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living again RAW novel - Chapter 165
165. 어게인 칸타빌레 (Again Cantabile, 다시 노래하듯이) -2 [完]
외통수였다.
마지막 연주자 이성현이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그가 처해있던 상황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좋은 단어는 없었다.
“분명 외통수였을 텐데···.”
요셉 데커의 짧은 중얼거림.
이미 손수건이 흥건할 정도로 눈물을 흘려낸 뒤, 성현이 ‘왈츠’를 완곡한 30분을 넘기고서야 진정 마음을 추스른 그다.
드디어 커다란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 성현의 무대를 보게 되었는데, 그는 요셉만의 특별한 사연 없이 들어도 참으로 대단한 연주를 하고 있었다는 걸 새삼 알 수 있었다.
그의 무대는 여타 다른 참가자들과는 달랐다.
요셉은 생각했었다.
앞 연주자들은 이미 성현의 조언을 통해 아득하고 황홀한 감각을 선율에 담아낼 수 있게 발전했고, 바로 앞 순번의 김정석이 성현과 완전히 같은 연주를 선보여 버렸으니 더 이상의 활로는 없다고.
허나, 성현은 들려주었다.
애초부터 자신은 다른 참가자들과는 이미 궤를 달리하고 있다는 걸.
두 선율의 구도자.
이 주법의 소유자는 지금껏 존재한 적도 많지 않았다.
만일 있더라도, 그 악랄한 난이도와 모든 악보가 극악의 수준으로 복잡화되는 터라 대부분의 연주자는 한쪽의 선율을 놓아줌으로써 자신의 실력을 향상 시키려 하기에 그런 ‘특별한’ 음색을 가지고서 프로라는 타이틀까지 다는 사람은 더 없었다.
그렇기에, 메리는 특별한 연주자였다.
그랬기에, 메리는 유일무이한 피아니스트로 단숨에 세계에 이름을 알렸던 것이지.
그런 난이도의 연주를 10대에 아이가 해낸다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소리니 말이다.
하여, 사람들은 그녀를 천재라 칭했다.
이미 5살 때, 삶의 노선을 결정지을 정도로 대단한 재능의 보유자였으니 이변도, 이견도 없었다.
그랬으니 그 많은 ‘전문가’라는 이름의 그녀의 추종자들이 하나 같이, 조용히 은퇴를 선언한 그녀를 보며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었겠지.
지금껏 많지도 않고, 앞으로도 없으리라 여겼다.
역사를 뒤져봐도 두 선율의 구도자가 한 세대에 두 명이나 나온 일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있었구나···.”
성현은 그 주법의 소유자였다.
당연히 요셉 데커는 그가 자신의 모국에서 그런 식의 연주를 했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허나, 프로라는 타이틀을 달고,
유럽에 진출하며 선보인 무대에서 모두, 단 하나의 주법을 고집했기에 결국 그도 실력의 상승을 위해 어려운 길을 포기했던 것이리라 요셉은 단정 지었었다.
“계속······. 연습해왔던 거겠지. 그것도, 그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혼자서.”
그건 아마,
지독하게 추운 겨울에 눈보라를 만나 길을 잃은 조난자의 심정과 같았을 것이다.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전혀 엉뚱한 길로 가고 있는 것인지.
알려줄 사람도, 지켜보며 응원해주는 사람도 없지만, 계속 나아가야 하는···. 마치 순례자의 걸음처럼 숭고하다.
“참···.”
그러고 보면 요셉은 지금 자신의 상황이 정말 우습기 짝이 없다고 느꼈다.
무대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12명 중 10명은 기준 미달자로 만들 셈이었는데, 심사 자체를 손에서 놓은 지는 이미 한참이 되었고, 수시로 눈물을 흘린 것도 모자라 당장 지금도 누가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혼잣말이나 계속해대고 있지 않은가.
“…나도 늙은 건가?”
세월을 핑계로 삼을 생각은 없다만, 그래도 최소 자신이 5년만 젊었더라면 이 정도로 추태를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신,
이토록 능숙하게 감추지도 못했을 것이다.
뭘?
