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living again RAW novel - Chapter 33
33. 피에로 (Fiero, 대담하게) -3
“근데 성현아 정말 이렇게 계속 연습해도 돼?”
버스킹을 코앞에 둔 금요일.
김기택 선생님을 놀라게 한 뒤 한창 다시 연습에 집중하던 중, 이예린이 내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라니?”
“으음, 우리는 한 곡을 셋이서 나눠 연주하는 거잖아?”
“그렇지.”
“그런데 이렇게 따로따로 연주하듯이 각자 다른 타입으로 연주해도 되는 거야?”
똘망똘망하고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묻는 이예린.
확실히 그녀의 지적은 정확했다.
우리가 연주하는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이전에 마주혁 원장이 나와 김민호에게 던져주었던 ‘쇼팽 발라드 4번 F단조’ 만큼이나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많은 것들이 좌우될 수 있는 곡이다.
그러니 사람을 셋이나 데려와 한 곡을 나눠 치는 이런 미친 짓은 보통이라면 하지 않는다.
머릿 수가 셋이나 되는데 다 다른 생각을 할 것이고, 그에 따라 조율해야 하는 부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 상황과 가장 비슷한 예시라면 일전에 나와 엘리나가 진행했던 ‘협주’가 있는데 그때도 엘리나가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내가 끌어주는 대로 곧잘 따라 왔기 때문에 선율의 조형이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처럼 한 곡에 셋이 매달려 버리면 조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지.
내가 고른 곡에, 내가 정한 연주방식인데 설마 이 치명적인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도 없이 시작했겠는가.
“평소에 공부 열심히 했구나. 잘했어.”
우선 칭찬해주면 더 잘하는 타입인 이예린에게 그렇게 말한 나는, 열심히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최지은을 뒤로하고 예린에게 다가가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 너만 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연주를 못 하게 되거든.”
“그으, 성현아 미안한데, 내가 할 수 있는 특별한 연주라는 게 대체 뭐야?”
“그건 바로 내일 알게 될 거야.”
“아니··· 내 특별한 연주를 왜 내가 모르는 거야···. 진짜 말해주면 안 돼? 대체 내가 뭘 할 수 있는 거야?”
“그건 비밀.”
“에에에에에. 진짜 치사해···.”
“궁금하면 네가 열심히 연습해서 찾아내야지. 자. 다시 연습하자. 내일이 버스킹이야.”
“응···.”
끝내 내가 시원하게 답을 주지 않자 시무룩해서 하며 피아노에 앉는 이예린. 그러자 그녀에게 자리를 넘겨준 최지은이 일어나 자연스럽게 내 옆으로 왔다.
이윽고 이예린의 ‘피아노 협주곡 1번 2악장’이 들려오자 최지은은 최대한 내색 없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연습을 시작한 지 이틀째. 당연히 만족스러운 연주가 나올 리 만무했지만, 그래도 버스킹을 바로 앞둔 현재 이렇게 완성도 낮은 연주는 누가 봐도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정말 괜찮겠어?”
3분가량 이예린의 연주를 듣던 최지은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주어는 빠져 있으나 지은이 예린의 연주를 말하고 있다는 건 당연히 알 수 있었다.
“아무 문제 없어.”
“하아아.”
그러나 그런 그녀와 달리 내가 태평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최지은은 두통이라도 시달리는 사람처럼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내가 계속 막연한 말만 하니 서서히 그녀의 인내심이 바닥을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 최지은이 예린을 신뢰할 수 있게 어느 정도는 말을 해줄 때가 된 모양이다.
“지은아. 너는 천재야. 그치?”
“엉?”
갑작스러운 칭찬에 눈썹을 꿈틀대며 경계심을 보이는 최지은. 하지만, 나는 그치지 않고 계속 말했다.
“무지 어릴 때부터 콩쿠르도 나가고, 노력도 많이 하고, 미향중학교에서도 최상위권에서 내려온 적 없는 천재잖아 그치?”
