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living again RAW novel - Chapter 53
53. 트리오 (Trio, 삼중주) -2
바이올리니스트 이수정.
내년 2011년에 미향예고에 바이올린 수석으로 입학, 당시 바이올린 전공생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1등으로 손꼽히던 엘리나와 유일하게 비등한 실력을 뽐내던 학생이었다.
그리고 더 단적으로 말하자면, 전생에 내 망가진 인간관계에서 몇 안 되는 지인.
과거 오케스트라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내게 반주를 부탁했고 또, 다른 유명 바이올리니스트들과 인연을 만들어준 사람이 바로 이수정이었다.
어제 이사장님이 금천문화재단이 직접 키운 중학생이 있다고 했을 때부터 진작 알아챘어야 했다.
그녀는 금천 영재발굴 프로그램의 최대 수혜자였으니까.
“혹시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던 건 아니죠?”
수상하다는 투로 다시금 내게 확인 질문을 던지는 이수정.
나는 초면부터 이름을 냅다 말해버리는 바람에 그녀에게 경계 아닌 경계를 받게 되었다.
대충 그녀가 참가했던 것으로 기억나는 콩쿠르에서 봤었다는 식으로 변명은 해놨으나, 수정은 순진하게 믿어주는 눈치가 아니었다.
“아무튼, 올 사람은 다 온 것 같으니 제대로 인사나 해보자 애들아. 나는 스물둘의 첼리스트. 강남준이라고 한다. 첼로는 여덟 살부터 켰고 처음 콩쿠르 수상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지. 첫 수상이 대상이었다고?”
역시나 자기애 투철하게 묻지도 않은 사항을 줄줄 이야기해주는 강남준. 그의 미소는 얼핏 서울 시향 오케스트라의 홍진태를 닮은 것 같지만, 뭔가 좀 다른 느낌이었다.
“저는 열여섯이고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이수정입니다. 첫 수상은 열두 살 때, 주니어 콩쿠르였던 것 같아요.”
굳이 첫 수상 경험을 덧붙여야 하나 싶다만은 일단 강남준이 했으니 따라 해본 것 같은 표정의 이수정.
“열일곱이고 이번 서울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처음으로 수상을 받아본 피아노에 이성현이라고 합니다.”
다들 어릴 적부터 오랫동안 뭘 해온 것 같은데 막상 내 경력이라고는 이번에 그것뿐이니 왠지 모르게 좀 부끄러운 심정이 들었다.
굳이 자기 입으로 자기 수상 경력을 말하는 것도 애초에 이상하기도 했고···.
“이, 성현. 이성현? 네?! 오빠가 그 유키에 모리한테 협주 제안을 받은 그 이성현이라고요?!”
그런데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이수정.
그러고 보니 바이올린 업계에서 유키에 모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 그녀는 나를 단박에 알아보고 눈을 초롱초롱 빛내기 시작했다.
“유키에님 실제로 보면 어때요? 막 피부 진짜 하얗다던데 진짜예요? 아 그리고 유학이 아니라 협주 제안이라는 거, 들었을 때 나 진짜 놀랐잖아요! 피아노 그렇게 잘 쳐요? 대단하다 진짜!”
바이올린 가방을 내려놓자 아주 산책 나온 강아지처럼 휙휙 움직이며 내게 이런저런 말을 쏟아내는 이수정.
너무 말이 빨라서 내가 다 듣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그보다 아까까지 경계 태세는 다 어디 갔는데···.
지은이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참 자기 관심사만 나오면 경계심이 확 없어지는 것도 문제다 문제.
그렇게 흥분한 이수정과 내가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게 된 것처럼 둘이서만 대화를 나누던 중에,
쿵. 하며 구둣발로 무대를 차는 소리가 들리며 동시에 강남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울 국제 피아노 콩쿠르면 아마추어들을 위한 축제 아냐? 게다가 주최자가 미향예고인데, 이번 수상자들 전부 미향예고 애들이던데. 그게 그렇게 대단한 실적은 아니잖아?”
갑자기 초를 치는 강남준.
자신을 빼놓고 둘이서면 얘기를 주고받고 있던 게 적잖게 마음에 안 든다는 눈치였다.
“다른 실적 같은 건 없어? 지연, 학연, 혈연 이런 거 말고.”
심지어는 내 이번 콩쿠르 2등을 자연스럽게 학연으로 치부해버리는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는다.
“아저씨 이번 서울 피아노 콩쿨 못 들어 봤어요? 역대급이예요. 역대급.”
“아마추어 축제를 왜 듣니, 나는 백건오 한국 콩쿠르 정도 아니면 다른 악기 콩쿠르는 안 들어.”
“그래도 아저씨 학연 얘기는 좀 아니죠. 미향예고가 자기 학생한테 더 가혹한 건 다들 아는데.”
내년에 미향예고 입학을 앞둔 이수정은 아무래도 학교를 가볍게 들먹이는 강남준의 모습에 화가 난 듯했다.