바이올린을 들고, 활을 쥔다면 당장이라도 미친 듯이 연주를 이어갈 것만 같은 이 손을 말이다.
메리의 선율을 들었기 때문일까.
손이 떨려온다.
아니면, 성현의 연주가 너무나도 아름다웠기에 그런 것일까.
어깨 근육이 꿈틀대고, 추하게 처져있던 팔근육이 들썩거린다.
연주,
요셉은 당장이라도 바이올린을 켜고 싶은 충동에 휩싸여 있던 것이다.
심사위원도, 작곡가도 아닌 진짜 자신.
마치 이미 모두 타올라 잿더미처럼 처량하게 버려져 있던 바이올리니스트의 혼이 성현의 연주에 감응하여 다시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기라도 한 것처럼.
13년이다.
메말라도, 이미 진작에 메말랐으리라 여겼던 연주에 대한 갈망.
요셉은 참으로 오랜만에 자신의 목을 죄어오는 갈증에 절로 미소를 짓고 만다.
13년 만에 느껴지는,
이젠 자신의 안에서 아무리 찾으려 해도 결코 찾을 수가 없던 그 선율을 향한 갈증.
그는 참으로 오랜 세월을 거쳐 드디어, 다시 바이올린을 켜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총명한 목소리.
“어땠나요?”
요셉을 똑바로 바라보며 질문을 건넨 이는 당연하지만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파올라 왕비였다.
“심사는 잘 되었을까요?”
살짝 익살스럽기도 하고, 정말 점잖게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참 묘한 느낌이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자신의 추태에 부끄럼을 느끼던 요셉은 복잡한 생각을 포기하고 순순히 대답을 내놓았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 참으로 외람되오나 파올라 왕비님. 딱 한 명의 연주자를 제외하고, 나머지 열 한 명의 참가자의 우열을 저 홀로 가려내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슬며시 미소를 짓는 파올라 왕비.
그녀는 구슬이 굴러가는 것 같은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정확히 요셉이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는 파올라 왕비의 배려에 요셉은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엉킨 미소를 지었고, 카메라와 오디오에 노출된 이곳에서, 답했다.
“그건···.”
***
아홉 심사위원이 합심하여 전력을 다하는 논의를 시작한 지 벌써 2시간이 경과했다.
아홉 심사위원의 권한이 모두 요셉에게 있다면 이런 긴 시간이 소요될 리는 없을 거라며 놀라던 내게 지은이는 자초지종을 짧게 설명해주었다.
내가 무대에서 내려와 대기실로 돌아오는 사이, 요셉 데커가 방송국의 카메라 앞에서 대놓고 역사상 최고의 연주자들이라 이번 파이널리스트를 부르며 긴 회의를 예고했다는 것이다.
파올라 왕비에게 듣기로, 아홉 심사위원의 권한은 모두 그에게 향했을 텐데···.
그럼에도 긴 회의가 진행된다는 건 다름 아닌, 요셉이 자신의 권한을 스스로 포기하고서라도 제대로 심사결과를 내고 싶었다는 말 아닌가.
그 고지식하고 독선적인 성격이 갑자기 변했다는 건.
아마 우리들의 협력을 통한 전체의 발전이 그를 놀라게 했다는 거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싱긋 웃었다.
사실상 ‘협력’의 힘으로 그에게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한 방 먹이고자 일을 벌인 건 나였으니까.
어쨌건 효과적이었다는데 만족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 덕일까.
정말 고생했다며 서로를 격려하고, 깍지까지 낀 지은이와 나를 아니꼽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이 대기실은 공용 대기실이고, 현재 이곳에는 12명의 파이널리스트가 모두 모여있는데도.
우린 여타 다른 콩쿠르 때처럼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조용히 긴장하고 있거나 하질 않았다.
우린 이미 오랜 친구처럼 서로의 연주에 대한 질문, 칭찬으로 이야기꽃을 피웠고 그 중 박의범씨와 알렉시스는 아예 술 약속을 잡을 정도까지 친해져 있었다.
이미 이곳에서 서로를 짓밟고 올라서야 할 경쟁자로 바라보는 사람은 없다.
