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living again RAW novel - Chapter 67
67. 플래시 몹 (flash mob)
67. 플래시 몹 (flash mob)
어젯밤 나는 내가 기획하고 있는 이벤트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아줄 사람에게 가장 먼저 통화를 걸었다.
‘클래식 버스킹’의 홍진태.
‘오케 경연’에서도 잠깐이지만 인사를 나눴고 이전에 공동 버스킹을 진행해본 경험도 있으니 말을 꺼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번에는 꽤 스케일을 키워보고 싶은가 보구나 성현아.
그리 화려하게 해보자고 말한 것도 아니었는데, 내 계획을 반쯤 듣던 홍진태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턱을 괸 사람처럼 곰곰이 생각하는 목소리를 내다가 그럴 거면 오는 주말에 아예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자고 했고 나는 곧바로 동의했다.
“딱히 스케일을 키울 마음은 없었는데···.”
홍진태는 왜 그런 말을 한 걸까.
‘리 하모닉 클래식 센터’의 사람들과 같이 버스킹을 해보자는 제안이 그렇게 비현실적이었던 걸까?
그에 대한 대답은 의외의 사람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북적이는 거리에서 눈이 안 좋으신 분들하고 버스킹을 하고 싶다고?”
도끼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며 농담이냐는 듯 되묻는 흑색 장발의 최지은.
“응.”
“그거 힘들어. 휠체어 쓰시는 분도 계신다면서···. 그럼 안전을 위해서 필요한 사람은 그분들의 배는 필요할 거야.”
“한번 움직인 다음에는 가만히 계실 텐데?”
“그렇다고 해도 실내라면 모를까 실외라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 까놓고 갑자기 누가 소리라도 지르면서 행패를 부리면 어쩔래.”
그런 이상한 사람이 있을 리가···. 라고 말하려던 내 입은 자연스럽게 닫혔다.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곳인데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모르는 것 아니겠는가.
“그, 그렇지···.”
그렇기에 최지은의 지적은 타당했다.
아무래도 내게 있어 가장 친숙한 오케스트라 무대를 상정하고 계획을 짠 것이었는데,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내 머릿속이 너무 꽃밭이었다는 자각이 생겼다.
“일단 네가 계획한 거 들려줘. 다 들어보고 말을 해보자.”
내가 조금 의기소침한 태도를 보이자 곧바로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며 그렇게 말해주는 최지은.
하여간 뮤지컬을 다녀온 뒤로는 묘하게 착해져서 막 대하기가 조금 껄끄러워졌다.
최지은과 나는 방과 후, 빈 교실에 들어와 책상 하나를 끼고 서로 마주 보는 자세로 앉아 있다.
딱, 중간고사를 준비하던 엘리나와 내가 취했던 형태.
원래는 단둘이 아니라 민호에 엘리나, 3조의 한승우까지 모아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었는데 이게 또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다.
민호는 슬슬 유학 준비로 할 일이 많아 내 제안을 거절했고, 엘리나는 이제 바이올린 콩쿠르 본선까지 딱 나흘 남아 말도 못 걸어봤다.
그러고 보니 본선 합격했다는 문자까지 보냈었는데, 축하한다는 답장 하나로 퉁쳤던 것이 떠올라 괜히 마음이 불편해졌다.
마침 이번에 준비 중인 이벤트 일정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으니 본선을 무대를 구경하러 가기라도 해야겠다.
“뭔 생각하니?”
“응? 아, 아니야. 그나저나 예린이는 오늘 안 오려나, 뭐 보여줄 게 있다던데.”
엘리나의 콩쿠르 일정을 생각하고 있었을 뿐인데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져서는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거는 최지은.
내게 계획을 읊어달라고 말했는데 가만히 있으니 좀 어이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야 내가 같이 계획 좀 세워달라고 애써 불러놓고는 이런 식으로 딴생각하고 있으면 나라도 그러겠다.
짝,
그래서 다시 집중하자는 의미로 갑자기 박수를 크게 쳤는데,
“엄마!”
내 돌발행동에 최지은이 놀라 움찔하고 말았다.
