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living again RAW novel - Chapter 45
45. 콩쿠르 (Concours, 경연)
‘서울 국제 피아노 콩쿠르’
이 콩쿠르는 10년 넘게 ‘신인 발굴’이라는 설립 초기 목적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국내의 수많은 콩쿠르 중에서도 인지도가 꽤나 높은 편에 속한다.
그 이유는 단연, 이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쥔 연주자는 향후 10년 안에 예외 없이 훗날 3대 피아노 콩쿠르 본선에도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이루어내기 때문이었다.
10년 뒤 한국을 대표할 연주자가 탄생하는 곳.
기자들은 보통 이 콩쿠르를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러한 ‘서울 국제 피아노 콩쿠르’ 본선은 언제나 예선을 치러졌던 200석 규모의 서울시 종로 아트홀에서 진행되어야 했는데···.
올해는 어째서인지 본선 연주회장이 300석 규모의 광화문 아트홀로 변경되었다.
늘어난 관중.
모여드는 사람들.
예선 결과에서 3인의 공동 1등이 탄생하고, 일본의 바이올리니스트 유키에 모리가 심사위원을 자원하는 등.
내 전생과도 다른 점이 너무 많은 이번 본선 콩쿠르.
도대체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변화가 내게는 나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콩쿠르 본선 시작까지 앞으로 2시간.
정석 선배의 차를 타고 아트홀에 도착한 나는 의외의 사람과 마주치게 되었다.
말끔하게 넘긴 가르마에 큰 키와 당찬 눈빛을 가진 어떤 중년의 남자.
국내 클래식 음악계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자 문화산업업계 전반을 아낌없이 후원하는 금천문화재단의 이사장, 김동혁이 분명했다.
“안녕?”
장난스럽게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인사를 건네는 김동혁 이사장.
“이, 이사장님?”
“오우 안녕하세요. 정석씨.”
“안녕하십니까.”
그는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정석 선배를 당황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며 동시에 내가 몸담은 M스튜디오와 미향예고를 동시에 후원하는 이 클래식 업계의 큰손이라 불리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 드디어 처음으로 이렇게 직접 보게 됐구나. 성현아.”
그런 그가 나를 보며 활짝 웃는다. 마치 나와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다.
“얘기 많이 들었단다. 우리 아들이 신세를 많이 졌던걸?”
참, 누군가와 판박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악수를 청하는 김동혁 이사장.
그가 아들이라 칭한 존재는 다름 아닌 김민호. 그러니까 그가 바로 천재 중의 천재라 불리는 김민호의 아버지인 것이다.
“아, 안녕하세요.”
설마 이런 자리에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나는 말까지 더듬으며 어색하게 팔을 내밀었다.
그러자 내 어색한 움직임에 뭔가 이해했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김동혁 이사장.
“아 참, 내 정신 좀 봐. 내가 아직 자기소개를 안 했구나.”
그는 버릇 적으로 정장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다가 멈추고는 정말 김민호를 그대로 빼다 박은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친구 민호의 아비 되는 사람이란다.”
암요 알다마다요.
이 업계에서 이 사람을 모르면 간첩으로 신고당할지도 모를 정도로 유명한 사람인데.
그러나 그는 그저 자식의 연주를 지켜보러 온 부모님으로서 나를 대하고 싶은 건지 명함을 내밀지 않았다.
“아아, 안녕하세요!”
나는 그런 그의 의중을 읽고 이제야 알았다는 듯 재차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정말 반갑다는 듯 내 손을 양손으로 쥐고 흔드는 김동혁 이사장.
거침없는 언행과 밝은 에너지를 쏟아내는 정말 김민호를 떠올리게 했다.
“제출한 서류를 조금 읽어봤는데, 정말로 콩쿠르 이력이 단 한 줄도 없더구나. 피아노를 시작한 지 이제 반년 됐다는 소문이 정말이었니?”
퍽 오랜만에 들어보는 질문이었다.
지금까지는 M스튜디오나 미향예고에서만 퍼지던 소문들이 이전 ‘신입생 연주회’를 기점으로 조금씩 더 퍼지는가 싶더니 이젠 금천문화재단 이사장의 귀에까지 들어간 모양이었다.
아니면 뭐, 그냥 민호가 말한 걸 수도 있고.
그렇지만 질문을 하는 사람이 누구건 내 대답은 똑같다.
“이제 7개월째죠.”
담백하게 그저 있는 사실만을 이야기한 나.
그러자 내 담담한 반응을 본 김동혁 이사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놓고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피아노는 즐겁고?”
그런데 갑자기 그런 질문을 던지는 김 이사장.
지금껏 내 소문에 대한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백이면 백 정말이냐는 둥 재차 확인하는 질문을 해왔었는데, 그는 달랐다.
피아노가 즐겁냐니.
“성현이 넌 언제나 피아노를 즐겁게 치는 것 같다고. 어렵고 난해한 곡도, 쉽고 깔끔한 곡도 모두 즐기면서 칠 수 있는 네가 정말 대단하다고 아들이 그러더구나.”
