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living again RAW novel - Chapter 19
19. 크레센도 (Crescendo, 점점 세게) -2
신입생 실기 우수자 연주회.
미향예고는 많은 투자자나 미향재단의 임원들 그리고 음악기자들을 초대해 일 년에 두 번, 연주회를 연다.
그것이 바로 ‘졸업생 실기 우수자 연주회’와 ‘신입생 실기 우수자 연주회’.
학교는 유망한 신인을 보여주고 투자를 받고, 그 투자금으로 더 고품질의 교육 환경을 만든다.
이윽고 학생은 자신을 투자해줬던 스튜디오를 소개받고, 투자자는 자신이 점찍어둔 학생이 유학을 떠나기 전에 먼저 계약을 해버리는 것이다.
즉, 학교와 학생은 물론 투자자도 이익을 얻는 연주회.
그게 바로 졸업생, 신입생 연주회였다.
참고로 앞서 말한 졸업생 연주회가 바로 먼 과거, 김민호의 연주로 내 귀가 뜨였던 그 졸업식 겸 연주회였다.
하,
전생의 나와는 정말이지 거리가 먼일이었다 보니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우선 기본은 같습니다.”
그렇게 말한 기택 선생님이 긴 유리 테이블에 올려놓는 종이.
-음악과
-무용과
-미술과
과별로 나눠진 항목에는 각각 학생 세 명 이름이 적혀있었다.
물론 음악과는 지금 이 자리에 모여있는 사람들.
[최지은, 김민호, 이성현]입시성적에서 3등은 무용과 학생, 4등은 미술과 학생이었기에 자연스럽게 5등이었던 내가 음악과의 3등이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악기죠.”
이어서 기택 선생님이 테이블에 올려주는 세 장의 사진.
바로 신입생 연주회보다 한 달 일찍 진행된 졸업식을 겸한 ‘졸업생 연주회’의 사진이 분명했다.
그런데,
화려하게 건반을 두드리는 졸업생 1.
자신의 연주에 심취하여 피아노를 치는 졸업생 2.
마지막으로 힘차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졸업생 3.
“앞선 졸업생 연주회의 우수자 3명이 모두 피아노 전공생이었던 것까지는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거기까지만 듣고도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실지 예상이 되었다.
“이번 신입생 연주회를 진행할 여러분도 모두 피아노 전공생이라는 것을 교장 선생님이 신경 쓰시더군요.”
아무리 그래도 일 년에 딱 두 번 있는 연주회에서 ‘음악과’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타난 연주자가 전부 피아노라니.
수많은 기자들도 참석하는 자리에 그렇게 획일화된 모습은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음,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가만히 듣고만 있던 김민호가 선생님을 향해 질문했다.
“선생님들도 그게 고민이라 여러 번 회의했는데, 아무래도 협주를 부탁하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바로 여러분에게요.”
협주,
실기 우수자인 피아노 전공생을 보여주면서도 ‘졸업생 연주회’와는 또 다른 맛을 낼 수 있으니 이상적인 해결방안이었다.
다만, 너무 이상적인 것이 문제가 되지만.
“그치만 선생님. 저희 셋 다 이번 서울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나가요. 신입생 연주회까지 준비하기에는 너무 빠듯할 것 같은데요.”
조리 있고 차분하게 말하는 최지은.
그래, 콩쿠르가 3주 남은 이 시기에 다른 연주회까지 준비한다는 건 솔직히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것도 다른 악기 전공생과 합을 맞춰야 하는 ‘협주’를 하는 건 더더욱.
“강요하는 건 아니에요. 교사진이 맞닥뜨린 문제를 학생들에게 책임 전가할 생각은 정말 추호도 없으니까요. 대신, 그렇게 되면 여러분 셋 중 한 명은 연주회를 포기해 달라고 말할 수밖에 없네요.”
끝내 나온 결론은 연주자 교체.
그래, 사실 가장 현실적인 답이 바로 그거다.
보통 프로가 일정조정에 실패해 완벽한 연주를 들려주지 못할 것 같을 때도 마찬가지니까.
“그건 으음.”
“아무래도 좀···.”
다만 최지은과 김민호는 둘 다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당연하지만 국내 1등 예술고의 ‘신입생 연주회’는 어마어마한 화제성을 가지고 있다.
