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11)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10화(11/412)
#10. 이런 미미한 놈까지는…
바위에 계란 하나를 던져보자.
계란이 깨질 것이다.
계란 하나를 더 던져보자.
역시 깨지는 건 바위가 아니라 계란이다.
자, 그럼 이번에는 쉬지 않고, 연속으로 계란을 여러 개 던져보자.
그래봐야 역시 작살이 나는 건 계란이다.
별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홍영식 선배가 계란이고 내가 바위라는 뭐 그런···
따아아악!
따아악!
따아아아악!
“그만, 그만. 챔피언, 오늘은 여기까지만.”
“네, 코치님.”
마운드에 선 홍영식이 얼빠진 표정으로 한수혁을 바라보았다.
이제 막 스프링캠프가 시작되기는 했지만 지난겨울 동안 놀지 않고 몸 상태를 끌어올렸다.
그렇게 폼이 빨리 올라왔기에 자신의 145km/h짜리 패스트볼이면 꽤나 잘 먹힐 거라 자신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계약금 10억을 받고 입단한, 스스로 말하길 워리어스에 입단하는 게 꿈이어서 메이저리그까지 포기했다는 놈은 그런 홍영식의 공 절반 이상을 담장 밖으로 날려버렸다.
심지어 그 중 몇 개는 아예 장외로 넘어가버렸다.
미친놈이었다.
192cm에 95kg이라는 프로필만큼이나 힘이 엄청난, 아니, 정확성까지 동시에 갖춘 그런 놈이었다.
중간중간 예고도 없이 던진 체인지업을 방망이 속도를 살짝 줄이는 것만으로 완벽히 받아 칠 때 느꼈다.
아, 이놈은 야구를 위해 태어난, 나랑은 종자가 다른 그런 놈이구나.
새로운 감독과 코치들에게 눈도장을 찍으러 올라왔다가 오히려 탈탈 털려버린 홍영식이 허탈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마운드를 내려갔다.
“수고하셨습니다.”
“······”
타석에서 물러서며 황성민을 향해 슬쩍 인사를 하는데 눈동자에 초점이 하나도 없었다.
고작 이 정도에 입을 닫을 걸 대체 뭘 믿고 들이댄 거야?
연습배팅으로 잔뜩 달구어진 몸도 식힐 겸 덕아웃 쪽으로 들어가던 그때, 무언가 검고 커다란 그림자가 내 앞으로 쑥 다가왔다.
“음, 한수혁.”
“앗, 깜짝이야!”
“오랜만이군. 날 잊지는 않았겠지.”
뭐지, 이 놈은.
살다 보면 의도치 않은 기억들이 뇌 속에 남아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전 삶까지 합치면 35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왔건만, 아직도 내 기억 속에는 중학교 때 타고 다니던 버스 노선 번호라든지, 아주 가끔 들렀던 PC방의 좌석배치 같은 쓸데없는 기억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 이놈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마터면 너 같은 미미한 놈까지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고 말해버릴 뻔했다.
이놈이 누구더라···?
“나다. 안치욱. 춘계 대회 때 만났잖아.”
흠.
이놈에게는 나를 본 것이 불과 몇 달 전의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그게 무려 15년 전의 일이다.
기억나지 않는 게 당연할 수밖에.
“우리가 친구였던가?”
안치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애초에 다른 볼일이 있었다는 듯 내 앞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몇 차례 스윙을 하기 시작했다.
허공에 대고 몇 번의 스윙을 마친 안치욱이 내게 물었다.
“비슷하지?”
“뭐가?”
당최 모르겠다. 대체 이 놈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척 보기에도 뭔가 몸에 안 맞는 듯한, 뻣뻣하기 그지없는 저런 스윙을 왜 내게 보여주는 걸까?
가만···
“설마, 그거 내 스윙 따라한 거냐?”
“음.”
안치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침음성을 한 번 흘리고는 타석으로 들어섰다.
그새 정신이 돌아왔는지 황성민이 또 안치욱에게 뭐라 중얼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입을 닥치게 된 건 나에 한해서인 모양이다.
아, 황성민 저거 진짜 제대로 꼴통이네.
따악
딱
따악
이어지는 안치욱의 연습배팅
뭔가 엄청난 것을 보여줄 것만 같았던 안치욱은 바뀐 투수의 공을 받아쳐 힘없는 땅볼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놈은 내 것을 따라한 것임에 분명한 어설픈 어퍼스윙을 고집하고 있었다.
타격코치가 통역을 통해 뭔가를 주문하는 듯했지만 그는 애써 못 알아들은 척 그 스윙을 이어갔다.
저 놈, 대체 뭐하는 거지?
따아악!
소 뒷발에 쥐 잡은 격으로 드디어 그 어설픈 스윙이 뭔가를 만들어냈다.
내 타구와 거의 비슷한 곳까지 공을 날려버린 안치욱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또 황성민에게 한 소리를 들었는지 금세 시무룩해져서는 땅볼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
그제서야 떠올랐다. 정확히 몇 학년 때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대회에서 만났던 놈이구나.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레벨스윙으로 1, 2루간 총알 같은 타구를 날려 대던 놈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 나조차도 살짝 질투할 정도의 타격 센스를 가진 놈이었다.