“미향예고 그거야 자기들 주장인데 아니 그보다 나는 왜 아저씨고 쟤는 오빠야? 나 스물둘 밖에 안 먹었다니까?”
좋게 보면 티격태격 친해지는 중이라 받아줄 수도 있겠다만, 이건 너무 개판 아닌가.
나는 첫 단추를 끼우는 것에서부터 틀어지기 시작한 이 트리오를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하아.”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
강남준.
첫인상은 그저 자기애가 좀 강한 편에 묻지도 않은 말을 쏟아내는 투 머치 토커 정도였는데,
막상 연습을 시작하니 그의 진면모가 드러났다.
“우리 곡은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1번 어때?”
그의 당당한 어투의 말을 듣고 나는 잠시 내 귀를 의심했다.
“첼로 소나타요? 그거 바이올린 없잖아요.”
강남준의 한마디에 눈을 날카롭게 뜨고는 말하는 이수정.
확실히 삼중주를 위해 모인 자리에서 첼로가 주역을 맡는 소나타를 아주 당연하게 제안하는 모습은 내 인생을 통틀어서 처음 보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당연히 좀 어레인지해서 바이올린 파트도 조금 넣어야지.”
“바이올린···. 조금이요···?”
드르륵!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는데, 자세히 보니 이수정이 손에 쥐고 있던 활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였다.
저거 되게 무서운 신호인데···.
사실 가냘프게 생긴 외모랑 딴판으로 이수정도 최지은만큼 한 성격하는 애다.
“그래. 피아노 반주 파트를 바이올린이랑 나눠서 삼중주로 가는 거야. 메인은 물론 내가 맡고.”
그런데 그런 이수정의 폭발 직전 사인도 모르고 신난 애처럼 한술 더 뜨는 강남준.
솔리스트로서는 솔직히 탁월한 실력을 갖췄다는 건 알겠는데, 왜 필하모니에 합격하지 못했는지가 빤히 보였다.
오케스트라는 기본적으로 혼자 실력이 출중하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내가 엘리나와 협주를 조형할 때 그랬던 것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양보할 줄 아는 자세.
오케스트라에서는 그걸 매우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눈앞의 강남준은 그 기본적인 배려심이 아예 없었다.
“이 아저씨가 진짜 누굴···.”
“자! 잠깐만요. 우리 잠깐 차분하게 얘기 좀 해보죠?”
참다못한 이수정이 쌈닭다운 태도로 말문을 트는 순간, 나는 그녀의 앞을 막아서서 흥분한 이수정을 진정시켰다.
“무슨 얘기, 더 좋은 곡 있어?”
귀를 후비며 내 말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걸 대놓고 티 내면서 말은 그렇게 묻는 강남준.
나는 그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그 같잖은 청년에게 우선은 내가 어른이니까 말로 해결해보고자 시도를 해봤다.
“일단, 왜 어레인지같이 리스크 큰일을 하면서까지 첼로 소나타를 하고 싶어 하시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내가 이 셋 중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뻔하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내가 메인을 맡고 너희가 반주하는 거지.”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데요?”
“성현아, 네가 형보다 수상 실적 많아?”
“아니죠?”
“그러면 나보다 오래 음악을 공부했어?”
음, ‘당연하지 멍청아’라고 말하고 싶지만, 대외적으로 나는 음악을 배운지 이제 반년 된 학생이다.
“아, 아니죠.”
“그럼 답 나왔네.”
이, 이놈이?
고작 수상 횟수랑 음악 공부 기간만 가지고 사람을 판단했다고 지금 말하는 건가?
진심으로?
나 때는 말이야!
아, 아니지.
나는 가까스로 끊어질 뻔한 인내심을 다시 부여잡고 말했다.
“그러면 왜 굳이 김동혁 이사장님은 저희를 첼로 소나타가 아니라 트리오로서 모으신 걸까요?”
“어? 어어. 그, 그건.”
역시나, 이사장님을 언급하자 곧바로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오던 말이 막혀버리는 강남준.
이런 유형의 인간에게는 백 마디의 말보다는 권위를 가진 이의 이름 하나가 효과적이다.
“그럼 굳이 트리오로 저희를 모았는데 남준씨 말대로 첼로 소나타를 연주하면 이사장님이 좋아하실까요?”
“그, 그거야···. 당연히 이사장님은 더 좋은 연주를 원하실 테니까···.”
“그럼 왜 이사장님은 금천문화재단 소속의 반주자가 아니라 콩쿠르에서 준우승한 지 일주일 된 저랑 금천 영재발굴의 수정이를 불렀을까요?”
“그, 그건···.”
이제는 아예 말문이 막혀서는 뻔뻔하던 표정까지 어그러진 강남준.
그런 그를 내 뒤에서 지켜보던 이수정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당연히 제대로 된 삼중주가 듣고 싶어서 그런 거지. 뭘 우물쭈물하고 있어요. 아저씨 진심으로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아니? 나도 알지! 모르기는 무슨!”
