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living again RAW novel - Chapter 157
157. 뮤직샤벨 -3
‘사랑의 왈츠’와 ‘절벽 위의 왈츠’.
공교롭게도 우리 파이널리스트들이 공통의 과제 곡으로 받은 이 곡에는 두 개의 이름이 공존하고 있다.
먼 과거에는 어떤 작곡가의 어떤 곡인지를 더 중시했기에 곡에 이름을 붙인다는 행위는 필수적인 일이 아니었지만, 20세기의 음악가들에게 있어서 곡명은 퍽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버려지다시피 세상에 공개된 이 악보의 제목으로 ‘사랑’과 ‘절벽 위’ 이 둘 중 무엇이 더 적합하다는 논의는 무려 몇 년에 걸쳐 있었다고 들었다.
허나, 이 악보를 읽고도, 악보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커다란 감정이 ‘슬픔’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는 연주자는 없었기에, 사람들은 흔히, 악보 위에 가장 크게 적힌 ‘사랑의 왈츠’보다도 ‘절벽 위의 왈츠’라는 이름으로 이 악보를 부르곤 했었다.
바로 이 지점에 한 가지, 중요한 의문이 있다···.
더 없이 입체적이고 선명하며, 이토록 짙게 ‘슬픔’을 이다지도 잘 표현해낸 요셉 데커라는 작곡가는 어째서 그 어떤 피아니스트에게도 이 곡을 주지 않았던 걸까.
“왜···.”
요셉 데커는 이 곡의 적합자를 찾을 수 없었을까.
나는 어째서인가. 그 의문이 해소되기 전에는 이 곡을 본격적으로 연습해선 안 될 것만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래도 내게는, 그 의문을 자력으로 해소할 수 있을지도 모를 한 가지 방법이 있다.
핸드폰도 뭣도 없는 현재의 내게 요셉 데커가 진심으로 원하는 연주를 팟, 하고 알아낼 방법은 당연히 없다.
“없지만···.”
다행히도 내게는 전생의 기억이 있다.
이 악보가 피아노곡에서 바이올린의 곡이 되기까지, 연주되었던 그 수많은 피아니스트의 실패 영상들.
이른바 ‘오답 노트’라는 놈이다.
***
성현이 짤막한 힌트를 얻고 조용히 자리를 피해 다시 ‘연습동’으로 돌아간 뒤에도, 딱 두 사람만이 앉아있던 ‘생활동’의 텅 빈 식당은 한참 동안 침묵에 잠겨 있었다.
“….이제 좀 진정하셨습니까. 요셉.”
먼저 침묵을 깨뜨린 것은 검은 슈트를 입고 왼쪽 가슴에 왕실의 문양이 그려진 뱃지를 달고 있는 남자, 대변인 쪽이었다.
“제기랄, 진정···? 알베르토, 네가 이번 대변인만 아니었어도 칼부림이 났을 거라는 거, 알고는 있습니까?”
그리고 익살스러운 대답과 동시에 끝내 존칭을 내려놓지 않는 모순된 언행의 주인공, 요셉 데커는 이미 ‘연습동’ 복도까지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치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성현이 찾아오고, 또 떠나긴 뒤에도 대체 얼마나 많은 고함을 내지른 것인지.
그의 목소리는 삽시간에 팍 쉬어 있었고 또한 전신으로 표현하던 이글거리는 분노가 한껏 죽어있다.
“압니다. 잘 알고 있죠. 요셉. 하지만, 나는 파올라 왕비의 뜻을 실천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 그래요. 지금 그걸 이해할 수 없어서 이러고 있는 것 아닙니까.”
대체 왕비는 어째서 요셉의 미발표곡을 멋대로 이번 파이널 과제곡으로 결정한 것일까.
이번 파이널의 과제곡은 본래. 모리스, 조지프, 레오폴드라는 거장들의 손에서 탄생한 악보들이 쓰일 예정이었다.
그것도 무려 여섯 곡이나 확보해둔 상황.
그런데 파올라 왕비는 그 모든 주최측의 준비를 무시하고서라도 이번 파이널의 과제곡으로 ‘왈츠’를 택했다.
“하아···.”
먼저 한숨을 내쉰 쪽은 알베르토라 불린 왕실 대변인 쪽이었다.
이미 어느 정도 노기가 빠져, 뭐라 더 따질 기운도 없어 보이는 요셉 데커를 측은한 시선으로 잠시 바라보던 그는 이내 입을 열었다.
“왕비께서는 그 이유에 대해서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고, 말해주실 기색도 없으셨지만······.”
