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living again RAW novel - Chapter 143
143. 프레스토 (Presto, 아주 빠르게) -3
앞서 몇 번이고 언급했듯.
‘인지도’란 연주자에게 있어 ‘실력’과 동급이라도 칭해도 좋을 만큼 중요한 요소다.
한 사람의 피아니스트를 마차에 비유하면 질주하는데 필요한 두 바퀴가 바로 실력과 인지도라고 칭할 만큼 말이다.
한쪽 바퀴가 빠진 마차가 어떻게 되겠는가.
아무리 실력이 있는 연주자라도 그를 불러주는 이가 없다면 무대에 오를 수 없으며, 반대로 인기만 있는 연주자는 금방 자신을 불러주는 무대를 잃게 된다.
이번 ‘삼중 일정’을 소화해내기 전의 나를 이에 비유해보면, 나는 ‘인지도’라는 바퀴 한 짝만 달고 나타난 마차였다.
국내에서는 이런저런 기록을 갈아치우며 지휘도 실력도 상승했음을 사람들이 알아주었지만, 이곳은 유럽이자 네덜란드.
아무리 유명해도 결국 이곳에서 나는 그저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던 외국인 연주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유럽의 잡지기자 ‘존’은 내 실패를 스스럼없이 선언할 수 있었고, 다른 해외 저널들도 내 입국 소식을 알았더라도 그렇게 적극적으로 취재를 요청하진 않았다.
하지만, 독주회, 연주회, 협주회라는 무대에 삼일 연속으로 오른다는 미친 짓을 나는 보란 듯이 해내 버렸고, 기자들은 내가 바퀴 하나뿐임에도 겉만 번지르르한 마차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흠···.”
이게, 어제까지만 해도 조용하다가 오늘 아침 갑작스럽게 몰려든 외신들에 대한 내 분석이었다.
“역시, 성현이 너는 정말 똑똑하구나?”
그리고 친숙한 얼굴의 기자인, 김백찬은 내 긴 분석과 짧은 한숨 소리를 듣더니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 분석이 그냥 헛소리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주었다.
“그보다···. 왜 갑자기 네덜란드에 계신 거예요?”
“네가 네덜란드에 있잖니.”
“아니, 기자님은 민호랑 지은이 기사도 전담하셨잖아요. 이렇게 갑자기 막 움직여도 돼요?”
“그러엄, 당연하지. 내가 성현이 널 찾아왔다는 걸 뭐라고 할 사람은 아마 우리 신문사는 물론이고 방송국에도 없을걸?”
아니.
기자라는 건 아무리 그래도 회사원 아닌가.
이렇게 갑자기 출국을 결정해도 되는 거냐고, 심지어 듣기로는 자신의 팀 전체를 끌고 왔다는데···.
너무 급작스러운 일정이 아니었는지 나름의 심려를 표하는 나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김백찬 기자.
뒤늦게 잠에서 깨어난 내가 딱 김 기자님 한 분만 숙소의 들인 뒤부터 지금까지, 우리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런 평행선을 긋고 있었다.
그래도 솔직히 내 성별을 바꿔놓고 보면 이건 뭐 거의 스토킹 아닌가.
솔직히 과한 관심을 보내주는 김백찬 기자에게 꺼림칙한 기분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그래도,
왜 6개월간 잠적을 했던 것인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네덜란드행 비행기에 오른 것인지.
그런 것들을 따지듯 캐묻지 않는 건, 그 자체로 김백찬 기자의 상냥함을 증명해주는 것 같아서 나도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대놓고 뭐라 하긴 좀 그렇고, 그렇다고 아무 말도 안 하기에도 좀 모호한 상황.
그래서 나는 화풀이를 하듯 김백찬 기자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보다···. 이초살이 뭐에요 이초살이. 부끄러워 죽는 줄 알았잖아요.”
“아, 그건 미안하구나. 그때는 삼 일째 철야라 제정신이 아니었어.”
그렇게, 단순한 기자와 연주자의 관계가 아닌 삼촌과 조카 같은 기분으로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한 지 약 30분.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던 김백찬 기자가 영업용 미소를 얼굴에서 지우고는 드디어 본론을 입에 담았다.
“성현이 네가 인지도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아 다행이구나. 덕분에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어.”
“설명이요?”
“그래. 흠.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하자면, 성현이 너는 지금 언론 플레이를 당하기 직전이란다.”
“언론 플레이요?”
