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living again RAW novel - Chapter 137
137. 벨로체 (Veloce, 급격히) -3
밝은 조명이 무대를 비추자,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단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로지 무대에 선 연주자에게 온 신경을 집중시켜야 할 무대치고는 썩 좋은 형태는 아니었다.
너무 화려하다는 거지.
허나, 이러한 모습에 불만을 제시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나타나질 않았는데, 그 까닭은 단순했다.
이 무대는 연주자가 오르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오르는 이는 다름 아닌 세 명의 수상자.
바로 2010년의 대미를 장식한 국내 1위 콩쿠르, ‘백건오 한국 종합 콩쿠르’의 최종 수상자 된 세 고등학생이 지금 그 무대에 오른다.
-우수상 최지은.
짝짝짝짝-!
-최우수상 김민호!
짝짝짝짝짝짝!!
사회자가 이름을 부르는 것에 맞춰 단상에 오르는 지은이와 민호.
한 사람을 부를 때마다 조명 아래, 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주었다.
이윽고 마지막, 사회자는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이전보다 더 굵직한 목소리로 외친다.
-그리고 2010년, 피아노 부문의 대상을 거머쥔 영광의 주인공인 피아니스트 이성현! 무대로 올라와 주세요!!
휘이이이-!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성악이라도 배우셨나?
목소리가 어찌나 굵직하고 큼직큼직한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또다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내 몸에 맞춘 새 정장을 매만졌다.
탁,
무대 뒤에 놓인 의자에서 일어서 새하얀 불빛 속을 걷는다.
이 정장은 이번에 대상 수상을 기념해서 M스튜디오의 강사분들과 원장님이 돈을 모아 사주신 옷이었다.
거기에 넥타이는 지은이, 양측 부모님이 모두 저명한 외과의인 그녀가 석 달 치 용돈을 털어 선물해준 넥타이라고 했으니 아마···.
자세히 알아보지는 않기로 했다.
가격을 봤다간 사용하지 않고 모셔두게 될 것 같았거든.
그러자 구두는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무려 금천문화재단의 이름으로 뭔가를 구매해준 민호.
아마 이것도···.
엄청 비싼 거겠지?
참고로 이걸 받았던 날, 이 어마어마한 선물들을 보며 식은땀을 흘리던 중, 나는 선생님이 주신 선물을 받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이 준비해준 선물은 무려 핸드폰 장신구.
순간 그걸 보고 어찌나 안심되던지.
부자들 사이에 있다 보면 내 경제관념 따위가 이상해질까 봐 솔직히 적잖게 불안하다.
그래.
지금 내가 입은 옷, 넥타이, 구두까지 모두.
주위 사람들로부터 받은 소중한 선물들이었다.
이런 수상식 무대는 정말, 내게 낯선 장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지만.
전신에 둘둘 감은 고마운 선물들 덕택에 난 전혀 떨리지가 않았다.
오히려 슬며시, 미소만 지어진다.
혼자 있어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느낌이 난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돈다발을 입고 있는 거나 다름없어서 원인 불명의 자신감이 샘솟는 건가.
뭐, 아무래도 좋다.
무대에 오른 나는, 단상에 올라와 있던 금천문화재단의 이사장과 클래식 협회의 협회장 그리고 백건오 명예 이사와 차례로 인사를 나눴고, 드디어 내 머리보다 큰 크기의 크리스탈상패를 손에 쥐게 되었다.
[대상 : 이성현]더없이 크게 적혀있는 그 글씨.
쏟아지는 박수갈채까지···.
“하,”
슬며시 지어지던 미소는 점차 커져 내 입은 호를 그렸다.
눈앞에 보이는 새카만 객석, 적어도 백 명 정도는 되어 보이는 그곳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내 리사이틀에 온 사람의 수가 900명이었다고 해서 이 관객들을 적다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자리는 언론인, 정치인 혹은 문화산업계와 연관된 인사가 아니면 앉아있을 수 없는 장소니까 말이다.
다시 말하면, 그렇게 대단히 엄청나신 분들이 이렇게 빼곡하게 앉아 계신단 소리지.
오직 나와 지은이, 민호를 보기 위해서 말이다.
-피아니스트 이성현씨, 대상을 받게 되신 소감을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수상소감이라, 분명 뭔가를 머릿속에 저장해둔 글귀는 많았는데, 마이크를 눈앞에 둔 나의 입은 그것을 줄줄 읊기를 거부했다.
“돌이켜보면 참, 장대했던 1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소 감성적일 수 있는 말로 입을 열게 된 내 목소리는 꽤 울먹거리고 있었다.
미향예고 입학, 버스킹, 실기 고사, 신입생 연주회, 첫 콩쿠르, 쓴 패배, 거장의 콩쿠르, 리사이틀, 프로들과의 경쟁, 이윽고 내 손에 거머쥔 이 ‘대상’이라는 상패까지.
