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living again RAW novel - Chapter 60
60. 컴포저 (Composer, 작곡가) -2
내 연주를 듣고 난 뒤, 모리스의 분위기는 한껏 부드러워졌다.
그는 경찰이 심문하듯 내 신상정보를 캐묻던 아까와는 달리 옆 동네 할아버지 수준의 호탕하고 따스한 분위기를 풀풀 풍기며 나와 대화를 이어나가는 모리스.
아무래도 자신이 상상하던 그대로의 연주를 내가 재연해낸 것이 정말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성현아. 너 미향예고에 다니고 있다고 했었지?”
“네.”
이젠 무슨 친근한 할아버지라도 된 것처럼 말을 거는 모리스 슈만.
내 눈앞의 켄터키 할아버지같이 생긴 이 사람이 세계적인 작곡가라니, 갑자기 이렇게 가까운 느낌이 들 정도로 살가운 모습을 보여주니 새삼 정말 이 남자가 모리스 슈만인 걸까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아직 1학년이니 재능기부 봉사, 다녀오지 않았겠지?”
그런데, 갑자기 콩쿠르에서 영 엉뚱한 주제를 꺼내 드는 모리스 슈만.
재능기부 봉사,
내게는 그다지 좋은 추억이 없는 화제였기에 반사적으로 나는 움찔하며 잠시 굳고 말았다.
그보다 이 할아버지가 어떻게 그걸 아는 걸까.
“예끼! 지금 내가 데리고 다니는 재상이도 미향예고 1학년이었다 요놈아! 뭘 그리 놀라!”
모리스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호통을 치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제야 그가 지금껏 직접 선택해 독일로 데려간 학생 중에서 절반 이상이 미향예고의 학생이었다는 얘기를 기억해냈다.
하지만, 갑자기 뜬금없이 봉사 활동이라니···. 이 할아버지는 내게 왜 그런 말을 꺼낸 것일까.
어찌 됐건 나는 그다지 대화의 주제로 삼고 싶지 않은 화젯거리를 치워보려고 전혀 딴소리를 해보았는데,
“어르신, 그보다 제게 참가를 권해주신 콩쿠르가 대체 어떤 콩쿠르인 건지···.”
“질문은 나중에 받는 거로 하고 일단 들어봐라.”
씨알도 먹히질 않았다.
“나는 너를 찾아오기까지의 요 이틀간, 너의 모든 연주를 찾아봤었다. 미향예고 입시 고사 5등, 실기 우수자 연주회에서는 협주를 성공시켰고 그, 그 뭐냐. 인터넷에까지 네 연주 영상이 참 많이도 돌아다니더구나?”
그렇게 말하며 아이폰 1세대의 스마트폰을 꺼내 내게 들이미는 모리스.
아직 국내에는 그렇게 많이 보급되지는 않았으나, 외국인에게 스마트폰은 그렇게 낯선 물건이 아닌 것 같았다.
오래간만에 컴퓨터 모니터가 아닌 손바닥만 한 화면으로 보는 인터넷.
게다가 화면 속에 틀어진 영상은 내 첫 거리공연이자 ‘바이올린 대 피아노’라는 다소 오글거리는 제목으로 업로드되었던 그 영상이었다.
“볼 수 있는 한 내가 관람할 수 있는 너의 음악, 너의 연주는 모두 들어봤어. 뭐 경력이 워낙 짧으니 하루도 안 걸렸다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건지 모르겠지만 아이폰을 치우고 나를 느긋하게 바라보는 모리스 슈만.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찾아서 들어본 네 연주로 판단해봤을 때, 지금 이대로 네가 내 콩쿠르에 참가한다면 백 퍼센트 예선에서 떨어질 거다.”
“떨··· 어 진다고요?”
내 연주에 감탄했던 것이 아니었던 건가.
그는 잘 드는 칼로 무를 썰어버리는 것처럼 단호하게 그렇게 말했다.
“그래. 내가 주최하고 내가 심사를 보는데 그걸 모르겠냐?”
이렇게 항상 사람을 당황하게 하기에 괴짜 어르신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걸까.
방금까지 꼭 나와달라는 사람은 어디 가고 지금은 이대로 있으면 탈락할 거라고 말한다.