“아, 미안. 크흠! 얼른 시작할게.”
얘 놀라면 엄마부터 찾는구나, 어른스러운 평소의 모습과 달리 그런 면은 또 나이에 맞는 것 같아 조금 귀여웠다.
나는 어젯밤 작성했던 수첩을 꺼내 내 계획을 정리해 말해주었다.
기왕이면 나와 최지은 그리고 김민호까지 불러 ‘서울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재연해보거나 거기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피아노 배틀 같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연주를 들려주려고 했었다.
민호가 정말 미안하다며 거절하는 바람에 불가능해졌지만···.
그리고 성악과 수석의 김성아에게 부탁해 지금도 플루트를 불고 있을 민재와 함께 노래를 부르게 한다거나,
‘리 하모닉 클래식 센터’의 교습생분들과 ‘클래식 버스킹’의 맴버들이 협주를 이뤄보면 어떨까. 등등.
일단 확정된 것은 없으니, 다양한 가능성을 나열해봤던 나의 메모를 끝까지 들려주자 최지은의 반응은 담백했다.
“욕심이 너무 많아.”
“요, 욕심?”
“엉. 이거저거 하고 싶은 게 많잖아. 성악이랑 플루트의 협주도 그렇고 아직 연주도 서로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끼리 합을 맞춰보자는 것도 그렇고···.”
“일단 가능성은 여러 가지 열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래도···. 남은 일정하고 비교해서 연습량이 많은 일이잖아.”
듣고 보니 최지은의 말은 반박할 부분이 없었다.
“원래 깔끔하게 가능한 일만 딱 추려내는 게 네 스타일 아니었어? 왜 이번에는 이렇게 욕심이 많아진 거야?”
가능한 일만 추려낸 다라···.
확실히, 돌이켜보면 나는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정도 빡빡하게 소화해내기 위해 딱 가능한 일만 간추려서 집중적으로 연습하는 식으로 난제를 해결해왔다.
왜 나는 갑자기 다양한 욕심이 생긴 걸까.
그 의문은 길게 가지 않았다.
곧바로 떠오른 대답은 단순했다.
무대의 주인공을 내가 아닌 민재로 잡고 있었기 때문.
전생의 내가 겪었던 절망보다도 더 깊은 곳까지 가라앉아 발버둥 치는 것조차 포기해버린 아이.
그 아이에게 이것도 해주고 싶고, 저것도 들려주고 싶다.
민재는 어설픈 나를 믿고 용기를 가져보겠다 말했는데, 내가 그 믿음에 보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아마도 그런 책임감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도 정말 좋은 무대를 보여주기로 약속했는데···.”
“성현아. 너 처음에 나랑 같이 버스킹 했던 날 기억해?”
홍진태 홀로 서 있던 홍대 거리,
거기에 갑자기 끼어들어서는 이것저것 재미있는 일을 만들었었다.
게다가 예린이와 지은이에게도 갑자기 연주를 맡기면서 키득거렸던 기억이, 지은이의 질문에 자연스레 떠올랐다.
“당연하지.”
“넌 그 버스킹이 안 좋았어?”
“아니? 당연히 좋았지.”
“네가 약속했다는 그 애도 너랑 비슷하지 않을까?”
“비슷하다면···?”
“굳이 부담감에 이것저것 더하지 말고, 평소에 우리가 하던 대로 하는 게 그 애한테도 더 와닿는 일이 되지 않을까. 라는 말이야.”
그런가,
아니, 그렇겠구나.
생각해보면 나도 참 많은 것들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복지 센터가 문 닫지 않도록 큰일을 해보자는 생각부터,
그곳에 다니는 교습생들의 노력을 주위에 알리고도 싶었으며, 민재를 비롯한 다양한 교습생분들에게 좋은 추억을 드리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욕심이 많다.’
내 계획을 모두 들은 지은이가 했던 말이 괜히 다시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역시 지은이는 머리가 좋은 것 같다.
고작 몇 마디 들은 것으로 내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봤으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까놓고 인정하자.
나는 역시 뭔가를 기획하는 능력이 참 부족한 것 같다.