“없으셨지만?”
“제 추측에 파올라 왕비께선 요셉, 당신을 위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입니까. 알베르토?”
“예.”
“나를 위한 행동이라고? 내 허락도 없이, 그 곡을 만천하에 공개하겠다고 결정한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말입니까?!”
다시금 목소리를 서서히 높여가는 요셉 데커.
그는 이미 목이 다 쉰 상태였지만, 끓어오르는 분노가 더 우선이라는 듯이 말이다.
“그 곡은 분명, 왈츠는 멜리아 펠리스르 위한 곡이었죠?”
대변인 알베르토가 그리 말하자, 요셉은 그렇다면 어찌할 거냐는 듯 쌍심지를 켜고 마주 선 상대를 노려보았다.
“요셉, 당신이 그녀를 잃은 날부터 바이올린을 내려놓은 것 알고 있습니다. 평생 음악을 공부하셨으면서, 사별 후에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지경이 되어도 작곡도, 연주도 포기하셨죠.”
“그래서?”
비교적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가는 알베르토와 일순간이라도 선을 넘는다면, 가차 없이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있는 얼굴의 요셉.
그런데도 알베르토는 시작한 말은 제대로 마무리 짓겠다는 듯 결연한 태도로 말했다.
“일자리가 없던 당신에게 10년 전에 심사위원 자리를 추천해주셨던 것도, 바이올리니스트임에도 피아노 콩쿠르의 심사위원을 지금까지 역임할 수 있는 것도 모두 현 왕비께서 도움을 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았으니 닥치고 내 곡을 양보하라. 그 말인가? 그 곡은···. 그 곡은! 메리의 곡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메리를 위해 작곡한 곡이라고!”
끝내 다시금 버럭 소리를 지르는 요셉 데커.
그는 노년의 침착하고 이성적인 심사위원으로서의 이상적인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무너져 내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오직, 자신의 아내와 연관된 역린을 건드렸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끝까지 들어주세요. 그런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알베르토는 다소 침착하게 반응했다.
처음부터 자신은 이 사태에 끼어있을 뿐인 방관자의 입장이었기에 가능한 반응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차분하고 담담한 어투는 흥분한 요셉 데커에게는 효과적이었고, 요셉은 아주 천천히, 조금씩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나는 아시아의 세 별을 믿어요···. 라고, 왕비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아시아의 세 별?”
고민하고 말고를 떠나 그 단어가 현시점에 가리키는 사람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세 학생.
미성년의 나이로 이 브뤼셀의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청년들.
이성현, 김민호, 최지은.
파올라 왕비는 음악에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기이하게도 요셉 데커가 ‘황홀함’이라 칭하던 그 감각을 느낄 줄 아는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였다.
그런 왕비 역시, 들었던 걸까.
김민호의 한기와 이성현의 열기가 자아내던 그 황홀한 경지를.
피아니스트 멜리아 펠리스도 이따금 연주해내던 그 경지를 말이다.
“요셉, 당신이 왕비께 조금이라도 감사함을 느낀다면···. 아니, 말을 다시 하죠. 요셉, 당신이 멜리아 펠리스의 친우이자 과거, 당신의 팬이었던 파올라 왕비를 믿는다면······.”
“…”
“이번만 왕비께서 내린 과감한 결단을 따라줄 수는, 없겠습니까.”
총명한 눈빛으로 차근차근 전해오는 왕비에 대한 신뢰.
지난 10년간 퀸 엘리자베스의 심사위원직을 맡았던 요셉과도 면식이 있는 알베르토였지만, 지금의 그는 요셉 데커가 알던 그 알베르토가 아닌 것 같았다.
10년,
그가 아내를 잃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파올라 왕비의 도움으로 심사위원을 맡은 지가 이미 10년이 지났다.
처음 만났던 알베르토는 분명, 겁 많고 어리버리한 20대 중반의 어린 경호원이었는데···.
10년은 그 어린 20대 경호원을 30대 중반의 듬직한 남자로 바꿔놓은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요셉 데커의 눈에는 아직, 앳된 느낌을 벗어던지지 못했던 파올라 왕비 역시, 이젠 훌륭한 왕비로 거듭난 듯했다.
시간이라기보단 세월이라는 명칭이 더욱 어울리는 ‘10년’간 변하지 않은 것은 오직, 자신뿐인 걸까.
요셉 데커는 어째서 그 세월 동안 변하지 못한 걸까···.
