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living again RAW novel - Chapter 37
37. 세레노 (Sereno, 쾌활하게) -3
금요일이 되었다.
학기 중 가장 큰 이벤트이자 조금만 과장을 보태면 앞으로 이 미향예고 학생들의 연주자 일생을 좌우할 ‘1학기 실기 고사’가 바로 어제 끝난 것이다.
피아노로 대표되는 건반악기뿐만 아니라 미향예고의 음악과는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 성악전공으로 세분화된다.
당연하지만 그 모든 전공생의 실기 고사 제출일이 바로 어제까지였으며 지금까지는 학생들에게 지옥의 일정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선생님들이 가장 바쁜 시기였다.
“김 선생님 다음은 어느 팀이죠?”
“3반에 유진 학생이 팀장인 12번 팀입니다.”
“3반의 유진 학생이라, 그래요. 들어보죠.”
그리고 그 모든 실기 고사 채점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원이 할당된 피아노 전공.
실기 고사 팀도, 선생님도 많아 원래라면 가장 북적거리며 말도 많고 탈도 많아야 할 피아노 실기 고사 채점이었지만, 이상하리만큼 피아노 담당 교사진은 조용했다.
그 이유는 단연, 네모난 안경을 빛내며 날카로운 눈초리로 교사진을 훑어보는 중년의 남자, 교감 선생님 때문이었다.
그는 이번 1학년들에게 적용된 실험적인 실기 고사 방식을 직접 발안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교감은 미향예고의 위신에 누가 될만한 제출물을 직접 아주 엄격하게 검토했다.
그 결과 벌써 세 팀이나 실기 영상을 SNS에 업로드하는 것조차 허가받지 못했고,
“12번 팀. 자르세요.”
그리고 방금 교감 선생님의 발언으로 네 팀이 되었다.
“자. 그럼 이제 정식으로 채점을 시작하죠.”
오후 수업인 전공 시간을 자습으로 돌리고 채점을 시작한 지 벌써 5시간이 지났다.
그런데도 쉬지 않고 계속되는 업무.
그래도 기택은 이제야 교사진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채점 시간이 되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많은 대화가 오갔다.
깐깐하기로 유명한 교감 선생님과 같은 테이블에 있다보니 평소보다 더 혹독한 평가를 내리는 교사진.
이번 1학년 피아노 실기 고사의 정식 심사위원은 정혜선 선생과 기택 자신 그리고 교감 선생님, 이 셋이었기에 다른 교사들의 의견은 모두 참고용에 지나지 않았지만,
대부분 냉혈한이라고 여겨질 만큼 가혹한 의견을 이야기했다.
‘다들 교감 선생님 눈치 보느라 바쁘시군.’
기택은 자신이 열심히 가르친 학생들이 이렇게 혹평을 받는 상황이 불만스러워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 상황임에도 단 한마디의 혹평도 나오지 않은 팀이 딱 두 팀 있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아까 보류해뒀던 1반 이성현 학생의 팀과 마찬가지로 1반 김민호 학생의 팀만 남았군요.”
드물게 지금까지 계속 구겨져 있던 인상을 펴는 교감 선생님.
하지만 그 반응이 당연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 두 팀의 연주는 엄청난 창의성과 분석력을 보여주었으며 과제를 교사진의 의도에 맞게 해석해낸 팀이 바로 그 두 팀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이 어떻게 생각하실지가 궁금하군요.”
방금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편안한 어조로 그리 말하는 교감 선생님.
그제야 한시름 돌렸다는 얼굴이 된 교사진이 똑같이 인상을 풀고 말했다.
“아무래도 저는 단순하지만 과감한 편곡으로 대중성과 독창성을 모두 챙긴 김민호 팀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김민호의 팀은 다른 팀들이 대부분 꺼리는 과감한 편곡을 그냥 해버렸다. 그것도 곡의 분위기를 뒤집는 방향으로 말이다.
“확실히 단조와 장조를 뒤집어서 곡의 분위기는 반전시켰지만, 악보 자체를 크게 수정하지도 않아서 원곡의 느낌이 잘 남았던 게 좋더군요.”
“저도 민호의 팀에게 한 표를 주고 싶습니다.”
“적극적으로 편곡을 시도했던 다른 팀들이 모두 SNS 업로드에서 탈락한 것만 봐도 민호 팀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낸 건지는 알 수 있다고 봅니다.”
