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living again RAW novel - Chapter 136
136. 벨로체 (Veloce, 급격히) -2
[백건오 한국 종합 콩쿠르 – 피아노] [대상 – 이성현]자칫 실수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더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글귀로 쓰여 있던 것이다.
대상 수상자. 이성현.
“와아아아아아아아!”
내 입에서 나온 소리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 만큼 큰 함성.
나는 그야말로 제자리를 방방 뛰며 온몸으로 기쁨을 표했다.
다행히 현재 내가 있는 곳은 기숙사도, M스튜디오도 아닌 우리 집, 내 방이었기에.
전신을 타고 흐르는 전율에 몸을 맡기고 미친 듯이 목소리를 높이는 날 막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침대를 뒹굴고 방에 널브러져 있던 악보 다발을 한 움큼 잡아 허공에 흩뿌리기를 10분.
흡사 미친놈이라도 된 것처럼 내 입에서는 웃음이 이어졌는데, 똑똑!
“성현아 왜 그러니?”
들려오는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난 그제야 희미해져 가던 정신머리를 붙잡았다.
크흠,
목을 한차례 가다듬고 40대인 정신연령에 맞게 쿵쿵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머리를 차갑게······.
“엄마! 나, 1등 했어!!”
에라이 모르겠다.
진정은 무슨 진정이냐.
머리털이 쭈뼛거릴 만큼 놀랐고, 심장이 평상시의 두 배로 뛰고 있다고 느낄 만큼 기쁘다.
벌컥,
나는 닫았던 방문을 열고 문 앞에 서 계신 어머니를 꽉 안고 그대로 방방 뛰며 더 크게 웃었다.
이어서 나타난 아버지에게도 마찬가지로 행복에 겨운 얼굴로 당당히 1등을 선언하는 나.
“잘했어.”
그러자 전생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던 아버지의 놀란 얼굴과 솔직한 칭찬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 나이고 뭐고.
지금은 기뻐하자.
20년을 넘도록 꿈꿔왔던 첫 승리 아닌가.
현재의 나를 있게 해준 시작점, 저 하늘의 별이자 빛을 비춰주던 김민호를 이겼다.
이 충격적인 사건 앞에선 아무리 나라도 도저히 진정할 수가 없었다.
“하하하하핫!”
미친 듯이 입에서 쏟아져나오는 웃음.
나는 새삼 시간을 거슬러 온 뒤, 단 한 번도 이토록 있는 그대로의 감정에 몸을 맡겨본 적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고생했어. 아들!”
“오늘은 그래! 외식이라도 해야겠어! 성현아 뭐 먹고 싶은 곳 없니? 아빠가 얼마 전에 거래처 사장님한테 좋은 레스토랑을 소개받았는데···.”
아버지가 먼저 외식을 하자고 하다니, 대체 이게 얼마 만인지.
나는 흥분해서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외쳤다.
“치킨이요!”
“으, 응?! 치킨? 레스토랑이 아니라? 아니면 회는 어떠니, 참지 횟집이나···.”
“치킨이요!”
아버지는 아무리 그래도 국내에서 1등을 가리는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인데, 통닭으로 괜찮냐고 심려를 표하셨지만···.
나한테 가족이 함께 먹는 치킨은 특별하거든.
나는 내 뜻을 굽히지 않고 말했다.
“네. 저는 치킨이 좋아요. 밖으로 나가서 먹는 것도 아니고 우리 집에서 먹는 치킨이요.”
부모님은 내 진지한 말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되셨다.
하지만 난 치킨이 좋은걸.
치킨을 가운데 두고 우리 가족이 함께 그걸 먹는 풍경, 그건, 내가 전생에 집을 나오기 전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했던 마지막 풍경이었단 말이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치킨이 좋았다.
***
‘백건오 한국 종합 콩쿠르’에 중복 수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대상이 1등, 최우수상이 2등 그리고 우수상이 3등을 나타낸다는 소리다.
