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living again RAW novel - Chapter 30
30. 코모도 (Comodo, 편하게) -2
공부는 어렵지 않게 진행되었다.
“와, 학사일정까지 바꾼 분들이 저기 계셨네.”
“쟤들이야? 또라이 교장이 들고 일어나게 만든 애들이?”
“하, 그 또라이 2년 만에 또 학교 명성이니 위신이니 하는 거에 미쳐서는 으휴.”
물론, 굵직한 일정을 1주씩 앞당겨 버렸으니 복도를 지나다니는 학생들에게서 여러 불평불만이 들려왔지만,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진지하게 공부에 집중해준 덕분에 대놓고 따지고 드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부터 나와 엘리나는 공부든, 협주든 상성이 좋은 편이라 서로를 가르쳐주기 좋았고,
“그거? 거기는 어떻게 하면 되냐면···.”
질문할 것이 많다고 했던 이예린은 반대로, 못 하는 과목이 없어 오히려 나와 엘리나 그리고 최지은을 가르쳐주는 입장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지은은, 한번 집중하니 정말 무서울 정도로 이해가 빨랐다.
함께 홍대를 다녀온 덕분인지 어느 정도 친해진 이예린과 나에게 집중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지은.
처음에는 기초적인 것을 질문하길래 안심했으나, 두어 시간 만에 내가 종일 걸렸던 진도를 빼버리는 모습에 나는 조용히 내 필기 노트를 그녀의 시선이 닿지 않는 쪽으로 옮겼다.
원래 공부를 했어도 성공할 사람이 다른 일을 해도 성공한다고 하던가.
나는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말이었지만, 최지은을 보고 있으면 그게 완전 헛소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은아 너 진짜 똑똑하다. 어떻게 한번 말하면 다 이해하지?”
“아니야. 네가 잘 가르쳐줘서 그런 거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지은이를 칭찬하는 예린.
내 옆으로 다가와서 국어 지문을 보여주는 엘리나. 그리고 졸고 있던 한승우를 깨우는 나까지.
문득, 예고에서도 보기 드문 이런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간질간질해지는 묘한 감각이 들었다.
본래라면 입시를 망치고 2반과 3반으로 반을 흩어졌을 최지은과 엘리나.
그리고 같은 5반이었지만, 서로 이야기 한번 해본 적 없을 나와 이예린.
거기에 미향중학교 출신을 싫어하던 내가 대화하는 것 자체를 거부했을 한승우까지.
참 많은 것들이 변했다.
나는 이제 최지은, 김민호와 함께 공동 1등이 되었고 이예린은 벌써 낯가림을 조금씩 극복하기 시작했다.
다름이 아니라 내가, 내 두 손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새삼 그걸 깨닫고 나니 뭐라 설명하기 힘든 뿌듯함이 샘솟았다.
***
밤이 늦었다.
바이올린 콩쿠르가 점차 다가오는 엘리나와 마침 공부에 진절머리가 난 한승우가 자리를 뜨고 더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던 나와 예린이 그리고 최지은은 셋이서 교실의 문단속을 마치고 서늘한 밤거리를 걸었다.
그러고 보니 이 셋은 이번 1학기의 흥망을 함께할 실기 고사 팀이 아닌가.
요새 통 바빠 잊고 있었는데, 시험 바로 다음 주로 실기 고사가 변경되었으니 슬슬 곡 선택이나 촬영 장비 그리고 SNS의 계정 관리 같은 것들을 신경 쓰기 시작해야겠다.
그런 생각에 내가 SNS 계정 만들어둔 것이 있냐고 묻자.
“으, 응. 있는데 어? 으음.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까 없는 것 같아.”
내 질문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서서히 멈추는 이예린.
뭐, 그녀만큼 관심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드물고 난 솔직히 이미 그녀가 SNS를 이용하고 있을 줄 알았다.
저번에 홍대 갔을 때 내가 이용법을 알려줬거든.
“있는데, 왜?”
“아, 아니야 아무것도. 계정 없다니까? 서, 성현아 그럼 우리 팀에는 아직 계정이 없는 것 같으니까. 내가 미리 새 계정을 파둘까?”
2010년의 SNS라고 하면 훗날 성인이 된 자신이 되돌아봤을 때, 바로 삭제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흑역사들을 아무렇지 않게 양산하던 시절이다.
그리고 아마, 그녀가 급히 자신의 계정을 숨기는 이유도 그런 것이겠지.
나는 씩 웃으며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 온화한 표정을 만들었다.
“아니야 예린아. 나는 네가 지금 쓰고 있는 그 계정으로 하면 어떨까. 생각하는데?”
