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07)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06화(107/412)
#106. 누군가의 뒷모습
[올스타전 마무리투수로 깜짝 등판한 한수혁, 세 타자 연속 삼진] [4연타석 홈런 날린 한수혁, 마무리까지 책임지며 드림 올스타 승리 견인] [한수혁이 던진 168㎞/h, 비공식 한국 야구 최고 구속 신기록으로 남을 듯] [올스타전 참가한 선수들 “가까이서 보니 더 괴물, 말도 안 되는 선수”] [드림 올스타 팀 구용식 감독 “한수혁 같은 선수만 있다면 10년 왕조 건설도 가능” 극찬] [하반기 투타 겸업 도전? 한수혁 “아직 확실히 정해진 건 없다”] [올스타전까지 마친 프로야구, 이제 20일간의 휴식기 돌입] [야구 국가대표팀, 3일 WBC 열리는 미국 현지로 출국] [한수혁 포함된 야구대표팀, 2023년 본선 1라운드 탈락의 치욕을 씻어낼 것인가]어제 내가 던진 168㎞/h의 포심은 내 생을 통틀어 가장 빠른 공이었다.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력을 다한 공은 아니었는데 어제 유난히 컨디션이 좋았던 덕분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WBC를 앞두고 내가 갑자기 투수로 등판하고, 거기에 168㎞/h짜리 공을 던지자 이와 관련된 기사들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나에 대한 관심은 국내에만 한정된 게 아니었다.
이번 WBC에서 또 한 조에 편성된 일본, 그리고 최근 들어 야구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는 중국, 두 나라의 언론에서도 내 등판에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오타니에 이어 투타 겸업에 도전하는 한수혁, 사무라이 재팬의 앞을 막아설 것인가?] [2023년에 이어 2연속 우승 노리는 사무라이 재팬, 투수 한수혁에 대한 정밀 분석 들어가] [‘한수혁’에 대한 질문에 호시노 켄지 감독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기백”]뭐… 쟤들이 저렇게 호들갑 떨고 다른 나라 선수를 추켜세워주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니까.
일본의 국민성을 감안하면 한국을 완전히 밟아주겠다고 입을 털었던 이치로 쪽이 오히려 이상한 거다.
어쨌든 일본에서도 내 투수 등판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눈치였다. 출국하는 공항까지 찾아와 마이크를 들이밀던 일본 기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한수혁 상, 혹시 올스타전에서의 투수 등판은 일본전에 대비하기 위한 한 수였습니까?”
“네?”
“일각에서는 한국 대표팀이 일본을 이기기 위해 배수의 진을 쳤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맞나요?”
“금시초문인데요.”
“혹시 가장 존경하는 선수는 누구입니까? 역시 오타니 쇼헤이겠죠?”
“저희 팀 조성오 선배님이랑 이만식 선배님이요.”
“…….”
아마 내일 정도면 2ch가 내 욕으로 도배될 것 같지만 뭐 내 알 바는 아니고.
그나마 일본 언론은 상대하기 쉬웠다. 중국 기자들에 비하면 말이다.
2019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중국 프로리그에서는 최근 엄청난 돈을 풀어 은퇴 직전의 빅리거들을 사들이는 중이었다.
물론 그 선수들의 대부분이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졌지만 말이다.
“한수혁 선수의 조상이 중국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인가요?”
“중국과의 일전을 대비해 당신이 비밀 투구훈련을 한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어떤 훈련인가요?”
“중국 프로리그에서 뛸 생각은 없습니까? 한수혁 선수?”
하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대며 귀찮게 굴길래 한마디 해주었다.
“중국에서도 야구를 하나요?”
“…….”
아마 일본에 이어 중국인들까지 내게 욕을 쏟아붓겠지만 그것 역시 내 알 바는 아니었다.
말이 말 같아야 상대를 해주지, 원.
아무튼 올스타전이 끝난 다음 날인 8월 3일 아침, 나와 장덕수 선배를 포함한 30명의 WBC 대표팀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지난 2023년 대회까지는 본선이라 해도 비슷한 지역의 국가들을 하나로 묶어 여러 나라에서 경기를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웃긴 일이 발생한 게 WBC를 대비한 대표팀 전지훈련은 미국에서 진행했는데, 정작 일본에서 벌어진 1차 본선에서 탈락해버리는 통에 미국에는 가보지도 못했다는 거다.
말 그대로 개망신을 당한 것이다.
새로운 총재가 취임하며 WBC에 큰 기대를 걸었던, 그래서 비행기 좌석부터 시작해 최고급 호텔까지, 엄청난 지원을 했던 KBO로서도 허탈하기 짝이 없는 결과였다.