내가 되묻자 진지한 표정이 된 김백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기가 한국이 아닌지라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다만, 지금 다양한 오케스트라들과 많은 단체에서 너에게 합주를 요청할 거라고 벌써 소문이 돌더구나.”
“합주라면···. 그냥 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게 왜 언론 플레이로 이어지죠?”
“그 합주 요청의 수가 많아도 너무 많은 게 문제지.”
“많다··· 라. 흐음.”
나는 김백찬 기자의 말을 되뇌며 천천히 생각을 해보았다.
많아도 너무 많은 합주 요청.
김백찬 기자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아마도, 이번 ‘삼중 일정’처럼 무식하게 받아들이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요청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곳은 한국이 아닌 유럽이니까.
‘많다’라는 규모가 내 상상을 초월할 수도 있다는 거지.
그리고 그 많은 수가 곧 여론몰이로 이어진다?
그건 아마도,
“제가 여기서 마구잡이로 합주 요청을 거부했다간 저에 대한 이상한 ‘편견’ 같은 게 생겨서 그걸로 여론몰이 당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신 거죠?”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정이건, 아니건 의외로 사람들은 내가 합주 요청을 ‘거부’했다는 그 사실 자체로 나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을 느낄 수도 있다.
합주를 신청한 당사자가 아닌 이상, 나의 자세한 일정 같은 건 관심 밖의 이야기 일 테니 말이다.
“하, 어떻게 알았니? 아무래도 이건 좀 설명이 필요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리고 내 말을 들은 김백찬은 깜짝 놀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이내 순식간에 평정심을 되찾은 그는 크흠! 하며 목을 가다듬더니 말했다.
“흠! 아무튼, 내가 처음부터 네게 해주고 싶었던 말은 이거란다. 어설프게 합주 몇 개는 받고, 안 받고 할 바에, 지금 여기 리프만 오케스트라를 핑계 삼아서 전부 거절하렴.”
그래야 내 이미지가 유럽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거라며 조언을 아끼지 않는 김백찬 기자.
이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가 숙소 앞에서 확성기를 들고 괴성을 지르는, 이상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것도.
어쩌면 이렇게 나와 가장 먼저 만나서,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그랬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애초에 나와 이 응접실에 마주 앉았을 때, 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형식적인 인터뷰가 아닌 따스한 어조의 ‘그동안 잘 지냈니?’였으니 말이다.
다소 스토커 같은 면이 있고 마이페이스에 외골수인 사람이지만, 역시 나를 아껴주는 것 하나만큼은 진심인 것 같았다.
“고마워요. 기자님.”
그럼으로 나는 감사를 표했다.
솔직히 한국에서 내 이미지가 압도적으로 좋게 잡힌 원동력도 이예린의 SNS와 이 기자님의 도움 아니던가.
다만, 나는 이번만큼은 그의 조언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저는 이번 합주 제안을 거절하지 않으려고요.”
“무, 뭐라고?!”
당황하는 김백찬 기자.
그는 곧바로 나를 설득하기 위해 뭔가를 열성적으로 말하려 했으나, 나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여주며 말했다.
“방법이 있어요. 위기를 기회로 바꿀 방법이요.”
김백찬 기자는 내 확신에도 심려스러운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허나, 나는 아무리 그가 뭐라고 나를 설득해도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내게는 기가 막힌 해결책이 하나 있었으니까.
***
매스컴이 타지의 연주자를 가혹하게 평가하는 일은 의외로 곧잘 있는 일이다.
사람들은 ‘세계 3대 콩쿠르 우승자’ 같은 자타공인의 실력자가 아닌 이상, 찬양하는 기사보다 연주자를 깎아내리는 기사를 보다 자극적으로 받아들이니 말이다.
그래서 일이 커지기 바로잡기 위해 억지로라도 성현을 만나려 했던 것인데, 성현은 그 똑똑한 머리로도 백찬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모든 요청을 거절해버리라는 그의 제안을 거부해버렸다.
“대체 무슨 생각일지···.”
이윽고 다음 날 아침이 밝자.
거짓말처럼 수많은 언론에서 공식적으로 성현에게 합주 요청을 보냈다.
협주, 독주, 합주를 삼일 연속으로 성공해냈다는 건 충분히 화제성이 있는 사건이었으니, 이목이 쏠리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
다만, 문제는 성현이었다.
어떤 합주 제한은 받고, 어떤 합주 제안을 받지 않기 시작하면···.
지역, 인종, 국가, 성별, 규모, 돈 등등.