각자 자신의 의견을 신나게 말하는 교사들. 그 대부분은 민호의 편곡에 감탄하는 눈치였다.
장조와 단조.
연주의 기틀이 되는 이 부분을 뒤집는다는 것은 자칫 간단해 보일 수 있으나, 사실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하는 편곡 방식이다.
어둡고 칙칙한 야상곡을 장조로 뒤집는다고 해서 좋은 연주가 되지는 않는 것처럼,
곡은 저마다의 흐름이 있기에 그걸 잘 유지하면서도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아예 곡을 작은 음절 단위로 쪼개고 분석하여 최소한의 수정만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김민호의 팀은 그걸 해냈다.
역시 천재는 다른 건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렇게 교사진 대부분은 민호 팀의 승리로 의견을 모으는 듯싶었다.
그런데 그 테이블 중심에 있던 기택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저는 반댑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회의실의 이목이 기택에게로 쏠렸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교감 선생님의 목소리.
“이유는요?”
그는 홀로 다른 교사진과 다른 표를 던지는 기택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성현이의 팀은 그 대단한 민호조차 놓친 부분을 성공적으로 달성해냈기 때문이죠.”
민호는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 슈페르트의 마왕과 같이 이미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곡을 택해 전혀 다른 분위기를 주는 것으로 승부를 봤다.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연주’라는 질문의 해결책으로 보통 학교에서 사용하는 음악 교과서를 참고해 곡을 선정한 것이다.
정말 똑똑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반면에 성현이가 택한 곡은 영화, 드라마와 같이 다양한 매체로 활용된 적이 있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두 팀은 전혀 다른 방향성으로 곡을 선정했지만 사실 기택이 보기에 누가 더 잘했다고 우열을 가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로 곡 선정에 대한 팀 점수는 10점 만점에 양 팀 모두 10점.
“성현이 팀의 연주를 한 번 더 보면서 설명해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교감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기택은 빠르게 빔프로젝터를 켜고 성현이 준 영상을 틀었다.
시작점부터 터져 나오는 최지은의 숙련된 연주. 정말 고등학교 1학년이라기보다는 음대생이라 부르는 것이 더 알맞지 않을까 싶은 수준의 연주였다.
이어지는 이예린의 2악장과 다채로운 성현의 3악장.
“으음?”
“기택 선생님?”
보면서 설명을 하겠다던 기택이 가만히 있으니 테이블에 둘러앉은 교사진은 대부분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그런 교사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김기택.
“혹시 뭔가 이상한 걸 못 느끼셨나요?”
기택이 질문하자 교사진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아까처럼 의견을 쏟아냈다.
“으음.”
“영상으로 들어도 티가 날 정도로 곡의 대비를 키웠네요. 좋은 연주였죠.”
“그래요. 좋은 연주였습니다만, 곳곳에 준 악센트만으로 승부를 보려는 것이 너무 보여요.”
“편곡 형식이 너무 방어적인거죠.”
“감점할 부분은 없지만, 민호의 연주처럼 확 끌어당기는 부분이 없습니다.”
확실히 이 미향예고에 교사진들답게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틀리지는 않으면서도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
“그럼 이번에는 민호의 팀 영상을 한 번 더 볼까요?”
기택의 그런 행동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는 교사도 있었고, 같은 교사끼리 뭘 그렇게 가르치려 드냐고 볼멘소리를 내는 동료 교사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 김민호가 연속으로 두 번 연주한 뒤, 팀원이 화면으로 걸어들어오는 순간 이해했다는 듯 탐식을 내뱉었다.
“어.”
“아아.”
반면 눈치가 없는 교사들은 화면에 잡힌 민호의 팀원이 연주를 시작하고 나서야 눈을 크게 떴다.
“성현이의 팀 영상에서는 세 팀원이 고르게 좋은 균형을 유지했지만, 민호의 팀은 민호와 다른 학생의 실력 차가 너무 크군요.”
그러자 계속 조용히 침묵을 일관하던 정혜선 선생님이 기택이 지적하려 했던 부분을 정확히 꼬집어주었다.
기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성현이의 팀이 한 곡을 악장별로 나눠 연주했다 할지라도···. 다르죠. 민호의 팀은 실력 차이가 너무 납니다. 민호와 다른 팀원의 실력이요.”
기택의 지적에 단순히 연주 실력과 좋은 편곡에 대해서만 논하던 선생님들은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표정이 되었다.
