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living again RAW novel - Chapter 164
164. 어게인 칸타빌레 (Again Cantabile, 다시 노래하듯이)
솔직히, 마지막까지 갈등은 있었다.
큰 굴곡 없이 평탄하게, 재작년부터 다시 시작한 내 삶의 결실인 ‘경지의 연주’를, 편안하게 선보일지.
혹은 그토록 열심히 분석해낸 과제곡 악보를 토대로 두 선율을 동시에 표현하는 나만의 연주로 ‘경지’에 도전할지.
단순히 보면 그저 두 개의 선택지 중에서 내가 원하는 쪽을 고르면 되는 것 같이 보일지 모르나, 전자와 후자의 난이도는 극악이란 표현이 어울릴 만큼 달랐다.
한쪽은 그저 쌓아 올린 경험과 숙달해온 방식의 복습.
허나, 다른 한쪽은 반년간 오직 ‘경지’를 위해 뒤도 안 보고 내달려왔던 그 길을 다시 돌아가야 비로소 답을 찾을 가능성이 보인다.
그래, 한쪽은 확정 그리고 다른 한쪽은 가능성.
아무리 피 말리는 노력을 곁들이고, 평소보다 더 감각을 곤두세운다 해도 결국 경지에 도달하리라 확신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내가 그 ‘또 다른 길’을 명확히 인지한 것 자체가 뮤직 샤벨에서의 둘째 날.
당장 반년 정도의 여유는 있어야 비로소 마음을 편안하게 먹을 수 있을 법한데.
당시 내게 남은 시간은 고작 6일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아무리 하자고 마음을 먹었을지라도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던 불안.
그 불안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배수의 진을 치는 마음으로 정석 선배에게 이상한 부탁을 드린 그 원인 말이다.
내 입으로 부탁을 드렸었다.
-선배, 제 주법으로 연주하실 수 있으시죠?
남의 연주를 단 한 번 듣는 것만으로도, 똑같이 연주할 수 있다는 기행을 선보이는 선배였기에 믿고 맡길 수 있었다.
만일, 내가 이번 과제곡의 진실을 깨닫지 못한 채 계속 연습에 임했더라면 연주하게 되었을 그 ‘경지의 연주’를.
퇴로는 막았다.
내가, 스스로 막은 것이다.
더욱이 당시, 나는 파이널리스트에게 ‘협력’의 힘을 입증한 뒤였기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이곳, 이 콩쿠르의 마지막 무대까지 자력으로 올라온 경이의 연주자들이니까.
난 그들에게서 ‘두 선율’을 동시에 연주해내기 위한 힌트를 얻고자 했었다.
“성현, 시간입니다.”
앉아서 기절이라도 한 것처럼, 가만히 있던 나의 정신을 각성시키는 목소리.
그는 이 콩쿠르 동안 나를 몇 번이고 도와주었던 왕실 대변인, 알베르토라는 남자였다.
나와 적잖은 인연이 있던 남자였기에, 나를 위해 직접 움직여준 듯 했다.
“네.”
그에 감사한 마음이 들어 대답은 번듯하게 나갔지만,
어째서인지 내 팔과 다리는 당장, 제삼자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의 떨림을 일으키고 있었다.
숨이 좀 먹먹하고, 심장이 쾅, 쾅,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게 느껴진다.
아니, 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냐.
과시하고 자시고, 나는 그저 극도의 긴장감에 떨고 있는 것뿐 아니던가.
“하.”
어렵사리 궁둥이를 땐 나는 어쩐지 몰아쉬는 한숨과 퍽 닮은 그런 웃음을 입밖으로 토해내고 말았다.
왜냐하면, 지금도 들려오거든.
딩-
호흡,
길지도 짧지도 않은 호흡 속에 담긴 깊은 음색.
건반이 일으키는 파장은 살아있는 생명과도 같이 춤을 추고, 그 춤 위로 선배가 연주하는 선율이 날갯짓을 하고 있다.
선배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거대한 나의 선율이.
“참···. 중간이 없으시다니까.”
내가 부탁드린 일이긴 하지만, 새삼 듣고나니 놀랍기 그지없다.
분명 무대 위에 있는 연주자는 내가 아닌데, 그곳에서 들려오는 선율은 그 누구보다 나의 색으로 빛나고 있었으니까.
허나, 이로써 마음은 홀가분해진다.
이제와서 내가 무대에 올라 나의 주법으로 연주를 해도 사람들은 그냥, 기이한 것을 바라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일테니까.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오직 ‘도전’뿐이었다.