“뭐, 뭐야. 약 팔아도 안 살 거야.”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한번 생각해보자는 거지. 너는 공부도 하려고 하면 금방 이해하고, 어릴 적부터 쌓은 경력과 감각이 있어서 초견인 곡도 음이 무너지지 않게 잘 치잖아.”
“어, 그, 그래.”
“그런데 만약에 너한테 한 번도 연습해본 적 없는 바순이나 클라리넷을 갑자기 누가 많은 사람 앞에서 연주해달라고 부탁을 했어. 그럼 너는 어떻게 할 거야?”
“바순? 클라리넷?”
영 뜬구름 잡는 질문에 당황하는 최지은.
“응. 게다가 그 연주의 최종 목적은 연주를 잘 하는 게 아니라, 듣는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연주를 하라는 거야.”
“말도 안 되지. 연습도 안 해보고 관객도 많은데 그 사람들이 어떤 방식의 연주를 좋아할 줄 알고 그걸 연주해.”
다행히도 머리가 좋은 최지은은 내가 은근슬쩍 유도하던 대답을 그대로 내놓았다.
나는 얼굴을 찌푸린 최지은에게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근데 예린이는 그걸 할 줄 알아.”
최지은이 또래 이상의 연주 실력과 숱한 경험 그리고 엄청난 이해력과 분석력으로 무장한 다재다능의 천재라면,
이예린은 아직은 스스로 깨닫지 못한 자신만의 ‘즉석 편곡’의 재능 하나로 200만 너튜버라는 아무나 오를 수 없는 위치에 도달한 또 다른 방향의 천재였다.
“관객이 어떤 연주를 원하는지도 모르고, 자기 연습도 똑바로 안 돼 있는데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연주를 한다고? 말이 돼?”
“당연히 말이 안 되지. 근데 그걸 할 줄 아는 애가 있더라고”
“그게 무슨···.”
“못 믿겠어?”
“당연하지.”
연주의 연습이란 기본적으로 많은 연습을 통해 작곡가를 이해하고, 심사위원이 좋아할 만한 연주를 예측하고, 자신의 연주 스타일을 가다듬어 그 두 개의 축에 합치시켜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방금 내가 한 말은 그러한 오랜 피아니스트들이 쌓아 올린 연습 방식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것이 다름없었다.
“즉석에서 처음보는 관객이 좋아할 만한 연주로 바꿔서 친다고? 그거 불가능해.”
그러다 보니 최지은은 끝내 내 말에 동의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전까지의 ‘한소리 해주고 싶다.’라는 표정이 ‘그게 된다고?’처럼 흥미로 변한 것을 보니 그녀가 연주도 하기 전에 예린이 기를 죽이는 불상사는 막은 것 같았다.
“내일 기대해. 꽤 재미있을 거야.”
반신반의하는 최지은에게 나는 그렇게 말했고, 예린이를 중심으로 한 연습은 그날 저녁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홍진태와 약속했던 토요일이 되었다.
***
홍대에 왔다.
대략 한 달 만인가.
갑자기 시작된 ‘신입생 연주회’와 콩쿠르 예선 준비, 거기다 중간고사까지 대비하느라 정말 바빠서 어떻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지냈는데,
막상 한 달 만에 돌아온 홍대의 ‘그 자리’에 이렇게 서 있으니 새삼 시간이 흘렀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홍진태와 먼저 버스킹 장소에 도착해 사전 준비를 해둘까 싶어 다른 애들보다 일찍 홍대에 도착했는데,
홍진태와 만나는 동시에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요. 홍진태 선생님.”
“응? 왜 그러니 똑똑한 친구?”
“이 사람들은 누구세요?”
내가 가리키는 방향에서 열심히 촬영 장비를 들고 나르는 세 명의 어른들.
내 옆에 선 홍진태는 아주 싱글벙글한 얼굴로 말했다.
“굳이 따지자면 정석 씨랑 내 직장 동료인 셈이고”
“그럼 저분들이 전부 서울 시향 오케에 연주자분들이라고요?”