지금껏 뭔가 할 때는 전부, 전생의 기억을 토대로 조금 변형을 준 것이니 모두 성공적으로 해냈지, 아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아직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그러니 다시금 다짐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거창하게 복지 센터의 미래를 바꾸거나 한 아이의 인생에 남을 추억을 심어주는 게 아니었다.
내가 할 일은 오직 하나.
“좋은 무대를 만들고 싶어.”
단순하고, 직관적인 목표를 바로잡자 참 다양한 것들이 새로 보였다.
“그래. 이 조금 짜증 나지만 자신만만한 얼굴이 내가 아는 이성현이지.”
새로운 다짐을 하자, 예쁜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내게 그런 말을 해주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 뒤 수첩의 메모를 다시금 바라봤다.
“그럼, 실제로 가능한 일이 뭐가 있을지 좀 볼까?”
“엉.”
나는 남은 일정과 현실적으로 가능한 무대를 토대로 시뮬레이션해봤다.
“거리는 현실적으로 무리야.”
“아예 SNS에 올리는 게 목적으로 연주홀을 빌리는 건?”
“그것도 좋은데, 그 애한테는 꼭 관중이 있는 곳에서 연주를 시켜주고 싶거든.”
“관중이라··· 굳이 행인일 필요는 없는 거지?”
“안전도 확보되고 연주함으로써 쌍방 이익이 되는 장소가 있다면···.”
그렇게 최지은과 협의를 거듭하던 그때, 내 머릿속에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거기라면 다 해결되네.”
최지은도 내가 떠올린 장소를 말해주자 손뼉을 치며 감탄을 내질렀다.
하나둘 쌓여있던 문제점들이 일순간에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
시간은 금세 흘러 홍진태와 약속을 잡은 토요일이 되었다.
“그리고 이걸 이렇게 하면···!”
“와아아.”
약속장소로 향하는 버스 안, 어제 밤늦게까지 회의 참석하지 않았던 예린이는 오늘, 묘하게 자신만만한 얼굴로 나타나 우리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건 다름 아닌 스마트폰.
2010년 6월을 기준으로 봤을 때 점차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는 시점이긴 하지만, 대개 고등학교 1학년에게는 사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 최신형(?) 기기를 자신만만하게 들고 나타난 이예린.
20년 후의 기기를 이용하던 내게는 화질도 좋지 않고 속도도 느려 답답하기만 한 그 스마트폰이 뭐가 그리 좋은지.
“오오오.”
최지은은 컴퓨터랑 똑같은 물건이 손바닥만 한 기기에 들어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란 모습이었다.
예린이가 손가락 하나를 튕기기라도 하면 연신 우와아 하는 반응을 보여주니···.
정말 어린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 같아서 귀엽기도 했고, 재미있기도 했다.
그렇게 흐뭇한 미소와 터지는 웃음의 딱 중간 정도 되는 상태로 느긋하게 두 학생을 보고 있자,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야 똑똑한 친구!”
면식이 있는 클래식 버스킹의 구성원부터 오늘이 아예 초면인 사람들까지.
무려 아홉 명이나 되는 어른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식사를 하고, 카페로 향하는 일행.
분명 실제로 더 대단한 기록을 세운 사람들은 ‘클래식 버스킹’의 사람들 쪽일 텐데, 그들은 우리 셋을 무슨 연예인처럼 대접해주었다.
주변이 정리된 뒤,
어쩌다 보니 대표 격인 나와 홍진태가 필두로 이번 이벤트에 대한 중대사를 의논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버스킹 자체는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어제 지은이와 협의를 거쳐 도출된 사항들을 읊어주자 놀라는 얼굴이 되는 홍진태.
“용케 둘이서 내가 오늘 지적하려고 했던 점들을 다 캐치했구나···.”
“지은이가 말해주지 않았으면 솔직히 불가능했을 거예요.”
내가 최지은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그렇게 말하자 이곳에 모인 열두 명의 눈동자가 모두 그녀를 향했다.
그러자 최지은은 갑작스럽게 이목이 쏠린 것이 부담스러웠는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리고는 딴청을 피웠다.