단순히 스쳐 지나가듯 언급하기만 하는데도 이번 2010년에 내가 겪은 일을 다 표현하기란 무리였다.
아마, 그때그때 있었던 일들까지 모두 말하면 사흘 밤낮이 있어도 모자라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좀 자제하기로 다짐하고, 나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짧게 하려 했는데, 벌써 좀 길어진 것 아닌가 싶기도 했고···.
그래서 이 수상식의 마지막에는 꼭 하려고 했던 폭탄 발언을 위해 잠시 고개를 돌리는 나.
마침 이 폭탄 발언의 주역이신 백건오 선생님과 정확히 눈이 마주쳤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도 한차례 미소를 지은 뒤, 마지막으로 해야 할 그 말을 입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전 앞으로 한동안, 백건오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
“…!!”
아무런 전조도, 예고도 없이 내뱉어버린 내 충격 발언에 궁둥이를 의자에서 들썩이는 언론인들, 그런 격한 반응에 나는 퍽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수상소감의 끝을 고했다.
지금껏 그 어떤 이가 러브콜을 보내와도 깔끔하게 무시했던 내가 누군가의 손을 잡은 것이니 이번 일의 파장은 분명, 크겠지?
어쩌면 또다시 대서특필될 수도 있다.
그러면 난 요 석 달간 세 번이나 신문 1면에 실린 사람이 되는 건가.
그건 퍽,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2010년과 얽혀 있던 내 마지막 일정은 그 장대한 막을 내렸다.
이윽고,
시간은 지나간다.
Veloce.
그것도 아주 급격히.
마치 태엽이 고장 난 시곗바늘처럼,
요동치는 시곗바늘.
그렇게 6개월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새 흘러갔다.
***
미향예고의 입학한 뒤 벌써 두 번째 여름 방학을 맞이하는 여고생, 이예린은 문득, 자신과 자신의 인생 사이에 묘한 권태기가 찾아왔음을 느꼈다.
-궈, 권태기요? 언니 남자친구 있었어요?
이를 들은 ‘리 하모닉 클래식 센터’ 통칭 봉사 센터의 딸내미, 이수정은 무슨 지진이라도 난 듯 놀라며 그렇게 물어왔다.
“아, 아니 사람한테가 아니라 그냥 요새 부쩍 클래식이라는 게 뭘까 하고 말야···.”
-에이 뭐야. 별거 아니었네요.
“벼, 별거 아니라니?! 심각한 문제라고? 권태기라니까? 요새 진짜 이상해 클래식을 하고 있는데, 금천예고 실용음악과 애들이 더 부러워지고 막 다른데 한 눈이 팔리고 그래.”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는 이예린이었지만, 스마트폰 너머에서 듣던 이수정의 대답은 엄청나게 건성이었다.
-아, 그렇네요. 와, 큰일이다. 어떻게 하지. 언니가 클래식 놓으면 민재가 실연을 겪는 건가.
두 사람은 분명 성현을 통해 처음 만났었지만, 이예린은 성현이 부쩍 바빠진 뒤에도 이따금 봉사 센터를 방문했고, 이수정이 2011년에 미향예고 입학하게 되면서 급속도로 친해져 이젠 언니 동생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미, 민재가 갑자기 왜 나와!”
-에이, 저번 달에 고백받았잖아요. 다 봤어요.
“응?! 봐, 봤다고?”
-네, 센터 CCTV에 다 찍혔던데요?
“그, 그걸 막 보면 안 되는 거잖아! 정마알···.”
-와 언니 목소리 짱커. 대박. SNS에 남겨야지. 10만 너튜버 소리 지름, 인성 논란.
“하, 하지마아!”
-당연히 장난이죠! 에휴, 우리 언니 순진하시네~
1년이란 시간이 지났으나, 타인에게 놀림을 받는 이예린이었지만, 사실 이미 미향예고 내에서 그녀의 인기는 대단했다.
소심함은 좀 남았지만, 피아노 연주에서도 ‘세 천재’를 제외하면 거의 탑급 반열에 들었으며, 2학년 1학기에는 작년에 ‘세 천재’들이 이룩한 업적인 ‘서울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출전해 성현과 같은 2등을 거머쥘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다만 놀림을 받으면 반응이 귀엽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아.
후배도, 같은 반 학생들도, 선배들마저 이예린을 가만히 놔두질 않았다.
그렇게 잔뜩 놀림을 받으면서도 대화를 이어나가길 2시간, 이수정 쪽에서 센터를 돕기 위해 급한 용무가 생기고 나서야. 둘의 통화는 끝났다.
그런데 통화를 끊기 직전, 이수정은 말했다.
