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living again RAW novel - Chapter 54
54. 트리오 (Trio, 삼중주) -3
우선,
완성도부터 문제였다. 초견이라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균형이 어그러진 소리가 나는 것은 다들 곡에 대한 연마가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나야 오케스트라에서 두 달간, 이 곡만 주구장창 연주해본 덕분에 큰 문제는 없었으나 이수정과 강남준은 확실히 초견이라는 게 티가 나는 수준의 연주였다.
“음, 잠시만요.”
아무래도 첫 연주인 만큼 엘리나와 협주를 조형했을 때처럼 30분짜리 연주를 일단은 끝까지 해볼 생각이었으나, 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2악장을 끝으로 연습을 중단시켰다.
“우리 일단, 첫날은 각자 연습실에서 곡부터 제대로 익힐까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강남준과 이수정.
“좋은 아이디어야. 기본은 갖추고 뭘 조정을 하든 해야지.”
“음. 좀 마음에 안 들지만, 저도 아저씨 말 공감이요.”
서로를 싫어하는 사람 둘이 의기투합할 정도면 말 다 했다.
최근에 내가 함께 다니던 애들이 지은이랑 민호여서 그런가···. 나는 너무 당연하게 초견부터 어느 정도의 완성도는 들려줄 줄 알았다.
‘그 애들이 생각보다 더 천재들이었구나.’
새삼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각자 개인 연습실로 흩어진 이수정과 강남준.
그리고 나도 예전의 감각을 되살려보기 위해 혼자 피아노 연습실로 향했다.
악보대에 악보를 놓고 눈을 감고 건반을 두드렸다.
멘델스존 피아노 삼중주의 운치 있는 음색을 떠올리며 그 선율에 맞춰 손을 움직이는 나.
하지만, 이내 나 혼자서만 조형작업을 끝내버리면 이후 협주가 더 힘들게 진행이 될 것 같아 악보에 대한 해석은 중간에서 멈추고 곡 연습 또한 미완성인 상태로 일단 연습실을 나왔다.
벌써 저녁 8시가 넘었다.
먹은 것이라고는 아까 민호네 운전 기사님이 주신 팥빵과 우유뿐.
“하, 치킨 땡기네.”
그러고 보니 몇 달 전만 해도 식욕도 없다시피 연습만 했었는데,
“오.”
내 몸이 폭풍 성장했던 건 1학년 2학기.
그리고 내가 몸집이 커지기 전에 가장 기억에 남는 몸의 반응은 식욕 증가였다.
“드디어···.”
내 몸이 서서히 전생의 나처럼 커지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첫날의 연습은 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
다음날 점심시간,
나는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엘리나와 둘이서 식당을 찾아왔다.
“유키에 씨한테는 레슨 잘 받았고?”
그저께부터 나와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아주 할 말이 많아 보였는데, 하필 내가 이번 금천문화재단의 일과 엮여 제대로 대화도 나누지 못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아예 무슨 버려진 강아지처럼 우울한 얼굴로 나를 봐버리니 더는 보고 있기가 힘들어 오늘의 점심시간을 통째로 같이 있기로 해버린 것이다.
“너무너무 고마워요! 성현! 덕분에 잘못된 부분도 잘 찾았어요. 그리고 좋은 부분도 알려주셨어요. 진짜진짜 좋았어요. 고마워요!”
“예선은 어땠어?”
척 봐도 표정이 너무 밝아서 나는 묻지 않고도 그녀가 할 말을 예상할 수 있었지만, 예의상 그리 물어보았다.
“후후후후!”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귀엽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웃는 엘리나.
그녀는 오른손을 브이 모양으로 만들어 내게 들이밀면서 확신하는 어조로 말했다.
“진짜 좋았어요. 본선은 확실한 것 같아요!”
“오오. 축하해! 정말 고생 많았어.”
턱에 멍이 들 정도로 큰 노력을 하고도 콩쿠르 직전까지 연습을 멈추지 않던 그녀.
“정말 유키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었어요. 성현. 정말 고마워요.”
유키에는 엘리나의 연주를 한번 들어보더니 이상하게도 예선 연주에 대한 조언이 아니라 본선에 대한 레슨을 진행해줬다고 했다.
왜 그랬던 걸까 궁금했던 엘리나가 레슨 끝에 질문하자, 유키에 씨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예선은 지금처럼만 하면 합격이니까요. 더 멀리 봐야죠.’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방문해준 것도 놀라웠는데,
그런 그녀가 예선 합격은 당연하다는 듯 말해버렸으니 항상 자신감이 부족했던 엘리나는 어려운 파가니니의 카프리스를 연주하면서도 두려움 없이 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겁 안 났어요. 유키 선생님이 말해주셨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해바라기 같은 웃음을 보여주는 엘리나.
하여간 표정 변화가 참 다양한 아이였다.
그런데 엘리나는 갑자기 행복한 강아지처럼 미소만 지을 것 같던 얼굴을 경직시키며 말했다.