무대의 연주가 끊어졌다.
아니, 막을 내린 것이다.
선배가 기초를 닦고 지은이가 음색을 더하고 내가 조언하고 민호가 기술을 검증해 합심해서 만든 ‘선배의 자작곡’이.
그걸 자작곡이라고 해도 되는 건가.
피식,
그런 생각을 하자 짧지만 큰, 미소가 지어졌다.
무대의 바로 뒤.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호흡이 모조리 꼬이고, 심장은 아직도 터질 듯이 나를 괴롭히고 있지만,
“성현.”
나는 알베르토의 부름에 맞춰 일말의 주저도 없는 걸음을 내디뎠다.
도전이, 눈앞에 있다.
***
“풋.”
웃어버렸다.
걸음도, 호흡도, 시선도, 용기도, 준비도, 어중간한 와중에 갑자기.
파이널 무대의 끝을 장식할 내가 그것도 무대에 오르자마자 웃어버린 것이다.
곧장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 되어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
그러나 어찌하리.
어쩌면 이번 파이널 무대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볼 수 있는 요셉 데커와 무대에 오르자마자 눈이 마주쳐 버렸는데.
그의 눈에는 불안도, 분노도 없었다.
새빨갛게 타오르던 불꽃이 사그라들고 남은 외로운 잿더미처럼.
그는 나를 무슨, 제 손자처럼 바라보던 모리스 슈만과 같은 눈으로 쳐다보고 있던 것이다.
그 모습이 어째서 그렇게 ‘재미있게’ 느껴진 건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지금껏 전통을 뒤엎고, 기행을 선보이는 이성현과 같이 무대에 오른 뒤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미소를 터트리는, 미친놈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래.”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긍정.
어차피 내 ‘도전’이 실패로 돌아가 무대를 대차게 말아먹게 될지라도 미친놈으로 남으면 기회는 오지 않겠는가.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드렸고, 지그시 요셉 데커와 나를 도와준 파올라 왕비를 바라보았다.
이전과 같은 여유는 없을지라도, 내 불안을 억누를 만큼의 감사함은 내 가슴속에 활활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기에 무리는 없었다.
피아노 앞에 앉았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는데,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드넓은 연주회장과 사람들.
‘경지’에 맞닿은 뒤로 매번 느껴지던 그 몽롱함이 없자.
이 거대한 광경의 압박감이 그대로 내 뇌리를 관통하고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번지점프를 뛰기 전에 아래를 바라본 것과 비슷하달까.
아예 쳐다도 안 봤다면 차라리 좋았겠지만, 그 광경을 목도하고 나니 심장이 더 요동치는 건 필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아아.”
이대로 더 주저했다간 도전도 못 하고 주저앉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장 향하는 시선은 희고 검은 건반.
언젠가, 이 건반을 바라보며 대체 어떻게 가사가 없음에도 노래를 한다는 건지 궁금해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건,
아직도 말로, 이론으로 설명을 해달라 요청한다면 퍽 감각적인 말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만, 그래도 이젠 가능한 것이다.
나는 피아노로 칸타빌레를 뻗어낼 수 있고,
특별한 이미지나 사람을 선율에 담아낼 줄도 알게 되었다.
전생에는 그저 그것만으로도 만족했을 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는 어쩔 수 없이 욕심이 난다.
더, 멋진 연주를 하고 싶다는 욕심.
큰 열망에 머리가 뜨겁게 물들자, 이다지도 나를 괴롭히던 불안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이건 정말,
“다시 살고 볼 일이야.”
피식,
아까와는 또 다른 미소가 내 입가를 물들였고···.
그런 선명한 의식 속의 강인한 열의가, 타오른다···!
[Joseph Decker – Walzer der Liebe](요셉 데커 – 사랑의 왈츠)
그리고,
[Joseph Decker – Waltz auf der Klippe](요셉 데커 – 절벽 위의 왈츠)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짙은 색을 가진 하나의 선율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
한, 바보 같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었다.
그는 바보 중에서도 중증인 왕바보라 자신이 인생을 걸고 여생의 동반을 약조한 여인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똑바로 하질 못했다.
여유롭게, 사랑을 논하기에 두 사람의 삶에 험난한 시련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펠리스’라는 음악 명가에서는 여인의 혼인을 ‘활용’하려 했으며, 여인을 베토벤의 환생이라 부르던 추종자들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남자를 많이 시험했으며 끝없이 자격을 논하기도 했다.