민호가 그런 식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니, 솔직히 많이 놀랐다.
어떤 곡이든 완벽하게 해내고, 그 어떤 과제도 아름답게 성공시키는 나의 목적지이자 이정표 같은 아이가 나를 두고 정말 대단하다고 말해주었다니.
정말 미소가 절로 지어질 정도로 나는 뭔지 모를 따스함을 느꼈다.
그 후로 이사장은 금천재단이니, 직급이니 하는 건 다 뒤로 하고 진짜 한 명의 부모님으로서 내게 이런저런 것들을 질문했다.
민호의 학교생활부터,
M스튜디오에서의 활동,
그리고 나에게 민폐를 끼치거나 하지 않았는지 등등.
딱 봐도 아들에게 관심이 많은 아버지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김 이사장.
그는 나와 즐거운 만담을 이어가던 중, 시계를 확인하더니 그제야 자리를 뜰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몸을 완전히 돌려 객석으로 향하려던 그는 갑자기 고개를 이쪽으로 휙 돌리더니 물었다.
“오늘도 피아노를 즐길 수 있겠니?”
이사장은 나를 격려해주려는 듯 따스한 어조로 그리 말했고 나는 씩 웃으며 답했다.
“예!”
***
오늘도 연줄을 통해 A급 객석을 차지한 김백찬 기자의 혈색은 무슨 일인지 붉으락푸르락하며 수시로 변하고 있었다.
단순히 유키에 모리를 쫓아온 것으로 보이는 일본 저널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근처에 자리를 잡은 또 다른 외국 기자들에게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값비싼 카메라를 담는 가방에 분명하게 적혀 있는 ‘디 벨트’라는 글씨.
디 벨트는 다름 아닌 독일의 유명 신문사의 이름이었다.
‘독일의 기자가 벌써 움직여?’
이번 콩쿠르 본선 영상이 퍼지고 나면 그제야 냄새를 맡을 거라 생각했던 백찬의 예상과 달리 생각보다 더 빨리 움직인 해외의 기자들.
대체 뭘 보고 여기까지 온 걸까. 생각하던 김백찬의 눈앞에 또 의외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동혁 이사장이 직접 왔다고!?!’
금천문화재단의 이사장과 피아노계의 신성 김민호가 부자 관계라는 것을 모르는 기자는 국내에 아마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수많은 문화사업을 이끄는 금천문화재단의 이사장이 직접 나타난다는 건 지금껏 ‘서울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선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프로 피아니스트들도 자유롭게 참가하는, 격이 다른 콩쿠르도 아니고···.
아무리 인지도가 높아도 이 콩쿠르는 신인 발굴의 무대이자 향후 10년을 바라보는 무대다.
‘역시 아들 때문인가?’
아니야.
김백찬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껏 김민호가 참가했던 수많은 콩쿠르에서 단 한 번도 모습을 비추지 않았던 이사장이다.
이제와서 아들 하나 때문에 나타날 리가 없던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이성현.
이번에도 3인의 공동 1등이라는 규범 외의 상황과 유례가 없는 본선 무대의 변경 등, 다양한 이레귤러를 만들어낸 장본인인 성현이 이사장을 움직여낸 원인이 아닐까 김백찬은 예측했다.
“만일 진짜라면······.”
성현은 백찬의 예상을 뛰어넘는, 그러니까 현재 누구나 1등으로 예측하는 ‘김민호’를 이겨버리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대박이다.”
김백찬은 조용히 군침을 삼켰다.
***
본선 무대 뒤, 진출자들의 대기실.
괜히 발생할지 모를 잡음을 막기 위해 대기실은 인당 하나씩 배정되었지만, 어째서인지 김민호와 최지은이 차례로 내 대기실에 찾아와 지금 이곳은 그 어떤 대기실보다 왁자지껄할 것이다.
“연습은 잘 했어?”
“너 또 정석 선배님 차 타고 왔지. 하아. 부러워···.”
“둘 다 컨디션 관리는 잘 했니?”
무슨 애들도 아니고 각자 하고 싶은 말만 어수선하게 내뱉기 바쁘다.
하지만 그런데도 누가 뭐라고 핀잔을 넣지 않는 건, 셋 다 서로의 상태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원래 긴장에 매우 취약한 최지은부터,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가 연주를 듣기 위해 아트홀에 찾아왔다는 김민호.
본래 긴장이란 걸 잘 모르는 김민호까지 이런 모습을 보이니, 괜히 나까지 긴장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내 실제 나이는 마흔이 다 되어가는데 옆에서 떨고 있는 고등학생 하나 달래주지 못하겠는가.
“괜찮아. 연습 때 하던 대로만 하면 잘 될 거야.”
내가 평소보다 의기소침해 있는 민호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리 말하자 그는 고개를 슬쩍 들어 나를 멍한 얼굴로 쳐다보다가 왜인지 허탈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하고 이야기하고 왔다고 했었지?”
“응? 잠깐이었지만.”
“아빠는 아마 내 연주를 들으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닐 거야.”