“그런데요. 성현, 그 담임 선생님이요···. 성현한테 뮤지컬 티켓 두 장 줬다고 하는데요. 누구랑 갔었는지 알려줄 수 있어요···?”
뭘 그 정도 질문으로 그렇게 딱딱하게 구는지,
나는 곧장 ‘지은이랑’까지 말했는데 엘리나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걸 보고는 ‘민호랑 해서 셋이서 갔어.’라는 말을 빠르게 덧붙였다.
“셋이요?”
“응, 그냥 여차여차해서 셋이서 가기로 했어.”
“아아, 그럼 단둘이 아니에요?”
“응? 응. 그렇게 됐어.”
그게 뭐가 중요한지 금세 헤실헤실 웃는 미소로 돌아온 엘리나는 살짝 몸을 움직여 내게 더 가까이 다가오더니 작게 말했다.
“어제 나도 선생님한테 티켓 받았어요. 이번 주말에 있는 연극 티켓이요.”
“연극? 뮤지컬이 아니라?”
“네! 같은 모차르트 얘기긴 한데 기간이 좀 안 맞아서 연극으로 구해주셨다고 하셨어요.”
“하긴, 그랬긴 했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나가 주머니에서 꺼내든 두 장의 티켓을 보았다.
“성현···. 나랑 같이 갈래요? 이번에는 정말 정말 두··· 둘이서요.”
엘리나는 수줍게 내 눈을 피하며 그렇게 말했고 나는 괜히 요전번 저녁 약속에 최지은을 데리고 왔던 것이 떠올라 뜨끔해서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번에는 둘이서 같이 가자. 엘리나.”
“헤헤헤. 그리고 성현, 성아가 그랬어요. 친한 사람한테는 별명으로 불러달라고 말하래요.”
“별명?”
“성아랑 같이 다니는 여자애들은 다 나를 엘리라고 불러요. 성현도 그렇게 불러줄 수 있어요?”
엘리라···.
어감이 무지 어린아이 이름 같지만, 본인이 부탁하는데 뭐 괜찮겠지 싶었다.
참, 엘리나를 보고 있으면 전생에 내 사촌누나가 낳은 해맑은 조카를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고 보니 그 조카도 나이를 먹고 고등학생이 되었다면 이렇게 예쁘게 컸으려나.
뜬금없는 의문에 잠시 딴생각을 하다가 묘한 텀을 두고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실시간으로 불안한 표정이 되어가는 엘리나가 보여서 나는 서둘러 그녀가 내민 티켓 하나를 손에 쥐며 말했다.
“그래. 엘리. 주말에 보는 거야 알겠지?”
“앗! 네!”
***
빵끗빵끗 귀엽게 웃는 엘리나와 인사를 나누고 전공시간을 끝낸 방과 후,
나는 다시 아트센터 협주홀에 돌아와 이번 오케스트라의 중요한 서막을 맡은 트리오의 구성원들을 보고 있었다.
“두 분 모두, 바로 연습에 들어가도 괜찮겠어요?”
“당연하지. 성현아.”
“네!”
어제와는 전혀 다른 두 사람의 반응. 왠지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간 것 같아 조금 불안했지만, 우선 연습을 진행해보기로 했다.
“하나, 둘.”
나는 신호를 주어 시작지점을 짚어주었다.
등-
지잉-
피아노 건반과 동시에 울리는 첼로 진입하는 타이밍은 확실히 나쁘지 않았다.
이어서 첼로가 제시한 주제를 바이올린이 확장하는 부분도 거친 반발감 없이 이어졌다.
이어지는 연주.
확실히 두 사람은 자신이 실력 있는 연주자라는 걸 증명하듯 어제와는 차원이 다른 연주를 연마해왔다.
마치 악기를 통해 말하고 있는 듯했다.
‘어제 초견 연주는 잊어라. 지금 이 연주가 진짜 내 실력이다.’라고.
확실히 단 하루 만에 이렇게까지 연주의 완성도를 끄집어 올렸으리라 예상도 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왜 강남준이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최종면접까지 올라갔었는지를 그리고 이수정이 어떻게 금천 영재발굴 프로젝트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후우우.”
“하아.”
우리 셋은 그렇게 말 한마디 없이 30분가량의 연주를 끝내고 마라톤이라도 뛰고 온 사람처럼 헉헉거리는 숨을 토해냈다.
아직 조율을 마치지 않은 상황이라 서로가 서로의 연주에 맞추느라 균일하던 호흡이 꼬인 것이다.
그리고 이럴 때 자기주장이 강한 솔리스트들은 보통···.
“수정아? 미안한데 바이올린이 주제를 살릴 때는 더 강하게 힘을 줘서 연주해야 하는 거란다. 알겠니?”
“아니요. 아저씨가 바이올린 중심 파트에 힘을 덜 빼신 거 같던데요.”
“뭐? 네가 아직 협주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나 본데 원래 첼로는 이렇게 하는 거야.”
“하나도 안 죄송한데요. 원래 바이올린도 이 소리가 맞거든요?”
그래, 이렇게 불협화음이 발생한다.