두 사람에게 휴식이란, 폭풍의 눈과 같아 아주 잠깐만 체감할 수 있는 애처로운 것이었으며, 두 사람이 써 내려간 사랑의 일대기는 자칫 타인의 눈에는 투쟁의 역사라 비치진 않을까 싶을 지경이었다.
그렇기에 남자에게 매일이란 여인과 함께 있을 자격을 증명하는 나날이었고, 여인은 남자의 치열함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표현을 강요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남자는 바이올리니스트의 거장이 되었고, 여인은 스스로 요청해 자신의 역사를 깨끗이 지우는 데 성공할 그쯤.
폭풍은 잦아들었고, 두 사람에게는 여유라 불리우는 공백의 시간이 찾아왔다.
드디어 시간이 생겼고,
입지는 충분히 다졌으며,
사랑은 아직도 충만했으나.
남자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남자는 아니, 요셉 데커라는 머저리는 그 기나긴 투쟁의 시간 동안 이미 그것을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허나, 메리는 그런 요셉마저 사랑했고 두 사람은 자신들에게 더 없이 어울리는 방식으로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였다.
그것은 합주.
바이올린의 선율과 피아노의 음색이 서로를 보듬고 이끌어주며 또 다독이는 연주 속에서 두 사람은 언어보다 깊고, 말보다도 빠른 교감을 느껴왔었다.
그건,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요셉 데커와 희대의 천재 피아니스트 멜리아 펠리스만의 약속.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두 사람만의 표현이었거늘.
“어떻게···.”
요셉 데커의 눈앞, 지금 퀸 엘리자베스의 파이널 무대 위에 선 한 청년은 ‘그 연주법’을 선보이고 있었다.
메리는 감정을 고조시킴과 동시에 조용했던 감성도 내버리지 않았다.
그녀가 연주에 몰입해 양손이 건반 위를 종횡무진 할 때면, 요셉은 마치 그 손이 각각 다른 사람의 것이라 착각할 정도로.
그녀는 두 개의 주제, 두 개의 선율을 자유자재로 연주했던 피아니스트였다.
바로 지금, 무대에서 ‘왈츠’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이성현처럼···.
지금껏 요셉은 다른 참가자들에게서 ‘왈츠’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다른 형태의 분석과 알맞은 자기화를 통해 이룩해낸 또 하나의 경지.
그건, 작곡가 저의와 맞지 않는다 해서 가볍게 내칠 수 없을 정도로 수준 높은 ‘황홀함’을 연주해냈기에 요셉은 놀랐고, 경이롭게 참가자에게 감탄을 터트려왔다.
특히, 자기 자신의 마음에 더없이 큰 공감대를 형성한 김민호와 자신을 과거로 날려버렸던 최지은 참가자에게 말이다.
허나, 성현은 달랐다.
그는 처음부터 이 곡에 담긴 요셉 데커의 의도, 의지 따위를 고려한 연주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연주했다.
언제나 가슴으로 바라왔으나 항상 머리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 사무치게 아파만 왔던 바로 그 연주.
메리와 똑같은 연주에 도전하고 있던 것이다···!
동시에 울려 퍼지는 두 개의 선율.
무엇이 주 멜로디이고, 무엇이 반주인가.
어떤 감정을 더 중시해야 하는 걸까.
숱한 연주자들이 바로 이 지점에서 요셉의 거부반응을 건뎌내지 못했다.
사랑도, 슬픔도 모두 중요하거늘.
피아니스트라는 작자들은 하나 같이 둘 중 하나를 선택했었으니까.
허나, 성현은 그러지 않았다.
마치 메리와 같이, 연주하는 두 개의 길, 전혀 다른 두 손.
마치 메리가 연주에 심취했을 때 두 눈을 반짝이던 것처럼. 성현은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의 연주는 다채로운 광채를 뽐냈다.
성현이 전신을 움직여가며 연주하는 것 역시, 작은 체구에도 화려한 연주를 선보이던 메리의 그것과 참 닮아있었다.
“정말···. 닮았어.”
참가자 김민호와 김정석이 자신의 닮은꼴이라면, 성현은 그걸 아득히 뛰어넘었다.
함께 4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았음에도 아직도 요셉 데커가 다 이해하지 못한 메리의 연주를 들어본 적 없는 청년이 현실에 실현시킨 것이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 여겨왔다.
포기했다.
