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living again RAW novel - Chapter 62
62. 발룬티어 (Volunteer, 자원봉사자) -2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한 시각장애 피아니스트가 있었다.
그녀는 비행기 사고로 시각을 잃은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도 끝내 피아노를 손에서 놓지 않았고 결국 세계인이 주목하는 콩쿠르까지 올라 상을 거머쥐었다.
매스컴은 시각장애라는 특수성과 그 안타까운 사연 때문에 더 그녀를 주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에는 아직 국내에서 클래식의 입지가 그리 높지 않았었기에 우리나라에서는 해외에서 유명한 한국인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피아니스트, 안영숙.
굳이 따지자면 딱 마 원장님이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던 시기와 같은 세대의 연주자시며,
현재의 마 원장님이 M스튜디오의 원장이 되셨듯 피아니스트 안영숙 역시 자신이 일생을 바쳐 모은 상금으로 한 시설을 설립했다.
그 시설의 이름은 ‘리 하모닉 클래식 센터’.
선천적 혹은 후천적인 장애를 앓고 있으나 포기하지 않고 음악을 공부하려는 열의를 가진 사람을 모으는 곳이다.
현재는 정부의 공인까지 받아 정식으로 봉사 활동 시간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관이 되어 많은 봉사자가 방문하는 장소가 되었다.
“와. 그러면 지금 가는 곳이 눈이 불편하신데도 음악을 공부하는 분들이 모여계신 곳이라는 거구나! 정말로 대단하신 분들이네.”
그리고 나와 함께 버스를 타고 ‘리 하모닉 클래식 센터’로 향하던 예린이는 내가 들려주는 안영숙 피아니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모두 듣고는 두 손을 모아 감동했다는 표정으로 그리 말했다.
“그렇지, 재능기부 봉사는 학교에서 배운 걸 활용해야 한다거나 다른 번거로운 조건도 많은데 여기 리 하모닉 센터는 마침 그런 조건에 딱 알맞거든.”
“우와. 역시 성현이구나. 나는 그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안영숙 피아니스트의 일대기에 이어 우리가 현재 향하는 센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자 아주 감탄했다는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시무룩한 얼굴이 되는 이예린.
“뭘 그렇게 시무룩해. 어차피 1학년 1학기에는 선생님은 봉사에 대한 공지도 안 해주시잖아. 우리가 다른 애들보다 한참 빠른 거니까 오히려 좋아해야지. 안 그래?”
“그, 그런가?”
안 보던 사이에 다시금 소심해진 예린이를 달래고자 미소를 지으며 물었고 그녀는 긴가민가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SNS에서는 그렇게 말도 잘하게 됐으면서 아직 학교에서는 그 소심함을 다 떨쳐내지 못한 같았다.
하긴, 그렇게 쉽게 사람이 확확 변할 수 없다는 건 나도 잘 알기에 독촉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성현아.”
“응?”
“그 있잖아, 우리가 가는 곳을 설립하신 피아니스트분 엄청 유명한 사람이라고 했잖아?”
“그렇지?”
“그러면 우리가 도착하면 봉사하러 온 사람들 무지무지 많을 거잖아. 우리가 할 일이 하나도 안 남아 있으면 어떻게 하지?”
그렇게 말하며 예린이는 조바심이라도 나는 것처럼 발을 동동 굴렀다.
그래, 막상 이렇게 버스로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에 갔는데 자리가 하나도 일거리가 하나도 없으니 돌아가라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허망하겠는가.
“음, 그런 걱정은 필요 없을 거야.”
하지만 나는 예린이의 걱정을 일말의 주저도 없이 부정해버렸다.
아름다운 일대기를 써낸 사람이 설립했다고 해서 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표할 뿐, 정작 무거운 자신의 몸을 이끌고 나타나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아름답지가 않거든.”
***
“아, 여기에요!”
내가 인적이 드문 버스정류장에 내리자 한 10분은 올라가야 할 것 같은 언덕 위에서 누군가 손을 흔들었다.
단발머리를 가볍게 뒤로 묶어 움직이기 편한 옷을 입고 있는 아이.
다름 아닌 나와 그저께 통화로 이야기를 나눴던 ‘이수정’이었다.
