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02)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01화(102/412)
#101. 큰 그림
– 오늘따라 유난히 최경재 선수의 안색이 밝아 보이는군요, 위원님.
– 네, 정말이네요. 2위 탈환을 위해 총력전을 선포한 수원으로서는 정말 반가운 일입니다. 그동안 최경재 선수가 얼마나 워리어스에 탈탈 털… 흠, 당해왔습니까?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 보죠?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게 된 최경재가 연습투구를 하고 있는 가운데 장덕수 선배가 내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와 물었다.
“수혁아.”
“네, 선배님.”
“내가 홈런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노려보면 어떨까?”
“홈런이요?”
월터 스미스의 입단으로 인해 종종 지명타자로 빠지며 수비 부담을 덜어낸 장덕수 선배는 0.270의 타율에 12개의 홈런, 50개의 타점을 기록 중이다.
포수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공격 지표다.
지금 장덕수 선배가 저런 질문을 하는 건 어쩌면 자신과 비교되는 월터 스미스 때문일 수도 있다.
대체 용병으로 뒤늦게 팀에 합류한 월터는 타율은 0.252에 불과하지만 0.330의 출루율과 0.448의 장타율, 홈런 7개, 19타점을 올리며 중심타선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특히 한 달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7개나 되는 홈런을 쳐냈다는 건 월터가 갖고 있는 타석에서의 장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자신과 비슷한 체격, 나란히 앞뒤로 배치되는 타순까지.
어쩌면 장덕수 선배는 월터에게 약간의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덕수 선배님, 제 생각에는 억지로 홈런을 노릴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요.”
“그려?”
“지금도 너무 잘하고 계세요. 음, 솔직히 선배님이 뒤에 없었으면 제가 어쨌을까 싶을 정도로요.”
사실이다. 조성오 선배가 혼자 버티던 때와 달리 장덕수, 월터까지 세 타자가 버티는 지금과는 체감상 천지 차이니까.
“오히려 전 선배님이 배트를 좀 더 가벼운 걸로 바꾸는 게 어떨까 싶은데요.”
“가벼운 걸 쓰라고?”
“네, 음, 말 나온 김에 제가 하나 드릴까요?”
타고난 힘을 오로지 장타 생산에 올인하는 월터와 달리 장덕수라는 선수의 본질은 그 힘에서 뿜어져 나오는 빠른 배트 스피드에 있다고 본다.
그 때문에 제대로 맞은 장덕수 선배의 타구는 대부분 펜스를 때리는 2루타가 되곤 한다.
이번 시즌이 끝난 후에 타격 매커니즘 자체를 아예 뜯어 고치면 모를까, 당장은 그게 더 맞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동안의 잡담이 끝나고 우리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1번 서형주와 2번 최민석 선배가 연속 범타로 물러난 가운데 내 타석이 돌아왔다.
마운드 위 최경재의 표정이 유난히 해맑다.
“최경재 선배님,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 봐요?”
“…….”
요즘 들어 정대한의 입이 닫히는 빈도가 잦아졌다.
하긴, 2위를 뺏긴 수원 입장에서는 한 경기 한 경기가 살얼음판이겠지.
대표팀에서 같이 뛸 생각에 조금 더 친하게 지내볼까 싶었는데.
나 혼자만의 생각인가.
“볼.”
굳게 닫힌 줄만 알았던 정대한의 입은 첫 번째 공이 들어온 후에야 열렸다.
“수혁아, 혹시나 저 녀석이…….”
“네?”
“후, 아니다.”
뭐지, 왜 말을 하다 말아. 궁금하게시리.
바깥쪽 높은 코스로 들어온 공을 흘려 보낸 나는 두 번째 공을 기다렸다.
“스트라이크!”
이번에는 몸 쪽 낮은 코스.
생각했던 구종이 아니었기에 한 번 더 기다렸다.
정대한의 입이 또 한 번 열렸다.
“경재 저놈이 혹시나 같은 팀에서 뛰자느니 그런 소리 하면 그냥 못 들은 척해 줄래?”
“네? 그게 무슨…….”
“하아, 됐다. 내가 지금 상대팀한테 무슨 소리를… 야구나 하자.”
듣고 있던 심판의 귀조차 쫑긋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나랑 같은 팀에서 뛰고 싶다고? 최경재가?
이건 또 무슨…….
소위 말하는 가성비가 조금 떨어지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이번 시즌이 끝난 후 FA 시장에 풀리는 투수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게 바로 최경재니까.
그중 최고로 꼽히는 류한결은 빅리그 진출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고, 임준영 선배는 아직도 빅리그와 KBO 잔류 사이에서 결정을 못 내린 것 같다.
반면 최경재는 인터뷰를 통해 수차례 국내에 남을 것을 밝힌 바 있다.
도전보다는 안주를, 특히 자신이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국가대표 포수 정대한과 뛰고 싶다는 의사 표시를 분명히 한 것이다.
최경재도 물론이지만 정대한은 말 그대로 수원을 대표하는 선수다.
