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00)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99화(100/412)
#99. 2위 탈환
파바바바바방!
“우어어어!”
“민예린! 민예린! 민예린!“
– 혹시나 지금 TV를 트신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음악방송이 아닌 고품격 야구 전문 채널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지금 워리어스의 3연승을 기념하기 위한 가수 민예린 씨의 특별공연을 보고 계십니다. 위원님? 저기, 위원님?
– 아, 잠시만요. 저기 드론은 뭔가요?
– 글쎄요. 저도 모르죠. 야구 경기가 끝나고 축하공연을 중계해 보는 건 처음이라서요.
평소에도 별로 상태가 안 좋은 해설위원이 워리어스의 3연승 뽕에 취해, 그리고 민예린이 준비한 무대에 취해 정신이 반쯤 나가 있다.
문득 현타가 온 아나운서는 자신이 지금 왜 가수의 공연을 중계하고 있는 건지 다시 현실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2위 수원 커맨더스와 3위 서울 워리어스 간의 잠실 3연전이 모두 끝났다.
끈질기게 따라오는 3위 팀을 떼어내고 다시 한번 1위에 도전하고 싶은 수원, 반면 2위 팀을 스윕하고 그 자리를 빼앗으려는 워리어스.
그 치열했던 3연전에서 워리어스가 기적 같은 전승을 거뒀다.
6월 마지막 주 창원과의 2차전부터 시작된 연승행진의 숫자가 8로 늘어났다.
그리고 워리어스는 승차 없이 승률에서 앞서며 수원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지금 잠실 그라운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난리통은 워리어스의 3연승과 2위 달성을 축하하기 위해 민예린이 준비한 특별공연이었다.
“핫! 핫! 핫! 핫! 핫!”
첫 번째 곡을 끝낸 후 그라운드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이상한 추임새를 넣는 민예린을 향해 관중들의 함성이 쏟아졌다.
“민예린! 민예린! 민예린!”
“아니, 여러분! 제 이름 말고 워리어스 선수들 이름을 불러줘야죠! 다시!”
“우와아! 한수혁! 천상진! 조성오! 서형주! 안치욱!”
“더더더! 다른 선수들 이름도 더더!”
“장덕수! 이창모! 최민석! 이만식! 양기철! 김두영!”
“좋아요! 지금 분위기 그대로!”
“와아! 안전망 퍼포먼스 보여줘요!”
“안전망? 아하! 그럴까요?”
관중들의 부추김에 홀랑 넘어간 민예린이 내야석 앞으로 달려가 능숙한 솜씨로 안전망을 타고 올랐다. 경기장 외곽에 임시 설치된 레이저 조명들이 그녀를 향해 쏘아졌다.
알록달록 조명을 받으며 안전망을 타고 오르는 모습이 마치 거미와도 같았다. 평소 같으면 당장 달려가 말렸을 안전요원들조차 어깨를 들썩이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할 말을 잃은 채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나운서의 머릿속에 지난 3일간 벌어졌던 양팀 간의 치열했던 경기 장면이 떠올랐다.
* * *
그가 생각하기에 이번 3연전의 분수령은 다름 아닌 1차전, 8 대 8로 맞서던 가운데 터진 한수혁의 시즌 32호 투런 홈런이었다.
팽팽했던 양팀의 분위기가 그 홈런 한 방에 완전히 뒤집혀버렸다.
다이렉트로 날아가 폴대를 때려버린 홈런에 수원 투수들의 기가 완전히 질려버렸고, 결국 다음 타자인 조성오가 랑데부 홈런을 터뜨리며 11 대 8로 경기가 끝나버렸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다음 날 경기에까지 이어졌다.
수원의 토종 에이스 최경재와 워리어스의 에이스 라이언 스타크가 맞붙은 2차전.
1회말 한수혁의 33호 솔로홈런이 터지며 수원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더 이상 한수혁에게 호구를 잡히지 않겠다는 일념 하에 머리까지 짧게 깎고 등판한 최경재는 4회말 월터 스미스와 장덕수에게 연속 홈런을 허용하며 결국 5이닝 3실점으로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반면 워리어스 선발 라이언 스타크는 7이닝 1실점으로 수원 타선을 꽁꽁 묶었고, 8회 김두영, 9회 양기철이 이어 던지며 더 이상 점수를 허용하지 않았다.
