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03)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02화(103/412)
#102. 투타 겸업
생각해보면 내가 어린 시절부터 오직 야구 하나만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어머니가 야구광이었고, 그 때문에 거의 매일 야구장을 들락거렸고, 결국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게 되긴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때 나는 야구만큼이나 축구도 좋아했던 거 같다.
아니, 확실히 그랬다.
꼬맹이들에게 야구는 너무 접근성이 떨어지는 스포츠다. 일단 필요한 장비부터 시작해서 인원까지, 한번 시작하려면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자꾸 같이 축구를 하자고 하는 통에 시간이 날 때마다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곤 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가끔 축구장에 가기도 하고, TV로 프로축구 경기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주 잠깐 축구로 향했던 내 관심은 금세 사그라지고 말았다. 딱히 별다른 계기가 있던 건 아니었다.
야구 경기는 매일 있었지만 축구는 일주일에 겨우 두 번, 그마저도 운이 없으면 한 번뿐이었기 때문이다. 뭐랄까, 지속성이 좀 부족했다고 해야 하나.
매일 일상처럼 반복되는 야구를 보고, 그 결과에 기뻐하고, 혹은 좌절하고, 그날 경기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신나게 떠들고.
자연스럽게 내게 야구는 일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그때 나는 야구 그 자체보다는 내 주변 사람들, 그러니까 어머니, 성훈이 형 같은 사람들과 매일 야구 얘기를 나누는 게 더 좋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버릇이 아직까지도 이어져 온 걸까, 나는 지금도 야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즐겁다.
“야, 안치욱. 월터 저 아저씨가 치는 걸 잘 봐둬.”
“뭐, 뭘 보면 되는 건데?”
1회말 월터의 레이저 송구로 인해 위기에서 벗어난 라이언은 이어지는 3번과 4번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잡아내며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2회초 워리어스의 공격.
선두타자로 나선 월터 스미스가 배터박스를 고르며 타격을 준비하고 있다.
“저 아저씨가 예전에 시프트 때문에 꽤나 고생을 했거든.”
“그래? 그런데 너가 그걸 어케 알아?”
“그런 거 따지지 말고, 잘 봐 두라고. 어떤 식으로 시프트에 대처하는지 말이야.”
사실 큰 기대를 갖고 하는 말은 아니다. 이 말 한마디가 당장 안치욱을 변화시키기라 믿지도 않는다.
월터가 빅리그에서 타격에 어려움을 겪었던 건 극단적인 잡아당기기에 따른 수비 시프트 때문이었다.
만약 수비 시프트라는 게 없었다면, 혹은 마이너리그에 적용되었던 수비 시프트 금지 규정이 빅리그에까지 안착되었다면, 월터가 그곳에서 쫓겨날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극단적인 잡아당기기.
월터가 친 타구의 70% 이상이 좌측으로 향했고, 상대팀은 그곳에 3명의 수비수들을 배치했다. 3-유 간 공간에 3루수와 유격수, 2루수가 나란히 서서 그의 타구를 기다렸다.
때문에 월터는 그 시프트를 뚫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해야만 했다. 스위치히터로의 변신을 시도하기도 했고, 밀어치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결국 월터가 내린 결론은 자신의 타격법을 바꾸는 대신 그 장점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었다.
극단적인 어퍼 스윙으로 타구의 각도를 높여 내야 타구의 비중을 줄였다. 설사 빗맞은 타구가 나오더라도 내야를 뚫을 수 있도록 타구의 속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물론 이것은 시프트를 뚫기 위한 하나의 접근법일 뿐이다. 꼭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월터와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안치욱, 이 애송이가 여기서 뭔가 힌트를 얻길 바란다. 그리고 그 해결법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눴으면 하는 마음이다.
따아아악!
“음… 잘 보긴 했는데, 뭘 느껴야 할지는 모르겠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
“…됐다. 나가서 타격이나 해라.”
암만 봐도 대화 상대를 잘못 고른 것 같다.
아직 똥오줌도 잘 못 가리는 풋내기를 붙잡고 내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한 거지.
* * *
– 원정팀 워리어스가 2점을 뒤진 가운데 9회초 마지막 공격, 원아웃 주자 1, 2루에서 한수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 아, 투수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는군요. 안타 한 방이면 동점, 큰 것 한 방이면 역전까지도 가능한 상황입니다!