내가 그녀를 확인하고는 마주 보며 손을 흔들자 경계심 많은 강아지처럼 내게 다가오더니 작은 목소리로 묻는 이예린.
“누, 누구?”
“저번에 나랑 같이 삼중주를 연주했던 이수정이라고 원래부터 주기적으로 여기서 봉사 활동을 하던 애야.”
“아, 그렇구나···?”
“응. 착한 애야 사흘 전에 통화하니까 솔선수범해서 안내까지 해주겠다고 하더라고”
“토, 통화라니, 번호도 교환했어? 고작 2주 만에?!”
2주 만이라기보단, 두 번째 트리오 연습 때 이미 교환했던 거였지만 왠지 예린이가 충격을 받은 모습이라 굳이 수정해주지는 않았다.
아마 낯가림이 심한 예린이다 보니 이렇게 빨리 친해졌다는 걸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그런 예린이를 끌고 버스정류장에서 흙길을 지나서, 분명 완만한 편이지만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는 힘들 것 같은 언덕을 오르니 보이는 널찍한 클래식 센터.
“어떻게 안 헤매고 바로 왔네요? 여기 처음 오는 사람은 꼭 한 번씩 딴 길로 가던데”
그리고 나와 예린이를 기다리고 있던 이수정이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 아이는 학교에서 봉사 활동을 하라고 과제를 주지 않아도 여유가 생길 때마다 이곳을 방문하던 사람이었다.
성격은 좀 드센 편이지만 남을 돕기를 좋아하는 스타일로 어찌 보면 최지은과 닮아 두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면 정말 금방 친해진다.
전생에서 직접 본 적도 있으므로 확실한 사실이다.
“언니도 미향예고예요?”
우물쭈물하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예린이에게 당돌하게 말을 거는 이수정.
그녀도 사실은 낯을 가리는 편이지만, 전생의 나나 지금의 예린이처럼 대놓고 소심한 스타일의 사람에게는 이상하기 쉽게 다가오곤 했다.
“응? 으응.”
“와. 역시 그랬죠? 저도 내년에 미향예고 입시 보려고 해서요. 여학생 교복은 많이 봤었거든요.”
방과 후가 되자마자 바로 출발한 터라 교복을 입고 있던 예린이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수정.
예린이 역시 다행히 미향예고에 관해서 이것저것 질문하는 이수정을 나쁘지 않게 생각하는 듯 대답을 곧잘 했다.
“가자. 원장 선생님 기다리시겠다.”
“아참! 가요. 이쪽이에요.”
그때 대화의 꽃을 피우려는 두 사람을 내가 막아서며 그렇게 말하자 이수정은 깜빡했었다는 듯 놀라며 우리를 센터로 안내해주었다.
“와아. 어어?”
센서가 부착된 자동문이 있으나 그냥 여닫이문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나,
분명 밖에서 봤을 때는 넓고 근사한 건물이었으나 막상 들어와 보면 아예 건물의 절반은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책상이나 의자 따위가 교실 밖에 쌓여 있었다.
예린이는 기묘한 풍경을 보며 전생의 나와 똑같은 반응 하다가 아리송한 얼굴이 되었고 이수정은 그런 예린이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막상 안에서 보니 좀 그렇죠?”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말 가려 하실 필요 없어요. 이 센터, 겉만 화려하고 속은 별거 없는 거 다들 알아요. 실제로 센터에서 전적으로 교육하는 학생들이 많지도 않고요.”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 센터에서 정부 지원을 인정받아 공식적으로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은 고작 스무 명도 안 된다.
“대, 대체 왜?”
“음. 그건 사정이 좀 복잡하니까요. 일단 저희 엄마랑 얘기 좀 나누고 계세요.”
“엄마?”
“참, 참. 여기 원장님이요. 자. 여기에요.”
원장실이라는 이름표가 걸린 방앞으로 우리를 안내해주고는 곧바로 어딘가로 뚜벅뚜벅 걸어가 버리는 이수정.
“반가워. 이성현 학생이라고 했지?”
그리고 원장실에는 방금 다른 곳으로 간 이수정과 정말 많이 닮은 여성분이 앉아계셨다.
그래, 이수정이라는 이 아이가 굳이 주말마다 이렇게 외진 곳에 있는 센터로 찾아오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는데,
이 센터의 원장님과 이수정은 모녀 사이였다.