그리고 아까는 너무 흥분해서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그 화면,
[백건오 한국 종합 콩쿠르 – 피아노] [대상 – 이성현] [최우수상 – 김민호] [우수상 – 최지은]최종 순위표를 보며 나는 다소 의외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민호의 연주는 분명, 정말, 정말로 대단하긴 했지만,
주최측이 원한 연주를 충실히 행한 건 네 명의 결선 진출자들 중에서도 단연 지은이였다.
그래서 이번 무대만큼은 2등을 한다면 지은이일 거라고 솔직히 확신하고 있었는데···.
맨 마지막까지 자신의 본 실력을 숨기고 있던 민호가 2등을 차지했다.
“하···.”
지은이가 슬퍼하려나.
아니, 그녀는 처음부터 이 ‘한국 종합 콩쿠르’에서 순위권에 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수차례 말했었으니 어쩌면 3등을 했다는 사실 자체에 순수하게 놀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드르륵,
나는 마우스 휠을 빠르게 내려 심사 소감문을 찾았다.
“역시···.”
꼼꼼하기로 유명한 김 이사장이 특별히 신경 쓴 콩쿠르다.
심사 소감문이 가볍게 작성되지 않았을 줄 알았다.
한글 파일에 옮긴다면 아마, 적어도 5장은 나올 것만 같은 긴 심사 소감문.
그러나 그 중 무려 2장에 달하는 분량이 모두, 바로 나의 결선 무대에 대한 찬사라는 걸 알게 되자 솔직히 좀 부끄러우면서도 행복했다.
“하···. 하핫!”
입꼬리는 크게 올라가 귀에 걸렸고 간신히 진정했는데도 다시 아까처럼 쉼 없는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 간질간질한 감각을 꾹 참고, 심사 소감문을 모두 읽자, 곧바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관점의 차이.
나도 현장에서 나를 포함한 결선 진출자들의 연주를 다 듣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가.
‘하늘 끝에 닿은 선율’이 어쩌고, ‘더 듣지 못하는 것만이 유일한 단점’이라느니 하는 찬사로 도배된 날 향한 심사 소감문은 우선 제외하고···.
나머지 A4용지 3장 분량의 소감문의 주된 내용은 내가 현장에서도 느꼈던 바와 같이 관점에 차이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우열을 가릴 수 없던 연주들.
다만 심사위원단은 주최측이 준 ‘히사이시 조’라는 과제를 그대로 정면 돌파해낸 최지은과, 과제의 의도를 거꾸로 해석해 나타났음에도 압도적인 실력으로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훔친 김민호의 연주를 두고 많이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역발상’이라는 과감한 도전을 했음에도 심금을 울린 김민호의 능력을 높이 사서 그가 2등이 되었단다.
아, 참고로 내 무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아무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그가 1등이란 사실을 부정하는 이는 없었다. 이성현이 대상 수상자로 결정되기까지는 정확히 2초가 소요되었으며, 결과는 만장일치였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긴 좀 낯부끄럽긴 하지만, 내 무대는 다른 결선 진출자들을 대놓고 압도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나 자신이라도 섣부른 공감, 반론을 제시할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나도 잘 모르겠거든.
어째서 마침 그때 미래의 최윤설 선생님의 ‘칸타빌레’라는 말이 떠올랐고, 언제 나의 손이 허공을 부유하는 그 ‘의문에 선율’에 올라탄 것이며, 어떻게 나는 그 천상의 선율을 연주해낸 것인지.
솔직히 모르겠다.
그 선율은 대체···. 어떻게 되먹는 거냐고.
다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자화자찬 같은 게 아니고 그냥 정말 솔직히 말하는 것이다만···.
그때, 그 순간의 내 연주는 정말 너무 좋았었다.
다시 그런 선율을 자아낼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고 싶을 정도로.
그런 생각에 빠져 멍하니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내게, 손님이 찾아왔다.
이 밤에, 우리 집을 아는 사람은 내 주변에도 몇 없는데 말이다.
그 방문자란 다름 아닌 그 몇 없다는 사람에 해당하는 사람들.
지은이, 민호 그리고 최윤설 선생님과 마주혁 원장님이셨다.
