 묻자, 내게 관심을 가진 대다수 연주자들이 슬며시 손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