이 팀의 창단 때부터 시작해 줄곧 안방을 지켜온 베테랑이자 코칭스태프가 가장 신뢰하는 선수.
아직 조금 이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은퇴 후에는 코치와 감독으로 갈 거란 전망이 지배적인 말 그대로 수원의 상징.
그런 정대한이 있기에 최경재 역시 당연히 수원에 남겠거니 생각했건만.
“설마 최경재 선배님이… 선배님한테도 같이 팀 옮기자고……?”
“…됐다. 못 들은 걸로 해줘.”
진짜로 좀 곤란한 눈치다.
사실 선수들끼리 사석에서는 얼마든지 나눌 수 있는 이야기다.
어디로 팀을 옮기겠다, 혹은 나랑 같이 어느 팀으로 가자 등등.
하지만 그렇게까지 친한 사이도 아닌 우리가, 거기에 경기 중에 나눌 대화는 아닌 것 같다.
일단 더 캐묻지는 말자.
그런데 생각해보니 조금 혹하기는 하다.
국가대표 주전포수인 정대한과 특급 좌완 최경재를 우리 팀에?
당연히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임준영 선배의 복귀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임준영이라는 투수는 최경재보다는 훨씬 나은 투수다.
하지만 만에 하나 임준영 선배가 해외 진출을 하게 된다면?
그럴 경우 최경재는 최우선 대안이 될 수도 있다.
그래, 나중 일이 어찌 되든 일단 찔러보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선배님.”
“왜.”
“올 시즌 끝나고 최경재 선배님 우리 팀 오면 내년에 선배님도 오세요.”
“뭐?”
“와서 장덕수 선배랑 포수 마스크 나눠 쓰면서 코치 준비하셔도 되잖아요. 흐흐.”
“허허…….”
그냥 하는 소리 아닌데.
내가 이래 봬도 이 팀의 최고 결정권…….
흠.
일단은 경기부터 하자.
이 정도면 떡밥으로는 충분하겠지. 정 안 되면 박 단장한테 언론 플레이 좀 하라고 시키지 뭐.
해맑은 얼굴로 오늘따라 좋은 공을 던지는 최경재.
부드러운 폼에서 튀어나오는 꽤나 묵직한 포심을 노려서…….
따악!
“와아아!”
자, 그럼 오늘도 일을 시작해볼까.
* * *
– 아앗! 공이 빠졌습니다! 최경재 선수가 던진 공이 포수 키를 넘겨버리고 말았습니다! 3루에 있던 한수혁 선수, 홈인! 워리어스가 1회초 선취득점에 성공합니다!
– 와아, 진짜 이제는 뭐라 할 말이 없군요. 한수혁 선수가 혼자 수원 내야진을 초토화시키고 말았습니다.
– 깨끗한 좌전 안타로 1루에 나갔던 한수혁 선수가 2루, 3루 도루를 연거푸 성공시키며 시즌 20-20을 달성했습니다.
– 사실 한수혁 선수가 마음먹고 뛰었다면 30-30도 벌써 달성하고도 남았겠죠. 어쨌든 기록 달성 축하드립니다.
– 아, 수원의 투수코치가 마운드로 올라갑니다. 경기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좋아 보이던 최경재 선수의 표정이 갑자기 창백해졌습니다.
– 그럴 수밖에 없죠. 방금 그 실투는 명백하게 한수혁 선수가 의도한 것이니까요. 한수혁 선수가 지난 대전과의 경기에서 홈스틸을 성공시켰잖아요? 그런 선수가 계속 뛸 것처럼 움직이니 최경재 선수의 몸이 굳어버린 겁니다.
– 수원 최용식 감독이 정말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군요. 아, 정말 대단합니다, 한수혁 선수.
사실 이렇게까지 하려던 건 아니었다.
오늘따라 상쾌해 보이는 최경재의 표정이 신경을 건드렸다고 해야 할까.
나도 모르게 2루로 뛰었고, 그래도 또 틈이 보이길래 3루까지 냅다 뛰었다.
맹세코 홈스틸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건 한다고 해서 쉽게 되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 내가 몇 번 뛰는 척을 하자 밸런스가 무너진 최경재가 폭투를 던져버렸다.
“수혁아, 경재 또 울겠다.”
“음, 저는 딱히 그럴려고 한 게 아닌데.”
“흐흐, 나 같으면 집에 가서 문 걸어 잠그고 울 거 같은데.”
이만식 선배의 너스레에 가볍게 웃어준 나는 덕아웃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았다.
임준영 선배 대신 최경재가 들어오고, 거기에 내년에 정대한까지 데려오는 그림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용병 두 명만 잘 구성하면 에이스급 1, 2, 3선발 구축이 가능해진다. 거기에 이만식 선배와 천상진 선배가 4, 5선발로 나선다면 적어도 선발 싸움에 있어서는 어느 팀에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정대한 역시 데려올 수만 있다면 무조건 환영이다.
이 팀에 장덕수와 월터 스미스라는 두 명의 포수가 있지만 애초에 월터는 주 포지션이 우익수인 데다가 언제든 팀을 떠날 수도 있는 용병이다. 그리고 장덕수 선배는 아직 1군 경기 경험이 턱없이 부족하다.
