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living again RAW novel - Chapter 51
51. 레스트 (Rest, 쉼표) -3
“나 이번 방학 동안에 유학 다녀오기로 했어. 아 물론, 영영 가는 건 아니고 잠깐 다녀오는 거지만.”
“뭐?”
“엉?”
민호가 뭔가 숨기고 있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이 정도의 폭탄일 줄은 몰랐던 나와 최지은은 동시에 입을 딱 벌리며 식사를 중단했다.
“갑자기 왜?”
아무래도 나보다 민호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해온 지은이 더 충격을 받았다는 듯 묻자 민호는 조금 허탈해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음···. 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하니까 다양한 곳에서 연주 제안도 들어왔고, 아예 유학을 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많이 계셨거든.”
“그래서, 가기로 한 거야? 갑자기?”
“와, 지은이가 이렇게 놀라줄 줄은 솔직히 기대도 안 했었는데?”
“아, 안 놀랐어! 짜증 나서 그러는 거야.”
하지만 말과 달리 당혹스러움을 전혀 감추지 못하는 최지은. 그녀는 괜히 시선을 까르보 파스타로 옮겼다가 다시 김민호를 봤다가 하는 식으로 무의식중에 자신이 놀랐다는 걸 표하고 있었다.
그런 지은이의 반응을 재미있다는 듯 쳐다보던 김민호는 갑자기 나를 보며 묘한 말을 했다.
“사실, 이번 유학을 결심한 가장 큰 계기는 너야 성현아.”
“나?”
놀란 내가 되묻자 민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응. 정확히는 네가 콩쿠르 본선 무대로 올라가기 직전에 나한테 해줬던 얘기 있잖아.”
분명, 김동혁 이사장에게 민호의 연주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를 자신의 팬으로 만들 기회가 아닐까, 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나, 아빠랑 엄청 사이가 나빴거든. 어렸을 때부터 작곡이랑 지휘를 가르쳐놨더니 갑자기 피아노에 빠져서 이상한 콩쿠르만 나간다고 말이야.”
그, 그랬구나?
민호는 나중에 나이를 먹어서도 보통 인터뷰마다 좋은 말만 했었기 때문에 실상이 그럴 줄은 몰랐었다.
아마 김동혁 이사장의 이미지를 위해서 그렇게 인터뷰를 했던 것일 뿐, 뭔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복잡한 일이 많았던 것 같았다.
“그런데 성현이 네가 그랬잖아. 아빠도 팬으로 만들어버리면 된다고, 그래서 안 되면 이참에 피아노를 관둔다는 각오로 본무대 직전까지 연습을 계속해봤더니, 되더라고···. 아빠가 내 피아노를 인정해주셨어.”
민호는 자신이 가슴 따듯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온화한 미소로 말을 이어나갔는데, 반면에 나는 순간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네, 네가 갑자기 피아노를 관두기는 왜 관둬, 깜짝 놀랐네! 진짜.
“그런데 마침 나한테 독일 유학 제안이 들어왔고 아빠가 잠깐이라도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해주셨거든. 그래서 이번 방학에 유학을 가기로 한 거야.”
내가 간섭할 수 없는 가정사, 그리고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가슴 따듯한 결과까지.
참, 알아서 성장하며 내가 알지도 못했던 자신만의 문제를 척척 해결해나가는 김민호.
그는 더이상, 내가 M스튜디오에서 처음 만났던 피아노 대결을 좋아하고, 악동 같은 미소를 짓던 그 아이가 아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민호 역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던 것이다.
처음에는 이 아이와 친해지고 싶었고, 점차 인정을 받고 싶었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한 명의 라이벌이 되고자 했던 나로서는 참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함께 성장한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했고, 나에게 끝내 패배를 안겨주고는 훌쩍 떠나버리려 한다니 조금 화가 나기도 했다.
그렇게 나와 최지은 둘 다 복잡한 심경에 멍하니 정지해 있으니, 잠시 탄산음료를 들이키느라 말을 멈추고 있던 민호가 멋쩍게 덧붙였다.
“…라고 내가 무슨 천재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고 휙 다녀올까 하는 생각도 솔직히 있었는데, 솔직히 내가 이번에 유학을 결심하게 된 원인은 하나 더 있어.”
“하나 더?”
내가 예상도 못 했던 민호의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자. 그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결과 발표 전에 성현이 네 연주를 들었었거든···. 나도 무지무지 열심히 친다고, 피아노까지 관둘 각오로 쳤는데 솔직히 결과 발표날까지 확신이 안 서더라고. 내가 1등이라는 확신 말이야.”
잠시 혼란스러운 심정 때문에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이내 김민호의 유학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 더 크게 눈을 뜨며 놀라고 말았다.