착실히 피아니스트를 준비해온 두 학생에게 있어 갑자기 그런 무대를 포기해달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그것도 이런 외부사정으로는 더더욱.
전생에 김민호는 신입생, 졸업생 연주회를 모두 나갔다.
입시를 망친 최지은도 어떻게든 졸업생 연주회에는 참가해 이름을 알렸었다.
둘에게 있어 이번 연주회는 당연히 참가해 마땅한 것.
허나, 내게는 그 존재를 잊고 있었을 만큼 거리감이 있는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사실은 상황 자체가 내가 전생의 경험을 토대로 이것저것을 바꿔버려서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사태는 사실 내가 일으켰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책임을 져야겠지.
“제가 할게요.”
나는 담담하게 손을 들고는 그렇게 말했다.
“서, 성현아?”
아무래도 무대 경력이 많고 이미 이름을 알린 두 사람 중 한 명에게 포기를 권고할 작정이었는지,
내가 손을 들자 김기택 선생님은 눈에 띄게 당황하며 말까지 더듬었다.
“성현아. 꼭 네가 무대를 포기하지 않아도 된단다. 너는 이번이 첫 무대 아니니.”
왠지 안타깝다는 듯, 미안한 감정이 묻어나게 말하는 김기택 선생님.
그런 반응 덕분에 그가 나를 많이 아껴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허나, 나는 그런 의미로 손을 든 것이 아니었다.
“아뇨. 포기하겠다는 게 아니라 협주요. 저 할 수 있어요.”
“뭐, 뭐라고?”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로 되묻는 선생님.
그리고 이 발언에는 교무실에 있던 다른 선생님들이나 옆에 있던 김민호, 최지은 역시 눈이 휘둥그레졌다.
“큼, 크흠. 성현아 무리할 필요 없단다. 우리 교사진은 너한테 그런 무리한 부탁을 하려던 게 아니야.”
심지어는 멀찍이 앉아있던 내 담임, 문혜선 선생님까지 다가와 그렇게 말하는데.
나는 선생님의 경솔한 발언에 좀 화가 났다.
나한테 무리한 부탁을 하려던 게 아니라니, 그럼 대놓고 김민호나 최지은에게 포기를 강요하려던 것이라고 말하는 꼴 아닌가.
김민호는 내게 있어 삶의 방향성을 알려준 음악가다.
최지은은 그런 김민호 다음으로 내가 가장 많이 찾아 듣던 피아니스트고.
나 때문에 벌어진 사태 때문에 내가 열광하던 두 스타가 스크래치 나는 꼴을 지켜보라니,
둘의 열성 팬으로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리가 아니에요. 딱 3가지만, 제 부탁을 들어주시면 됩니다.”
“부, 부탁?”
“예. 콩쿠르 준비와 신입생 연주회 모두 전혀 무리 없이 진행할 방법이 있어요.”
화를 꾹 눌러 티 내지 않고 훗날의 김민호처럼 당당하게 말하는 나.
그런 나의 발언에 교무실에 있던 모든 학생과 선생님들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내, 나는 말문을 열어 부탁 3가지를 차근차근 말하기 시작했다.
***
본래 ‘신입생 연주회’는 자신의 입시 고사를 치를 당시 받았던 과제 곡을 연주한 뒤, 학생이 자신 있는 자유곡을 하나 더 연주하는 것이 규칙이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간 콩쿠르 준비와 꼬여버릴 수 있으니 나는 하나의 조건을 제시했다.
-입시 곡 대신에 이번 콩쿠르의 과제 곡을 연주할 수 있게 해주세요.
다행히도 이번 콩쿠르에서 과제 곡으로 선정된 세 곡 중에는 이 상황과 딱 맞는 곡이 하나 있었다.
[Beethoven Sonata for Piano and Violin No.5 in F Major Op.24 ‘Spring’](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
그 유명한 베토벤의 곡.
베토벤 하면 보통 격정과 고뇌로 가득 찬 교향곡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이 바이올린 소나타 5번의 경우는 드물게 밝은 음색을 가진 곡으로 유명하다.
피아노 콩쿠르의 과제 곡이면서도 자연스럽게 바이올린 곡이기도 한 이 ‘봄’이 있었기에 나는 당차게 협주를 승낙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조건.
-제 협주자에게 걸맞은 보상을 주세요.
신입생 연주회까지 남은 기간은 단 8일.