알베르토의 말주변에도, 굳건한 의지도 요셉 데커가 품은 역린의 벽을 허물지는 못했으나, 참 우습게도 요셉은 알베르토라는 사람 자체를 보며 자신이 그동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분히, 요셉은 왕비에 대한 믿음과 자신의 역린의 한계를 떠올려본다.
“흠···.”
자연스레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창백한 음색.
요셉은 다소 고민이 많아 보였지만, 대변인 알베르토에게는 그가 고민하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희소식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알베르토는 지금껏 숨겨왔던 회심의 협상 카드를 꺼내 들었다.
“실은 앞서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왕비께서는 이번 일로 요셉 당신에게 한가지 권한을 주셨습니다.”
“권한, 이라고?”
“네. 무려 13년의 세월 동안 세상에 내놓지 않은 그 왈츠, 그걸 제대로 듣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작곡가인 요셉 데커, 당신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 요셉 데커, 오직 당신만이 모든 파이널리스트의 공통 과제곡을 평가할 수 있다는 게 왕비께서 주신 권한입니다.”
아홉 명이나 되는 심사위원이 떡하니 있으나, 오직 한 명에게 심사를 맡긴다는 건 다시 말해 요셉 한 사람의 결정이 모든 아홉 명분의 평가와 동급으로 취급된다는 소리였다.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아니, 정말 그래도 되는 겁니까?”
당연히 요셉 데커는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지만, 알베르토는 말했다.
“왕비께서는 전권을 요셉, 당신에게 주고 책임은 모두 자신이 지겠다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행동은 요셉이 하고, 그 책임을 대신 져주겠다니···.
어지간한 친족 사이에도 하지 않을 무모한 약속이었다.
허나, 지금의 요셉 데커에게는 그 총명한 왕비가 그렇게까지 이번 파이널리스트들에게 ‘왈츠’를 연주시키려는데는, 뭔가 분명한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납득한 것이다.
이미 한 꺼풀 과거와 맞닿은 역린을 벗어난 요셉 데커.
다만, 요셉은 경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내와 맞닿은 역린을 제외하고 나서라도 아직 남은 한가지의 사실을 말이다.
“괜찮겠습니까?”
“앞서 말씀드렸듯 권한을 넘겨드리는 건 이미 정해진···.”
“내가 말하는 건 그게 아니오. 알베르토.”
“네?”
“마흔넷이오.”
“마흔···. 넷?”
갑작스러운 숫자 제시에 드디어 처음으로 당황하는 기색의 알베르토.
이에 요셉은 살벌한 표정을 하고서는 눈앞의 왕실 대변인에게 말했다.
“무릇, 곡은 올바른 연주자의 손에서 연주되었을 때 비로소 제대로 태어난다고 하지.”
“그야···.”
“그래. 당연한 소리지요. 그러니까, 나도 한때는 찾아봤다는 말입니다. ‘왈츠’의 적임자가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마흔네 명의 피아니스트를 만나, 악보를 연주시켜보았지.”
“설마···.”
“그렇소. 아무리 비공식적인 자리의 연주였다 할지라도 난 ‘왈츠’를 연주했던 마흔넷 명의 연주자를 전부 내쳤지.”
그제야, 완전히 요셉 데커의 ‘괜찮냐’를 이해한 알베르토의 혈색은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메리와의 기억을 뒤로하고서도, 나는 12명의 파이널리스트를 전부 떨어뜨릴지도 모른다는 말이오.”
가장 믿음직했던 철옹성과도 같던 심사위원장이 갑자기 모든 콩쿠르를 망칠지도 모를 가장 위험한 인물이 된 것이다.
“허,”
사실, 이미 정해진 일들을 읊으며 요셉을 설득해달라는 왕비의 부탁을 받은 알베르토는 요셉의 무서운 경고에도 이제와서 결정을 번복할 권한 따위는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 알베르토에게 가능한 일은 오직,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까다롭고 예민한 요셉 데커의 마음을 사로잡는 연주자가 나오길 기도할 뿐이었다.
‘아시아의 세 별이라···.’
과연, 그 아이들이라면 해낼 수 있는 걸까.
***
첫째는 악보에도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주 제목인 사랑의 왈츠.
실제로 3악장 구성의 피아노 소나타인 이 곡의 1악장은 제목 그대로, 따스하고 산뜻한 느낌을 준다.
이에 맞춰 셈여림 역시, 젠틸레(Gentile)가 붙어 참 이다지도 사랑스럽게 악상을 연다.
그렇게 따스한 음역과 부드러운 악상으로 시작된 이 곡은 정확히 2악장의 시작부까지 이어지다 돌연, 수비토 피아노(s.p)라는 셈여림을 만나며 분위기를 반전한다.