“응? 나는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 성현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돌리는 예린. 나는 그런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저번에 알려줄 때 음, 아이디 뒤에 생일을 붙여야 한다고 말했었으니까. 음, 0822가 붙은 계정을 검색해서 하나씩 찾아볼까나, 음음.”
“아아아아! 제발! 성현아! 그렇게 안 해도 되는 거였어?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미안해. 사실은 계정 있어. 있는데 그 계정은 막 과제를 올리고 그럴 만한 계정이 아니라고오오!”
와, 이렇게 말 빠른 이예린은 오랜만이다.
간만에 200만 너튜버 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이예린.
“둘이 아까부터 뭔 소리야.”
그리고 나와 예린이의 대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얼굴의 최지은까지.
“어, 그러니까 예린이가 가진 SNS 계정이···.”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지은아!”
필사적으로 최지은이 이해하지 못하도록 막는 예린.
나는 그런 그녀를 보다가 그 반응이 너무 재미있던 나머지 그대로 크게 웃고 말았다.
“하하핫, 미안. 장난이었어. 그럼 그 계정 물어보지 않는 대신에 묻는 건데, 지금 계정으로 게시글 쓰면 대충 ‘좋아요’는 몇 개 정도 받아?”
“응? 으으···. 솔직하게 말하면 장난 안 칠 거지?”
“당연하지.”
“한··· 이백 개 정도?”
아직 스마트폰도 제대로 보급 안 된 이 시기에 이백?
“그냥 그 계정 쓸까.”
“아아아! 진짜아!”
“장난이야. 장난.”
대체 무슨 게시글을 올렸길래 이 시점에 ‘좋아요’를 2백 개나 모은 걸까.
참, 역시 훗날 대성할 너튜버는 다르긴 다른가 보다.
나는 그런 예린이에게 계정을 새로 만들어 이것저것 게시글을 써서 밑 작업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밑 작업? 그런 게 왜 필요해.”
그런데, 대화의 흐름을 따라오지 못하는 최지은이 멍한 얼굴로 내게 그런 질문을 던져왔다.
“음, 예를 들면 이런 거야. 우리 반에 있는 애들이 갑자기 자기 춤 영상을 올렸데. 그럼 너는 너하고 친한 애 영상을 볼 거야. 아니면 이름만 아는 어색한 친구 거를 볼 거야?”
“아무것도 안 볼 건데?”
“아니, 예를 들었다고 했잖아. 딱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어떻게 할 거냐는 거지.”
“음, 너랑 엘리나가 흐음. 그럼 아마 네 영상?”
최지은이 엘리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았다.
엘리나 울겠다 야.
“그거랑 똑같은 거야. SNS도 이미 게시글이 좀 있고, 다른 사람들 게시글에도 좋아요를 눌러줬던 사람한테 더 관심을 가지는 거지.”
“그렇구나···.”
뭔가 시원스럽게 이해하지는 못한 반응의 최지은.
그러나 그녀는 딱히 더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기에 SNS 일은 이예린에게 맡기는 쪽으로 이야기를 매듭지었다.
“그보다 내일은 M스튜디오 나올 거지?”
“어···. 어? 아니? 내일도 공부할 건데.”
너무 당연한 말투로 물어봐서 나도 모르게 긍정을 표할 뻔했다.
그러자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는 최지은.
“중간고사가 콩쿠르보다 중요해?”
“뭐가 더 중요하고 말고가 아냐. 나는 둘 다 잘해야 하거든.”
최지은은 내가 진지한 어조로 그리 말하자 뾰로통한 얼굴이 되었지만, 이전처럼 툴툴거릴 생각은 없는지 입을 꾹 닫았다.
“대신에 다음 주에는 계속 같이 연습하자 어차피 실기도 있으니까 붙어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최지은은 내가 ‘마’레슨을 듣기 시작하면서 한 번도 같이 연습하자는 말을 하지 않자 조금 삐져 있었던 것 같았다.
아무리 피아노를 잘 치고 남들 앞에서는 점잖은 척해도 결국 고1의 아이 아닌가.
“그래.”
최지은의 대답은 담백했다. 그러나 아까부터 짓고 있던 불만스러운 표정이 좀 풀린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내 예상이 잘 맞은 것 같았다.
“그럼 잘 들어가고, 예린아 너도 내일은 공부할 거야? 할 거면 같이 하자.”
“그, 그래도 돼?”
“당연하지. 그럼 도서실에서 보자.”
“응!”
그렇게 나와 실기 고사를 함께할 둘은 여자 기숙사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 뒷모습을 조금 보고 있던 나도 조금 서늘해진 밤공기에 남자 기숙사로 향했다.
오늘따라 달빛이 퍽 밝았다.
***
주말은 순식간에 흘렀다.
정말 오랜만에 M스튜디오가 아닌 학교에서 보내는 주말이었기에 미향예고의 새로운 일면을 볼 수 있었다.