매스컴은 그게 무엇이건 거절당한 합주 제안자들의 공통점을 찾아 성현을 헐뜯기 시작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언론이 성현에게 다소 상냥했던 탓일까.
김백찬은 설마 ‘인지도’의 중요성도 잘 아는 성현이 언론의 무서움은 모르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이상한 생각도 했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김백찬은 담배를 꼬나물고 흡연장에 서서 성현이 했던 말을 회상해보고 있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방법이 있다고, 성현은 분명 그리 말했다.
“위기를 기회라···.”
대체 어떤 방법을 떠올린 건지.
김백찬은 성현의 자신만만한 미소를 떠올리자 걱정과 동시에 기대도 되었다.
성현이가 그런 표정을 지은 뒤에는 항상, 기삿거리가 생겨났으니 말이다.
“선배! 성현이 공식 입장 떴어요!”
그때, 멀리서부터 흡연장으로 달려오는 후배 기자.
김백찬은 근심 반, 기대 반인 얼굴로 입에 물었던 담배를 손으로 옮기고는 물었다.
“그래, 성현이는 뭐라고 하니. 모리스나 리프만이 있으니 독일 요청만 받는데? 아니면 현실적으로 네덜란드에서 벗어나지 않는 무대만 받는다고 하니?”
성현이 다소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할 거라 예상했던 김백찬은 자연스레 자신이 떠올렸던 대책들을 읊으며 질문을 던졌는데,
“지, 지역이나 국가 그런 게 하아, 하아. 아니라고요!”
후배 기자는 고개를 저으며 여기까지 달려오느라 지친 듯 그냥 스마트폰을 쭉 내밀었다.
리프만 오케스트라가 운영하는 홈페이지를 통해서 해일처럼 몰려오는 합주 요청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 성현.
그걸 빠르게 읽던 김백찬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릴 정도로 놀랐다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하하, 하하하! 이런 수가 있었다니, 그래. 이러면 다 해결되는구나.”
성현이 밝힌 공식 입장.
그 글은 짧고 간결했다.
-함께 연주회를 열어, 발생하는 모든 수익을 아동, 장애인을 위해 전액 기부를 약속해주시는 곳만 합주 제안을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연주회로 발생하는 수익의 전액 기부.
그게 성현이 택한 대처법이었다.
현재 그 누구보다 유럽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성현을 이용해 자신의 악단을 알리려 했거나, 한탕 벌어먹으려 했던 단체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은 물론, 이러면 외신들조차 성현에 관한 기사를 쓸 때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기 힘들어진다.
자신의 수익을 전부 기부하겠다는 연주자에게 뭔 차별주의자니, 뭐니 하는 프레임을 씌우려는 게 잘 먹힐 리가 없지 않은가.
단순하지만, 파급력은 엄청난 선택.
전액 기부.
“하. 나도 아직 멀었구나. 왜 성현이가 연주회로 받는 돈을 그대로 지갑에 넣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건지···.”
위기를 기회로,
성현은 말 그대로 물욕을 놓음으로써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깨끗한 ‘인지도’를 얻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러한 인지도는 분명, 앞으로 성현이 세계무대 활동에 큰 디딤돌이 되어줄 것은 너무나도 뻔한 사실이었다.
그때, 김백찬 기자는 어떤 기억이 자신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가자.”
“네? 갑자기 또 어디를요!”
“야. 기부랑 성현이를 엮으면 바로 나오는 거 있잖아.”
“바로 나와요? 뭐가요.”
맹한 얼굴의 후배 기자를 보며 김백찬은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에이잉! 성현이를 한국에서 좋은 이미지로 정착하게 해준 결정적인 사건 있잖아!”
그제야 천천히 감을 잡은 듯 표정이 밝아지는 후배.
김백찬은 그런 그를 보며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성현이가 정착···. 아!”
“그래. 세브란스 플래시몹이랑 봉사 센터. 그거 기사화했던 거 얼른 찾아와! 기왕 이렇게 된 거, 그 기사들까지 전부 번역해서 여기 네덜란드에 쫙 뿌려버리자고!”
김백찬은 서둘러 자신의 팀원들이 있을 숙소로 달려가며 생각했다.
이번 일이 잘되면 성현은 그 누구도 쉽게 흉볼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선한 이미지로 정착하게 되리라고.
그것도, 세계급 범주의 인지도로 말이다.
***
‘삼중 일정’을 소화해낸 나는, 당장 내가 봐도 화제성 하나만큼은 끝내주는 합주 상대가 아닐 수 없었다.
