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living again RAW novel - Chapter 34
34. 피에로 (Fiero, 대담하게) -4
최지은은 몰랐겠지만, 그녀가 짧게나마 한숨을 픽 내쉬는 순간 연주를 시작한 이예린은 놀란 얼굴로 그녀를 흘낏거렸었다.
그로부터 단 6초,
큰악절 하나를 끝냄과 동시에 바로 다음 악절을 치고 들어가면서 이예린은 연주 스타일을 바꿔버렸다.
아주 대담하게 말이다.
“그렇지.”
직후 아예 눈이 마주친 내가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중얼거리자 그녀는 확신하며 도입에서 보여주었던 힘 있는 연주를 과감하게 놓아버린다.
이어지는 얇고 옅게 배어 나오기 시작하는 음색.
그 음색이야말로 스무 살 쇼팽이 자신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적혀 있었다는 ‘봄날의 꿈을 꾸는 것처럼···’이라는 표현과 잘 어울릴만한 음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작부터 음색이 확 변했으니 연주를 잘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관객들에게서 조금씩 흘러나온다.
게다가 누가 들어도 ‘잘’ 연주한 최지은과도 또 음색이 달랐으니 관객으로서는 꽤나 혼란이 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작은 목소리를 민감하게 캐치하는 이예린은 다시금 곡의 악상을 변모시킨다.
“오?”
“이거 어디서 들어봤는데?”
“뭐였더라?”
바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 곡이 삽입될 때마다 조금 변화되어 있던 더 밝고, 부드러운 느낌의 음색이었다.
서서히 알아듣는 사람들이 나타나 직접 목소리를 내며 반응하자 이예린의 연주는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아련하게 들려오는 봄날의 밤처럼 그리고 잡힐 듯 손에 잡히지 않는 꿈처럼 유연하고 다채롭게 반짝이기 시작하는 연주.
내가 두고두고 말했던 이예린의 장점이 바로 이런 것이다.
보통은 ‘자신이 준비’해온 연주를 하기에 급급한 것이 정상인데, 그녀는 현장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작은 몸짓, 목소리에 반응해 더 좋은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아주 대담하게 연주를 변화시킨다.
그렇기에 실전파.
관객이 보내는 관심과 미소를 그대로 흡입해 연주에 반응해 버리는 적응력.
“와 이거 그거네! 천국의 계단에서 권장우가 쳤던 곡이잖아?”
이내 누군가 고양된 목소리로 그리 말하자 뜨거운 반응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그래! 어디서 들어봤다 싶었어.”
“천국의 계단이 뭐냐고···.”
“아니 7년 전에 시청률 30퍼 넘겼던 드라마 있잖아!”
“그거 말고도 있는데, 그 옛날 영화 같은 데서도 쓰이지 않았나?”
“그러고 보면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일단 드라마에서 들었던 거랑 비슷하긴 하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예상했던 트루먼 쇼는 뒷전이고 다들 7년 전 드라마의 이야기로 대화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예상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래도 바로 이 광경이 내가 예린에게서 기대했던 모습이었다.
최지은의 연주가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할 만큼 훌륭한 클래식 피아노였다면, 이예린의 2악장은 더 많은 관객이 각자 자신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게 만드는 ‘촉매제’가 되어준 것이다.
이게 바로 너튜버로도 크게 성공한 그녀의 재능.
눈치가 빠르고, 타인의 반응을 민감한 그녀는 관객의 사소한 제스쳐나 억양을 놓치지 않고 캐치해 좋은 반응이 나올 때마다 그 방향으로 대담하게 곡을 변모시켜 더 좋은 반응을 끌어냈다.
시작부만 떠올려보면 심하게 흔들리는 경향이 강해 만일 이 자리가 버스킹이 아닌 콩쿠르였다면 더 들어볼 것도 없이 탈락절차를 밟았을 그녀지만, 이렇게 탁 트이고 관객의 반응이 크게 와닿는 공간에서는 정반대였다.
관객들의 대부분은 활짝 웃으며 예린의 연주를 듣고 있다.
관객의 감탄을 듣고 건반을 누르는 강도를 정하고,
나의 표정을 수시로 살피며 음계를 오르내리는 속도를 확인하는 이예린.
그리고 피아노의 울림을 변화시키는 페달의 깊이까지, 그녀는 어제의 연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그녀의 연주는 불안정한 느낌에 중간까지 아슬아슬한 음색을 보여주었으나, 그만큼 즉석에서 변화하는 연주는 화려했고 또 매혹적이었다.