– 그런데 어… 아… 자동고의사구가 나왔습니다. 수원 벤치가 한수혁 선수와의 승부를 피하는군요. 이렇게 되면 원아웃 만루 상황에서 4번 조성오 선수를 상대하게 됩니다. 위원님, 지금 수원의 선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글쎄요. 무슨 심정인지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현 시점에서 리그 최고 타자인 한수혁 선수와 상대를 하는 게 부담이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한수혁이라고 해서 매 타석 홈런을 치는 건 아니거든요. 오늘도 1회초 안타 하나 외에는 출루가 없고요.
– 승부를 했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 네, 아무리 한수혁이 겁나더라도 한 점도 아니고 두 점 차이거든요. 1사 만루에 조성오. 안타 하나면 바로 동점, 2루타 이상이면 역전입니다.
– 혹시 한수혁 선수가 이번 경기에서 홈런을 못 친 게 아까워서 그러시는 건 아니시고요?
– 흐흐, 제가 아무리 한수혁 선수를 빨… 죄송합니다. 개인적으로 팬이라고 해도 중계에서 그런 식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어, 못 믿는 눈치인데 정말입니다. 제가 이래 봬도 공정과 신뢰를 최우선으로 하는…….
* * *
라이언 스타크와 최경재, 에이스 간의 투수전이 될 것 같았던 오늘 경기에서 양팀 선발은 나란히 5이닝 만에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다.
딱히 별다른 일이 있던 건 아니다. 그저 양팀 타자들의 컨디션이 너무 좋았을 뿐이다.
한편 수원은 안치욱과 월터, 두 타자를 상대로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를 펼쳤다.
안치욱의 타석에서는 3루수를 제외한 세 명의 내야수가 1-2루 사이에 배치되었고, 반대로 월터를 상대할 때는 1-2루 사이에 1루수 혼자 남고, 나머지 세 명이 3-유 간을 틀어막았다.
처음에는 그저 타자의 특성에 따라 약간씩 수비 위치를 조정하며 시작된 수비 시프트가 저렇게 극단적인 형태까지 진화하자 미국에서는 2022년 마이너리그를 시작으로 이에 대한 금지 규정을 신설한 바 있다.
2루 베이스를 중심으로 좌우 2명씩의 야수가 배치되어야 한다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당연한 규정. 문제는 이 규정의 빅리그 도입이 이런저런 이유로 지연되며 KBO 역시 손을 놔 버린 상태라는 거다.
개인적으로 수비 시프트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여러 가지 스윙을 섞어 쓰기에 딱히 내게 시프트를 거는 팀이 없는 것도 이유지만, 그것보다는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이라면 그게 뭐든 승리를 위해 하겠다는데 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결국… 강하게 때리는 게 정답인 건가.”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지.”
오늘 경기에서 월터와 자신에게 걸린 수비 시프트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안치욱은 무언가 해결의 실마리를 잡은 것처럼 보였다.
시프트에 대처하는 방법은 상당히 많다.
보다 강하게 때려서 시프트를 뚫을 수도 있고, 월터처럼 타구각을 높여서 아예 땅볼 타구를 줄이는 방법도 있다. 혹은 시프트의 반대 방향으로 기습번트를 대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게 뭐든 타자 스스로 해답을 찾아야 한다.
한번 약점이 노출된 선수에 대해서는 지긋지긋하게 분석이 따라붙는 게 현대 야구인 만큼 안치욱으로서는 꼭 넘어서야 할 과제가 된 셈이다.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2점 차 워리어스가 뒤진 상황에서 1사 만루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타석에는 조성오 선배가 들어섰다.
시즌 초만 해도 이런 상황에서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던 조성오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감돌고 있다.
야구에서 기세라는 건 정말 중요하다. 이미 조성오는 타격을 하기 전부터 기세 싸움에서 이기고 들어간 상태였다.
부웅
“스트라이크!”
초구를 노린 조성오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원정석에서 탄식이 흘러나오고, 반대로 홈팀 응원석에서 환호가 쏟아졌다.
하지만 그라운드 위의 풍경은 조금 달랐다.
힘이 느껴지는 헛스윙에 투수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고, 반면 타자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아닌 아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심리 상태는 곧바로 결과로 이어졌다.
따아아악!
커다란 타격음과 함께 타구가 중견수와 우익수 사이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굳이 결과를 지켜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빠르고 강한 타구.