“아니 저기 키 큰 누나랑 문어같이 생긴 아저씨는 우리 오케가 맞고, 저기 잘생긴 형은 직장도 있는데 취미로 음악을 하는 사람이란다. 좀 별나지?”
“진태씨! 거, 누구보고 빡빡이라는 겁니까 지금!”
머리에 두건을 두른 아저씨가 발끈하고 옆에 있던 두 사람이 신나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 친숙한 분위기만 봐도 그들의 정체를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클래식 버스킹에 다른 팀원분들이세요?”
“역시 똑똑한 친구. 바로 알아보는구나.”
“저분들이 왜 여기에 오신 거죠?”
“아, 내가 얘기했거든 오늘 너 만나러 간다고, 그랬더니 다들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나오겠다고 말하길래 그러라고 했지.”
“왜요? 오케 단원에다가 직장도 있으신데 바쁘신 거 아니에요?”
고작 고등학생들의 실기 고사를 위해서 우리 팀원들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이렇게 솔선수범 나와 버스킹 준비를 도와준다니.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모르겠니?”
그런데 홍진태는 어안이벙벙한 내 어깨를 툭 건들며 활짝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어떤걸요?”
“저 셋은 네 팬인 거야. 그러니까 이렇게 너를 직접 보고 싶어서 휴일도 반납하고 나온 거지.”
“팬··· 이요?”
“그래!”
나한테 팬이라니,
홍진태는 내가 당황해하자 신난 듯 업라이트 피아노를 낑낑거리며 나르던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다들 성현이랑 인사 좀 나눠봐.”
“자기가 일 다 시켜놓고 아량 넓은 사람인 척하지 마쇼.”
“어머! 네가 성현이구나!”
“오오. 실물이야 실물!”
툴툴대는 문어 아저씨와 내게 일직선으로 달려와 감탄사를 내지르는 다른 두 사람.
아무래도 나는 이런 식으로 열광적인 관심을 처음 받다 보니 좀 그 기세에 눌려 의기소침해질 뻔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 무리한 부탁에 어울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빠르게 정신을 차린 내가 예의 바른 인사를 건네자 하하, 호호 웃는 얼굴로 나를 칭찬해주는 사람들.
팬이 있다는 건, 바로 이런 거구나.
내 얼굴만 봐도 좋아해 주고 짧은 말 한마디에 기뻐해 주는···.
정말 고마운 사람들.
그렇게 나의 팬을 자칭해준 ‘클래식 동아리’의 팀원들을 보고 있자 이번 버스킹도 이전처럼 화끈하게 성공시키고 싶다는 욕심이 샘솟았다.
***
준비를 마친 내가 ‘클래식 버스킹’팀이 함께 늦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자 이예린과 최지은의 모습이 보였다.
“먼저 왔었어?”
“이거 성현이 너 혼자 다 한 거야?”
잠깐 커피나 한잔하겠다며 자리를 비운 어른들. 그 와중에 내가 혼자 돌아오니 그렇게 오해를 받을 만했다.
나는 오전에 있던 일을 간략하게 말해주고 카페로 향한 그들이 오는 타이밍에 맞춰 첫 곡을 시작하자고 두 아이에게 말했다.
아무리 우리들의 힘으로만 하고 싶다고 말해도 그 홍진태를 비롯한 세 명의 사람들은 크고 작은 도움을 주려고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녀들은 아무 반론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고, 최지은이 혼자 피아노 앞에 앉는 것만으로 우리들의 연주 준비는 끝이 났다.
“고마워 성현아 일부러 우리한테 말도 없이 먼저 준비도 다 해주고···. 정말 고마워.”
사실 할 줄 아는 사람들끼리 해야 더 빨리 끝나기 때문이었으나, 이렇게 감동한 얼굴로 말하니 진실을 말하기 좀 껄끄러워졌다.
“고마우면 나랑 하나만 약속하자.”
“응? 약속?”
“어, 네 연주가 만약에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끝까지 연주할 것. 할 수 있지?”
“응! 그런 거라면 당연하지.”