***
분명 좋은 취지에 많은 관심 그리고 시청의 지원을 약속받으며 설립된 이 ‘리 하모닉 클래식 센터’는 정확히 2012년, 그러니까 내가 미향예고를 졸업하던 해에 문을 닫았다.
안영숙 피아니스트의 친동생이자 이수정의 어머니인 원장님은 센터를 이어가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했으나 결국 문을 닫게 되는데,
그 원인은 다양하지만, 주원인은 똑같은 목적의 복지 센터가 교통이 편리한 서울에 하나 더 세워졌기 때문이었다.
그 신식 복지 센터로 인해 이용자가 줄어들고 자연스레 방문자도 줄어 점차 잊히기 시작한 이곳, ‘리 하모닉 클래식 센터’.
이곳이 문을 닫던 날은···.
내게 많은 도움을 주던 그 화이팅 넘치는 후배 이수정이 처음으로 내 앞에서 눈물을 흘렸던 날이라 특히 기억에 남았었다.
그동안은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 하던 중이라 미쳐 신경을 쓰지 못했었는데,
뜬금없이 모리스가 봉사 활동을 제안하면서 마침 얼굴을 튼 이수정이 떠올랐고, 자연스럽게 이 20년 전의 이 일화가 생각나 그 날 밤, 이수정에게 전화까지 걸었던 것이다.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와줘서 정말 고맙구나. 요새 미향예고 학생들은 찾아오는 일이 없어서 이젠 안 오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멋진 학생들을 보게 되니 정말 반갑단다.”
원장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계속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건네주시는 원장님.
그리고는 기본적으로 눈이 불편하신 분들을 대할 때 신경 써야 하는 부분들과 주의해야 할 말실수 같은 사소한 측면들까지 세심하게 하나, 하나 짚어주셨다.
“미향예고 학생이니까 연주 봉사로 할 거죠?”
“예. 아, 그런데 혹시 점자 악보 교육 일정이 있나요? 그럼 보조 교사까지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별로 큰 의미를 두고 한 말이 아님에도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는 원장님.
“점자 악보 읽을 줄 알아요?”
“예.”
나는 놀라는 원장님을 보며 당당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읽을 줄 안다고요?!”
그러자 이번에는 목소리까지 높여가며 놀라워하는 원장님.
그야 전생에 원장님에게 직접 배웠던 것이니 아주 꼼꼼하고 세심한 부분까지 확실하게 알고 있다.
아마 이분 성격이면 곧 그 말을 할 텐데···.
“혹시 여기 취업할 생각 있어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역시,
예상했던 말을 하시는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점잖게 거절을 했고 원장님은 나의 그런 모습이 재미있으셨는지 소리 내어 웃으셨다.
그렇게 기본 교육을 간략하게 20분 정도 받고 나와 예린이는 실제 이 복지 시설을 이용하시는 분들이 계신 교실로 이동하게 되었다.
눈이 불편하신 분들을 위해 마련된 안전 손잡이와 복도의 점자 깔판.
한창 이용자가 많던 시기에는 어린아이도 적지 않기에 이것저것을 막 휘두르다 생긴 흔적 같은 것들도 보였다.
전생에는 막연히 지나쳤던 것들이 왠지 눈에 밟혀 나는 그것들을 감상하듯 바라보며 복도를 걸었다.
그렇게 그립다는 감각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씁쓸한 느낌.
아무래도 2년 뒤에는 문을 닫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보니 하나, 하나에 더 신경이 쓰이는 듯했다.
그렇게 걸음을 멈추고 한 교실 앞,
전생에도 수십 번은 들렀던 곳이기에 20년간 잊어버리고 있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그렇게 평온하게 전생에도 꽤나 친해졌었던 그 얼굴들을 볼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중,
갑자기 내가 들어가려고 했던 교실 옆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고집만 부릴 생각이니! 네가 그런다고 눈이 깨끗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니?!”
삼중주의 연습을 리드하던 나보다도 큰 고함에 깜짝 놀라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쾅, 하는 소리를 내며 거칠게 옆 교실을 뛰쳐나오는 사람이 보였는데,
‘저 사람이 왜 벌써 여기에?!’
나는 그 뜻밖의 얼굴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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