참다못한 이수정의 정문 일침에 강남준은 발끈하며 그렇게 답해버렸지만, 이것으로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침착하게 미소를 지으며 묻자,
“그럼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가 잘 어우러진 곡 선정부터 다시 해볼까요?”
“아, 그래.”
강남준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휴, 다행히 큰 다툼없이 연습은 제대로 굴러가게 되었다.
“그래도 이사장님의 의중은 모르는 거니까 일단 첼로 소나타도 같이 연습해두는 건 어떨까?”
아까보다 조심스러운 어조였지만, 이 상황이 되어서까지 물고 늘어지는 강남준의 모습에 나는 말하지 않으려 했던 필살기를 꺼내 들었다.
“아, 정 궁금하시면 물어보고 올게요.”
“어?! 너 이사장님하고 아, 아는 사이야?”
“예. 제 친구 민호가 이사장님 아들이라서요. 짧은 질문 정도는 답해주실 거예요. 그럼 물어보고 올게요. 강남준 첼리스트가 첼로 소나타가 좋다고 하는 데 정말 괜찮냐고요.”
“아냐! 아니야! 새, 새로운 곡을 정해보자. 가, 같이 정하는 거야 어때? 좋지?”
나와 이사장님과의 연관성을 듣자마자 순한 양이 되어버린 강남준.
그는 눈만 빼고, 얼굴 근육 전체를 움직여 활짝 웃는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푹 수그러든 사람이 되어버렸다.
“와···. 극혐.”
그리고 이수정은 내 등 뒤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강남준에 대한 평가를 아주 신랄하게 내뱉고 있었다.
역시, 내가 가만히 있었다간 대판 싸웠겠다.
***
결국, 우리 트리오가 결과적으로 선택하게 된 곡은 시대가 변했음에도 변함없이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사랑을 받는,
[Mendelssohn- Piano Trio No.1]바로, 멘델스 존의 피아노 삼중주 1번이었다.
피아노가 강조되어있기는 하지만 충분히 악기 간의 균형이 잘 잡힌 명작으로 손꼽히는 곡이었기에 곡 선택에 대한 불만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정석적인 삼중주를 택하기까지 30분.
우리는 방과 후나 되어서야 모이게 된 것이기에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럼 곡은 멘델스존으로 하는 거 찬성하신 거죠?”
“그, 그러엄~”
“네.”
내가 묻자 떨떠름하게 답하는 강남준,
그리고 이수정은 30분 내내 쉬지 않고 떠들며 회의를 주도하는 내가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럼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제가 얼른 악보 프린트해서 올게요.”
괜한 입씨름으로 늦어진 만큼 나는 서둘러 협주홀을 나와 복도로 향했다. 솔직히 강남준의 그 묘한 시선이 특히 꺼려졌기에 자리를 피하고픈 마음도 있었다.
“자, 잠깐만요. 같이 가요.”
그리고, 나와 비슷한 심정으로 보이던 이수정이 헐레벌떡 협주홀을 나와 나를 쫓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방금까지 나랑 으르렁대던 사람이랑 단둘이 두고 가는 게 어디 있어요. 정말!”
그렇게 말하며 심통 난 아이처럼 입술을 삐죽 내미는 그녀.
확실히 이수정은 겉으로는 태연하지만, 속으로는 낯을 많이 가리는 스타일이었었다.
나와도 지금은 초면이었기에 괜히 이상해 보일까 봐 같이 가자고 권유하지 않았던 건데, 그래도 강남준보다는 내가 안전한 사람이라고 그녀 속에서 결론이 났나 보다.
“미안, 그렇다고 나랑 가자고 해도 이상하게 볼까 봐.”
“오빠는 괜찮아요. 유키에님이 이상한 사람한테 협주를 권했을 리가 없잖아요.”
그, 그래서 괜찮은 거였구나?
“그나저나 악보는 어디서 프린트하지?”
“여기 처음 와봐요?”
“당연하지?”
“뭐야. 나는 나 바로 알아보길래 여기서 만난 적 있는 사람이었나 했잖아요.”
“아니야. 말했잖아. 작년 콩쿠르에서 봤었다고 예쁜 드레스에다가, 머리 짧게 하고 연주했던 거.”
드레스는 당연히 콩쿠르니까 입었을 거고 그녀는 전생에서도 긴 머리가 거치적거린다고 싫어했으니 작년 콩쿠르도 당연히 단발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적당히 둘러대고 어서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데,
“나 작년 콩쿠르 때 장발이었는데?”
“어?”
실패한 것 같았다.
“아아, 그, 그것보단 얼른 프린트해서 연습하러 가자.”
“스토커?”
“아니야!”
그렇게 이 ‘클래식 아트센터’에 익숙한 이수정의 주도로 빠르게 준비를 마친 우리는 다시 협주홀로 돌아가 대망의 첫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단 10초 만에 알았다.
이 트리오로 성공적인 무대를 선보이려면··· 고생 좀 해야겠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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