3 대 1로 워리어스의 2연승.
그리고 방금 전 끝난 3차전은 한수혁의, 한수혁에 의한, 한수혁을 위한 경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워리어스 선발 브룩스 파커가 5이닝 4실점을 하며 강판당했고, 뒤이어 등판한 홍영식과 최정수 역시 각각 2점씩을 내주며 또다시 8실점을 하고 말았다.
그렇게 9회초까지 수원이 4 대 8로 앞선 상황, 수원의 셋업맨이 마운드에 올랐다.
2위를 노리는 워리어스의 약진이 그대로 끝나는가 싶던 그 순간.
따아악!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8번 강진석의 홈런이 터졌다.
점수 차가 3점 차로 좁혀지자 갑자기 잠실 야구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팀의 3연승, 그리고 2위 등극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 공연을 준비해 놓았던 민예린은 마이크도 필요 없을 만큼 엄청난 목소리로 워리어스의 역전을 외쳤다.
그리고 시작되었다. 워리어스의 대역전극이.
9번 최민석이 몸쪽으로 들어오는 공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엉덩이에 맞아버렸다.
수원 벤치가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무사 1루.
타석에 선 서형주가 예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진지한 눈빛으로 투수를 노려보았다.
누가 봐도 큰 것을 노리는 그런 눈빛.
툭
하지만 서형주의 선택은 기습번트였다.
최민석의 스타트에 1루수가 움찔하며 아주 약간의 틈이 만들어졌다. 투수와 1루수 사이로 흐르는 기가 막힌 번트 타구가 그대로 안타가 되고 말았다.
9회말이 시작될 때만 해도 그대로 끝날 것만 같던 경기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석 점 차 노아웃 1, 2루.
그리고 2번 안치욱이 타석에 들어섰다.
어쩌면 운명의 장난일지도 몰랐다. 어제까지 2번에 서던 한수혁은 이날 3번으로 배치되었고, 대신 중심타선에 있던 안치욱이 2번으로 올라왔다.
노아웃, 주자는 두 명, 점수는 석 점 차.
수원이나 워리어스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강공이다. 석 점 차이에서 번트를 대는 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수원의 투수가 교체되었다. 좌타자를 전문으로 상대하는 스페셜리스트가 마운드에 올라 안치욱의 몸 쪽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안치욱의 타구가 주로 향하는 1-2루 사이에 3명의 야수가 배치되었다. 1루수와 2루수, 유격수가 1-2루 사이를 물 샐 틈 없이 메웠고, 3루수는 베이스를 버리고 기존 유격수 자리로 이동했다.
그리고 우익수가 몇 걸음 앞으로 나오며 안타가 나올 공간을 완전히 봉쇄해 버렸다.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
“우우우!”
“이게 야구냐!”
“치사한 놈들아!”
관중석에서 야유가 쏟아졌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어찌 되었든 수비 시프트 자체는 반칙이 아니니까.
승부가 시작되었다.
어떻게든 공을 밀어치려는 안치욱을 상대로 수원 투수는 계속 몸쪽 공을 집어넣었다. 반면 안치욱은 애매한 공은 모두 커트하는 식으로 맞섰다.
그 지루한 승부는 11구째가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따악!
힘이 완전히 들어가지 않은 타구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2루수의 머리 위쪽으로 날았다.
2루수가 힘껏 점프를 하고 우익수가 앞으로 달려 나왔다.
타구 판단이 어려워 1, 2루 주자는 스타트를 끊지도 못한 상황.
툭
그런데 그 타구가 기적적으로 2루수의 머리를 살짝 넘겨 우익수의 바로 앞에 툭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2루에 있던 최민석과 1루에 있던 서형주가 미친 듯이 다음 베이스를 향해 달렸고, 주자들이 홈으로 들어오는 게 불가능함을 깨달은 우익수는 홈 송구를 포기하고 유격수에게 공을 던졌다.
적시타가 될 수도 있었지만 수비 시프트에 의해 득점에는 실패한 상황.
3루에 최민석, 2루에 서형주, 1루에 안치욱, 베이스가 가득 채워졌다.
수원 벤치는 즉시 리그 정상급 마무리 투수 박도율을 마운드에 올렸다.