정말 트루먼 쇼의 장면을 기억해주리라는 내 예상은 시원하게 빗나갔지만, 국내 드라마를 떠올려준 관객들에게 맞춰 알아서 편곡해버린 이예린은 정말 대단했다.
나, 나는 역시 대중성이란 놈을 잘 모르겠다···.
이윽고 이 현장에서 이 자리에 어울리는 주법을 완성한 그녀가 부드럽게 연주한 2악장의 후반부는 정말이지 아름답고 즐거웠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연주였다.
“우와아아!”
“재미있는데?”
“아니 피아노가 이렇게 휙휙 변해도 되는 거였어?”
“근데 마지막에는 진짜 좋더라!”
“무슨 드라마에 나온 곡이라고?”
“지금 피아노 연주한 애들 생각해보니까···. 저번 달에 걔들 아냐?”
연주가 끝맺어지는 동시에 박수와 함께 각양각색의 말들을 쏟아내는 관객들.
그리고 슬슬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 달 전에도 50명 내외로 보이는 인파였는데 지금은 얇은 외투를 걸쳤음에도 그때처럼 꽉 찬 느낌을 받는 걸 보니, 오늘의 버스킹이 당시보다 더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는 걸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후우우우. 후우우.”
어찌나 연주에 집중했던 것인지 이예린은 2악장을 잘 끝내 놓고도 거칠게 숨을 쉬고 있었다.
예전에 ‘백건’을 완벽하게 연주해냈던 순간과 똑같이 환하고 예쁜 미소를 지은 상태로 굳어 있는 이예린.
아무래도 관심을 받아 기쁘기는 한데, 주위의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 당황한 모양이었다.
“정말 고생했어.”
그래서 나는 한걸음에 그녀에게 다가갔고 정말 장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정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서, 성현이구나. 으아아, 나아, 잘 쳤어?”
이예린은 스스로도 좋은 연주를 해낸 것인지 확신을 갖지 못한 듯 매우 불안한 목소리로 내게 질문했다.
아무래도 중반부까지 계속 흔들렸던 것 때문이겠지.
“응. 정말 잘했어.”
“다,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야···.”
이에 내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자 그녀는 그제야 딱딱하게 굳어 있던 어깨가 탁 풀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잘한다 신입생들!”
“그때 그 고등학교 1학년들 맞지?”
“다음에는 버스킹 날짜 좀 미리 공지 좀 해줘 내 친구도 실물 보고 싶다고 했었으니까!”
“맞아! 멀리 사는 애들도 너희 보고 싶다고 한다고.”
“팬이에요!”
그때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이예린과 나를 보며 그렇게 외쳤다.
‘공지해달라, 보고 싶어 한다’라니 아무래도 이전 버스킹의 영향이 내 생각보다 더 컸던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이에 나는 순수한 고1답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그렇게 외쳤고 사람들은 그런 나의 행동, 목소리, 말하나에 환호나 박수를 보내줬다.
홍진태가 데려온 ‘클래식 버스킹’의 분들도 그렇고, 이렇게 나를 보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춘 분들도 그렇고.
정말이지, 더 좋은 연주를 들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샘솟게 해주는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지은이랑 같이 저기서 좀 쉬고 있어.”
그래서 나는 이예린을 피아노 의자에서 최지은이 있는 곳으로 보내고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3악장은 지금까지의 1악장과 2악장처럼 단조로 주제를 제시하지만 동시에 주제가 앞에 자리한 재기발랄한 론도가 더 눈에 띄는 부분이다.
어둡고 부드럽던 악상이 밝게 변하는 지점. 전환점이자 특이점이 되는 바로 그 부분이 바로 내가 지금 연주할 3악장이었다.
“흐음.”
도입부부터 통통 튀는 음색을 살려야 하기에 잠시 숨을 고르는 나.
그러고 보니 방금 이예린을 보낼 때 최지은 옆에 서 있던 홍진태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었다.
팀원들에게 간 건가?
그렇게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는데,
지잉-
내 뒤에서부터 묵직한 음색의 바이올린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놀란 얼굴로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씩 웃으며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내 쪽으로 다가오는 홍진태.
“와아아아아!”
“바이올린 대 피아노!”
“그때 그?!”
“너무 좋아!”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바이올린의 등장에 큰 환호성을 내질렀다.
처음 계획대로였다면 제외되었어야 했을 관현악 파트를 연주하며, 그는 본래 단조로워야 할 바이올린을 더욱 화려하게 켜며 그 웅장한 입체감을 홀로 만들어내 버렸다.
이윽고 이어지는 나의 피아노 파트.
나는 당혹감에 내가 들어가야 할 타이밍을 놓칠 뻔했으나,
“흡!”