피가 날 정도로 꽉 쥐고 있던 주먹에, 이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놓아주었던 메리와의 추억들이.
숨을 쉬며 살아나는 것 같았다.
전하지 못한 슬픔도, 그녀가 병상에 눕고 나서야 사랑한다는 말을 하게 되었던 미안함도 모두, 생생하게 떠오른다.
뚝,
요셉 데커의 눈시울이 붉게 물든 것은 이미 연주가 시작된 직후의 일이었고 따라서, 무언가가 그의 뺨을 쉼 없이 타고 흐르는 것은 필시 슬픔의 눈물만은 아닐 것이다.
떠나간 메리.
남겨진 요셉.
메리의 유언에 따라 완성은 했으나, 그 누구도 연주할 수 없었던 악보 하나.
그 악보를 볼 때마다 얼마나, 요셉은 사무치는 공허함에 눈물을 흘렸었는지···.
해소될 수 없는 그 슬픔을 요셉은, 짙은 안개와도 같다고 생각했고, 영원히 밝지 않는 칠흑 같은 새벽이라 여겨왔다.
허나, 그 춥고 어두웠던 구렁텅이마저 비추어진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청년의 등불 같은 빛이.
그 불은 요셉의 마음속 새벽에 종언을 고했고, 드디어 아침이 왔음을 알리는 따스함을 품고 있었다.
이윽고 요셉의 가슴 속, 깊숙이 박혀 있던 녹슬고 낡아빠진 후회가 녹아내린다.
***
곧, 온다.
앞선 모든 참가자의 손끝에서는 거대했던 사랑이 일순간에 사라져, 끝없는 비탄과 비애만을 담아내던 바로 그, 전환점.
어째서일까.
나는 숨이 턱까지 차오를 만큼 일사불란하게 연주를 이어가면서도, 그리고 무대에 오르기 전···. 처음 콩쿠르에 나갔을 때처럼 긴장했고, 팔과 다리까지 벌벌 떨었었으면서도, 연주를 시작하자.
정말 평온하게 연주를 이어갈 수가 있었다.
그건, 이전처럼 정신이 혼미해지며, 어딘가 아늑해지는 감각 속에 일어난 일도 아니었다.
나는 연주하는 것이다.
1장의 사랑을 가득 담아내면서도 그 뒤편에 감춰진 슬픔을 아주 성실하게.
허나, 이러한 일련의 평탄한 흐름도 곧 찾아올 ‘전환점’에서 어떻게 뒤틀릴지는 당장 연주를 이어가는 나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모든 게 뒤집힌다는 걸, 반주와 주선율이 뒤바뀌는 것으로 표현하기란 비교적 간단한 일이지만, 두 개의 주선율을 연주하는 내가 그걸 해내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전환점이 오기 전부터 발상을 전환하기로 했던 것이다.
의문은 있었다.
요셉 데커라는 작곡가는 과연 이 곡을 통해 정말 무엇을 노래하고 싶었던 걸까.
이 곡을 쓰기 전부터 이미 병상에 누워있던 멜리아.
그리고 쉼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어딘가 담담히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을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았던 요셉 데커.
과연 그가,
그 같이 완고한 성격의 소유자가 정말로 끝까지 부정했던 것일까.
멜리아 펠리스는 죽지 않을 수 있다고, 정말로 믿고 사랑을 노래하던 중에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져 절망으로 가득한 곡을 써낸 것이었을까?
아니, 내 생각은 달랐다.
그는 처음부터 그녀의 죽음에 슬퍼하면서도 그녀를 위해 곡을 쓴 것 아니던가.
그런 요셉 데커가 절망과 비탄으로 곡을 채웠다?
처음부터 전하지 못할 곡이라는 걸, 그리고 그녀가 직접 연주하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던 그가?
아니,
아니겠지.
전하지 못해서 슬픈 게 아닐 것이다.
자신의 사랑이, 이젠 닿을 수 없는 슬픔에 모든 걸 놓고 그저 넋을 놓고 운다는 그 곡에 대한 해석 자체가 틀려먹었다.
그가 진정 간절했던 부분은 자신의 절망이 아닌, 떠나갈 메리의 근심과 걱정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메리의 사후 급변하는 곡의 분위기는 사실, 요셉 데커가 아닌 메리의 감정이 아닐까··· 라는 것이다.
요셉은 전해지 못하는 게 아니라 전하기 위해.
닿지 못해서가 아니라 닿기 위해 이 악보를 포기하지 않고 써 내려갔다.