나는 그 귀여운 반응에 씩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이번 버스킹의 대안으로 플래시 몹을 제안합니다.”
“플래시 몹?”
내 발언에 홍진태를 비롯한 클래식 버스킹의 인원들이 모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네. 이번에 복지 센터의 분들을 다 모시고도 안전할 만한 장소를 찾았거든요.”
“거기가 어딘데?”
“서대문구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이요.”
“병원?!”
내 대책을 듣자마자 더 놀라는 사람들.
그런데 홍진태가 그냥 놀라던 사이, 그 옆에 있던 클래식 버스킹의 구성원들은 내 뜻을 정확히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세브란스 병원만큼 큰 곳이면 공간도 충분해서 무대도 만들 수 있고”
“병원인 만큼 다들 조심하는 분위기일 테니까 그 센터분들의 안전도 확보하기 좋지.”
“게다가 환자분들에게도 좋은 추억을 선물해드릴 수 있으니까.”
“깔끔해서 좋네!”
역시 프로들이라 그런가.
얘기를 따라잡지 못하는 이예린이 고개를 휙휙 돌리며 놀라는 사이, 클래식 버스킹의 분들은 내 의도를 하나씩 정확히 짚어주었다.
거기다 더해.
“성현이는 피아노 말고 키보드도 쓸 줄 아니?”
“너무 왕왕거리는 스피커 말고 자연스럽게 연주 음이 흘러나올 수 있는 장비로 하면 되겠네.”
“그러면 저번에 홍진태씨가 쓴 장비들이 좋지 않아?”
“그거 대여료 장난 아닌데?”
“뭐 어때, 이번에도 후원금 받을 거 아냐?”
“똑똑한 친구들 덕분에 일이 금방 풀리겠네~”
“나 회의부터 한다고 해서 괜히 걱정했잖아.”
무대 경험이 많은 프로답게 그들은 가벼운 잡담을 하듯 벌써 세세한 장비, 악기, 무대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세브란스 병원인데···.”
“누가 협조 구할래? 역시 귀찮은 거 담당··· 이 아니라, 협상에 뛰어난 홍진태씨가 해야 하지 않겠어?”
“잠깐, 방금 이상한 말이 들렸는데.”
“잘못 들은 거겠지.”
“맞아~ 나도 못 들었는데?”
재미있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일사천리로 계획을 세워나가는 그들.
정말,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앞으로 10분이면 모든 계획이 세워질 것 같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저기···.”
내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말하자 금세 조용해지는 클래식 버스킹의 멤버들.
그래, 바로 이런 식으로 아까부터 연예인 대접을 받고 있었다···.
아무튼,
“그 병원 협조 구하는 거 말인데요. 그거 저희가 이미 끝내뒀거든요.”
솔직히 이건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는데,
“뭐?”
“어떻게?”
“벌써?!”
“네. 저기 지은이네 부모님이 그 병원에서 근무하시는 의사 선생님이셔서요. 어제 말 나온 김에 통화까지 해서 허락 다 받아놨습니다.”
최지은네 부모님은 양쪽 모두 국내에서도 알아주는 정상급의 의사분들이셨다.
갑자기 지은이의 가정사를 듣게 된 나는 어제 잠시 황당해하고 있었는데, 최지은은 그사이에 부모님에게 통화를 걸어 순식간에 허락을 받아버렸다.
“와······. 소문으로만 들어서는 솔직히 못 믿고 있었는데, 너희 진짜 복덩이들이었구나?”
클래식 버스킹의 멤버 중, 누군가가 갑자기 그런 말을 했다.
그리고는 잠시 침묵이 일었는데,
가만히 있어도 프로의 아우라를 잔뜩 뽐내던 사람들이 모두 멈춰서는 이쪽을 보며 혀를 내두르는 광경은 정말, 다신 볼 수 없는 진풍경이리라···.
그들은 정말 놀란 얼굴로 나와 최지은을 번갈아 바라보았고,
“으으으으으응?”
나와 최지은 사이에 끼인 예린이는 그 부담스러운 시선에 무슨 앓는 소리를 내기 바빴다.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꼭 회의에 참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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