“어째서죠?”
나는 당황하면 지는 거라는 생각으로 애써 침착하게 그렇게 물어보았고 모리스는 그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말했다.
“나와 너는 추구하는 음악관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란다.”
음악관?
음악관이라니···.
왜 갑자기 음대생이나 된 뒤에야 제대로 토의해볼 만한 이야기가 이 자리에서 튀어나오는 것인가.
“추구하는 음악관이라고요?”
내가 앵무새처럼 그의 말을 따라 읊자 그것만으로 만족스럽다는 듯 모리스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음악관! 연주의 실력 같은 건 다 떠나서 추구하는 목적지, 네가 네 두 손으로 연주해보고 싶은 그 선율 말이다.”
내가 ‘겨울을 위하여’를 제대로 연주해냈을 때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흥분하는 모리스.
“내가 들었던 네 연주는 참 신기했단다. 어떨 때는 불도저처럼 무섭게 질주했으면서 또 다른 연주에서는 가냘프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얇고 희미해서 소리의 공백을 살려냈지. 어딜 어떻게 봐도 음악을 시작한 지 반년 된 애가 할 수 있는 연주가 아니었다.”
말을 하면 할수록 점차 냉정함을 되찾는 표정의 모리스.
그는 완전히 이성을 되찾은 다음에는 직전과 완전히 상반되는 차분한 목소리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마치 몸과 영혼이 따로 있는 사람의 연주 같았지.”
“…!”
나는 말 없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과거로 돌아온 내 상황을 이토록 정확하게 꿰뚫어 본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여든이라는 나이를 먹도록 음악에 생을 바친 사람다운 무서운 추론이었다.
“뭘 그리 놀라는 게냐. 원래 늙다리가 농담하면 허허 그렇습니까 하면서 웃어야 하는 거다. 그런 것도 모르는 게야?”
“아, 아닙니다.”
정말 몸과 정신이 따로인 바람에 깜짝 놀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나는 알아서 살벌한 추리를 거두는 모리스를 보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아무튼, 요는 이거다. 지금까지의 네 연주는 모두 그 자리에 있어서는 최고이거나 최선의 답이었을 게다. 그렇지? 하지만 나는 조금 바보 같을지라도 우직하게 자기 색을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는 거지.”
우직한 자신의 색이라.
확실히 나는 이 자리에 올 때까지 있었던 모든 연주자리에서 그 상황에 알맞은, 혹은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최상의 연주를 들려주기 위해 힘썼다.
우직하다 못해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기본기를 단련해 그 단단한 토대로 깊은 감성을 담기 시작한 김민호,
그리고 최근에는 항상 내 조언을 기억하며 자신만의 음색을 찾으려 노력하는 최지은과 비교하면 나는 편리하다 싶을 만큼 그 상황에 알맞은 연주를 추구해왔다.
그리고 이 눈앞의 거장은 녹화되고 녹음된 나의 연주를 몇 곡 들은 것만으로 지금껏 정석 선배조차 지적하지 못한 내 빈틈을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다.
아무리 성격이 수시로 오락가락하며 괴짜라 조롱을 받는 사람이라도 확실히 거장이라는 존칭이 아깝지 않은 날카로운 눈썰미였다.
“그러니까 네게 그 미향예고에서 한다는 재능기부 봉사는 꽤 쓸만한 경험이 될 게다. 넌 똑똑한 학생이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고 있겠지?”
음, 솔직히 거기서 왜 재능기부 봉사가 튀어나온 건지는 눈곱만큼도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모리스가 적잖게 내게 신뢰하는 눈빛을 보내는 터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렇지. 너같이 똘똘한 놈은 알아서 이해할 거라고 난 알고 있었다.”
심지어는 자신도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는데, 나는 거기다 대놓고 대체 왜 재능기부 봉사를 다녀오란 건지 질문을 던질 수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어르신, 제게 콩쿠르를 나오라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봉사를 나가면 일정을 어떻게 조율할지가 난감해집니다.”
“예끼! 이놈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어차피 내 콩쿠르의 예선 참가자는 아직 너뿐인데 무슨 콩쿠르 일정을 따지고 있어!”