뭐, 그때 얘기를 굳이 다시 할 필요는 없겠지만 문제는 그 여파가 내게도 미치고 있다는 거다.
“자, 다들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이것도 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거니 조금만 참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가뜩이나 덩치가 큰 선수들이 이코노미 좌석에 앉아 미국까지 가게 생겼다.
솔직히 나는 크게 상관없다는 입장이지만 애초에 이코노미에 앉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체격의 선수라든지, 무릎이 불편한 선수들에게는 조금 가혹한 일이었다.
지금 내 옆에 앉은 장덕수 선배는 그 두 가지 모두에 해당되는 경우였다.
“끄응…….”
물론 KBO의 입장도 이해가 가긴 한다.
매년 지원되는 200억 원의 운영비, 거기에 국가대표 경기 때마다 책정되는 별도의 예산들.
솔직히 구단을 인수하기 전에는 나조차도 몰랐다.
매년 문체부에서 KBO에 운영 예산을 지원한다는 걸, 국제대회가 있을 때마다 별도의 예산을 지원해 준다는 걸 말이다.
정부 예산안에도 프로스포츠 지원이라고만 뭉뚱그려 기입을 하니 일반 사람들이 알 턱이 있다.
아무튼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지원을 받고도 지난 대회에서 그 망신을 당했으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거다.
음.
암만 그래도 장덕수 선배한테 이코노미는 좀 가혹한데.
“선배님, 괜찮겠어요?”
“괜찮여. 대충 구겨 앉으면 돼. 걱정 말어.”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면서부터 장덕수 선배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비행기 좌석 때문은 아니다. 전반기 마지막 경기에서 입은 무릎 부위의 타박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게 원인인 듯하다.
차라리 구단 예산으로 별도 좌석을 준비할 걸 그랬나.
하지만 이제 와서 뭔가를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렇게 30명에 달하는 대표팀 선수들과 스태프들, KBO 관계자들이 하나둘 비행기에 올라탔다.
억지로 앉기는 했지만 장덕수 선배의 표정이 너무 안 좋아 보였다.
옆에 앉은 나라도 좀 덩치가 작았다면 사정이 나았으련만, 자리에 앉아 보니 서로의 다리가 이상하게 부딪히는 통에 보통 불편한 게 아니다.
“저기, 팀장님.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요. 장덕수 선배 자리 좀 어떻게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아, 한수혁 선수.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게 국가대표팀 규정에 2m 5㎝ 이상 선수에게만 비즈니스 석 사용이 가능하다고 나와 있어서요. 저희 사정 아시잖아요? 이번에는 그 규정을 따를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비즈니스 석에 관계자분들 좌석 있죠? 그분들 중에 혹시 양해를 좀 구하면…….”
“거기 다들 나이 드신 분들뿐이라…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오늘 선수단 일행을 통솔하는 역할을 맡은 KBO 운영팀장도, 혹시나 자신이 도와줄 일은 없을까 다가온 스튜어디스도, 모두 난감한 얼굴로 장덕수 선배와 나를 바라보았다.
“괜잖다니께, 수혁아. 걱정 말어. 미안혀. 내가 너무 크지?”
그렇게 이코노미석 전체에 암울한 분위기가 퍼져 가던 그때.
“언니, 여기 이 두 분 저희 좌석이랑 바꿔주세요. 아직 출발 전이니까 상관없죠?”
아주 많이 들어본,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명랑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민예린 ㅆ… 아니, 예린아?”
“오빠!”
마스크와 선글라스, 모자로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던 어떤 여자가 나를 보며 크게 소리쳤다.
민예린이다.
야, 네가 대체 왜 지금 이 비행기에…….
“뭐야, 왜 이 비행기에 네가 있어……?”
“됐어요, 오빠.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라 승무원분들 곤란하지 않게 오빠랑 장덕수 님이랑 빨리 저쪽으로 가서 앉으세요. 저랑 매니저 오빠랑 여기 앉을 테니까. 승무원 언니, 그래도 되죠?”
“네? 네, 네. 좌석 바꿔 앉으시는 건 상관없는데… 일단 티켓 확인 좀 해도 될까요?”
“여기요, 두 장.”
“…일등석이네요?”
“네, 여기 두 분 그쪽으로 모셔주세요. 대신 저랑 매니저 오빠랑 둘이 이 자리 앉을게요.”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한 민예린이 나를 보고 빙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마치 재롱을 부리고 주인의 칭찬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고맙기는 한데 무작정 고개를 끄덕일 일은 아닌 것 같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장덕수 선배, 그리고 대표팀의 다른 선수들까지 다 걸린 문제이니까.
여기서 괜히 일등석으로 옮겨 앉았다가 특혜니 뭐니 또 무슨 기사가 뜰지 알고.