활기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이예린. 그리고 보면 얘도 많이 변했다. 저번에 이 자리에서 봤을 때는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하고 우물쭈물했었는데.
든!-
그때, 홍진태씨가 보이면 바로 연주를 시작하기로 했던 최지은이 건반에 손을 올렸다.
웅장한 관현악의 주제제시 파트가 제외된, 피아노의 시작점부터 최지은은 가파르게 쏟아지는 비처럼 곡을 연주했다.
단조이기에 여리고 안타까운 음색을 띠며,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스무 살 청년의 마음이 마치 지금도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완성도 있는 연주를 선보이는 최지은.
그녀는 혼자서라도 이 곡에 대한 이해를 마치고 마치 콩쿠르에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처럼 건반을 두드렸다.
금세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홍진태씨가 설치해준 카메라가 그녀를 찍고, 음향기기는 주위 행인들의 반응까지 확실하게 녹음한다.
아무래도 완성도를 중시하는 그녀의 연주인 만큼 자유분방한 분위기보단 클래식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제시해주는 듯한 곡이 흘러나왔다.
“와, 이거 천국의 계단에 나왔던 그 피아노 협주곡 1번 아냐?”
넋을 놓고 최지은에게 몰입한 주변 사람들과 달리 미소를 지은 얼굴로 내게 다가와 말을 거는 홍진태.
천국의 계단이라. 그러고 보니 2003년에 방영했던 드라마 이름이 그거였던 것 같았다.
그 드라마의 명장면에서도 피아노 협주곡 1번 2악장이 들어갔었지.
역시, 2악장은 여러모로 쓰인 적이 많아 유명한 부분이었다.
“그럼 제일 중요한 2악장은 당연히 네가 연주하겠지?”
거의 확신에 가까운 말투로 내게 질문하는 홍진태.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2악장은 이 친구가 할 거예요.”
내가 바로 옆에 서 있던 이예린을 가리키자 순간적으로 눈이 커졌다가 이내 그녀가 눈치채기도 전에 평상시 얼굴로 돌아오는 홍진태.
“그으, 똑똑한 친구야. 저 친구도 잘하긴 하는 건 나도 아는데. 이번 실기에서 대중성을 본다면서? 그럼 아무래도 네가 그 부분을 연주해야···.”
“아뇨. 예린이가 저보다 더 잘할 거예요.”
“어어, 음. 그래. 똑똑한 친구니까. 생각이 있겠지.”
예린이에게 들릴까 봐 소곤거리는 수준으로 목소리를 낮추는 홍진태.
하지만, 그럴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이예린은 초긴장 상태라 내가 하는 말도 잘 못 듣는 상황이거든.
이윽고, 최지은의 긴 1악장이 끝나고 딱딱하게 굳은 이예린이 피아노에 향했다.
홍진태와 마찬가지로 내 옆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최지은.
이예린은 잠시 심호흡을 하는 듯 눈을 감고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가 천천히 눈을 뜨고는 주변을 둘러본다.
벌써 서른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
저번 버스킹보다도 사람들이 모이는 속도가 빨랐다.
“후우우우우우.”
그리고 긴 숨을 내쉬며 이예린이 자세를 취하자 주변의 사람들도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내리치는 건반.
2악장만의 낭만적인 서정성 그리고 감미로운 우아함을 잘 표현해냈다고 보기에는 좀 어설픈 연주.
“하아. 그러니까 내가···.”
그 도입부에 작은 한숨을 내쉬며 내게 화를 내려고 했던 최지은은 단 10초 만에 열었던 입을 그대로 다물고는 천천히 내게서 예린이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말이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변했어? 그 짧은 시간에?”
이예린의 연주가 자아내던 음색이 단번에 변화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놀란 최지은이 멍하니 이예린을 바라보고 있자 아주 놀라운 광경이 그녀의 눈동자에 비췄다.
이예린은 악보를 보면서도 수시로 자신을 둘러싼 관객들의 얼굴까지 살피는 기행을 보여주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편안한 표정으로.
드디어 실전파 이예린이 제대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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