다시 말해 방금 김민호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나에게 지는 줄 알았다고.
“그래서, 난 더 강해져서 돌아올 거야. 일종의 수행? 같은 거지.”
그렇게 말하는 김민호의 미소는 분명 평상시의 그 악동의 미소였으나 뉘앙스는 전혀 달랐다.
그는 내게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나는 더 실력을 갈고닦고 올 것이다. 너는 어쩔 테냐, 라고 말이다.
***
완전무결한 초인과 같은 피아니스트.
그게 전생에 내가 받아들였던 김민호의 이미지였다.
무슨 로봇도 아닌데, 항상 모든 콩쿠르에 나오면 모든 곡을 알고, 치고, 최고의 점수를 거머쥐었다.
항상 그렇게 대단한 업적을 쌓아나가다 보니 나는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알파고가 사람의 모습으로 둔갑한 것 아닐까 의심도 해봤을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함께 공부하고, 연습하고, 틀려도 보고, 마 원장님에게 지적도 받고 아버지의 등장에 흔들리기도 하는 모습은, 두말할 것도 없이 김민호가 로봇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주었다.
그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리고 막연하게 알고만 있던 모차르트 역시 천재를 상징하는 존재인 것에 반해 그렇게 완벽한 인간이 아니었다.
안전한 길을 권하는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와 모차르트를 질투하면서도 그의 재능을 경외한 콜로레도 주교.
그리고 재능으로 인해 갖은 사랑을 받았으나, 동시에 성장할수록 옅어지기만 한 그 재능에 피눈물을 흘리던 모차르트.
천재성을 상징하는 어린 모차르트가 성장한 모차르트의 목을 찔러 그 피로 악보를 써 내려가는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라 기억에 남았다.
천재성이라···.
전생에는 민호와 지은이를 어깨너머로만 지켜보면서, 천재성이란 이런 아이들을 말하는 거겠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해왔으나, 막상 지금에 와서는 잘 모르겠다.
천재라는 건, 대체 뭘까?
우선 내가 그 질문에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천재가 아니라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냥 전생의 경험으로 간신히 고등학생들보다 뛰어난 척을 하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등장인물 중에서 나랑 닮은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마 모차르트를 질투하면서도 경외한 콜로레도 주교가 아니었을까.
김민호를 부러워하면서도 동시에 원망하던 전생의 나 말이다.
그나저나,
뮤지컬의 노래들이 참 좋았다.
배우가 최적의 노래가 할 수 있도록 눈앞에서 관현악단이 곡을 연주해주는 모습도 참 인상 깊었다.
멋진 가사에 어우러지는 빼어난 연주도 그렇고, 그 연주에 맞춰서 몸짓과 표정을 힘차게 움직여가며 연기를 하는 배우도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뮤지컬, 전생과 현생을 포함해 처음으로 직접 본 공연이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오늘 재미있었어. 나 먼저 갈게!”
예술의 전당을 나오자마자 어째서인지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민호를 마중 나와 있었고, 민호가 차를 타고 휭 사라져버려서 나와 최지은만 덩그러니 남았다.
“어떻게 할래?”
그래서 내가 최지은을 보며 묻자 그녀는 퉁명스러운 얼굴로 묵묵부답이었는데, 아무래도 뭔가 하고 싶은 말은 있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왜, 야식 먹고 싶어서 그래?”
“아니거든! 누굴 돼지로 아나.”
“그러면 음. 아아. 오늘 입고 온 예쁜 블라우스 얘기 안 해줘서 그런 거구나?”
“내가 앤 줄 아니?”
그럼 뭐가 문제지?
그보다 애 맞지 않나···.
“일단 시간도 늦었고 얼른 버스 타러 가자 집이 용산 쪽이었지?”
“어? 응.”
함께 버스에 오른 최지은.
학교 기숙사에서 M스튜디오를 오갈 때도 둘이 다니는 일이 많아서 자주 봤는데, 그녀는 모르는 사람하고 몸이 닿는 것을 꽤나 싫어한다.
그 때문인지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에 올라타면 백이면 백 은근히 내 옆에 가까이 붙었었는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맹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 그런 기색도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몇 분가량 그녀를 보고 있자 처음에는 평소처럼 화가 난 건가 싶었었는데, 지금 보니 뭔가 중대한 고민거리를 떠안은 그런 얼굴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잠깐만 저기 앉아 있어 봐.”
“엉? 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공원 벤치를 가리키는 나.
최지은은 영문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으나 나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자, 이거 받아.”
그렇게 3분도 안 돼서 돌아온 나는 버스에서 지나오며 봤던 풀빵에 우유까지 세트로 최지은에게 내밀었다.
“응? 이게 뭔데.”
“길거리 음식이랑 편의점 우유지.”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걸 왜···.”