세 명의 주자가 동시에 스타트를 끊었고, 조성오 선배 역시 전력을 다해 1루로 질주했다.
그렇게 세 명의 주자가 모두 홈에 들어온 후에야 2루수에게 공이 송구되었다.
3타점 적시 2루타.
단숨에 경기를 뒤집은 조성오 선배가 2루 베이스 위에서 포효했다.
그리고 수원 덕아웃이 침묵에 잠겨 들었다.
장장 3시간이 넘게 진행된 승부가 단 한순간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어 버렸다.
9회말 마운드에 오른 양기철 선배는 네 타자를 상대로 볼넷 하나만을 내주며 완벽하게 경기를 틀어막았고, 우리는 수원과의 승차를 한 게임 더 벌렸다.
* * *
“진짜 미친 듯이 쏟아지네. 기껏 분위기 좋았는데 이러다 경기 감각 다 떨어지겠다.”
“그러네요. 저 한국에 와서 이렇게 비 많이 오는 건 처음 보는 거 같은데요.”
“응? 한국에 와서?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어디 다녀왔어? 말하는 게 무슨 외국에서 살다 온 교포 같은데?”
“아, 아니요. 그냥 한번 해본 말이에요. 흐흐.”
“싱겁기는. 음… 그럼 오늘은 이쯤 하고 퇴근해볼까. 수혁이 너는?”
“전 제이콥한테 좀 들렀다 가려고요. 요즘 밸런스가 좀 틀어진 것 같아서.”
“그래? 알았다. 그럼 비 오는데 조심하고.”
“바로 코앞인데요, 뭐.”
“크크, 그래. 부럽다. 야, 나 간다.”
수원과의 1차전에서 기분 좋은 역전승을 거둔 우리는 그 기회에 승차를 더 벌리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다음 날 이어진 2차전에서도 우리는 3회까지 3 대 0으로 앞서 나갔다.
하지만 갑자기 쏟아진 비가 모든 것을 멈추게 만들었다.
엄청난 비구름을 동반한 늦장마였다. 거기에 태풍까지 겹치며 나라 전체가 물바다가 되어버렸다.
진행 중이던 수원과의 2차전이 노게임으로 선언된 데 이어 다음 날로 예정된 3차전, 그리고 이어진 창원과의 홈 3연전이 줄줄이 취소되고 말았다.
우천 취소 경기를 줄이기 위해 전국 야구장에 대한 배수 시설을 싹 다 뒤집은 KBO로서는 허탈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취소 경기가 점점 쌓여간다. 하반기에 다시 잡힐 취소 경기의 결과가 최종 순위에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지금부터 고민할 문제는 아니겠지.
일정이 잠시 중단된 4일간 팀 자체 훈련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나는 리그가 중단된 틈을 타 제이콥과 중요한 문제를 의논하는 중이다.
“제이콥.”
“왔군. 어서 들어와.”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병원에서 연락이 왔거든. 새로 쓰기 시작한 약이 애니에게 효과를 보는 것 같다고 말이야.”
“다행이네요. 정말로요.”
“좋아, 한국에 오길 잘했어. 아무튼 지금 심정 같아서는 뭐라도 할 수 있을 거 같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요.”
“그 문제? 하아… 이런 젠장 맞을 애송이 같으니.”
“여기서 더 치고 나가려면, 아니, 적어도 지금 순위를 하반기에도 유지하려면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거 같아요. 마침 우천 취소 때문에 이렇게 고민할 시간도 생겼고요.”
“마지막으로 묻지. 혹시나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나?”
“저도 알아요, 제이콥. 제 준비가 완벽하지 않다는 거. 하지만 원래 야구라는 게 그렇잖아요? 완벽한 준비라는 게 어디 있겠어요?”
“그래, 그건 그렇지. 좋아. 그 정도로 뜻이 확고하다면 더 이상 묻지는 않겠어. 네가 생각하는 일정은?”
“일단 올스타전에서 가볍게 몸을 풀어보고, WBC에서 다시 한번 체크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 결과가 괜찮다면 하반기부터 바로 시작하는 걸로 말이죠.”
“생각했던 것보다 석 달 이상 빠른 스케줄이군. 그럼 오늘부터 바로 준비에 들어가야겠어.”
“네, 제이콥. 그럼 부탁드립니다.”
아무리 빨라도 가을 야구 전까지는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투타 겸업, 나는 지금 그것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