“축하해!”
“우승 축하한다 성현아!”
“대상이라니! 대상이라니! 같은 연습실에 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대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준비한 건지.
마 원장님이 은근히 웃고 계신 걸 보아하니 내가 가족들과 치킨을 뜯는 사이 그가 주도해서 이 사람들을 모은 것 같았다.
“고마워!”
다른 때 같았으면 지은이의 심경이나 민호의 마음 등 다양한 것들을 신경 써서 진땀을 뺏겠지만, 우선 오늘만큼은 그저 순수하게 감사를 표하기로 했다.
나는 말했다.
평소와 같이 미소를 짓고 있던 민호에게 말이다.
“이제 1대1이야.”
화를 낼지, 아니면 억울해할지 모르겠지만 우선 마음 가는 대로 말한 나의 선언.
아직 우리 둘의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자, 다행히도 민호는 빙긋 웃으며 그렇게 물어주었고,
“마지막 승부는 어디가 좋을까?”
나는 그 멋진 민호의 질문에 가슴을 펴고 답했다.
“당연히, 퀸 엘리자베스.”
우리 둘의 종착점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
-천재들이 해냈다!
-우승자는 피아노 치는 파가니니, 이성현!
-한국 피아노의 오랜 전통이 무너지다.
-향후 클래식계의 동향은 격변할 것이다.
-미향예고의 세 천재, 한국의 정상에 서다.
대서특필이라는 말은 참, 대단하고 경악스러운 말이 아니었던 건가.
고작 1달 전에 결선 진출자 중에서 무려 고등학교 1학년이 셋이나 된다는 사실을 대서특필하더니, 지금은 우리 셋이 나란히 수상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보도하고 있다.
딱 하루가 지났는데, 인터넷에 클래식 혹은 피아노만 검색해도 나오는 빼곡한 기사들.
정말 수많은 사람이 우리라는 고등학생을, 그리고 나라는 존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러한 관심은 비단, 국내에 한한 것이 아니었다.
영국의 BBC.
일본의 NHK.
미국의 NBC까지.
가장 시청률이 높아 중요한 사안을 다루게 되어있는 ‘저녁 시간 뉴스’에서 우리 세 천재에 대한 소식을 보도했다.
-영국의 BBC, 일본의 NHK, 미국의 NBC까지 한국의 세 천재를 보도하다!
-한국을 알린 피아노계의 천재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아이들.
-외신이 주목하는 이 시대의 중심은 아이돌이 아닌 아이들?!
그리고 이러한 외신들의 소식을 다시금 기사화하는 기사들까지.
참, 단순히 웃고 넘기기 힘들 만큼 어마어마한 파장이 밀려드는 순간이었다.
무려 A4용지 5장에 달하는 심사 소감문은 너무 많은 기자가 인용하는 바람에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그 내용이 알려져버렸고, 때문에 내게는 또 이상한 별명이 생겨버렸다.
단 2초 만에 만장일치를 얻어낸 연주자라는 의미를 담아.
‘이초살’의 피아니스트란다.
와,
신선한 바람, 새로운 신성, 피아노 치는 파가니니도 간신히 견뎠는데, 그래 이건 안 되겠다.
“으엑 구려.”
그런데 하필, 나 자신도 몸서리칠 만큼 극혐의 이 별칭을 처음으로 기사에 담은 사람이 김백찬 기자님이라는 게 문제였다.
예전부터 이성현에 대해서는 김백찬에게 물어보라는 말이 저널리스트 사이에 나올 만큼, 김백찬 기자의 입지는 엄청났는데···.
하필 그가 ‘이초살’이라는 구역질 나오는 별칭을 기사글에 넣은 바람에 다른 기자들이 따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때, 괜찮지?
그리고 오늘 아침,
무려 이틀간 집에 가지 못하고 있다는 김백찬기자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었는데, 진심으로 뿌듯하다는 듯이 괜찮냐고 물어와서, 나도 진심으로 대답해줬다.
‘토할뻔했어요.’