그렇게 말하고는 그 맹한 얼굴로 다시 내 얼굴을 쳐다보는데, 마치 금천문화재단의 이사장이 다름 아닌 내 연주를 직접 들어보기 위해 이곳까지 그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는 듯한 뉘앙스였다.
김민호의 가정사는 전생이나, 이번 생이나 다 밝고 좋은 이야기로만 가득했지만 지금 김민호가 보여주는 모습에서 나름의 뭔가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내게 민호의 학교생활이나 M스튜디오의 모습을 꼼꼼하게 질문하고 대답 하나하나에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던 김동혁 이사장의 모습은 결코 겉치레가 아니었다.
분명 아들에게 관심이 많으나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가장의 모습, 흡사 내 아버지와 같은 그런 모습.
“민호야.”
원래 남의 가정사에는 함부로 끼어들지 않는 것이 도리이고 그 내막을 자세히 아는 건 아는 것도 아니기에 나는 뭔가 왈가왈부할 만한 처지가 못 된다.
그러니 내가 지금, 당장 민호에게 힘을 북돋아 주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쓸데없는 참견도, 주제넘은 지적도 아닌 그저 힘이 될 수 있는 그런 말이 대체 뭘까.
“김동혁 이사장님이 무슨 목적으로 여길 왔건, 왜 대기실에 있던 너를 찾아가지 않았건. 상관없이 말이야······. 이건 기회 아닐까?”
그렇기에 나는 고심 끝에 그렇게 말했다.
나를 이끌어준 김민호였다면, 분명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고등학생과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
항상 대범하고, 과감하면서도 멋지게 승리를 쟁취하는 그라면,
오히려 어떤 이유에서이건 아버지에게 자신의 연주를 들려줄 수 있는 이 무대가 마련되었다는 사실 자체에 기뻐하지 않았을까.
클래식에 관심 없는 일반 대중들마저 팬으로 만들 줄 아는 ‘그’였다면 분명, 지금의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기회, 라고?”
민호가 내 말에 관심을 가지자. 나는 곧바로 밀어붙이듯이 말했다.
“그래. 지금까지 5년간 단 한 번도 네 무대를 찾아와주시지 않았다면서.”
“그랬, 지···.”
“그러니까! 처음으로 네 연주를 제대로 들려드릴 기회잖아. 네가 어떻게 상장해 왔는지, 네가 얼마나 멋진 연주자인지. 이 기회에 너희 아버지를 네 팬으로 만들어버려.”
내가 아는 김민호였다면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눈앞의 김민호는 내 대담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점차 더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내, 팬? 아빠를?”
“그래. 아버지라고 안되라는 법 있어? 네 팬으로 만들어버려 이 기회에.”
“이, 기회.”
고장 난 로봇처럼 내가 한 말을 되풀이하는 김민호.
그러던 그는 갑자기 밝은 미소를 얼굴 한가득 피워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대기실 문으로 향했다.
“야, 어디가!”
옆에 서 있던 최지은이 그를 붙잡듯이 잡자 김민호는 평소와 같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지금이라도 더 연습하고 싶어졌어.”
그는 본선 시작이 고작 10분밖에 남지 않은 현재, 그렇게 대책 없이 내 대기실을 나서서는 어디론가 향했다.
다행히도 김민호의 순번은 열두 명의 본선 진출자 중에서 가장 마지막인 12번.
한번?
아니, 잘하면 두 번 정도 그는 연습할 시간이 있을 것이다.
“휴우.”
한 건 해결했다는 느낌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의자에 기대는 나.
최지은은 그런 나를 보며 뾰로통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저번에 나한테도 그러더니, 넌 참 오지랖도 넓다. 무슨 상담사야?”
“나 상담 같은 거 질색하는데···.”
“길 가던 예린이가 듣고 웃겠다.”
“아니, 갑자기 예린이가 왜 나와.”
최지은의 말에 피식 내가 웃음을 터트리자 그녀도 내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툴툴대면서도 내 긴장을 풀어주었다.
그렇게 잠깐의 담소로 내 긴장도 거의 풀려갈 무렵, 내 대기실 문을 열고 나타난 관계자가 내게 말했다.
“2번 이성현 학생 맞죠?”
“네.”
“지금 천천히 이동해서 스탠바이 해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잘해.”
그녀 나름의 응원인지 내 팔을 툭 치며 그렇게 말하는 최지은.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고 있던 정장을 점검하고 대기실을 나섰다.
첫 번째 본선 진출자의 연주 소리가 그대로 들려오는 무대 뒤.
눈앞의 검은 천막 너머에는 삼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뒤늦은 긴장감을 느꼈다.
‘이게 얼마만의 콩쿠르더라’
김민호를 이기겠다.
독주회를 열겠다.
시간을 거슬러온 순간부터 지금껏 내 가슴을 뛰게 만드는 두 목표.
그 거대한 목적지로 향하는 첫 도약까지 이제 딱 한걸음 남았다.
과거에 묻혀 살던 반주자도, 서툴게 자신을 뽐내고자 노력했던 고등학생도 다 함께.
바로 지금,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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