어린 마음에 덩치 값도 못하고 땅볼만 친다고 한 마디 했더니 누가 홈런을 더 많이 칠지 내기하자고 들이대던 기억이 난다.
가만, 그럼 그 이후로 계속 저런 스윙을 해온 거야?
자기 특기인 정확한 스윙 대신 어설프게 나를 따라한 어퍼스윙을?
거참.
신박한 또라이일세.
* * *
타격에 이어 수비 훈련이 시작되었다.
이번 칼바람에 휘말리지 않고 꿋꿋이 살아남은, 이제 이 팀에 몇 안 되는 한국인인 수비코치가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펑고를 날리기 시작했다.
따악
척
따아악
척
딱
척
“와우···!”
“언빌리버블!”
유격수를 시작으로, 2루와 3루, 마지막에는 1루 자리에서 펑고를 받아낸 내가 유니폼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그라운드 밖으로 나갔다.
한곳에 몰려 있던 외국인 코치들이 수근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다 들린다.
“헤이, 저게 정말 루키라고? 메이저리그에서 한 10년쯤 구른 베테랑이 아니고?”
“놀랍군. 저 정도면 당장 빅리그에 올려도 주전이야.”
“저 덩치에 풋워크랑 글러브질이 저렇게 유연할 수가.”
“저번에 영상으로 본 거랑은 전혀 다른데? 개인훈련이라도 한 건가?”
메이저리그 초창기 투타 겸업을 할 때만 해도 나는 상당히 도전적인 수비수였다.
안정보다는 모험을 즐겼고, 실수를 두려워하기보다는 도전하는 걸 선택했다.
하지만 투수를 그만둔 후 완전히 타자로 전향한 후에는 부상 때문에 그런 수비가 불가능했다.
그때부터 내가 집중적으로 연마한 건 타구예측과 경기의 흐름을 읽는 눈이었다.
타구가 발사된 후가 아니라 그 전부터 상황을 예측하고 미리 한 발 움직이는 것만으로 나는 썩 괜찮은 수비수가 될 수 있었다.
물론 메이저리그 기준으로 그렇다는 거다.
거기서 썩 괜찮은 수비수는 여기서는 MVP급 수비수라는 뜻이다. 게다가 나는 스무 살의 육체를 되찾았고 말이다.
조금 미안한 얘기지만 메이저리그 괴물들의 타구에 익숙해져 있는 내게 KBO 타자들의 타구 속도는 파리가 앉아도 될 정도로 느려 보인다.
그렇게 포지션을 바꿔가며 펑고를 받은 후에는 내야수들만 모여 수비 포메이션 연습을 하기도 했다.
내가 유격수 자리에 서게 되며 자연스럽게 3루로 옮겨간 송기태가 눈에서 불을 뿜을 듯 나를 노려봤지만 뭐, 내가 알 바는 아니었다.
그나저나 송기태 이 놈 진짜 수비 못한다.
타율이 2할 초반밖에 안 되는 유격수가 저 정도 공도 못 잡으면 대체 뭘로 30억짜리 FA계약을 따낸 걸까?
짧게 한숨을 쉬며 유니폼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있는데 안치욱 놈이 또 슬금슬금 다가와 이상한 소리를 해대기 시작한다.
“한수혁.”
“왜?”
“···…”
“말을 해.”
“음, 그게.”
“나 그냥 간다.”
“3루 송구가 좋더군.”
“고마워. 그럼 이만.”
“내가 3루에 서고 네가 유격수에 서면 우타자들에게는 악몽이 될 거다.”
“······”
안치욱, 이 놈 진짜 이상한 놈이다.
내가 유격수가 될지, 지가 3루수가 될지, 아무도 말을 해주지 않은 상황에서 신인이라는 놈이 이런 소리를 멋대로 지껄이다니.
방금 옆을 스쳐 지나간 송기태의 표정을 보아 하니 아무래도 이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에라, 모르겠다. 설마 애들도 아니고 밤에 끌고 나가서 때리지는 않겠지.
그렇게 자꾸만 날 따라하려는 이상한 놈에게서 벗어난 나는 주루 연습을 위해 1루에 섰다.
간단한 테스트였다. 마운드에 선 투수코치의 모션을 빼앗고, 스타트를 하는.
팟
타다닥
팟
유니폼에 묻은 흙을 털어내는데 저 멀리 한데 모여 있는 외국인 코치들의 수근거림이 그대로 들려온다.
“빨라.”
“그리고 타이밍이 기가 막히군.”
“저 정도면 마음만 먹으면 도루 서른 개 정도는 거뜬하겠는데.”
“저 덩치로 어떻게 저런 스타트가 가능하지?”
“보스에게 건의해서 그린라이트를 줘야 하는 걸까?”
“일단 연습경기까지는 지켜보자고.”
“아무튼 대단하군. 시애틀에서 괜히 350만 달러를 부른 게 아니야.”
“시애틀 놈들, 얼마 후면 땅을 치면서 후회하겠는데. 나 같으면 바로 천만 달러를 불렀을 거야.”