“확실히 성현이의 팀은 셋이서 악장을 나눠 연주한 것인데도 음색에 일체감이 있었죠.”
게다가 교감 선생님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니 회의실의 분위기는 완전히 기택에게로 넘어왔다.
“부끄럽지만 저는 지금으로부터 딱 일주일 전에 예린이가 성현이 팀의 감점 요소가 될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그러더군요. 기대해도 좋을 거라고 말입니다.”
미향예고의 모토는 언제나 ‘한 천재가 전체를 바꾼다’이다.
“그래서 저는 미향예고의 모토에 걸맞게 5반 학생의 재능까지 꿰뚫어 볼 줄 아는 성현이에게 더 좋은 점수를 줄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이상적인 지향점으로만 받아들이는 교훈을 참고한 것도 아니고 실천해버리는 학생.
과연 미향예고 실기 고사에서 이보다 이상적인 학생이 또 있을까.
이성현.
천재라더라···.
하는 막연한 소리나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성현에 대해서 이렇게 제대로 알게 되니 교사진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같은 학년에 세 명의 천재라니.
이건 정말 미향예고가 설립한 뒤 단 한 번도 없었던 대사건이었다.
“그러니까 김 선생 말씀은 지금 그 5반 아이의 재능을 이성현 학생이 알아보고 직접 두 손으로 키웠다. 그런 말씀입니까?”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반신반의하며 물어오는 교감 선생님.
기택은 일말의 주저 없이 말했다.
“예. 정말 부끄럽습니다만 저는 이예린 학생이 이 정도로 연주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하하! 아예 이렇게 시원하게 인정해버리시니 교감으로서 더 할 말은 없군요. 멋집니다.”
그렇게 말하며 기택에게 미소를 보여주는 교감 선생님.
냉랭한 분위기만 감돌던 아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는 안경을 매만지며 말했다.
“솔직히 교장 선생님이 학사일정까지 바꾸시길래 드디어 노망이라도 나셨나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반대로 제 눈이 옹이구멍이었군요. 이번 콩쿠르 본선···. 정말 기대가 되네요.”
***
-제출물을 준비해둔 SNS계정에 업로드 하세요.
금요일 밤, 나는 그런 메시지를 받았다. 이번 실기 고사의 특성상 빨리 업로드하면 할수록 유리했기에 나는 주저 없이 계정에 영상을 올렸다.
그러고는 그냥 나가기도 아쉬워 다른 1학년들의 계정들을 둘러보는데 역시 만만치 않게 조회수가 상승 중이었다.
“어?”
그러다 문득 알게 된 사실이 수준 미달로 업로드조차 되지 못한 팀이 네 팀이나 된다는 사실이었다.
“네 팀이나?”
전생에는 분명 두 팀뿐이었는데···.
대체 뭐가 그 까탈스러운 교감의 보는 눈을 높인 것일까.
뭐 그만큼 경쟁자가 줄어든 것이니 나로서는 이득이라 볼 수 있다.
그렇게 맹하니 SNS를 돌아다니다 보니 김민호의 계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우스가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김민호가 어떤 전략으로 이 과제에 임했을지 그리고 어떤 연주를 했던 것인지 나는 아직 모른다.
전생에 1학년 1학기를 보내던 나는 학교에 적응하기에도 바빠 여러 가지를 놓치고 있었거든.
그러니 난생처음으로 듣는 김민호의 과제곡, 나는 떨리는 심정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고 자연스럽게 감탄사를 내질렀다.
“와아.”
교과서에 수록된 곡을 편곡하다니 정말 대담하다.
두 곡을 연달아 치는 김민호.
“아아. 그런 방법이!”
어느새 나는 경쟁자로서 그의 연주를 듣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 명의 팬으로서 그의 화려한 연주를 감상하고 있었다.
“머리 좋네. 오오.”
나는 자연스럽게 어디를 어떻게 편곡한 것인지 분석했고 정신없이 그의 연주만 돌려 듣다가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주말이니까.
늦잠을 자도 되겠지라는 얄팍한 생각을 비웃듯 토요일 아침에 나의 핸드폰은 아주 요란한 진동 소리를 울려댔고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몽롱함이 다 가시지 않은 상태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성현아. 선생님인데.
“혜선 쌤?”
담임 선생님이 왜 주말에 연락을?
그렇게 머릿속에 물음표가 하나, 둘 떠오를 무렵 선생님은 말했다.
-너 지휘 전공할 생각 없니?
“지, 지휘요?”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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