텅 빈 기숙사부터 내 예상보다 자리가 꽉 찬 도서실, 정말 예상외였지만 이 학교에서 교과목 점수를 중시하는 게 나뿐만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나 왔어요.”
내가 혼자 국어 지문을 풀고 있자 소곤소곤 이야기하며 옆자리에 앉는 엘리나.
늦잠을 잤는지 점심대가 지나서야 나타난 이예린.
갑자기 늦잠을 잤다는 게 이상해서 좀 찾아보니 이예린의 것으로 추정되던 SNS 계정에서 꽤 많이 있던 ‘새벽 갬성’글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그거 다 지우느라 늦게 잔 거네.
그리고 딱히 공부하진 않았으나 꾸준히 얼굴을 비추는 한승우까지, 넷이서 충분한 공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만약 내가 혼자였다면 이만큼 할 수 있었을까.
아마 또다시 피아노나 교과목 둘 중 하나에 치중해서 다른 하나를 게을리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전액 장학금은 점점 더 내게서 멀어졌겠지.
그럼 아무리 피아노 실력이 향상되어도 집에 부담을 준다는 불안감이 생겨 콩쿠르에 집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성현아. 너 중학교 때는 석차 얼마나 나왔어?”
“아! 맞아. 나도 실은 궁금했었어.”
한승우의 물음에 곧바로 흥미를 보이는 이예린.
중학교 석차라···.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아마,
“한 50등 정도 했을 거야.”
“50등?”
“음, 무난한 중상위권이었다는 거구나?”
둘뿐만 아니라 엘리나까지 의외라는 듯 나를 쳐다본다.
아마 국어랑 사회만 해당하는 이야기지만, 물어볼 때마다 정확한 답을 척척 내놓았기 때문에 더 잘할 거라 예상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실은 전생에서 공부해봤던 가락이 남았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나는 결코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심지어 진짜 반전은 따로 있었다.
“그 50등, 뒤에서 50등이라는 말이었어.”
“뒤?”
“응?”
“네가 뒤에서 50등이었다고?”
씩 웃으며 말하는 나와 대조되게 깜짝 놀라는 아이들. 모두 믿기 힘들다는 눈치였다.
“에이 말도 안 돼.”
“마, 맞아 성현아 아무리 내가 잘 속는 편이어도 이런 장난에는 안 속지.”
오히려 단순한 장난으로 치부해버리는 예린. 근데 뒤에서 50등이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게다가 내가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특별히 그 등수만은 기억하는 이유가 더 가관이다.
뒤에서 50등은 공부에 아예 관심이 없던 내가 ‘가장 좋은 점수를 달성한 시험’ 때 받은 등수였기 때문이었다.
“진짠데.”
음, 뭐 믿고 안 믿고는 자유니까.
그리고 이제와서 22년전 나의 등수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월요일, 화요일 그리고 수요일까지.
중간고사 동안 당장이라도 피아노를 치고 싶은 욕구를 꾹 참고 열심히 공부한 나는 답안을 채점하면서 실컷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내 생각보다 더 잘 나왔는데?”
나는 내 것이 맞나 싶은 시험지를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윽고, 중간고사의 끝을 선언해줄 선생님이 나보다 더 밝은 미소를 띠고는 반에 들어왔다.
“대박이다. 얘들아!”
거두절미하고 그렇게 외치는 정혜선 선생님. 애들의 시선이 모두 한곳으로 모인 것을 확인하자 선생님은 당황한 아이들을 향해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반에 전교 1등이 떴다!”
“엇!”
“와.”
“우와 누구?”
각양각색으로 놀라움을 표현하는 1반 아이들.
아무리 중간고사에 얽매이지 않는 애들이라도 전교 1등이라는 키워드에는 흥미가 생기는 모양이었다.
“성현아! 정말 잘했어!”
곧바로 잔뜩 흥분한 어조로 나를 호명하는 선생님.
입학식 날 그랬던 것처럼 한순간에 내게 이목이 쏠렸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시선을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았다. 당당하게 선생님을 마주 보며 씩 웃는 나.
“와 무슨 할 말이 없게 만드냐.”
“전공에서도 공동 1등 하더니 교과목까지 1등 한다고?”
“도대체 머리가 어떻게 되먹은 거야.”
경악으로 물든 반 친구들의 술렁거림을 들으며 성취감을 만끽하는 나.
이제는 정말 마음 편히 실기 고사에 집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공부를 함께했던 넷이서 신나게 뒤풀이로 반나절을 보낸 뒤 기숙사에 돌아온 나는 인터넷을 켰다.
곧장 화면을 채우는 SNS 계정.
‘클래식 버스킹’
드디어 뿌려둔 씨앗을 거둘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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