본래 피아노의 역할보다도 바이올린과 첼로가 더 아름다운 합을 이뤄야 하는 ‘멘델스존의 피아노 삼중주 1번’.
그런데 정작 두 사람이 이렇게 안 맞아서야, 좋은 연주가 될 리가 만무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두 사람 모두 자신이 받은 악보에서 틀린 부분 없이 잘 연주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제 있었던 굴욕적인 초견 때문에 더 이를 악물고 완성도를 끄집어 올려서 온 것 같은데,
그게 오히려 악수가 되고 말았다.
“잠깐만요.”
둘이서 티격태격하던 강남준과 이수정은 갑작스러운 내 목소리에 모두 입을 다물고 이쪽을 보았다.
“우리 트리오가 무대에 오르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었죠?”
“이제 보름하고 삼일 정도?”
“그러니까 3주가 좀 안 되게 남았다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렇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이수정에게서 눈을 돌려 턱에 손을 괴고 차분히 생각에 빠졌다.
남은 시간은 18일.
멘델스존 피아노 트리오 1번은 1악장부터 4악장까지 있으며 연주시간만 30분에 달하는 긴 곡이다.
무슨 부탁을 하건 다 받아들여 주던 엘리나와 달리 자기주장이 강한 두 연주자.
게다가 둘이 아니라 나까지 포함한 셋이니 조율에는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 상황을 타개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곧바로 내 머리에 떠올랐다.
바로 중심을 잡아줄 스승을 불러 전체적 조율을 부탁하는 것이다.
곧바로 마 원장님, 정석 선배, 홍진태씨가 떠올랐지만, 다들 이번 오케스트라 경연 준비로 바쁘다는 말을 들었다.
다음으로 떠오른 것은 미향예고의 교사진. 하지만, 김기택 선생님이나 정혜선 선생님에게서 저 두 사람을 휘어잡을 만한 카리스마가 연상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누가 있을까.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던 중, 나는 갑자기 전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차라리, 그만둬?’
재단은 직접 날 후원해주기로 한 것도 아니고, 그저 30분짜리 특별 공연의 기회를 준 것일 뿐이었다.
‘아니야.’
나는 곧바로 머리를 가로저으며 게으름의 유혹을 떨쳐냈다.
무려 오케스트라가 세 팀이나 참가하는 거대한 연주회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전문가가 몰려들겠는가.
이런 무대에 오를 기회는 아무 때나, 그리고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노력했기에, 힘을 내서 ‘서울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김동혁 이사장을 감동시켰기에 얻은 기회가 바로 이 트리오였다.
이번 무대를 성공적으로 끝맺는 것만으로도 나는 ‘백건오 한국 종합 콩쿠르’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이렇게 눈앞까지 다가온 기회를 놓치는 바보가 되고 싶진 않았다.
나는 마음을 새롭게 다잡으며 목을 가다듬었다.
“제가 보기에 시간적으로나 상황적으로나 아주 급한 것 같은데 동의하시죠?”
“그거야···.”
“그렇죠?”
갑자기 내가 목소리를 내리깔고 질문하자 떨떠름한 얼굴임에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
“제 생각에 이 촉박한 시간에 트리오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한 사람이 기준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의합니까?”
두 사람은 내 딱딱한 말투에 경직이 되어서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아까의 고민으로 떠올린 결론을 입에 담았다.
“이번 트리오가 흥하건, 망하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죄송하지만 딱 무대까지만, 제 말에 토 달지 않고 따라와 주시길 바랍니다. 괜찮습니까?”
두 사람이 내 갑작스러운 변화에 제대로 반응하기도 전에 나는 쏜살같이 내가 할 말을 모두 마치고 눈을 날카롭게 뜨고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계속 생각하다 보니 나온 결론은 너무 단순했다.
꼭 누군가를 데려올 필요 없이 내가 운전대를 잡자는 것.
자기주장이 강한 두 사람이기에 더더욱 나는 엄한 태도를 고수할 필요가 있었다.
“동의하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나는 멋대로 그렇게 멍한 두 사람에게 선언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피아노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딩-
“다시 연습 시작하겠습니다.”
당장 건반을 누르며 첫 소절을 연주하고는 고개만 뒤로 돌려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셋에 갑니다. 하나, 둘!”
그렇게 시작해버리는 연주.
두 사람이 미쳐 제대로 반응하기도 전에 나는 그냥 주도권을 꽉 잡아서는 그대로 연습의 흐름을 끌어당긴 것이다.
두 사람이 부랴부랴 자세를 취해 연주를 시작했으나, 나는 그 순간에 맞춰 준비해두었던 말을 읊었다.
“그만, 다시 갑니다.”
그래, M스튜디오의 호랑이라 불리는 정석 선배의 흉내를 내면서 말이다.
“다시.”
“다시!”
“그만, 여덟 마디 전으로 돌아가서 다시 갑니다.”
이 협주홀에서 들리는 목소리라고는 오로지 나의 큰 목소리뿐,
두 사람은 내 갑작스러운 변화에 바짝 긴장한 사람처럼 표정이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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