그러니 마지막 3악장의 끝이자 코타와도 같은 그 부분에서 급격히 머리를 들이미는 그 밝은 맥락의 음표들은 다른 이들이 분석한 죽인 이의 넋두리 같은 것이 아니라.
요셉 데커가 멜리아 펠리스에게 전하는 이별 인사가 아니었을까.
“…흣.”
연주를 이어감에도 웃음이 난다.
이 모든 추측과 낭설 같은 말들의 근거가 사실상, 뮤직 샤벨에서 내가 경지에 닿았던 순간에 보았던···.
그 헛꿈일지도 모를 그것이라는 점이, 자신도 참 어처구니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미 난 도망칠 곳이 없거든.
그게 낭설이건, 망상이건, 헛꿈이건, 나는 나아갈 수밖에 없다.
사실, 두 주법을 동시에 연주한다는 기행을 실천하며 나는 단 한 번도 눈앞의 지점을 부드럽게 넘긴 적이 없었다.
계속해서 틀려야 했던 지점.
아무리 반복을 해도 끝내 개선하지 못한 맥락.
전환점.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바로 지금 성현의 귓가에는 들려왔다.
그건 누군가의···.
아니, 누구라는 막연함이나 아득한 무언가가 아니었다.
그건 분명한 이미지를 가지고 개별적인 목소리까지 보유한 조언들.
알렉시스가 자신의 노하우를 전할 때 냈던 비음이며,
니엘이 자신만의 분석을 공개할 때 자기도 모르게 씹던 치아의 충격음이었고, 동시에 정석 선배가 논하던 따스한 관점의 이야기 그리고 냉정한 민호의 지적과 잘못을 바로잡는 그 카리스마 있는 손동작이 내는 소리기도 했다.
지은이의 부드러운 첨언과 박의범씨의 여유로운 웃음소리가 길을 비추어주었다.
그들이 제시한 수많은 길은 마치, 가지를 뻗어 나가는 나무와도 같았고 나는 그 수백, 수천 개의 갈래 속에서 찾아내고야 말았다.
당장 눈앞에 직면한 문제점을 해결하고도 오히려 연주에 힘을 더 실어줄, 바로 그 직선로를.
이윽고, 나는 보았다.
나의 연주가 향하는 길의 끝에서.
그토록 찾아 헤맸던, 아득히 황홀한 그 경지가 내게 왔음을.
그럼에도 내 정신은 아득해지지 않았다.
의식은 그 어느때보다 선명해질 뿐이었고, 이미 손은 나의 이해를 넘는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참으로 신비로운 점은, 난 처음으로 내가 어떻게 그 경이로운 연주를 해내는 것인지 선명한 의식으로 세세히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주가 더 탄력을 받아 질주하는 찰나, 떠오르는 얼굴이 셋 있었다.
하나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정석 선배의 미소였고, 또 하나는 언젠가 꿈에서 보았던, 과거에 나를 포기하지 않고 붙잡아준 최윤설 은사님의 늙은 얼굴.
-칸타빌레···!
그리고 마지막은 끝내 자신의 목소리로 건반을 치지 못했던 과거의 나였다.
‘나’는 길을 걷고 있었다.
그 계절은 겨울.
눈은 무릎까지 쌓였고 숨은 얼음장처럼 차디차 내 폐를 차갑게 얼려만 갔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겨울을 녹이지 못했다.
그저 내가 손에 쥐지 못한 것을 한없이 떠올리며 한탄을 이어나갈 뿐.
허나, 나는 눈앞의 ‘나’를 향해 말했다.
“할 수 있어.”
입 밖으로 나오는 숨은 그대로 새하얀 구름처럼 변해 하늘을 향하고, 눈앞의 ‘나’는 아직 초점이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지만, 나는 말했다.
그때의 네가 포기하지 않고 그 긴 겨울을 걸어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고.
정말, 정말로 고맙다고 말이다.
그 감사를 전하기 위해, 닿기 위해 점차 타오르는 불꽃의 형상.
지금의 나는 있을 수 없는 내게 전하려 하는 것이다.
춥고 긴 겨울을 지나왔고, 이제야 밝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 나 자신의 온기를 말이다.
그렇게,
나와 요셉이 담아내고자 했던 마음과 마음이 일치한 그 순간, 나는 노래했다.
다시 처음부터 내가 이곳에 오기까지를 그리고 내가 이곳에서 나아갈 그곳에 대한 노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