-아, 혹시 그 오빠 아직도 아무 소식도 없어요?
‘그 오빠’ 이수정이 그런 호칭으로 부르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성현이? 응. 6개월 동안 연락 한번 없다니 정말 너무하다니까···.”
-혹시라도 연락 오면 말해주세요. 센터 분들이 꼭 보고 싶다고 아직도 가끔 말씀하시니까요···.
척 듣기에도 섭섭하다는 기분이 풀풀 풍기는 목소리.
방금까진 자신을 신나게 괴롭히던 얄미운 후배지만,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 마음 약한 이예린은 그저 그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응. 알았어. 연락을 받으면 진짜, 바로 연락해줄게.”
그렇게 무료했던 여름 방학의, 단비 같던 통화를 끊고 예린은 습관적으로 ‘코코아 채팅’을 켜고 글을 썼다.
-성현아, 수정이가 보고 싶데. 센터 사람들도 그렇고.
띵-
그리고 그런 채팅이 입력된 채팅창의 이름은 다름 아닌 ‘이성현’.
이예린은 이수정에게 속으로 사과하며 자신이 입력한 채팅 옆 작게 적힌 [1] 표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실 이예린은 한주에 한두 정도에 불과하지만, 성현과 연락을 취하고 있기는 했다.
직접 만나자고 하거나 통화를 권하면 언제나 바쁘다는 대답이 돌아오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이따금 채팅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누기는 했다.
“흐으으음.”
허나, 정작 여자친구인 지은도 그를 일주일에 한 번밖에 보지 못해 서운하다며 불만을 토로했던 것이 바로 저번 주의 일이다.
“치, 직접 만나기는 하는구나.”
즉, 주에 한 번 정도는 여유 시간이 있다는 의미 아닌가.
그렇게 혼자 토라진 목소리를 내던 이예린이었지만,
정작 성현의 그런 행동은 그 무엇보다 지은이를 우선시하고 있다는 걸 나타내고 있었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이예린.
입술은 툭 튀어나와 있음에도, 정작 불만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건. 분명 이예린이란 아이의 심성이 그만큼 곱다는 방증이 되어주기도 했다.
“하아아.”
어쩔 수 없이 이예린은 자신이 미향예고에서 처음으로 사귀었던 친구를 용서해주기로 했다.
이윽고 화면을 보자.
-대상 수상자 이성현, 백건오의 제자가 되다!
-모리스 슈만, 유키에 모리도 포기한 이성현이 백건오의 제자가 된 이유는?
다양한 인터넷 기사들이 보였다.
다만 그 기사들에 이상한 점은, 모두 6개월 전에 작성된 기사들이라는 것.
인터넷에 ‘이성현’을 검색한 뒤 비교적 최근의 기사를 찾아보면 그 제목들이 참 묘했다.
-대상 수상 후, 홀연히 자취를 감춘 이성현.
-‘이초살’의 주인공, 학교조차 나타나질 않아?!
-천재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홀연히 나타난 천재, 홀연히 사라지다!
-이성현 전문 기자, 김백찬 조차 천재의 행방을 몰라···.
4개월 전까지는 여러 가지 추측성 기사가 뜨지만,
3개월 전 2개.
2개월 전 1개.
그 이후로는 활동이 뜸하다 못해 아예 대외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는지 한 줄의 기사도 나오질 않았다.
그 와중 가장 많은 네티즌의 이목을 사로잡은 가설이 있었으니, 그 이름도 대단하신 ‘천재 단명’.
사실은 자신이 이성현의 주치의라는 말부터 그의 몸에서 암이 발견되었다는 허무맹랑한 낭설이 나돌기도 했다.
“참···.”
이예린은 성현에게 부탁을 받아 직접 그의 근황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그 얼토당토않은 낭설이 자신이 SNS에 올린 게시글보다 인기를 얻는 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천재를 동경하니까.
혜성과도 같이 등장했던 이성현에게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그 천재가 갑자기 ‘가르침을 받으러 갑니다!’라고 말하고는 휙 사라졌으니, 나타났을 때 이상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다.
그리고 이 반년간,
다른 두 천재 역시 가만히 있던 것은 아니었다.
김민호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반년 만에 ‘한국 종합 콩쿠르’ 바로 밑이라 불리는 프로 피아니스트 경연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했고, 최지은은 콩쿠르에서 만난 인연으로 서울대 음대의 작곡 수업을 참관하며 ‘모리스 슈만’이 인정한 피아노 소나타, 협주곡을 선보였다.
정말···.
고작 1년 전에는 자신과 함께 홍대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던 그 애들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천재들의 발전에는 브래이크가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두 천재’를 자극하는 존재가 바로 ‘이성현’이라는 사실에는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나도 이젠 미향예고에서 안 꿀리는 사람이 됐는데···. 그 애들한테는 못 당하겠다니까.”