정대한이 이곳에서 장덕수 선배의 뒤를 받치며 말년을 보내고 그대로 배터리 코치로 일하게 되는 그림도 나쁘지 않다.
물론 그러려면 엄청나게 많은, 아주 큰돈이 필요하겠지만.
음.
지금이 2027년 7월, 내 기억이 맞다면 대충 내년 정도면 뭔가 투자 성과가 나올 수도 있을 텐데.
돈 생각은 일단 나중에 하자.
그렇게 내가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조성오 선배가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나며 우리 팀의 1회초 공격이 끝났다.
폭투로 1점을 내주고도 다음 타자를 무사히 잡아내는 걸 보면 확실히 좋은 투수이기는 하다.
세상 일이란 게 어찌 될지 모르니 호감도 작업을 좀 해둬야겠지.
대표팀에서 만나면 좀 친한 척을 해볼까.
* * *
월터는 자신의 컨디션이 점점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일단 아픈 곳이 없다.
포수로 뛰며 생긴 무릎과 발목, 허리, 손목의 자잘한 통증들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지난 2년간 포수 자리에서 쫓겨나 외야수로만 뛴 것이 그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이 팀에 입단한 지도 이제 한 달여, 그 기간 동안 0.252의 타율에 홈런 7개, 19타점을 기록한 월터를 팀원들 모두 존중해주고 있다.
함께 뛰는 동료들은 물론이고, 그로 인해 백업으로 밀려난 선수들까지 서슴없이 다가와 말을 걸어 댄다. 얼마 전부터는 이 팀의 주전포수라는 거대한 덩치 놈과 투수 리드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을 이어가는 중이다.
용병이라 무시하거나 특별 대우 하는 법 없이 선수들 사이에 자유로운 토론이 오간다.
월터는 아주 오랜만에 야구 자체에 대한 재미를 느끼고 있는 중이다.
수원의 리드오프가 안타를 치고 1루에 나가 있는 상황.
따아아악!
2번 타자가 친 타구가 자신을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가벼운 스탭을 밟으며 그 타구를 향해 달려 갔다.
예전 같으면 무릎이 아파 뒤뚱거렸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아니다.
옆으로 빠지려는 타구를 가볍게 건져낸 월터가 주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1루에 있던 주자가 이를 악물고 2루로 뛰고 있었다. 저 선수의 스피드를 생각하면 무조건 3루를 욕심 낼 것이다.
“흐압!”
아주 잠깐 무난한 중계 플레이를 떠올렸던 월터가 뭔가를 결심한 듯 기합을 내뱉으며 전력으로 송구를 뿌렸다.
승부다.
포수 생활을 하며 다져진 강하고 빠른 송구가 3루수를 향해 날아갔다.
촤아악
3루를 향해 달리던 안태규가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시도했고, 월터의 송구를 받은 안치욱이 그를 향해 글러브를 내밀었다.
육안으로는 구분하기 힘든 타이밍, 잠깐 뭔가를 고민하던 3루심의 입이 마침내 열렸다.
“아웃!”
“야! 그게 왜 아웃이야!”
수원 벤치에서 최용식 감독이 뛰어나오며 항의했고, 곧바로 비디오 판독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판정 번복은 없었다.
“아웃!”
“우아아아!”
“월터! 월터! 월터!”
저 멀리 3루 원정석에 앉아 있는 팬들의 입에서 월터의 이름이 연호되었다.
그라운드 위에서는 다른 동료들이 월터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내밀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 유격수 자리에서 유난히 크게 웃고 있는 이 팀의 중심 한수혁.
월터의 머릿속에 오늘 경기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포수 미트는 왜?’
‘잠시만요, 월터. 일단 따라와봐요.’
‘젠장, 뭔지 말은 해줘야…….’
한수혁이 자신을 데려간 곳은 불펜이었다.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은 텅 빈 불펜.
‘공 몇 개만 받아주세요.’
‘뭐? 무슨 공? 설마 투구라도 하겠다는 거야? 왜?’
‘일단 받아줘요.’
‘이게 대체 무슨…….’
예정에는 없던 한수혁의 연습투구가 시작되었다.
월터는 영문을 모른 채 그가 던지는 공을 모두 받아주었다. 그리고 경악했다.
‘솔직히 대답해줘요, 월터.’
‘이게 대체… 그런데 뭘? 대체 뭘 대답하라는 거야?’
‘당신이 받아봤던 빅리그 에이스급 투수들의 공, 그리고 지금 내 공. 어때요?’
그제야 월터는 한수혁이 무엇을 알고 싶어하는지 깨달았다.
자신의 공을 빅리그 에이스급들과 비교해 달라는 것이었다.
월터가 해줄 말은 단 하나뿐이었다.
‘아무래도 넌… 음, 제정신이 아니야. 이런 공을 갖고 왜 타자를 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왜 한국에 남은 거야?’
대답을 들은 한수혁의 표정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감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