“아직 저 혼자라고요?!”
나는 놀라 목소리를 높이면서 동시에 전생에 들었던 묘한 소문을 떠올릴 수 있었다.
당연히 ‘모리스 슈만 콩쿠르’는 외부인에게는 존재조차 확실하지 않은 그런 콩쿠르로 통하기에 참가자를 모집하는 공고를 올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참가자를 선출하는가.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다들 믿지 않았지만, 몸이 불편한 작곡가 모리스가 직접 연주자를 찾아가 돌발적으로 그리고 즉흥적으로 시험을 진행해 참가자를 모은다는 그 기괴한 소문.
바로 지금의 내가 처한 상황처럼 말이다···.
‘한 명, 한 명 모은다는 소문이 진짜였구나···.’
그런데, 이렇게 그에게 직접 돌발적인 심사를 받아보니 알겠다.
그 소문은 헛소문이 아니었다.
모리스라는 이 괴짜 작곡가는 정말로 자신의 불편한 몸을 직접 움직여가며 참가자를 모아왔던 것이다.
참,
왜 3년에서 4년 주기로 참가자나 수상자는 나타나는데 모집 공고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었는지, 내가 음대생이든 시절에는 미스터리라고까지 불렸던 그 수수께끼가 이렇게 해결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렇게 내가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으니, 내 바로 앞까지 휠체어를 움직여 다가온 모리스가 물었다.
“네 1학기가 끝나는 게 언제냐?”
“7월 둘째 주입니다.”
“그렇게 오래 남았어?”
“음. 그래서 봉사는 다음에 다시 해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예끼! 됐다 이놈아. 이 늙은이가 알아서 기간을 맞춰 줄 테니 넌 봉사나 다녀오거라. 어차피 졸업하려면 꼭 해야 한다면서!”
무슨 독일의 할아버지가 미향예고 커리큘럼에 이렇게나 빠삭한지.
나는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던 재능기부 봉사라는 짐을 떠안고 모리스에게 축객령을 받아 그 1층 다목적 음악실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
재능기부 봉사 활동이라니···.
정말 갑자기 큰 짐을 떠안게 되었다.
우선, 재능기부 봉사 활동이 무엇이냐.
미향예고는 단순히 학생들의 음악적 성취를 높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인품 역시 중요사항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어필하기 위해 3년의 재학 기간 중 3번의 봉사 활동을 시킨다.
그것도 단순한 봉사 활동이 아닌, 자신이 학교에서 배운 바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형식의 봉사만 인정해주는 꽤 까다로운 방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보통은 2학기나 돼서야 슬슬 봉사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뭘 배운 게 있어야 재능기부를 할 것 아닌가.
허나, 그걸로 끝이었다면 내가 이토록 그 활동을 꺼리지도 않을 것이다.
이 봉사 활동에는 대체 왜 있는 건지도 모를 이상한 조건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원활한 교유 관계 능력 발달을 위해 꼭 다른 반 학생과 활동을 해야 한다거나,
꼭 자신이 미향예고에 입학하기 전과 후에 달라진 점을 재능기부에서 드러내야 한다거나,
이 봉사 활동을 통해 뭘 느꼈느냐 거나···.
이런 보여주기식 보고서를 길고 정성 들여 작성해야만 제대로 된 봉사 활동으로 인정해준다는 게 전생에는 참 싫었다.
게다가 전생의 나는 딱 요맘때 피아노에 환멸도 느꼈고 인간관계도 엉망이 되었던 터라 특히 더 봉사 활동에 어려움이 있었다.
정말···. 이수정이라는 후배가 없었다면 졸업도 못 했었겠지.
“아!”
그렇게 생각을 거듭하던 중 갑자기 나는 머릿속에 반뜩이는 기억을 떠올렸다.
전생에 우연히 친해진 이수정이 봉사 활동으로 고민하던 나를 직접 데려가 주었던 한 센터.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시각을 잃어버렸음에도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시설.
“그래. 거기라면 얘기가 다르지.”
어떻게 해서라도 음악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 하는 아이들과 엉엉 울던 어떤 학생의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고,
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펼쳐 연락처 목록에서 ‘이수정’을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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