숨을 단번에 들이켜며 그 아슬아슬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잡아냈다.
땀을 흘리며 헉헉거리는 문어 아저씨를 보니 저분이 악보를 급하게 공수해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 나도 그때 협주를 부탁해 놓고서는 멋대로 시작하고 그랬지.
그때의 복수일지 아니면 보답일지. 잘은 모르겠지만, 관객들의 반응이 뜨겁다.
바이올린은 화려했고, 나 역시 좀 더 열성적인 연주가 하고 싶어졌다.
최초의 계획은 이 시점에 우리 SNS도 한번 홍보하고, 미향예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뭐 그럴 생각이었는데···.
그런 자잘한 것들은 다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좋은 연주하고 싶다는 마음만 마른 장작에 번진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딩-
두 개의 큰악절을 뛰어넘는 그 순간, 나는 고국을 떠나야만 했던 쇼팽의 그리움과 우울함을 모두 지워버릴 만큼 밝게 스퍼트를 올렸다.
바이올린과 협주를 이뤄본 적도 없으면서, 무작정 달려나가는 내게 맞춰주는 홍진태.
나는 내 무리한 질주에도 맞춰주는 그를 보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직후, 나는 더 빠르고 화려하게!
이 자리에서, 나에게 기대감이란 것을 품어준 모두에게 내 감사한 마음이 전달될 수 있도록 연주했다.
그리고 곧, 그 힘 있는 악상은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을 만큼 큰 환호성을 끌어낼 수 있었다.
“우와아아아아!”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미쳤어!”
“대바아아악!”
“와아아아”
“이걸 직접 듣다니!”
“SNS에 올릴 거죠?”
“무조건 올라오겠지.”
그렇게 우리의 두 번째 버스킹도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
홍진태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편집을 도맡아준 우리 팀의 버스킹 영상.
아무래도 영상 편집 분에서 그는 본업이 따로 있는 아마추어다 보니 난 별생각 없이 그의 제안을 승낙했는데, 12시간도 지나지 않은 일요일 아침 나는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파일 1. 버스킹 풀 영상. (잡음만 제거)
-파일 2. 버스킹 호응에 더 집중.
-파일 3. 연주 자연스럽게 이어짐.
-파일 4. 중요 부분 압축 10분.
우리의 영상을 무려 4가지 방식으로 편집해 내 이메일로 보내준 것이다.
게다가 2010년에 특징 중 하나인 괜히 이것저것 화려하게 꾸미는 이펙트를 삽입하지도 않아 자연스럽게 담백해서 더 듣기 좋은 영상이 되었다.
“와, 솔직히 이렇게까지 해줄 줄은 몰랐는데···.”
그냥 간단하게 악장과 악장 사이의 자리 교체를 편집해줄 거라고만 생각했던 나는 너무 놀라 잠이 확 깨고 말았다.
-마음에 드니?
삑,
그때 이예린이 만들었던 우리 팀 SNS 계정의 메시지가 뜨며 그런 문구가 화면에 나타났다.
발신자는 당연히 ‘클래식 버스킹’이었다.
-당연하죠! 정말 감사합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던 나는 그냥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적었고 홍진태는 그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방식으로 답장을 보내왔다.
-ㅋㅋㅋㅋ 나중에 우리하고 너희하고 대규모로 한번 놀아보자.
-네! 기대하고 있을게요!
그렇게 잠깐의 채팅을 마친 나는 몸을 씻기 위해 샤워용품을 챙기던 중이었다.
“음, 그나저나 어떻게 하지.”
무슨 영상을 올릴까.
라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SNS 이용자들은 어떤 편집본을 더 좋아할지 같은 다양한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런 문제는 이예린에게 상담하는 것이 제격인데 그녀는 잠이 많은 편이다.
“예린이는 아직 잘 텐데, 음.”
내 계획상 영상은 일찍 올리면 더 좋다.
그래, 어차피 잠깐 씻고 오는 것뿐인데 그 사이에 백 명이나 보겠어? 나중에 보고 예린이가 아니다 싶은 걸 내리면 되겠지.
그렇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4개의 영상을 모두 올렸고, 잠깐 샤워를 하고 온 사이 믿을 수 없는 일을 목격하고 말았다.
기숙사 방 컴퓨터에 그대로 펼쳐져 있던 SNS 홈페이지.
그곳에서 빨갛게 불이 들어온 ‘새로운 댓글’이라는 항목.
그 위에 적힌 숫자는···.
“육십 개라고?!”
30분 만에 육십 개의 댓글이 붙어 있었다.
난 내 눈을 믿을 수 없어 한동안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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