최대한 해맑게 말이다.
김백찬 기자는 충격을 받은 듯 놀랐는데···.
뭘 그리 놀라는지.
솔직히 구리지 않은가.
아니 이초살이 뭐야. 이초살이.
으어어, 당장 지금도 닭살이 돋는다.
뭐, 아무튼.
그렇게 맞이하게 된 1월 4일의 오후.
나는 어떤 사람의 부름을 받아 어딘가로 향하는 중이었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그 길.
새하얀 눈으로 덮여 있는데도 어째서인지 친숙한 길이었다.
아니, 왜인지 눈으로 덮인 새하얀 풍경이었기에 더 친숙한 이 광경.
그래.
언젠가 ‘필하모니’를 관두고 맨손으로 나와서는 터덜터덜 걸어갔던 적이 있는 그 길 아닌가.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에 새삼 주위를 다시 둘러보니 확실히 그 길이 맞았다.
“분명 알려준 주소는 여기가 맞는데···.”
왜 ‘필하모니’의 연주홀에서 가까운 이곳으로 ‘그’가 날 부른 건지 모르겠다.
뽀드득,
언젠가처럼 발치에 밟히는 눈.
겨울이었다.
전생의 마지막 기억에는 크리스마스였지만, 현재의 내가 선 이곳은 분명한 새해.
1월 4일이었다.
비슷하지만 다르다.
그야 난 이제 전생의 내가 아니니까. 당연한 일이겠지.
그러고 보면, 그때 나는 이 길을 걸으며 2026년 퀸 엘리자베스에서 김민호가 들려준 ‘겨울바람’을 회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겨울바람’의 틈을 비집고 들어왔던 작은 소음.
인적이 드문 곳에 서 있던 교회와 어린아이가 연주하던 피아노.
난 그때, 그 아이에게 캐롤을 쳐주다가 과거로 돌아왔었다.
그리고 소름이 돋게도 ‘그’가 알려준 주소를 따라 한참을 걸어간 끝에 내 눈앞에는 한 교회가 우뚝 서 있었다.
“뭐지···.”
우스스, 소름이 돋기 시작한다.
이게 무슨 우연의 일치인가.
일단 커다란 교회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태양 빛이 화려하게 반짝였다.
거짓말처럼 교회 내부에는 전생의 내가 연주했던 그 피아노가 놓여 있었고, 그 피아노 의자에는 어린 꼬마 대신 어떤 남자가 앉아있었다.
지금도 떠오르는 오렌지빛 온기로 가득하던 그 교회의 풍경.
그 풍경이 지금 내 눈앞에 그대로 펼쳐져 있던 것이다.
“오, 왔구나.”
“…네.”
그리고 그때의 꼬마를 대신해 나를 맞이해준 사람은 다름 아닌, 국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피아노의 거장이자 나를 오늘, 이곳으로 부른 장본인. 백건오 명예 이사였다.
무엇이든 꿰뚫어 볼 것 같은 눈동자로 입구에 선 나를 바라보는 백발의 남자.
나는 그런 그를 향해 말했다.
“왜 저를 여기로 부르신 거죠?”
왠지 모르게 섬뜩한 이 기분을 떨쳐내고자 괜히 밝은 목소리를 내면서.
그런데, 내 질문에 대한 백건오 명예 이사의 대답은 내 예상과 퍽 달랐다.
그는 말했다.
“나에게 피아노를 배워볼 생각이 있니?”
다름 아닌 국내 최상의 연주자이면서 동시에 최고의 지도자라 불리는 그가,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서도 아닌 직접 내게 권한 것이다.
자신의 제자가 되어볼 생각이 있느냐고 말이다.
상상을 초월한 발언.
영 다른 것들로 머릿속이 복잡했던 나는 그 놀라운 말 한마디에 잠시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버렸고···.
세 번이나 숨을 고른 뒤에야, 간신히 입을 열었다.
분명 예상하지도 못했고, 정말 놀라운 제안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내 입은 이미 옛날부터 정해져 있던 것을 그대로 말로 읊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