어깨부상으로 인해 투수를 완전히 포기했을 때 내 나이가 서른이었다.
선수로서 완전한 전성기에 접어드는 그 나이에 나는 타자로 전향해야만 했다.
한때 투수로서 정점에 올랐던 내 자존심이 나를 벽으로 몰아세웠다.
타자로서도 최고가 되라고, 적어도 예전만 못하다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한다고 말이다.
타석에 서면 무조건 장타를 노렸고, 베이스에 출루하면 적극적으로 도루를 노렸다.
그렇게 개인성적에 모든 걸 집중한 덕분에 타자 전향 2년 차에 타율 3할, 30도루, 40홈런을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MVP를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멍청한 짓이다.
내 자존심을 세우겠답시고 팀플레이를 무시하고 개인 성적 올리기에만 몰두했다.
당시 팀 내 위상 덕분에 아무도 앞에서는 뭐라하지 못했지만 뒤에서 나를 어떻게 평가했을 지 안 들어봐도 알 것 같다.
“헤이, 수혁. 올 시즌 목표가 뭐지? 20-20인가?”
“아뇨. 팀의 우승입니다.”
“개인적인 목표는?”
“팀이 우승하는데 일조하는 게 개인적인 목표인데요.”
“흠. 그렇군.”
내 대답을 들은 수석코치가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껄껄 웃으며 감독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아직은 통역이 필요한 탓에 서로 간에 깊은 대화는 불가능한 것 같았지만 두 사람이 나를 보는 시선에 호의가 가득한 걸 보니 대충 무슨 말이 오갔는지 알 것 같다.
그렇게 스프링캠프 첫날이 지나갔다.
틈 날 때마다 안치욱 놈이 내게 와서 자꾸 귀찮게 했지만 화내지 않고 다 받아주었다.
아직은 그냥 덩치 크고 모자란 바보1에 불과하지만 잘만 굴리면 제법 그럴 듯한 선수가 될 수도 있는 놈이니까.
방 배정은 마음에 들었다.
행여나 안치욱 놈과 가까운 방을 배정받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서로 복도 끝과 끝에 위치한 방이었다.
다행이다. 쉴 때는 확실히 쉬고 싶다.
“네가 수혁이구나. 반가워. 난 장덕수.”
“안녕하세요, 선배님.”
“그래, 피곤하지? 우리 화장실에 샤워기가 좀 이상하더라. 공용 샤워실에 뜨거운 물 잘 나오니까 거기 가서 빨리 씻고 와.”
대충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내 방으로 들어가니 팀에서 정해준 룸메이트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장덕수.
황성민에 밀려 5년째 백업으로만 뛰고 있는 포수.
수비력은 그럭저럭 쓸 만하지만 포수를 보기에는 덩치가 너무 커서 1루수 전향을 권유받기도 한 그런 선수.
그것이 내가 이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다. 그리고 지금 거기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될 것 같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럼 씻고 오겠습니다.”
“어, 그래. 참고로 나 밤에 잠도 조용히 자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
“아니, 다들 나 보면 코 엄청 골 것 같다고 그러더라고. 사실은 어린아이처럼 잘 자는데.”
착하다.
저 시골 누렁이 같은 눈망울은 둘째 치더라도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순함이 묻어난다.
사실 야구선수에게 착하다는 건 결코 좋은 칭찬이 아니다.
다른 팀뿐만 아니라 같은 팀 선수들과도 끊임없는 경쟁을 이어가야 하는 프로에게는 적당한 이기심과 욕심, 그리고 승부욕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니까.
그럼에도 이 아수라장 같은 곳에서 누렁이 같은 눈빛을 만나니 가슴이 편해진다.
음, 황성민을 팔려면 이 선배가 제 몫을 해줘야 할텐데.
뭐, 일단은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신경 끄자.
팀을 만들고 운영하는 건 단장과 감독의 몫이니까.
‘쏴아’
따뜻하면서도 강한 그 물살이 뒷덜미를 적시는 순간 하루 동안 쌓여 있던 스트레스가 싹 날아가는 기분이다.
많이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물을 것이다.
메이저리그 대신 워리어스를 택한 진짜 이유가 뭐냐고.
처음에는 그저 내가 어린 시절 야구를 시작하게 만들었던 팀에서 뛰고 싶은 거라 생각했다.
어머니가 좋아하고 응원했던 팀을 우승시키고 싶은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단순히 그 이유 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난 삶에서 나는 야구 선수로서는 거의 끝이라 할 수 있는 곳까지 도달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삶의 중요했던 것 대부분을 잃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시작부터 잘못되었다.
성공을 위해 모든 걸 버린다는 그 발상부터가 글러 먹었었다.
나는 이미 실패를 한 번 맛봤고, 그 과정에서 더욱 강해졌다.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삶의 중요한 것들을 놓지 않으면서도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자신이 생겼다.
쏴아아아
그렇게 오랜만에 나른한 기분을 즐기며 샤워를 즐기던 그때 저 멀리 탈의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이어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 평온을 깨버렸다.
“안치욱, 너 이 새끼. 진짜 똑바로 안 하지?”
하아.
뭔데 또.