그리고 그가 타석에 등장했다.
현재 KBO에서 가장 뜨거운 타자 한수혁, 그가 8 대 5 석 점 차, 무사 만루 상황에 타석에 들어섰다.
“아아…….”
“시발…….”
원정 응원석에서 수원 팬들의 절망 섞인 탄식이 들려왔다.
대기타석에 있던 한수혁이 아주 천천히 배터박스로 들어섰다.
그 모습을 보던 아나운서는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말았다.
평소에는 별 생각 없이 듣던 한수혁의 등장곡이 마치 상대방의 죽음을 예고하는 장송곡처럼 들려왔다.
그라운드에서 경기 중인 수십 명의 양팀 선수들, 그리고 2만 명을 넘는 관객들이 한수혁, 그 선수 하나의 존재감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부웅
타석에 선 한수혁이 천천히 방망이를 한 번 돌리더니 곧바로 타격 자세를 취했다.
중계 카메라가 한수혁과 수원 마무리 박도율의 얼굴을 번갈아 잡았다.
지난 시즌 수원이 3위를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최고의 마무리투수가 미친 듯이 땀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반면 한수혁은 이 순간이 너무 재미있다는 듯,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얼굴로 투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순간 옆에 있던 고동식 위원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시발, 내가 저기 서 있었으면 벌써 지렸겠네.”
동감이었다. 수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사 만루에 한수혁을 상대로 만난다?
자신이 야구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그냥 상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플레이!”
주심이 경기 시작을 재촉했다.
하지만 박도율은 좀처럼 공을 던지지 못했다.
결국 수원의 코치와 포수가 마운드에 올라가 투수를 격려했다.
아나운서는 저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그 투수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야구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 않냐고, 가끔 시원하게 얻어맞고 엉망진창 취해버리는 것도 괜찮지 않겠냐고.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따아아아아아아아악!
지금까지 야구 중계를 하며 들어본 가장 거대한 타격음.
박도율이 던진 초구가 그 타격음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함성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모든 관중들이 타구를 눈으로 쫓느라 숨조차 내쉬지 못했고, 스윙을 끝낸 한수혁 역시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자신이 날린 타구를 감상했다.
마치 구름 위로 뚫고 들어갈 것처럼 엄청나게 솟구쳤던 타구가 천천히 낙하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대로 사라졌다.
말 그대로였다. 한수혁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엄청난 궤적을 그린 시즌 34호 홈런이 누구도 잡을 수 없는 곳에 떨어져버렸다.
장외홈런이었다.
한때 고동식이라는 인간이 하던 말을 속으로 비웃은 적이 있다.
한수혁이 메이저리그에 바로 갔으면 최소한 신인왕이었다는 둥, 이번 WBC가 끝나고 나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거라는 둥.
아무리 저 신인이 대단하다고 해도 그건 좀 과한 칭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팀이 자신을 필요로 할 때,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할 때, 한수혁은 그 기대를 단 한 번도 저버린 적이 없는 것 같다.
‘세상에…….’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저게 정말 얼마 전까지 까까머리 고등학생이던 놈이라고?
“우와아아아아!”
갑작스러운 관중들의 함성에 아나운서의 상념이 깨졌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한참 동안 관중들의 분위기 몰이를 하던 민예린이 드디어 두 번째 노래를 부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옆에서는 고동식 위원이 신이 난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민예린의 히트곡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이크가 꺼진 걸 확인한 아나운서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위원님.”
“으흐흥~ 네? 지금 저 부른 거?”
“네, 그동안 제가 무지했던 거 같습니다. 죄송하네요.”
“흐음, 무지라… 뭐,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아요. 뭐가 됐든 다 용서하겠습니다. 오늘은 그냥 다 내려놓고 놀아보자고요!”
야구에 대한 지식은 전문가인 고동식에 비해 딸리지만 그에게는 대신 뉴스를 진행하며 얻은 세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력이 있었다.
그런 아나운서가 보기에 한수혁은 혼자서 전체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
KBO라는 좁은 무대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
과연 올 시즌이 끝났을 때 워리어스, 아니, 한수혁의 이름은 어디쯤에 놓여 있을까?
이제는 다른 무엇보다 그것이 제일 궁금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