분명 요셉이 그렇게 말했었다지.
올해의 파이널 무대가 역사상 최고의 무대였다고, 멜리아 펠리스씨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그가 직접 그렇게 말을 했다는 것이다.
분명, 수많은 충격이 그를 휩쓸고 지나갔던 거겠지.
그리고 이 정도의 큰 심경변화는 결코 나 혼자서는 만들어낼 수 없었겠지.
어찌 보면 건방진 태도의 고등학생에 불과한 나의 말을 군말 없이 따라준 이들이 있었기에, 기적은 일어날 수 있었다.
만일 한 명이라도 나를 믿어주지 않았더라면,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으리라.
그렇기에 나도 믿었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이 공용 대기실의 따스한 풍경 자체가 희박한 확률을 뚫고 일어난 커다란 기적이라고.
드르륵!
그때였다.
급하게 열린 문과 뛰어온 듯 보이는 왕실 대변인.
“모두, 무대에 올라와 주시길 바랍니다!”
드디어, 결과가 나온 것이다.
퀸 엘리자베스의 상징적인 특징.
결과의 당일 공개와 당일 수상.
우린 다 같이 무대로 향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
분명 나의 과제곡 풀이와 조언들은 요셉 데커라는 심사워원장에게는 큰 영향력을 주었을지라도, 정작 다른 심사위원들에게는 개풀뜯어먹는 소리 정도로 들렸을지도 모르니까.
그런 아홉 명이 협의를 거친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다.
심장이 쿵, 쿵 뛴다.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내 연주가 자칫 난잡하게만 들렸던 것은 아닐까.
지은이도, 민호도 그리고 정석 선배와 다른 파이널 리스트분들도 모두, 쟁쟁함을 넘어 치열한 열의를 불태우고 나서야 간신히 이길 수 있는 사람들인데 말이다.
변수에 변수를 더한 상황.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른 참가자들은 대부분 긴장한 눈치가 아니었다.
대기실에서 서로를 칭찬하던 그 따스한 분위기 그대로, 엄숙한 심사발표 무대를 향하는데 잡담마저 서슴지 않는 것이다.
베테랑이라 그런 걸까.
나도 전부 따져보면 적은 시간 음악을 해왔던 것은 아닌데, 이들의 여유만큼은 따라잡기 힘든 것일까.
아니,
참 신기하게도 다른 파이널 리스트들의 얼굴에 드러난 표정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직 결과는 나오지도 않았으나, 누군가를 한껏 축하해줄 준비가 되어있는 듯한 얼굴들.
그리고, 그 누군가란 설마···.
“성현아.”
민호가 날 부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응?”
“다음은 어디로 할래?”
“다음?”
뜬금없는 말에 내가 되묻자. 민호는 살짝이지만, 씁쓸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설마, 우리 셋의 승부가 여기서 끝이라고 말할 건 아니지?”
“…응?”
종착점 아니었던가.
마지막에서도 다시 마지막.
이번 우승자가 두 번째 승을 거머쥐고 승부가 끝나고···.
혹시 더 욕심이라도 생긴 걸까.
아니, 민호는 원래 이렇게 호승심이 짙은 아이였었지.
이건 욕심이 생긴 것도 아니고, 갑자기 시치미를 때는 것도 아니다.
민호는 이렇게 말하는 거겠지.
아직은 더, 함께 경쟁하고, 성장하는 이러한 선순환의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고 말이다.
그래도 가장 먼저 ‘경쟁자’에서 지은이를 제외했던 장본인, 민호의 입에서 ‘우리 셋의 승부’라는 말이 나왔다는 건 실로 대단한 일이었다.
민호도 인정한 거겠지.
꾸준히 그리고 조용히 성장을 거듭해온 지은이의 실력이 가히,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상승했음을 말이다.
우린 아직 17살에 불과한 나이기도 하고.
솔직히 나도, 그게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계속 승부를 이어가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그가 있어 나는 발전했고, 내가 있어 지은이는 단점을 극복했고, 다시 나와 지은이가 있어 민호는 삽시간에 ‘경지’의 연주자가 되지 않았던가.
