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0화(1/412)
#0. 프롤로그
“···그러니까 회장님께서 남기신 이 유산을 받고 모두 잊으시면 됩니다. 오강 그룹과 그 집안에 관련된 모든 걸.”
머리가 미친 듯이 아프다. 송곳을 쑤셔 넣어 머릿속을 마구 헤집는 것처럼.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을 겁니다. 당신은 그저 지금까지 살던 대로 그렇게, 평범한 야구선수로 살아가면 되는 거니까요.”
아, 두통이 가라앉기는커녕 이제는 눈알까지 핑핑 돌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사람은 지금 나한테 뭐라는 거야?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주력 기업도 아니고 의결권도 없지만 오강 물산 지분 2%면 설사 야구선수로서 실패하더라도 평생 먹고 사는데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시애틀··· 이라고 했나요? 좋은 곳이죠. 거기서 편하게, 어려움 없이 좋은 선수로 살아가길 기원하겠습니다.”
지끈거리는 두통 때문에 저도 모르게 머리로 손이 갔다.
손 끝에 느껴지는 낯선 감촉.
내가 빡빡머리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 까맣게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이제야 알겠다. 이곳이 어디인지,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15년 전 그날, 그 호텔 커피숍.
갑자기 나타난 오강 그룹 비서실장이라는 남자가 나한테 회사 지분을 들이밀던 그 상황이구나.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내가 왜 여기에?
“자, 그럼 제 말을 이해하셨으면 여기 서류에 사인만 하시면 됩니다.”
으… 안되겠다. 일단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잠시만.”
“네?”
“오 실장님이라고 하셨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흠.”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지끈거리는 두통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내게 일어났던 일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았다.
‘···그래, 생각났다. 구장 앞에서 그 아이를 구하려다가’
미칠 듯한 두통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마침내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이 떠올랐다.
경기를 위해 구장으로 향하다 어린 아이가 차도로 들어가는 걸 봤고, 그걸 구하겠다고 달려 들었다가 트럭에 치었지.
딱히 어린 아이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짓을 했던 걸까.
어렵사리 현재 상황에 대해 정리를 끝낸 나는 고개를 들어 눈 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 남자가 내게 내민 건 평생 나와 어머니를 단 한번도 찾지 않았던 오강 그룹 회장이란 사람이 남긴 찌끄러기 같은 거다.
열아홉, 패기 넘치던 시절의 나는 이 남자의 제안을 거절했었다.
지분을 받으면 평생 어머니를 혼자 외롭게 만든 그 작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코빼기조차 비치지 않던 그 양반과 연관되는 것 자체가 싫었다.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한 몫을 했다.
그딴 돈 없어도 메이저리거로 성공해서 떵떵거리고 살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됐고 말이다.
그렇다면 다시 예전과 같은 선택을 하는 게 맞는 걸까?
지분 따위는 필요 없으니 꺼지라고 말하고 내 삶을 살아가면 될까?
……
‘누구 좋으라고?’
아니,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내가 이걸 받던 안 받던 이미 돌아가신 양반이 뭘 알겠어? 유산을 거절해봐야 배다른 내 형제들만 신이 나겠지.
열아홉 치기 어린 마음으로 거절했던 거액의 유산, 하지만 서른 중반까지의 삶을 살아본 나는 이 눈 먼 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만 받아봐야 귀찮기만 한 지분 같은 거 말고.
“실장님.”
“네, 말씀하시죠.”
“실장님에게는 어느 정도 권한이 있나요?”
“권한이요?”
“예를 들면… 그 지분을 다른 걸로 바꿔주실 수도 있을까요?”
“…비슷한 가치를 가진 것이라면 어느 정도는 가능합니다만, 그건 왜?”
오 실장이라는 양반의 얼굴에 의아함이 가득하다.
이 어린놈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걸까, 딱 그런 표정이었다.
“일단 지분은 됐어요. 그거 받아봐야 회장님의 아들이라는 사람들이 절 귀찮게만 하겠죠. 그런 건 사양입니다. 오강 그룹하고 연을 갖고 싶지도 않고요.”
“그럼?”
“일단 세금까지 깨끗하게 처리된 현금 천 오백억.”
“천 오백억이요? 가능은 한데 그것보다는 지분의 가치가 훨씬 크…”
“거기에 덤으로 지금 해체 얘기 나오는 야구단, 그거 저에게 넘기시죠.”
“네? 워리어스를요? 고등학생이 그걸 받아서 뭘 하려고···”
지난 삶에서 나는 꽤나 성공한 야구 선수였다.
마이너리그에서 2년을 구르고, 메이저리그에 승격한 후 8년 간 투수로 뛰며 사이영 위너에까지 올랐다.
이후 어깨 부상으로 타자로 전향하기는 했지만 아메리칸 리그 MVP를 따내며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야구선수로 이룰 수 있는 건 다 이룬 셈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언제나 공허하기만 했다.
내가 그 이유를 깨달은 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다.
메이저리거로의 성공을 위해 밀어내고 외면했던 소중한 사람들과의 인연.
그리고 워리어스.
코흘리개 시절 야구선수를 꿈꾸게 만들었던 내 팀.
매각작업조차 실패하고 완전히 해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 내 어린 시절의 꿈.
야구 선수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어진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한 건 사이영 위너 한수혁이 아니라 내가 코흘리개 시절부터 사랑했던 팀, 워리어스의 유니폼을 입은 선수 한수혁이었다는 걸.
세상에서 고립되어 혼자가 되어버린 메이저리거가 아니라,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하는 그런 삶을 그리워했다는 걸.
“실장님.”
“네?”
그렇기에 나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보려 한다.
조금 힘들고 어렵더라도, 내가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그 길을 말이다.
“야구단, 저에게 넘기세요. 그러면 오강 그룹과 관련된 모든 걸 잊겠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