“너 무슨 고민 있지? 간식 먹다가 너 내키면 말해줘. 들어줄게.”
“하아, 오지랖은 진짜···. 하압.”
불평을 틱 내뱉으면서도 내가 가져다준 풀빵을 크게 입에 넣는 최지은.
요전번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역시 이 아이는 먹는 걸 상당히 좋아한다.
한참을 더 그렇게 오물오물 먹고 한숨 쉬기를 반복하던 최지은은 먹을 걸 다 먹은 뒤에 봉투와 종이팩을 옆에다 내려놓고 나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넌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앞으로?”
“응. 앞으로···. 나는 아직 아무것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 앞으로 어떻게 살지, 어디로 갈지 이런 거.”
아무래도 김민호의 유학 얘기에 지은이 나름대로 느끼는 바가 많았던 모양이었다.
앞으로라,
독주회를 열어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김민호를 이긴다.
솔직히 나도 이 두 가지 말고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기에 최지은의 고민에는 마땅히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내가 미래를 걱정하는 고등학생에게 분명하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있다.
“넌 뭘 하고 싶은데?”
꽤 상투적인 말이 나와버렸지만, 내 물음은 앞으로 생을 살아가며 정말 중요한 질문이 되어줄 것이다.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것과 정반대의 길을 걷다가 돌아온 사람이니까 이것만은 누구보다 잘 안다.
“하고 싶은 거?”
“그래. 민호가 어디를 가건, 내가 뭘 하든 지은이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걸 찾아봐.”
안 그러면 아저씨처럼 된다. 라고 덧붙이려다 말았다.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는 정반대로만 계속 나아간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안 해본 사람은 모를 것이다.
내게 좋은 길을 제시해주는 능력 같은 건 없지만, 적어도 나와 똑같은 길을 가면서 쓴맛을 보는 건 막아줘야 하지 않을까.
물론 강요는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음···.”
입술만 오물오물하면서 내 질문에 시원스러운 대답을 내놓지 못하는 최지은.
“내가 하고 싶은 게 없으면?”
그녀가 한참의 고민 끝에 내놓은 대답이 바로 그거였다.
“없으면? 그럼 찾아봐야지. 세상에 자기가 좋아하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은 거의 없거든.”
“못 찾으면?”
“못 찾으면···. 정 못 찾겠으면 누군가한테 같이 찾아달라고 부탁해보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지?”
갑자기 고등학생답게 말꼬리를 잡아가며 되묻는 최지은.
그 모습이 퍽 귀여워 성심성의껏 대답해주려고 고심하고 있으니 그녀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럼 내가 좋아하는 걸 찾을 때까지 너랑 같이 다녀도 돼?”
“어, 응?”
습관적으로 대답을 하다가 방금 들은 말이 무슨 말인가 싶어 되묻자 그녀는 사춘기의 아이처럼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가 그랬잖아. 못 찾으면 같이 찾아달라고 부탁하라고.”
“그랬지?”
“그 말 책임지게 할 거니까. 계속 같이 다녀도 되냐고···.”
갑자기 훌쩍 커버린 것 같은 민호와 달리 지은이는 계속 옆에 있던 사람이 잠깐이지만 사라진다고 하니, 영 마음이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평소에는 전혀 안 친한 것처럼 굴더니 그래도 민호의 존재를 꽤나 신경 쓰고 있었나 보다.
“그래. 정 안되면 내가 도와줄게.”
“말투 뭔가 아저씨 같애.”
“아저씨라니! 이거 참 너무하시네”
그렇게 평소와 같이 티격태격하며 벤치에서 일어나 최지은을 집으로 데려다준 나는 늦은 버스를 타고 학교 기숙사로 돌아와 내 방 컴퓨터 앞에 앉았다.
“후우우우.”
아직도 내 방 벽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포스트잇 세 장.
-종합 성적 1등.
-같이 공부할 대상 탐색.
-4월 콩쿠르 신청.
이제는 추억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순탄하게 착착 진행된 세 가지 목표들.
나는 그것들을 차분히 바라보았다.
김민호도, 최지은도 결국 각자의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젠 나도 새로운 목표가 필요하겠지.
나는 굵은 네임펜 하나를 들고 이번에는 공책 한 장을 찢어 그 한 페이지에 꽉 차도록 한 콩쿠르의 이름을 적어넣었다.
-백건오 한국 국제 피아노 콩쿠르.
참가하려면 참가 자격부터 갖춰야 한다는 국내 탑급 규모의 콩쿠르다.
나는 그 찢은 공책을 포스트잇이 있던 자리에 붙이며 다짐했다.
이젠 아마추어뿐만이 아니라 프로 피아니스트들도 참가하는 그곳으로, 이제 나도 나아가볼까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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