우리가 함께한다면 앞으로도 분명, 이번 콩쿠르처럼 대형사고를 치는 나날이 함께할 것만 같다.
그리고 그 나날은 정말···. 재미있겠지.
그런데 여기, 민호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근데 민호야. 아직 결과는 안나왔는데?”
계속할지 말지는 승자가 정할 문제 아닌가.
왜 벌써 그걸 내게 묻는 것인지.
내가 의아한 얼굴로 그리 묻자, 민호는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은 사람처럼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아직도 모르겠어? 하하하하핫! 성현아, 너만 빼고 다 알아. 지은이도 제대로 얘기 안 해줬구나?”
“뭐, 뭘···?”
민호의 격한 반응에 놀라 내가 말을 더듬으며 주위를 둘러보자 다른 파이널리스트들과 지은이마저 진심으로 몰랐던 거냐 묻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이건···. 아니, 이건 직접 듣는 게 낫겠지. 가자. 도착했어. 성현아.”
눈앞에 보이는 무대.
거대한 피아노는 없고 화려한 장식들과 누군가 오르기 딱 좋은 단상 하나.
나는 민호의 손짓에 이끌리듯 의자 중에서도 가장 단상과 가까운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그 상황이 어서 빨리 내게 그곳에 올라가라는 무언의 시위로 느껴진 것은 나의 오해였을까.
파올라 왕비가 폐막식의 감사 연서를 시작하고, 멍해 있던 내 옆자리에서 조용히, 다시 내게 말을 거는 민호.
그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그 정겨운 장난꾸러기의 미소와 함께 말했다.
“아까 요셉 데커가 카메라 앞에서 그랬거든. 단 한 명의 연주자만 제외하고 나머지 열 한 명의 우열을 혼자서 가리는 건 불가능한 것 같다고.”
“단 한 명?”
“그래. 그리고 그게···.”
그렇게 잠시 뜸을 들이다 갑자기 휙 내게서 멀어져 입을 꾹 다무는 민호.
그리고는 더 재미있다는 듯 꾹꾹, 작은 웃음을 흘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말을 하다 말다니···.
존경하는 친구지만, 이건 정말 사람인가 싶었다.
그때,
큰 목소리는 단상 위에서 들려왔다.
자연스레 향하는 시선.
단상 위에 선 그는 다름 아닌 우리 모두가 연주한 공통 과제곡 ‘왈츠’의 작곡가 요셉 데커였다.
“긴말 않겠습니다. 저는 그저···. 은퇴한 지 한참은 더 지난 늙다리 바이올리니스트를 다시금 연주에 대한 열망으로 뜨겁게 만들어준 한 연주자에게 대상을 돌리고 싶군요.”
이어서 차분히 숨을 들이쉬는 소리와 짧은 공백.
이어서 들려오는 그 우렁찬 호명의 목소리가. 내게는 어찌나 길고, 감격스럽게 들려오던지.
“우승자는 전과 같이 잠깐의 회의도 필요 없이 심사위원단 전체를 만장일치 시킨···. 이성현!”
“와아아아아아!”
“역시 그럴 줄 알았지!”
“고생했다!”
“네가 될 줄 알았어.”
“축하해요!!”
갑자기 발표된 이름.
동시에, 파이널 리스트가 앉아 있던 의자들에서 먼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마치, 진작 내가 우승을 차지하리라는 걸 이미 다들 알고 있었던 것처럼.
아니, 알고 있었던 거구나.
환호성과 우레 같은 박수 물결은 밝은 불길처럼 삽시간에 퍼져, 관객과 수많은 스태프에게까지 번졌다.
사방이 나를 위해 목청껏 소리를 치고, 칭찬을 외쳤으며 감동을 이야기해주는 이 자리.
나는 어안이 벙벙한 그 상태로 조심스럽게 무대에 올랐고, 먼 과거 꿈에서만 애처롭게 그리던 그 광경을 내 눈에 담았다.
많다.
정말로 많은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뮤직 샤벨에 갇혀 있느라 몰랐었는데, 놀랍게도 객석에는 나의 부모님이 계셨다.