‘갑자기 여리게’라는 의미를 지닌 이 셈여림에서 밝음, 따스함, 부드러움으로 구성되어 점차 고조되어가던 악상이 삽시간에 격변하는 것이다.
이윽고 2악장의 끝에 마주하는 서포카토(Suffocate)라 불리우는 이 셈여림이 들어가며 밝게 고조되어만 가던 악상은 완전히 뒤집혀, 어둡고 축축하며 너무 섬뜩해 다가가기도 싫을 만큼 끈적하게 부정적인 감정을 가득 담아낸다.
마치, 작곡가의 심정을 악보가 대변하는 것처럼···.
참고로 서포카토의 해석은 ‘소리를 줄여서’라는 것도 있으나, 대게 ‘질식한 듯이’의 의미로 사용된다.
첫 시작부의 밝은 분위기와 대조되는 중반부부터의 격변.
어느 정도 요셉 데커의 사정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안타까울 따름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랑의 왈츠’ 혹은 ‘절벽 위의 왈츠’라 불리는 이 곡은 바로 그 분위기가 반전되는 지점으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극찬을 받게 된 곡이었다.
반전되는 악상, 누군가의 죽음.
“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연습이 막혔다거나, 일이 잘 안 풀리는 건 아니었지만, 작곡가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가 어떤 심정으로 이 곡을 완성했을지를 조금이라도 아는 나로서는······.
이번 연습만큼은 순수한 마음으로 즐길 수가 없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입체적인 음형을 가지게 된 이 곡을 어떻게 연주하는 것이 가장 옳은 연주인가.
아니, 옳고 그름 따위가 애초에 이 곡에 있기는 한 걸까.
중요한 것은 작곡가, 요셉 데커라는 남자가 대체 어떤 심정으로 아내와 사별한 뒤에 다시금 펜을 잡고, 이 곡을 완성한 것인지.
그걸 알아야 했다.
불행히도 현재의 내게 요셉 데커에 대한 정보를 파헤칠 수 여건은 마련되어있지 않다.
다만, 다행히도 앞서 말했듯 내게는 있다.
전생에서 유키에 모리와 함께 연주하기 위해 보고 들었던 수많은 ‘오답’.
비록 비공식 무대에다가 초견으로 연주하게 된 영상도 섞여 있었다고 했지만, 그래도 과연 ‘사랑의 왈츠’와 ‘절벽 위의 왈츠’.
두 개의 곡명 중, ‘무엇이 정녕 요셉 데커가 원한 곡명인지’라는, 가장 큰 대전제에 대한 답 정도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대전제가 잡혀야 연습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앞으로 뮤직 샤벨에서의 남은 모든 기간을 위해, 나는 첫날의 모든 시간을 ‘오답’ 연주에 쏟아부었고······.
밤하늘이 시퍼런 달빛과 새하얀 별빛으로 물든 시간이 되어서야, 한 가지의 뼈저리게 놀라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전생의 먼 기억을 현재의 내가 백 퍼센트 떠올려냈다고는 솔직히 확신할 수는 없으나, 내가 참고용으로 보고 들었던 마흔 번의 연주.
적어도 그 절반인 스무 번에 한해서는 어느 정도 처음부터 끝까지를 손끝 감각으로 기억해내는 데 성공했다.
허나, 그로 인해 도출되는 결론은 이전보다 나를 당황하게 했는데···.
“둘 다, 아니라고······?”
간략하게 ‘왈츠’라 불리는 이 곡은,
‘사랑의 왈츠’도,
‘절벽 위의 왈츠’도, 아니었다.
사랑을 핵심 악상으로 연주한 피아니스트도, 아찔한 절벽을 형상화한 연주를 선보인 피아니스트도 요셉 데커는 냉혹하게 쳐냈다···.
“그럼, 남은 답은···!”
말 그대로 두 개의 곡명이 모두, 진짜 곡명이라는 말이 된다.
상이한 두 개의 곡명.
그 끝에 울려 퍼지는 하나의 선율.
결코,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 같은 두 가지를 섞어내야 한다니···.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결론에 도달한 나는, 문득 웃었다.
“이거···. 설마 내 주특기가?”
두 가지,
정반대의 성향의 음색을 아찔하게 뒤섞는다니.
이건, 내가 늘 해왔던 그 반주자와 솔리스트의 주법을 동시에 해내는 그, 정석 선배와 함께 고안해낸 필살기가 해답이 된다는 소리 아닌가···.
아직 함부로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상황이었지만, 늦은 밤 나의 입은 계속 활짝 핀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