대규모 오케스트라, 거장의 작곡가, 세계급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하며 이젠 국내에 한정되지 않고,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이니 말이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합주 요청은 그렇기에 날아온 것이었겠지.
처음에는 그냥, 그걸 모두 받아들이면 어떻게 되려나 생각도 해봤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수라는 걸 확인하고는 곧바로 준비해두었던 대책을 꺼내 들었다.
내 대책은 하나의 허들을 만드는 것.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면서 혹은 거대한 무대를 마련하며 그곳에서 얻은 이익을 ‘전액’ 기부한다는 건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그 악단의 운영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는 문제이니, 아마 나의 ‘전액 기부’라는 허들을 마주한 사람들은 많은 고민을 거듭했을 것이다.
실제로 첫날, 해일처럼 밀어닥치던 합주 요청은 공지가 올라간 후 약 20시간 동안 갑자기 잠잠해졌었으니 말 다 했다.
그러나,
그런데도 나라는 연주자와 함께 연주하는 것을 악단이 혹은 개인이 부담할 비용보다 높게 평가해준 곳은 내 예상보다 많았다.
덕분에 나는 그 후,
계속해서 바쁜 일정에 치여 살게 되었는데, 활동을 하면 할수록 나를 아는 이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며, 매스컴도 한국에 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긍정적인 평가를 주로 해주었으니, 내 작전은 성공했다고 봐도 좋을 것 같았다.
이윽고, ‘전액 기부’ 무대와 리프만 오케스트라 그리고 모리스 슈만과의 일정으로 바쁘게 살아가던 중,
“아, 오늘부터는 조금 힘들겠구나.”
나는 당연히 함께 오를 줄 알았던 리프만 오케스트라 무대를 정석 선배가 거절하는 것으로, 새삼 시간이 급속도로 흐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부터는 나도, 준비해야 하잖니.”
“준비···. 아아!”
나는 곤란하다는 듯 살짝 눈썹을 찌푸린 정석 선배를 보며 그가 ‘준비’한다는 게 뭘 말하는지 눈치챘다.
“퀸, 엘리자베스···!”
어느새,
시간은 흘러 어느덧 8월 중순이 되어있었다.
나와 민호, 둘이서 시작한 승부의 종착점.
퀸 엘리자베스 예선 과제곡 발표가 이젠 정말로 5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선배의 연습 일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나 자신의 일정.
퀸 엘리자베스는 본선이 시작됨과 동시에 아주 단기간에 모든 일정이 진행되는 집중력 있는 콩쿠르다.
준비를 허투루 했다간 그 반년간 백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것들이, 그리고 ‘경지’에 오르기 위한 훈련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는 거지.
“준필 형.”
“응?”
그러니, 나는 서둘러 내 매니저나 다름없이 활동해주시던 남준필씨를 불러 질문을 건넸다.
“제 합주 일정이 얼마나 남았나요?”
조금 전 나와 정석 선배의 대화를 들은 것인지.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수첩을 탁, 닫으며 말했다.
“이번 주 일요일까지. 이제 딱, 두 무대 남았어.”
“그럼···.”
“그래. 앞으로 있을 일정은 전부 거절할게. 사유는 퀸 엘리자베스 준비, 로 하면 돼?”
“네!”
역시, 백 선생님이 손수 붙여주신 분이라 그런지. 남준필씨는 고작 한 달 정도 나와 함께한 것만으로 내가 말하지 않아도 척척 움직여준다.
이젠,
유럽에서도 내 실력을 입증해냈다.
또한, 클래식 협회 곽재윤처럼 어쭙잖은 수작질을 걸어올 수 없게 인지도도 탄탄하게 쌓아뒀다.
그러니 이제 내게 남은 과제는 오직 하나, 퀸 엘리자베스를 준비하는 일뿐.
그렇게 심장이 두근두근하는 것을 느끼며 다시 일주일.
그런데,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에 놀라,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컴퓨터 화면에 적힌 새카만 글귀,
[퀸 엘리자베스 예선 합격자 명단]약 82명의 이름이 주르륵 나열된 그 명단에서 정석 선배와 지은이를 찾아내길 5분, ‘백건오 한국 종합 콩쿠르’에서 만났던 박의범 피아니스트도 명단에서 찾았는데 이상하게도 정작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이름이 보이질 않았다!
“왜, 왜! 민호가 명단에 없는 거야!?”
그야말로 상상조차 못 한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