그 옆에 앉은 최윤설 선생님과 이젠 어엿한 미향예고의 장학생이 된 예린이가 보인다.
또 시선을 돌리자 유럽에서 날 도와주다 바이올린의 뜻을 찾고 한국으로 돌아갔던 남준필씨도 있었고.
이곳까지 오는데 정말 고생했을 텐데, 복지 센터의 이수정과 원장님 그리고 시각 장애 플루티스트 민재까지 줄지어 앉아 있었다.
눈길이 닿는 곳에는 어디든.
나와 면식이 있는 사람이 보인다.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리하르트 리프만과 마 원장님.
그 뒤에는 김기찬 기자님과 금천문화재단의 김 이사장님.
그 너머까지도 유키에 모리가 앉아 있었다.
“자, 우승자 이성현. 우승 소감을 말씀해주시겠어요?”
숨 가쁘게 객석을 둘러보던 나는 들려온 요셉 데커의 따스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소감.
그래.
나는 우승을 했고, 현재 세계는 오롯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분명, 저 카메라 너머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수의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겠지.
허나, 이상하게 나는 잠시 놀랐을 뿐. 심장이 또다시 크게 요동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흠.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잠깐의 고민과 허탈한 답.
정답은 눈앞에 있다.
나는 시선을 조금 내려 다시금 맨 앞에 앉은 부모님을 바라보았다.
마치 나를 대신해주시는 것처럼 어머니뿐만이 아니라 아버지도 눈시울을 붉히고 계셨다.
“감사를 전해드려야 할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나는 입을 열고, 차근차근 바로 전에 눈에 밟힌 순서대로 이름을 언급하며 그들과의 일화와 진심 어린 감사를 표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지금도 파이널 리스트 자리에 앉아 있는 나의 라이벌이자 동료이신 분들께도 그리고 하늘에 계신 나의 먼 스승님에 대해서까지.
처음에는 나의 이야기를 형식적으로 들어주는 것 같았던 많은 분들은 내게 희망을 주고 떠나간 그분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려주게 되었고, 이토록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시는 분들이 이곳에 계신다는 사실에 나는 다시금, 감사에 감사를 전할 수 있었다.
이윽고, 고개 숙여 인사를 드린 뒤, 모든 영광을 떠안고 단상을 내려가면 되는 그 순간.
나는 선언했다.
“저는···. 세계 3대 콩쿠르에 전부 출전하려 합니다.”
이 모든 콩쿠르의 시작점이 되었던 그 시드권자 인터뷰 때와 똑같이.
뜬금없고, 엉뚱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상상하지도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나.
“그리고 그곳에서도 도전하고, 다시 도전하려 합니다. 1등을 해도 안주하지 않고, 설사 탈락을 해도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힘을 다하는 그 날까지 도전과 함께 살아가고 싶으니까요!”
그렇게,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니 가슴 속이 시원해졌다.
즐거움이, 흥분이, 모든 콩쿠르의 종착지인 이곳에서 다시금 시작되는 것이다.
민호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긴 하지만, 아마 나는 이런 놈이었던 것 같다.
이토록 뜬금없는 선언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게 너무나도 즐겁고, 항상 도전하며 사는 게 행복하다.
이런 순간, 순간에 나는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이니까.
“후.”
아주 작지만, 내게 만은 분명하게 들려온 한숨소리.
그건 파이널리스트들의 자리, 그 중에서도 내 여자친구인 지은이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분명했다.
마치 예전 수행평가 때 그랬던 것처럼,
마치 예전 세브란스 플래시몹 때 그랬던 것처럼.
지은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픽 내쉬었고, 다시금 나와 함께하길 다짐하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내 얼굴에는 절로 미소가 피어난다.
역시 내가 사랑하는 여자친구.
그리고, 내가 존경하는 민호 역시 벌써 흥분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피식,
웃음.
그래. 웃자.
웃으며 내가 죽는 그날까지 노래를 멈추지 말자.
죽은 것처럼 새하얀 무채색의 겨울을 거닐던 전생과 달리, 지금의 나는 아주 밝디밝은 봄의 아침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