이 짧은 기간이 합을 맞추고 고생을 시키려면 알맞은 보상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다행히 선생님들은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느냐는 반응이었다.
그러니 남은 문제는 내가 점찍어둔 그 사람에게 협조를 허락받는 일이었는데,
“좋아요! 그러면 그 연주회에 부모님을 불러도 되는 거죠? 나는 좋아요. 진짜 고마워요. 성현!”
괜히 긴장하던 내가 맥이 다 빠질 만큼 엘리나는 방긋 웃으며 내 제안을 받아주었다.
현재 나와 그녀가 있는 곳은 방과 후의 1학년 1반 교실.
엘리나와 나는 오전에 약속했던 ‘공부 시간’을 가지고 있던 것인데,
사실 이 만남 자체가 내 부탁으로 만들어진 상황이다 보니 여기서 뭔가를 또 부탁한다는 건 솔직히 스스로 생각해봐도 좀 너무한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고맙다’라니 정말 엘리나는 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아이였다.
“오히려 성현이 걱정이에요. 피아노 콩쿠르 준비 시간 있어요? 바이올린은 아직 시간 많아요.”
오히려 나를 걱정해주는 엘리나.
“응. 선생님에게 부탁해서 연주곡을 콩쿠르 곡으로 변경했거든. 그래서 연주회 준비가 콩쿠르 준비나 다름없어.”
“오오오! 성현 똑똑해요! 천재예요.”
“아니, 그냥 편법이야···.”
협주를 준비하게 되었기에 나는 두 천재와 달리 다시금 입시 과제곡을 연습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게 협주이건, 독주이건 내게는 덕분에 직관적인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력 질주할 수 있게 되었으니 오히려 내게는 이득인 상황이었다.
“엘리나, 대신에 나랑 연주회 준비를 하게 되면 수업도 빠지고 화, 목, 토요일에 나랑 M스튜디오로 가야 하는 데···.”
협주와 독주는 다르다.
단순히 연주자가 하나에서 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끼리의 호흡, 악보에 대한 해석의 차이, 그리고 성향까지 고려해야 하니 더 많은 연습 시간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나는 세 번째 조건,
-딱 이틀만, M스튜디오에서 종일 연습할 시간을 주세요.
마지막으로 이런 조건을 걸었고 화요일, 목요일 학교를 빠지는 것을 허락받았다.
다만, 문제는 협조자도 교과 수업과 전공 시간을 모두 빠져야 한다는 것.
나야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해결한다 쳐도 파트너가 된 그녀는 나 때문에 강제로 피 같은 미향예고의 수업을 빠지게 되는 것이다.
“정말 괜찮아?”
그 때문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가 묻자 영 이상한 대답이 돌아왔다.
“수업을 빠져도 된다고요?!”
아주 신이 난 눈동자.
곧바로 귀에 걸릴 듯 올라가는 입.
내 걱정과 정반대로 엘리나는 수업에 빠진다는 사실을 정말 좋아하고 있었다.
아, 그래. 원래 고등학생한테 수업을 빠지는 일은 신나는 일이었지···.
너무 아저씨 같은 마인드로 생각하다 보니 잊고 있었다.
***
그렇게 바로 다음 날.
나와 엘리나는 기숙사를 나와 대중교통으로 1시간이 걸리는 M스튜디오로 향했다.
“오오오오~”
버스와 지하철을 타는 내내 신기하다는 듯 그런 소리를 내는 엘리나.
하긴, 그녀는 한국에 입국한 뒤에도 거의 기사가 끄는 차로 돌아다녔을 테니 사실상 처음 보는 풍경일 것이다.
내가 알기로 엘리나의 집안은 김민호 이상의 재벌이거든.
“호오오오~”
“가자, 이제 조금만 걸으면 돼.”
“네!”
사소한 시내 풍경에도 감탄하는 그녀를 데리고 도착한 M스튜디오.
“성현아.”
익숙하게 건물로 들어가자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당연히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정석 선배.
내가 어젯밤 전화해 신입생 연주회에 대한 일들을 털어놓으니 선배는 내 연습을 도와주겠다며 발 벗고 나서주었다.
“어?”
그런데, 그런 정석 선배의 뒤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여어 똑똑한 친구. 이렇게 빨리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그는 다름 아닌 ‘클래식 버스킹’의 운영자 홍진태였다.
이 사람이 왜 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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