허탈하다는 듯 그런 말을 중얼거리던 이예린.
목소리는 썩 어두워서 잘못 들으면 그녀가 절망하는 것이라 오해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말을 읊조리던 이예린의 입꼬리는 천천히 호를 그리고 있었다.
마치 그들의 성공을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처럼.
띵-
그때였다.
갑작스럽게 울린 ‘코코아 채팅’의 알림음.
깜짝 놀란 그녀가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자 거기에는 딱 한 문장이 적혀있었다.
-센터, 와 오랜만이네. 같이 갈래?
그 채팅의 발신자는 당연히 ‘이성현’.
이예린은 세간을 뜨겁게 달구고 또, 차갑게 식혔던 천재의 제안에 순간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런다고 보이는 것도 아닐 텐데,
조금 민망함을 숨기고자 애써 더 활기찬 대답을 적는 이예린.
-그래!
반년 만에 친구를 만날 기회에 이예린은 기분이 좋았다.
***
“뭐···. 당연히 이럴 줄 알고 있었지만···.”
그녀답지 않게 미간에 주름을 잡고 눈앞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이예린.
“응? 뭐라고 했어?”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첫 친구 이성현.
그 오랜만에 맞이하는 재회에 감동하기도 전에 예린의 기대는 처참히 부서졌다.
첫 등장부터 지은이와 깍지낀 손을 잡고 나타난 건, 솔직히 예상했던 바였다.
어차피 예린이 기대했던 건 가장 친한 두 친구와의 재회지 다른 게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오랜만이네. 이, 이예지 맞지?”
“이, 이예린입니다···.”
작년에도 별로 얼굴을 마주한 적도 없으며 제대로 대화도 나눈 적이 없지만, 친근하게 말을 거는 천재 김민호부터···.
1학년 1학기에 같은 3조였던 미향중의 정보통 한승우.
미향예고 뮤지컬 동아리 ‘라엘라’의 동아리장으로 유명하며 올해 ‘한예종’에 입학한 선배, 거기에 이예린도 인터넷 기사나 방송으로만 접한, 이 시대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 최윤설까지···.
“아니! 이, 이렇게 한 무더기로 나타나는 게 어딨어! 나, 나는 셋이서 소박하게 옛날얘기나 하고 싶었단 말야!”
그리고 무엇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현재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서 이예린이 가장 성현의 연락을 늦게 받은 것 같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안 그래도 놀라고 서운해 하느라 정신이 없던 이예린에게 성현은 더 큰 폭탄을 투하했다.
“나, 다음 주가 출국해.”
“뭐어?”
이렇게 제대로 얼굴 보고 만난 것도 무려 반년만인데 또 훌쩍 어딘가로 간다니.
이예린은 자신의 친구이자 실시간으로 세계를 들썩이는 천재들을 보며···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
해외로 나갈 거면 아예 국내에서 알고 지냈던 사람들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 가자.
내가 그렇게 다짐한 첫날,
예린이가 정지해버렸다.
정말 무슨 로봇 장난감에서 건전지를 빼버린 것처럼 멈춘 예린이.
오랜만에 만난 이수정도, 민재도 내가 갑자기 대뜸 나타나선 해외로 나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하자 예린이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제야 나의 말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음을 느껴 천천히 사과한 뒤, 차근차근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뭐, 뭐라고? 그게 정말이야? 시드권이 주어졌다고?”
내 말에 가장 큰 반응을 보여준 건 이 봉사 센터의 센터장이신 이수정네 어머님이셨다.
“네. 사실, 이건 저도 최근에 알게 된 건데요.”
“어, 어떻게? 시드권이라는 게 쉽게 주어지는 건 아니잖니.”
“아아, 금천문화재단 김 이사장님이 추천을 넣어주시고, 모리스 슈만이 의견을 보태고 지금 한창 유럽을 주름잡은 정석 선배의 인정을 받아서 제 시드권이 정식으로 승인되었데요.”
시드권.
비디오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하는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시작부터 본선 진출을 확정할 수 있는 권리를 우린 시드권이라 부른다.
“그, 그래서 어, 어디 시드권이라고?”
“당연히···.”
나는 씩 미소를 지으며, 내 어이지는 말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충분히 뜸을 들인 뒤 말했다.
“2011, 퀸 엘리자베스 시드권이죠.”
나와 가장 많이 연락하며 지낸 민호와 지은이를 제외한 모두의 얼굴이, 슬로우모션처럼 서서히 입을 벌리는 모습이 보였다.
“퀴···.”
“퀴이인 엘리자베스으으으?!!”
“3대 콩쿠르에서 시드권을 받는다고오오?!?”
난, 그 격한 반응을 오히려 즐기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