“예린아, 나는 괜찮아. 무릎 때문에 힘들 거 같으니까 장덕수 선배님만 좀 부탁해도 될까?”
“앗! 그래요? 네, 그럼 매니저 오빠! 여기 장덕수 선수님 모시고 우리 자리로 가서 앉아. 나는 여기 앉아서 갈 테니까.”
“응? 예린아? 진짜? 괜찮겠어? 이코노미에 앉아서 간다고? 네가? 레알 가능?”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소리는 지르지 말자. 우리. 알았다. 저기 장덕수 선수님, 이쪽으로 가시죠.”
그렇게 민예린의 매니저가 장덕수 선배를 데리고 1등석 쪽으로 사라졌다.
다행이다. 우리 팀 주전포수의 무릎을 지킬 수 있게 돼서.
흐뭇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민예린이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 계신 기자분들~ 절대 이상한 기사 같은 거 쓰면 안 되는 거 아시죠? 저는 그냥 이코노미에 앉는 게 불가능한 대표팀 선수분을 위해 좌석 양보한 게 전부예요. 특혜 그런 거 아니니까 표현 조심해주세요. 약속하실 거죠?”
마치 유치원 선생님 같은 그 말투에 이곳저곳에 앉아 있던 기자들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SNS에 지금 이 상황을 찍어 올리려던 일반 시민들까지도.
하기사, 인터넷에서 민예린 별명이 저승사자라고 했지. 조금이라도 사실과 다른 기사를 내거나 악플을 달면 끝까지 추적해서 고소해 버린다고 해서.
생각할수록 신기하네. 진짜 이러고도 연예인 생활이 가능하다고? 이 유교국가에서?
“오빠, 다 정리했어요. 그럼 이제 우리도 앉을까요?”
장덕수 선배가 빠지고 대신 그 자리에 민예린이 앉자 자리가 꽤나 널널해졌다.
“다리 최대한 벌리고 앉으세요. 저는 쪼그매서 여기 구석에 웅크리고 가도 되거든요. 히히.”
“일부러 그럴 필요 없어. 편하게 앉아도 돼. 그보다 이게 뭐야. 왜 이 비행기에 탄 거야? 미국에 가는 중이야? 야구 보러?”
“아뇨, 아빠 만나러요.”
“아…….”
“아빠 만나서 같이 야구 보려고요.”
그게 그 말 아닌가?
모르겠다. 확실히 보통 인간은 아니다.
깊게 생각해봐야 나 같은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진짜 끝까지 말 높일 거야? 동갑내기한테 오빠 소리 듣는 것도 이상한데, 말까지 높이니까 너무 불편한데.”
“아뇨, 저는 말 안 놓을 거예요. 그게 제 마지막 양심이니까요.”
“…대체 그건 또 뭔 소리야.”
모르겠다. 일일이 따지고 들기도 피곤하고.
10시간이 넘게 이코노미에 끼어서 가야 하는데 잠이나 자야지.
* * *
“오빠, 도착했어요. 일어나세요.”
“으음…….”
“수혁 오빠?”
“어, 깼어.”
“히히, 오빠 미국은 처음이죠? 아, 아니다. 트레이너분 데리러 시애틀 다녀왔다고 했지? 어쨌든 뉴욕은 처음이죠? 환영합니다. 웰컴 투 뉴욕!”
민예린의 활기찬 목소리를 들으며 선잠에서 깨어났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곧바로 잠이 들려던 내 계획은 무산되었다.
옆에 앉은 민예린이 계속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가 묻는 말에 대충 대답도 해주고, 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는 은근슬쩍 맞장구도 쳐주고.
기내식도 함께 먹고, 승무원의 사인 요청에 응해 주기도 하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 깨어보니 이곳이다.
존에프케네디 국제공항.
예전 내 삶의 가장 화려했던 순간을 보냈던 곳, 21세기 첫 우승에 도전하는 메츠의 꿈을 무참히 꺾어 버렸던 곳.
뉴욕.
“수혁 오빠, 선수단은 바로 구장으로 이동하나 봐요. 이제부터는 함께 움직이지는 못하겠지만 계속 따라다니면서 응원할게요. 절대 다치지 말고, 제 말 무슨 뜻인지 알죠? 저 그럼 짐 챙기러 제 자리로 가볼게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장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 된 민예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 다른 선수들에게도 꾸벅 인사를 한 후 1등석 쪽으로 돌아갔다.
오랜만에 미국에 와서일까, 아니면 아직 잠에서 덜 깬 것일까.
그녀의 뒷모습이 자꾸만 누군가를 연상시킨다.
잊힐 만하면 생각나는 그 누군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